여백의 하나님
종일 내 안에 머문 말, ‘여백의 하나님!’ 늦은 오후 내게 주어진 여유의 시간, 조용한 공간. 여기에 주변 여름소리와 초록빛까지 연합하니 더 감사한 날입니다. 어제 오후 저희 교회 인근에 있는 진성면 온수리에 남편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예전에 비해 작은 규모로 운영한다고 소개하면서 일반성에서 매일 닭들에게 밥을 주러 오셔서 푸른 초장에서 청계를 키워 유정란을 생산하는 분의 초대였습니다.
긴 머리 단아하게 묶어 내린 환한 얼굴로 맞이해준 그녀는 ‘(적용) 소금 같은 성도’라는 남편의 설교 제목을 탄생시킨 분이기도 하지요. 공간 하나하나 식물 하나하나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손짓과 말을 듣다보니 마치 체험학습장에 와서 선생님 뒤에 서 있는 어린아이가 된 듯 마음이 들뜨고 즐거웠습니다. 한 가운데 멋드러진 정자 천정 아래 나무판에 새겨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1) 라는 말씀 한절이 걸려있었습니다. 논과 밭 그리고 정자의 운치가 내리는 비에 더 초록초록 정겹고 이야기보따리는 네 시간이나 이어졌습니다. 연한 하늘색 계란이며 보라 빛 보리 감자며, 손수 키운 참외와 숙성시킨 생강차까지 꺼내놓으며 이야기는 익어가는 열매들만큼 무르익습니다. 많은 이야기 중에 ‘여백을 좋아한다.’ ‘가족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조경을 하는 남편은 식물 하나하나를 귀하게 여겨 빈 땅만 보이면 나무를 심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자에서 내다보이는 호두나무 옆이 훤합니다. 처음엔 이곳에도 나무로 빽빽했는데, ‘여백’을 좋아해서 나무를 베어냈다 합니다. 여백에 대한 추억이 있는 내게도 공감의 말입니다.
돌아오는 손에 안겨준 보따리 안에도 보리감자, 양파 그리고 청계 유정란이 가지런히 담겨졌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안고 오래된 묵상노트 ‘여백의 하나님’을 꺼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한 사람을 광야에 두고 친히 양육하며 훈련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 때 온 나라 안이 바알의 활동무대로 되어버린 짙은 어두움 속에 백성을 구원으로 이끄시기 위해 길르앗의 광야에서 한 사람을 기도생활과 말씀묵상훈련을 시작하게 하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를 이곳에서 조용히 준비하십니다.
뒤돌아보니 내게도 어린 청년의 때, 사막의 길을 걷는 듯한 목마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막혀버린 진로 때문에 하나님을 갈망하라고 주신 길르앗의 광야 같았던 시기입니다. 바로 그 때가 말씀 안에서 인생을 준비하게 하는 때였습니다. 이제 50을 넘긴 중년의 때에 여백을 준비해 놓고 기다립니다. 그 동안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로 인해 계속 ing하려는 내 안에 관성의 법칙이 이곳 진주나들목에서 잠시 멈추고, 33년이라는 긴 세월, 창원이란 땅에서 훈련하셨던 하나님께 저를 내어 드립니다. 이곳 진주 땅에서 저를 써주시도록 말입니다.
비록 엘리야에게 응답하신 가뭄의 메시지가 전해온다 할지라도... 온수리 푸른 초장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쌓으며 예배회복을 갈망하는 그녀의 여백에도 이 시간이 귀하니, 그 동안 내린 비의 양 만큼이나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 내려져 가족구원과 이웃사랑으로 이어지길 응원합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당신의 백성을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시 23:3)
최영미 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