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끝
:??급 가이드
#1
"그러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가이드, 머글, 센티넬로 나뉜다. 이 말이죠?"
"요약하자면 그렇죠."
"그런데 사람들은 아직 센티넬과 가이드의 존재를 잘 모르고?"
"그쵸. 그 쪽처럼."
"아.... 아까 전에 제가 뭐 같다고 그러셨죠?"
"가이드요."
"제가 가이드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아세요?"
"뒤늦게 각성하신 특이 케이스라. 찾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요즘은 기술이 워낙 좋아져서, 병원 진료 기록만 보면 알 수 있어요."
"저 이상한 진료 같은거 받은 적 없는데요?"
"더 깊게 알고 싶어요?"
그럼 나 평생 봐야하는데. 마주 앉은 김석진씨가 입꼬리를 올려 싱긋 웃어보였다. 그에 아뇨. 괜찮아요. 제가 괜한 말을. 하고 답한 나는 손으로 입술을 톡톡 때리며 선을 그었고, 곧바로 아이스티를 홀짝이며 시선을 돌렸다. 김석진씨는 그런 나를 보며 푸스스 웃고선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 내게 내밀었고, 곧바로 내 손에 볼펜 하나를 쥐어주었다.
"너무 무서워할 것 없어요. 그렇게 힘든 요구도 아니잖아요?"
"처음 보는 남자랑 스킨십을 하는게 힘든 요구가 아니라고요?"
"그럼요. 받는 돈이 얼만데."
"얼마인데요?"
"10억이요."
"....연봉이요?"
"아뇨? 시급이죠. 1시간당."
"참 좋은 직장이네요. 참 쉬운 요구예요."
내 대답에 줄곧 인자한 미소만을 유지하던 김석진씨가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그리곤 재밌는 분이네요. 재밌어요. 하며 한마디 덧붙였고, 그에 내가 멋쩍어하며 웃었다. 계약서에는 걱정만큼 특별한 사항은 없었다. 이미 살만큼 살아온지라 연애도 수 없이 많이 해봤고, 그만큼 스킨십도 많이 해봤으니 스킨십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처음 보는 남자와의 스킨십은 이미 각오한 부분이니 더욱 더 상관이 없었고. 그에 내가 흔쾌히 볼펜을 들어 계약서에 싸인을 하자, 흡족한 듯한 표정을 지어보인 김석진씨가 서류를 받아들어 소중히 봉투에 집어넣었다.
"이제 집 가서 바로 짐 싸시면 돼요."
"네?"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아니... ㄱ,같이 산다는 말은 계약서에 없던 걸로 아는데..!"
"아. 담당하실 분들이 한 곳에 모여있어서요. 그리고 수시로 가이딩 해주셔야하는데 출퇴근하시기엔 무리가 있지 않나요?"
"자,잠시만요. 담당하실 분들이라뇨..? 한 분이 아니예요?"
"네. 워낙 등급이 높으셔서. 한분만 담당하시는 건 너무 낭비죠. 저희한테."
"..........."
"그래서 시급이 높으신거예요. 등급도 높고. 동거도 하고. 여러명을 담당하시니까."
"...등급이 낮으면 시급도 낮고 동거도 안하고 한 명만 담당하는건가요?"
"그렇죠. 대부분."
"그럼 저 낮은 등급할래요."
"재미없어요 그런 농담."
"농담 아닌데."
"제일 낮은 등급부터 시작하시겠어요? 최저시급 8350원."
"짐 싸러 가죠 김석진씨."
#2
"그리고 한가지 말하는데, 이 직업 쉬운 직업 아니예요."
"네?"
"다들 돈 받고 스킨십 해주는 이상한 직업이랑 비교하시곤 하는데, 여기선 생명 하나를 구하는 행위예요."
"아...."
"스킨십 하나하나에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어요. 가이딩 타이밍을 놓치면 즉사해버리는 센티넬들도 많고요. 그러니까 센티넬들이 가이딩을 요구할 때 바로바로 해주는게 좋아요. 겉으로는 안그렇게 보여도, 에너지 소모가 클 수 있으니까."
"네네. 바로바로 가이딩하도록 할게요."
"그럼, 뽀뽀 좀 해줘요."
"네?"
"뽀뽀 좀 해달라고요"
"지금요?"
방금 제 앞에서 바로바로 가이딩 하도록 하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난 분명 들은 것 같은데.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여 눈썹을 살짝 들썩여보인 김석진씨가 씩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에 허. 하고 웃어 보인 나는 석진씨도 제 담당이예요? 하며 물었고, 석진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되버렸네요. 싫어요? 하고 되물었다. 아뇨아뇨. 싫은건 아닌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원래 이 바닥이 다 그래요."
"자,잠시만,"
"그리고 제가 성격이 좀 급해서."
석진씨의 말이 끝을 맺기가 무섭게 맞물린 석진씨의 입술이 진득이 내 입술을 탐했다. 그리곤 곧바로 입술을 벌려 나의 입안으로 혀를 밀어넣었고, 나의 혀를 긁듯이 자극하며 입을 맞추어 나갔다. 한 두번 키스해본 솜씨가 아니였다. 괜한 승부욕에 지지 않으려 똑같이 애무하듯 진득이 석진씨의 입술을 탐하자, 입을 맞추던 석진씨의 입꼬리가 조용히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이윽고 석진씨의 커다란 손이 내 허리에 향했고, 나의 두 팔은 석진씨의 목을 둘러 감싸 안았다.
"이건 뽀뽀가 아니라 키스 아니예요?"
"...석진씨가 먼저,"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나 멋대로 오해하는데."
#3
"집 좋네요."
"네?"
"집 좋다고요. 아기자기한게. 귀여워요."
주인 닮아서 그런가. 장난스런 웃음을 지어보인 석진씨가 때마침에 울리는 휴대폰에 잠시 전화 좀. 하고 말하고선 현관문을 열어 모습을 감췄다. 그런 석진씨가 사라진 허공을 보며 뒤늦게 얼굴이 빨개진 나는 미쳤어 미쳤어. 를 외치며 침대로 몸을 던졌고, 애꿎은 허공에 발차기를 날렸다.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은거지. 왜? 오늘 처음 보는 여자랑 키스하는게 왜 아무렇지도 않아? 내가 이상한거야? 저 바닥에서 살면 다 저렇게 무덤덤해지는건가? 어째서? 난 왜 또 쓸데없이 승부욕에 불타올라서는! 처음 보는 남자 목에 팔은 왜 둘러 왜. 미친거 아냐?
혹시나 석진씨가 들을까 입밖으로 꺼내지 못할 말들을 삼켜내며 발을 동동 구른 내가 결국 힘이 다 빠지고 나서야 발차기를 멈췄다. 그리곤 다시 벌떡 일어나 흐트러진 머리 정리를 했고, 망가진 이불을 정리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이판사판이지. 나 혼자 당황스러워 하는건 쪽팔리잖아? 등급도 높다는데. 프로답게 행동하자고 프로답게. 프로답게...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나 멋대로 오해하는데.'
프로답게는 무슨. 지울 수 없는 석진씨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내 귓가에 맴돌았다. 게다가 키스 후 아무렇지도 않게 날 차에 태우고선 내 집까지 데려와 집 안으로 들어온 석진씨의 모습이 생각나 더욱더 수치스러웠다. 김여주 인생에 남을 당황시키게 만든 적은 많아도 당황스러운 적은 없었는데. 연애를 너무 많이 쉬어서 그런걸까? 오랜만에 남자와의 스킨십이라 그런걸까? 난 잡생각이 이렇게 많이 나는데 석진씨는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지?
"뭐 찾고 있는거 있어요?"
"네? 버,벌써 들어오셨어요?"
"네. 쓸데 없는 전화라."
"아..."
"뭐 찾고 계시는거 아니였어요? 머리카락까지 흐트리면서 찾고 계시던 것 같은데. 도와드려요?"
"아니요,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그럼 필요한거 저한테 주세요. 제가 캐리어에 넣어드릴게요.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해서."
"네네. 감사해요.."
너 때문이잖아 이새끼야. 머리 흐트린건 또 언제 봐서는...! 하고 소리치고 싶은걸 꾸욱 참은 내가 말없이 옷장 안 옷을 꺼내 석진씨에게 건넸다. 여러가지로 기가 빨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오늘따라 힘이드는걸까. 가이딩하면 기가 빨린다는 소리는 없었는데. 석진씨 덕분에 있는 힘 없는 힘 다 빠져버린 나는 멍 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손에 쥐여지는 것들을 모두 석진씨에게 건넸고, 곧이어 살짝 놀란듯한 석진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속옷 취향이 특이하시네요. 되게 화려한거 좋아하시나보다."
"네.... 네?"
"저도 화려한 속옷 좋아해서. 나중에 하나 사드릴까요? 제가 사는 곳 되게 좋은,"
"아뇨아뇨아뇨. 그게 왜 거기에. ㅈ,제꺼 아니예요!!"
"그럼 누구 속옷이예요? 혼자 사는거 아니였어요?"
"호,혼자 사는건 맞는데. 제껀 아니예요!"
"...흐음."
그렇다고 치죠 뭐. 필요한거 다 챙긴거예요? 석진씨의 물음에 네! 하고 우렁차게 답해버린 내가, 아차 하며 뒤늦게야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에 내 얼굴을 보며 푸스스 웃어보인 석진씨는 되게 엉뚱하시네. 하고 중얼거리고선 내 캐리어를 받아들고선 현관문을 열고 나갔고, 난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오늘 하루가 왜 이렇게 정신이 없을까...
#4
"먼저 들어가세요. 전 잠시 팀장님 좀 뵙고 들어갈게요. 긴급이라."
"아, 네네. 천천히 다녀오세요."
"빨리 다녀와서 여주씨한테 가이딩 받을건데요?"
"네?"
"농담이예요. 거실에 앉아있어요. 다녀와서 방 안내해드릴게요."
"........"
"어서 들어가요."
"...네..."
마지막까지 말장난을 하며 웃어보인 석진씨가 내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다시 차에 올라탔다. 그에 다시 얼굴이 붉어진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정신줄을 붙잡으려 애썼고, 석진씨가 탄 차는 곧장 주차장을 빠져나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거울을 보지 않았지만 내 표정이 굳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표정이 굳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래. 저 인간은 애초에 능글맞은 사람인거야. 내가 처음 겪어보는 사람이라 당황한거라고. 저렇게 능글맞은 사람은 처음 만나보니까 당황한거고, 낯선 사람과 키스한것도 처음이니까 당황한거야. 당연한 반응이야. 전혀 창피해할 이유 없어. 그래. 그러니까 당황하지 말자. 당황하지 말자 김여주.
정신 승리를 위한 자기합리화를 마친 후 결심한 듯 주먹을 불끈 쥐고서 힘차게 현관문을 열자, 도리어 안쪽으로 열린 현관문이 날 집안으로 끌어당겼다. 그에 당황할 틈도 없이 집안으로 발을 들인 내가 그대로 균형을 잃고서 앞으로 쓰러지자, 누군가가 자신의 쪽으로 쓰러지는 나를 안아들며 일으켜주었다.
"ㅈ,죄송합니다!! 고마워요!!"
"석진이형인가 해서 나와봤더니. 누구세요?"
"....네?"
"아, 새로 뽑는다던 가이드인가. 이번에 뽑힌거예요?"
"새로 뽑힌 가이드요? 제가 가이드는 맞긴한데.."
"뭐야, 누구셔?"
날 일으켜준 남자의 어깨 너머로 다가온 다른 남자 한 명이 나를 보고선 고개를 갸우뚱해보였다. 그에 당황한 내가 자기소개를 하려 그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기자, 예상 밖의 살색 배경에 화들짝 놀라며 다시금 시선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아,아니 아무리 집안이라 해도 샤워하고 나왔으면서 수건 하나만 두르고 돌아다니는게 어딨어...!!
"응?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쪽 분 아니신거 아냐?"
"아냐. 가이드 맞는데? 나 지금 가이딩 되고 있어. 그것도 아주 빠르게. 나랑 같은 등급이신 것 같은데?"
"응? 그럼 내 가이드는 아닌건가. 형 개인 가이드인거야?"
"글쎄. 그런 얘기 없었는데. 혹시 무슨 등급인지 여쭤봐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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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글 완전 제 취향입니다ㅜㅜㅜ 사실 뷔야님 글은 다 제 취향...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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