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부계획과 공부시간
* 피자 잘라 먹듯이
계획이 필요한 순간은 일상 속에서도 항상 존재한다. 대학에서 과제를 해야 할 때, 게임에서 수많은 퀘스트를 끝내야 할 때, 한달 용돈을 받았을 때 등등. 하다못해 피자 한 판을 여럿이 먹을 때도 어떻게 피자를 잘라서 무슨 소스를 찍어 먹을 지를 정한다. 이런 자잘한 것들도 모두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이 글을 보는 모두는 크건 작건 계획을 세워가면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계획은 왜 필요할까? 어떤 일을 처리할 때 그 내용이 너무 많을 때 세운다. 또 어느 한 부분이 빠지면 안될 때 모든 영역을 다 다루기 위해 그에 맞는 계획을 세운다. 공무원시험도 마찬가지다. 공무원시험을 위한 공부는 그 양이 매우 방대하다. 5개의 과목에 대해서 시험을 치는데 기본서의 양은 작아도 500페이지, 많으면 1000페이지를 훌쩍 넘긴다. 또 굉장히 자주 나오는(빈출되는) 주제가 있는가 하면 잘 나오진 않지만 고득점을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지엽적인 내용도 존재한다. 이를 골고루, 그러면서도 꼼꼼히 보기 위해 계획이 필요하다.
...라고 이렇게 적으면 공부 계획을 짜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고 대단한 일로 여겨진다. 사실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마치 피자 먹는 일과 유사하다. 어떤 피자를 먹을지 정하고, 피자를 모인 사람에 맞춰서 자르고, 핫소스를 뿌릴지 말지를 선택하고, 같이 딸려온 치즈도 뿌릴지 말지 선택한다. 피자 바깥 부분은 같이 먹는 사람도, 따로 먹는 사람도, 아예 먹지 않는 사람도 있다. 피자를 먹으면서 사람들이 많이 택하는 방법, 또 정형화된 방법이 있겠지만 실제로는 취향이라는 이름 하에 개인마다 먹는 방법이 다르다.
공부계획도 마찬가지다. 각종 공부법 서적을 보면 ‘이런 식으로 공부를 계획하라’는 내용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 공부법 저자가 고안한 일종의 매뉴얼일 뿐 이를 그대로 지킬 필요는 없다. 공부를 위해 플래너를 샀다고 해서 그 플래너의 모든 내용을 채워 넣을 필요는 없다. 사람마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 다른데 하루에 정확히 몇 과목을 봐야만 하고, 1년 계획엔 이런 것들이 들어가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실천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 적을 내용도 필자가 해보니 그렇다는 것이지, 이것이 절대적인 지침은 아니다. 여러 공부계획 세우는 법을 참고하되 자신에게 맞도록 일부 수정할 필요가 있다.
* 목표 설정
목표는 당연히 공무원시험 합격일 것이다. 필기시험 점수는 당연히 높을수록 좋다. 그런데도 굳이 ‘목표 설정’이라는 항목을 따로 적는 이유는 ‘합격선(합격컷이라고도 부른다)’ 때문이다. 공무원시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 그리고 공무원시험을 막 시작한 사람은 막연히 높은 점수만을 생각할 뿐, 그 점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그랬다. 설명회를 가면 학원에서 나눠주는 가이드북에 항상 뭔가 통계들이 적혀 있었다. 이를 겉으로나마 이해하는 데에는 몇 년이 걸렸다.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합격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하는지 통계와 함께 따져보자. 또 적는 김에 경쟁률, 응시율, 과락률에 대해서도 적어본다.
- 합격선과 목표점수
먼저 통계를 보자
공무원시험은 상대평가다. 일정 점수를 받는다고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높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 수준이 일정하더라도 시험을 치는 사람들의 수준이 올라가면 합격선은 올라간다. 또 치는 사람들의 수준은 그대로인데 문제가 쉬워지면 합격선이 올라가고 문제가 어려워지면 합격선은 내려간다. 2017년은 국가직이 유례없이 쉬웠고 지방직은 굉장히 어려웠다. 그래서 위와 같은 통계가 나오는 것이다.
또다른 변수는 조정점수다. 여러 과목 중 2가지를 선택하기 때문에 과목별 난이도가 다르면 조정점수제라는 제도를 통해 조정하는데, 여러 어려운 이야기를 제쳐놓고 요약하면 “내가 치는 선택과목이 어려울수록, 다른 선택과목이 쉬울수록 자기 과목의 조정점수가 올라간다”. 정부에서 직접 발표하는 조정점수 통계는 없고 공시 커뮤니티 사이트나 학원에서 집계하는데 소수점 내에서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다. 지방직의 경우 지방마다 조정점수가 다르기 때문에 포함하지 않았다.
위에서 보듯 난이도에 따라 합격선과 조정점수가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정확히 몇 점 정도를 맞혀야 합격한다고 정하긴 힘들다. 하지만 여러 해를 겪으면서 느낀 ‘체감점수’는 있다. 문제가 적당히 밸런스를 맞춰 중간 정도의 난이도로 출제된다면, 일반행정직의 합격선은 (조정점수) 380~400 수준에서 형성된다. 어지간하면 390점은 나와야 합격일까지 조마조마해볼 만하다. 조정점수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원점수 100점을 기준으로 65~75 수준의 분포를 보인다. 여기서는 가장 쉬운 수준일 때의 65점, 중간 수준의 70점이라고 가정한다.
실제로는 이렇게 딱 떨어진 조정점수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 계산이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하지만 그러한 여지에도 불구하고 필기시험 합격을 위한 허들은 굉장히 높다는 것을 이러한 계산을 통해 알 수 있다. 학원에서 제작한 일반적인 공시 가이드북을 보면 ‘과락이 나오면 안된다’, ‘과목에서 40점 미만이 뜨지 않도록 하자.’ 식으로 굉장히 안일하게 이 부분을 적어놨는데 실제 합격을 위한 허들은 굉장히 높으며 1년 수험생활에 대한 평가 기준은 냉혹하다.
대부분의 강사들이 ‘평이하게 출제되었다’고 평가하는 시험에서 (최대한 관대하게 생각하더라도) 100문제 중 15문제 이상을 틀렸다면 그 시험은 붙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 경우의 수를 따지면서 행복회로를 돌리는 것보다 그냥 빠르게 마음을 접고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시험이 끝나고 채점을 하는데 특정 과목이 70점 미만일 경우에도 합격가능성은 낮다. 한 과목에서 6문제를 넘게 틀렸다면 다른과목 중 2~3과목의 점수가 95~100점으로 나와야 합격 문턱을 비벼볼만한 수준이 되는데 그럴 가능성이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점수 목표는 어떻게 세워야 할까? 보통 1년을 정상적으로 공부한 공시생은 어지간해선 과락이 나지 않는다. 공무원시험에서 과락률이 30~50%나 나오는 이유는 갓 공부를 시작한 공시생이 시험삼아 쳐보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반대로 특정 과목에서 100점이 나오는 것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공무원시험은 만점(100점) 방지를 위해 일반적인 수험공부로는 맞히기 힘든 문제를 1~2문제씩 끼워넣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목당 85~90점’을 목표로 잡아야 한다. 바꿔 말하면, 실수나 최고난도 문제 1~3문제를 빼면 다 맞혀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공부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보듯 오답 마지노선은 15개정도라고 생각하면 얼추 맞다.
- 경쟁률, 응시율, 과락률
이 역시 통계를 먼저 보도록 하자.
공무원시험이나 고시 전문 언론이 아닌 일간지 등의 일반 언론매체에서는 공무원시험 원서접수가 있을 때, 또 필기시험 당일 관련 기사를 내면서 경쟁률을 상당히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경쟁률이 높은 곳은 몇백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원서접수한 인원이 역대 최대기록을 경신했다’는 식으로.
하지만 이런 멘트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수치는 맞다. 2017년 국가직 전체 선발인원은 약 5천 명 정도인데 이 시험을 위해 원서접수를 넣은 사람은 약 23만명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적으면 어마어마한 경쟁률의 지옥을 뚫고 올라가야할 시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원서접수’를 기준으로 한 경쟁률이고 실제 경쟁률은 다르다. 일단 공무원시험은 시험 당일날 오지 않는 사람이 많다. 원인도 다양하다. 초시생이 시험삼아 원서는 넣어봤는데 시험 당일이 되니 낮은 점수에 스스로 주눅들까봐 시험을 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시험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이 10명 당 3명 정도다. 이러한 응시율은 국가직 9급 기준이고 다른 시험에서는 더 떨어진다. 공무원시험 중에서는 가장 통과하기 어렵다고 여겨지는 국회직 8급 시험은 응시율이 48.8%에 불과하다(2017년 기준).
그리고 응시했다고 하더라도 해당 인원이 전부 제대로된 성적표를 받는 것이 아니다. 공무원시험은 한 과목이라도 40점 미만이면 다른 과목의 점수가 어떻게 나오든 관계없이 무조건 불합격 처리되는 시스템이 있다. 이를 ‘과락’ 제도라고 한다. 정말 필기시험 성적이 안 좋은 경우도 있고 시간부족으로 마킹을 못한 경우나 밀려쓴 경우도 있다. 이러한 과락 탈락자가 응시자의 절반 수준이다. 7급은 훨씬 높다. 2016년 국가직 7급 시험에서는 10명 중 7명이 과락 판정을 받았다(70.1%). 앞서 가장 어려운 공시로 언급한 국회직 8급의 2016년 시험 과락률은 79.1%다.
따라서 원서접수 기준으로의 46.5:1이었던 경쟁률은 결시자와 과락자를 제외하고 다시 계산하면 18.9:1까지 떨어진다. 그러니 세간에 알려진 ‘공무원시험은 경쟁률이 높다.’는 말은 겉으로 맞지만 실제로는 틀리다. 여기서 알아둘 점이 있다. 경쟁률이 실제로는 낮다고 해서 자신이 공부를 좀 덜 해도 합격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강조되고 고학력자 출신 공시생이 몰리면서 과락률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그리고 18.9:1이라는 경쟁률도 결코 낮은 것이 아니다. 공무원시험 필기시험장을 들어가면 25개의 좌석이 있는데 10명당 3명이 오지 않는다고 했으니 대여섯명을 빼면 딱 18~19명정도가 필기시험을 치를 것이다. 그 중에서 1등을 해야만 합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