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밀착형 문화예술 공간, 지역문화 거점 공간으로서의 공공도서관 활용
조회수 712024. 5. 1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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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문화적 장치 마련
지방소멸의 우려는 이제 현실을 넘어서 미래의 위기로 그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지방소멸은 더 이상 충격적이지도 낯설지도 않은 만성적인 문제로 굳어진 지 오래다. 수도권과 지방을 대립적인 관계로 설정하고 소멸이라는 단어와 함께 지방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재생산하면서 잠재력을 가진 블루오션의 영역마저 감춰지고 있다.
현재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인구감소 지역에 대해 매년 1조 원씩 10년에 걸쳐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배분하는 재정 지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자체 또한 위기 극복을 위해 다양한 사업발굴 및 역발상 전환을 통해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해법을 찾고 있다.
인구의 데드크로스(Dead Cross) 현상이 지속되면서 인구감소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생산가능인구 또한 줄어드는 인구 오너스(Demographic Onus) 시대로 진입함에 따라 고령화, 저출생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지방소멸을 가속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수도권 일자리 쏠림 현상을 지적하고 있어 지자체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고용 창출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 지방이전 및 혁신도시, 기업도시 건설 등 지역균형발전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하고 있지만, 문화‧교육시설 등 정주 여건 부족으로 인구감소 현상에 여전히 대응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쏠림은 지방의 일자리뿐만 아니라 문화자원의 다양성과 부족을 그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일례로 일본의 경우 지방소멸 대응 전략으로 일자리 대안이 아닌 도서관, 미술관 등 문화시설을 지방 구석구석에 배치하여 문화자원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노력함으로써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적 가치를 중시하는 워라밸 문화가 강조되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집중된 지역이라 할지라도 문화예술의 경험적 가치를 즐길 수 없다면 지역의 인구는 감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문화적 장치
현재 수도권은 일자리뿐 아니라 문화자원의 독점으로 지방의 인구 유출이 가속화되는 상황이고, 이에 따라 지역 간 문화 격차를 줄이고 지역 중심의 문화균형발전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이에 지방소멸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공공도서관 활용을 제안하고자 한다.
2022년 현재 전국의 공공도서관은 총 1,236개로 모든 기초자치단체마다 1개 이상이 운영 중이며, 그만큼 지역 주민의 접근성이 높은 공공시설이라고 볼 수 있다.
공공도서관은 이제 단순히 책을 읽고 빌리는 장소가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소비하고 누구나 평등하게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개방형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이 반영되어 도서관이 지식정보의 기능을 넘어서 다목적 공연장, 카페테리아, 디지털 체험, 전시실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복합문화공간으로 전환하는 모습은 이미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도서관의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콘셉트 하에 그 지역만의 인구 사회학적 특성 및 지방색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하게 복합 기능만 배치하여 재탄생하고 있다. 예술과 문화를 결합하여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복합문화공간은 우리 주변에서 즐비하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미 수도권에 다양한 유형으로 집중되어 있다.
지방시대 실현을 위해 정형화된 도서관의 복합문화공간이 아닌,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모든 세대를 끌어들일 수 있는 문화, 예술, 교육이 융합된 매력적인 공간으로 탄생하여야 한다.
인구 3만 명인 강원도 인제군에 2023년 6월 개관한 ‘인제 기적의 도서관’은 관광객 5만여 명이 방문하여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존에 조성된 공공도서관 복합문화공간과는 차별화된 공간으로 문화취약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인제 기적의 도서관은 인제군의 로컬 관광자원과 연계하여 생생한 경험을 통한 즐길 거리, 볼거리를 제공하고, 테마가 있는 주제로 모든 세대가 소통하고 가치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문화 감성을 즐기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인제군은 도서관 건립을 통해 아이 키우기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며 기존 공공도서관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공간 디자인 요소를 통해 오랜 시간 머물 수 있게 만드는 체재형 공간조성에 초점을 두었다. 복사-붙여넣기 식의 획일화된 공간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기에 단순한 물리적 복합공간의 개념에서 벗어나 공공도서관의 본질적인 가치를 담아내며 사람들의 행복감과 만족감으로 채워진 예술적인 건축 공간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공간력을 가진 지역 거점형 공공도서관 사례
우리나라보다 먼저 지방소멸과 인구감소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은 경제가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도서관을 통한 지역 경제 효과를 경험하고 있어 공공도서관에 예산을 집중투자하고 있다. 이시카와현은 1,431억 원을 투입한 ‘이시카와현립도서관’ 건립을 통해 5개월 사이에 사람들이 50만 명 넘게 다녀가는 등 지역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특히 독창적인 공간구성과 건축 디자인에 중점을 두고 기존 도서관의 획일적인 공간 룰을 깨는 획기적인 북 콜로세움 형태의 공간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혁신적이고 시성비(시간이 아깝지 않은 경험) 높은 공간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
고급스러운 문화예술공간에서 대접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체재형 도서관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도서관에 배치된 책상과 의자 모두 유명 가구디자이너의 작품으로 공간을 구성하였다.
서울시 서초구의 서초구립방배숲환경도서관, 도봉구 원당마을한옥도서관, 성북구 오동숲속도서관 등은 모두 기존 도서관 건물의 틀을 벗어난 형태로, 햇살 뜰을 소재로 한 환경친화적 테마, 전통 한옥 양식, 월곡산 자락길을 형상화하여 누구나 여유로움을 즐기는 ‘북캉스’ 공간이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다. 하지만 블루오션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지방이야말로 북캉스 공간을 조성하기에 훨씬 더 적합한 천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수십 년이 지나도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존재의 가치가 있는 공간력을 가진 공공도서관 조성에 힘써야 한다. 헨릭 요훔센(Henrik Jochumsen) 등의 학자에 따르면 공공도서관은 감흥, 배움, 만남, 퍼포먼스의 4가지 공간으로 구성·기획되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지방소멸 대응을 위해 가장 필요한 공간은 감흥의 공간이다.
지역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갖춘 감흥의 공간을 통해 공공도서관이 매력적인 장소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아낌없는 예산지원이 필요하다. 수십 년이 지나도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존재의 가치를 지닌 공간,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거점형 공공도서관 조성이야말로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 될 것이다.
트렌드만 쫓아가는 획일화된 공공도서관이 아닌 상생과 포용의 가치를 추구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써 거듭날 때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지역 균형발전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본 기사는 성신여자대학교 지리학과 채지민 겸임교수(아르떼 365)가 작성한 글입니다.
글/유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