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茁啄同時(줄탁동시)
주로 선종에서 인용되고 있는 말로 '줄탁동시(茁啄同時)'는 가장 이상적인 사제지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닭이 알을 품었다가 달이 차면 알속의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줄(茁): 풀처음나는모양 줄'이라 하고, 그 반대로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듣고, 밖에서 마주 쪼아 껍질을 깨뜨려 주는 것을 '탁(啄):쪼을 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줄과 탁은 동시(同時)에 일어나야만 온전한 병아리가 되고 나아가서 닭으로 성장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안팎의 두 존재의 힘이 함께 알 껍질에 작용될 때라야 비로소 병아리는 온전한 생명체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선가(禪家)에서 스승이 제자를 지도하여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것에 비유하고 있는 이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우리는 "바위에 계란치기"라고 해서 계란을 아주 약한 것으로 인식하기도 하지만, 사실 연약한 병아리로서는 이러한 계란의 껍질을 깨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이런 계란껍질을 혼자서 수없이 쪼아대는 줄(茁)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미 닭의 탁(啄)은 이러한 병아리의 노력에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아마 병아리로서는 어미 닭의 탁(啄)으로 세상 밖을 나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탁(啄)으로만 세상 밖으로 나온 병아리는 병이 들어 죽거나, 살더라도 건강한 닭으로 성장하지는 못한다.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교육은 우리 사회에서 그야말로 실패를 거듭하여 이미 국민으로부터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 오래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스승에게는 '탁(啄)'을 해 줄 수 있는 안목과 지도가 절실히 필요하고, 제자 또한 스승을 존경하고 학업과 인격도야에 전념하여 꾸준하게 '줄(茁)'을 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나는 스승으로서 '탁(啄)'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는 장담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내 연구실을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교수로부터 지식을 그저 얻으려 하기보다는 학생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줄(茁)의 노력을 다해라. 그러면 내가 너의 노력에 탁(啄)을 해 주겠노라"고 말하고 싶다.
■ 줄탁동시(茁啄同時)혹은 줄탁지기(茁啄之機)
이 한자성어의 뜻과 유래를 보면, 닭이 달걀을 품어안아 병아리를 깔 때, 20여 일이 지나 바야흐로 병아리가 막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순간,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茁(줄)이라 하고, 어미닭이 밖에서 알껍질을 쪼는 것을 啄(탁)이라 한데서 유래한 말로, 이 두 가지 일이 동시에 행해져 비로소 병아리가 알에서 나옴과 같이, '스승과 제자간의 인연이 어느 기회에 맞아 더욱 두터워 진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말은 교사의 길을 선택한 제가 어느 책에선가 우연히 읽어 기억하고 있는 한자성어로, 교사인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한 회의가 들 때나, 여러 생각이 복잡할 때 자주 떠올리는 말 중에 하나입니다. 어미닭은 비록 자기 새끼지만 그 생명의 탄생을 바라는 기대감으로 껍질을 쪼고, 알 속의 병아리는 두근거리는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혼신의 힘을 모아 껍질을 부수는 노력! 이 숭고한 노력이 일치될 때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가능해집니다. 이 단순하고 지극히 평범한 비유가 제게는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를 생각하게 해 주는 좋은 가르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