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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를 세우는 삶
2013. 2. 10(주일낮예배) 사도행전 13:1-3
40대는 전화로 통화를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한다. 어느 젊은 연인의 카톡대화 장면이다.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자기야 나 얼마나 사랑해? 하고 물었다. 그 질문에 남자친구는 하늘에 떠 있는 별만큼 사랑해 그 말에 여자친구는 굉장히 기뻐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묻는다. 근데 지금 아침이잖아 그 말에 남자친구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그니깐...
혹시 이것이 우리의 사랑은 아닌가? 하늘의 별은 많이 있지만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사랑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실망감을 안겨 줄 것이다. 이번 명절에는 보이는 사랑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옆의 분과 인사 / 보이는 사랑을 합시다. 니 사랑을 보이도!
존 칼린의 인빅터스(INVICTUS)라는 책에는 만델라 대통령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기록되어져 있다. 남아공에 사는 흑인은 축구를 좋아하였고, 럭비는 백인들만의 스포츠였다. 그러므로 남아공 대표 럭비팀인 스프링복스는 남아공인종차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럭비경기가 벌어지면 남아공의 흑인들은 오히려 상대방 팀을 응원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만델라 대통령이 아파르헤이트 정책에 반대하여 27년간 로번섬에 수용되어져 있다가 석방되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남아공의 백인들을 모두 두려움에 떨었고, 흑인들은 여전히 남아공럭비팀 스프링복수를 증오하고 있었다. 그런 형편에서 나라가 통합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지 얼마되지 않아 남아공과 오스트레일리아 월드컵 럭비 결승전이 벌어졌다. 그 경기가 벌어지기 5분전에 갑자기 만델라 대통령이 입장을 하였다. 그런데 그때 만델라가 입은 옷이 스프링복스 대표팀 옷이었다. 그런 만델라를 본 온 국민들은 5분동안 모두 침묵하였다. 너무 놀라서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5분이 지나서 누군가가 만델라의 이름을 외쳤다. 넬슨 넬슨 넬슨 마침 온 경기장은 흑인과 백인이 함께 눈물을 흘리며 넬슨을 통하여서 하나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스프링복스팀은 승리를 한다. 감격의 승리가 있은 후 한 기자가 의 주장에게 물었다. 여기 6만 2천명이 당신을 응원한다는게 어떤 기분입니까? 그 말에 스프링복스 주장은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제 뒤에는 6만 2천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4천 3백만명 온 남아공국민이 모두 우리와 함께 합니다.
대통령이 되어서 원수를 갚지 않고 증오하는 팀의 옷을 입고 온 만델라 대통령으로 인하여 남아공은 하나가 되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만델라대통령은 자신을 로번섬에 갇아두고 혹독한 고통을 준 백인들을 향하여 심판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만델라대통령은 그들을 용서하고 스프링복스 옷을 입었다.
왜 만델라가 그 옷을 입어야 했는가? 출애굽기 12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에 대한 기사가 기록되어져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에 9가지의 재앙(피-개구리-이-파리-돌림병(악질)-독종-우박-메뚜기-흑암)을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 10번째 장자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나타나는 한가지 이상한 사건이 있다. 그것이 바로 애굽사람들의 은금패물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 부분을 읽어보기 바란다.
(출 12:35-36)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애굽의 바로왕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9번이나 반복하였다. 그리고 이제 10번째 허락이 떨어졌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곧바로 도망을 가야 하는가? 아니면 애굽사람의 집으로 들어가서 은금패물을 취해야 하는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곧바로 도망을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의 은금패물을 취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애굽사람의 물품을 취하라고 하였겠는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분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로 생활하였다. 아무런 댓가도 없이 애굽 땅에서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은금패물을 취하여 그동안의 삶에 대한 보상을 받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애굽삶이 노예의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애굽의 각 가정에게 나타내 보이도록 하신 것이다. 은금패물을 통하여서 이스라엘 백성의 이전의 삶을 회복해 주는 은혜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은혜로 받은 은금패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이스라엘 백성이 이 은금패물을 사용한 흔적을 2군데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하나는 출애굽기 32장이다.
출애굽기 32장에 가면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더디 내려오므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었고, 또 하나님이 베푼 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를 위하여 사용하자는 결의를 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만든 것이 송아지였다.
이들이 왜 송아지를 만들었겠는가? 그것은 애굽의 귀족들이 송아지 머리를 만들고 그 앞에서 경배하던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애굽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세와 화려함으로 신의 이름을 부르며 신이여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옵소서 하고 간청하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자유인이 된 이스라엘은 그들의 신분과 또 부요함으로 자기들을 위한 신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은금패물을 사용한 첫 번째 모습이다. 그들은 종에서 자유인이 되었고, 아무 것도 없던 사람들이 부요함을 누리게 되었을 때 그것으로 하나님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려는 교만함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은금패물을 사용한 곳이 출애굽기 38장에 나온다. 출애굽기 38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건축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사용된 건축비용을 보면 금은 성소세겔로 29달란트와 730세겔이다. 이것은 1톤 반정도의 양이다. 그리고 은은 성소세겔로 100달란트와 1천 7백 75세겔이고, 놋은 70달란트와 2천 4백4세겔이었다. 이것을 오늘날의 돈으로 환산하면 500억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은금패물을 사용한 두 번째 모습은 하나님이 베푼 은혜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시 바쳐드리는 그러한 모습이었다.
여러분 생각에 이스라엘 백성이 은금패물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바른 모습이다고 생각하는가? 지난 주에 주남이와 동우가 졸업식을 하였다. 졸업 후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동우는 시험을 치룬 후에 아르바이트를 하여서 차형보집사님 넥타이와 김인회집사님 가방을 선물로 사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남이는 저희 엄마에게 용돈 10만원 드리고 아빠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도 주남이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에 주남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래서 주남이가 저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아버지 용돈 좀 드릴께! 제 방청소 좀 해 주세요 하고 말한다면 제가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야 임마 집 나가라! 그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왜 그런가? 잘못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바르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스코틀랜드 태생의 소설가 A. J. 크로닌이 쓴 장편 소설 중에, 천국 열쇠라는 책이 있다. 프란시스 치셤신부는 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9살 때 부모님이 모두 급류에 휩싸여 돌아가셨기 때문에 한 순간에 고아가 되었다. 그때 친척들은 치셤의 유산이 탐을 내어서 치셤을 맡았다. 그랬기에 이들은 치셤은 유산은 빼앗기에 많은 학대를 받아야 했다. 그 사실을 안 어머니의 친구 폴리 부인이 치셤을 데리고 와서 자신의 수입을 쪼개어서 신학교를 보낸다. 그래서 치셤은 신부로 발령을 받지만, 주임신부의 미움을 사서 탄광촌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치섬은 그곳에서 헌신적으로 사역을 하였지만, 사람들은 치셤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곳에서 엄청나게 힘든 사역을 하였다.
그 후에 탄광촌 사람들이 변화되자 주임신부는 치셤을 중국선교사로 발령을 하였다. 1902년 중국 황하강변 내륙오지에 도착을 했을 때 치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중국의 선교현실을 보게 되었다. 앞선 선교사가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보고만 잘 해 놓았던 것이다. 그곳에는 제대로 된 성당도 없었고, 주민들의 시선도 좋지 않았다. 그런 현실 속에서 치셤은 어깨너머로 의료기술을 배워서 진료소 사역을 하였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으로 성당도 지었다.
치셤의 사역이 어느 정도 그가 자리를 잡았을 때, 본국에서 세 명의 수녀가 왔다. 세 수녀는 허름한 차림의 치셤을 보고 그를 멀리하며 식사조차도 따로 한다. 그러던 중 페스트가 퍼지고, 치셤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의료 활동을 펼친다. 본국에서는 친구인 탈록이 와서 같이 일하게 되지만, 탈록 또한 페스트에 감염되어서 임종을 맞는다. 그 후 근처에 큰 신교도 건물이 세워지면서 모두가 걱정을 한다 하지만 치셤을 신교도인 피스크 부부와 좋은 친구가 된다.
이렇게 20여년의 세월을 보내어 노인이 된 치셤은 신교도 목사 부부와 숲 길을 걷다가 군벌잔당들에게 잡혀서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신부일행은 혹독한 고문 속에 도망을 쳤지만, 목사부부는 그곳에서 순교를 한다. 치셤 역시 얼굴이 상하고 다리를 절게 되었다.
이렇게 혹독한 삶을 산 치셤신부에게 편지가 한 장 날아왔다. 그의 친구이자 교구장이 된 안셀름의 편지였다. 그 편지에는 귀국하여 은퇴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치셤은 귀국하였다. 그리고 작은 수도원에서 고아 한명을 돌보는 일을 거기서 하는 것이었다. 안셀름은 그 치셤을 꼬투리를 잡으려 하였지만, 치셤의 행동을 본 주교비서는 보고서를 찢어버리고 만다.
이것이 크로닌이 쓴 천국의 열쇠이다. 이 소설에는 2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한 사람은 지금 제가 소개한 프랜시스 치셤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안셀름 밀리이다. 치셤은 화려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볼품없고 낮고 천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희생과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았다. 그러한 치셤에게 남겨진 것은 초라한 수도원에 고아 한명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를 배척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열매가 맺혔다.
그런데 안셀름 밀리는 달랐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종교적 성공에만 전념하였다. 그래서 그는 교구장이 되어 많은 사제를 거느리는 사람이 되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A. J. 크로닌은 이 소설을 쓰면서 제목을 천국 열쇠라고 하였다. 그러면 치셤과 안셀름 밀리 중에 누가 천국의 열쇠를 가진 사람인가? 크로닌은 천국의 열쇠는 세상의 권세가 아니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위에 군림하면서 큰소리치는 것이 천국의 열쇠가 아닌 것이다. 천국의 열쇠는 섬김과 사랑의 열쇠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모두 하나님께 바쳐 드리고 헌신하고 섬길 때 참된 천국의 열쇠가 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천국 열쇠를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마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 천국의 열쇠에 대하여서는 개신교와 로마카톨릭는 다른 해석을 한다. 로마카톨릭은 천국의 열쇠를 수장권으로 해석을 한다. 그래서 천국의 열쇠를 받은 교회가 그 죄를 사하면 그 사람은 천국에 가고, 그 죄를 사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이것은 청지기적 사명(복음적사명)이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이 맡긴 복음적 사명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은 천국 문을 여시고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초대예루살렘 교회는 그 천국의 열쇠를 잘 사용하였다. 그 당시 초대예루살렘 교회는 유대교로부터 핍박 속에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서로 물건을 통용하였다. 그때 초대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면서 구원받는 수가 늘어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안디옥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안디옥교회는 스데반의 순교이후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에 더욱 심하여져서 교회가 흩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안디옥지역에 형성된 교회가 바로 안디옥교회이다. 그러므로 안디옥교회는 그렇게 되지 않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 짧은 역사에 안디옥교회를 형성한 구성원들을 보시기 바란다.
(행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바나바는 우리가 잘 아는 바대로 초대교회를 형성하는데 주축이 된 사람이다. 그리고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 나오는데, 시므온에 대한 기사는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그런데 한가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피부는 굉장히 검었을 것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니게르는 검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아프리카 사람이었다. 그는 흑인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이 포함되어져 있다. 젖동생이란 황태자가 궁궐에서 자랄 때 궁궐에서 같이 자란 왕족을 일컫는 이름이다. 마나엔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헤롯과 함께 자란 권세있는 사람인데, 지금 안디옥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디옥교회 구성원을 보면 하나가 되기 어려운 형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안디옥교회가 든든한 공동체를 세우는데 급급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안디옥교회의 특징을 2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행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지금까지 저는 2절의 핵심을 금식과 성령에 두었다. 그런데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다가 제 눈에 들어온 말씀이 주를 섬겨이다. 아직 교회가 형성된 지 얼마되지도 않았고, 또 구성원은 하나가 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핵심 요소는 주를 섬겨에 있었던 것이다.
안디옥교회는 그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금식으로 기도하였고, 또 성령께서 새로운 사명을 주면 성령께서 명하는데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로 말미암아 바울의 1차 선교여행이 시작되고 이것이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시초가 된 것이다.
안디옥교회가 천국열쇠를 쓰는 모습을 잘 보시기 바란다. 안디옥교회는 자신들을 위하여 천국열쇠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구성원들이었지만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고, 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안디옥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로 세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것이 천국의 열쇠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천국의 열쇠를 우리를 위하여 사용하면 거기에는 천국의 모습이 나타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천국의 열쇠로 주를 섬기며 나갈 때 우리가 가는 곳에는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이 원하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천국의 열쇠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천국열쇠로 청지기적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주를 섬기고 헌신하고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제 말씀을 맺는다.
아내가 심심해 하는 것을 본 남편이 아내에게 물었다. 지금 시간있어! 그 말에 아내는 남편이 외식을 시켜주던지 아니면 영화를 보여 줄 것만 같아서 활짝 웃으면서 그래 시간 많아 하고 대답을 하였다. 그 말에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면 살 좀 빼!
사람은 대화를 할 때 이렇게 기대를 걸 때가 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것을 맡기고 어떻게 사용할까? 기대를 하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정말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이 원하는 일에 잘 사용하는 참된 지혜자가 되어서 저와 여러분이 가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복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