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 침대에 누운 김가영이 천장을 보았다. 이층 침대에 윤성일이 누워 있는 것이다. 방안은 조용해서 바퀴가 레일 위를 구르는 소리만 들린다. 새벽 2시쯤 되었다. 김가영은 눈을 감았다. 그러자 다시 윤성일의 입술이 부딪쳤을 때의 촉감이, 냄새가, 얼굴에 부딪쳤던 입김까지 생생하게 떠올랐다. 자꾸 입술 안을 헤집고 들어오려고 했던 윤성일의 입술 놀림, 그때의 짜릿한 쾌감.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김가영이 다시 눈을 뜨고는 손바닥을 볼에 붙였다. 볼이 뜨겁다. 윤성일은 키스만 하고 볼을 감쌌던 두 손을 떼고 물러났는데 아쉬운 것 같았다. 꼭 이를 다물고 있어서 입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래서 혀를 빨려고? 아직 한번도 그런 키스를 해본 적이 없는 터라 김가영이 이를 악물고 있던 것은 당연했다. 키스는 했다. 윤성일에게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그런 키스도 아니다. 대학 1학년 때 미팅에서 만난 남자애가 갑자기 달려들었으니까. 그것도 2초도 안되었다. 김가영이 밀어젖혔기 때문이다. 이번에 윤성일과 한 키스는 10초쯤 되었을까? 더 된 것 같다. 15초? 모르겠다. 하지만 달콤했고 짜릿했으며 황홀했다.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가 혈관의 피가 튀는 느낌도 났다. 특히 아래쪽 그곳이. 그 순간 숨을 들이켠 김가영이 어금니를 물었다. 내가 음탕한가봐. 숨을 억누르며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지금도 그래. 그 순간이 조금 더 오래 계속되었으면 하고 바란 것 같아. 윤성일이 손을 떼고 물러날 때 가슴이 허전해지지 않았던가? 만일 윤성일이... 호흡을 조정했지만 생각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만일 윤성일이 계속했다면. 닫혀진 이가 열렸을지도 몰라.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혀가 나와야겠지. 혀를 내밀어준 경험은 없지만 방법은 안다. 이쪽은 가만있으면 된다. 그러면 윤성일이 내 혀를 빨겠지. 비비고, 밀고, 타액을 삼키고. 김가영은 이제 두 손으로 볼을 감싸 안는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될까? 윤성일이 나를 침대로. 바로 내가 누운 이곳에 밀어 눕힐 것이었다. 그리고는 옷을 벗긴다. 그럼 나는 거부할 힘이 남아있을까? 아니, 거부할 수 있었을까? 김가영은 자신의 두 다리가 꼬여져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놔두었다.
밑에서 조심스럽게 부스럭대는 기척이 들렸으므로 윤성일은 숨을 죽였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어서 열차의 소음 사이로 김가영의 꼼지락거리는 소리도 다 들린다. 그렇다. 김가영을 아래층 침대로 밀어 넘어뜨리고 옷을 벗겨도 별 반항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어디 이런 경우가 한 두 번이냐? 수십 번 아니 백번도 넘을 것이다. 넘어뜨릴 때 ‘예썰’하고 사지를 쩍 벌린 여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다 고만 고만, 비슷비슷 대동소이하게 저항하는 시늉을 하다가 할 수 없이, 마지못한 척 하고 놔두었다. 열에 아홉은 그 와중에 바지나 치마 벗기는 것이 지체되면 제가 엉덩이를 들거나 후크를 풀기도 했다. 김가영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기를 해도 좋다. 김가영은 달아올라 있었다. 숨결이 뜨거웠고 조금만 윗입술을 더 밀었다면 입을 벌렸을 것이다. 그럼 일사천리다. 혀를 빨고 비비고 이제 두 팔로 허리를 껴안고는 하반신을 밀착시킨 후에 쇠기둥이 되어있는 남성을 김가영의 하복부에 의식시키고 얼마쯤 문지르면 다리에 힘이 풀리게 되는 것이다. 그때 침대로 밀어 눕힌다. 누운 후에 약간의 저항 시늉, 바지를 벗길 때 조금 비비적거리겠지만 입술로 입을 막고 바지 지퍼를 내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30초 안팎이다. 다 통계가 나와 있다. 하도 실전을 많이 겪어서 감(感)으로 아는 것이다. 지퍼가 내려지고 바지를 밑으로 당기면 백 명에서 90명은 엉덩이를 들어주었다. 바지는 다 벗길 필요가 없다. 다리 한쪽만 벗겨도 된다. 그 상황이 되면 이쪽이 여유가 생긴다. 먼저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내린 후에 상대의 팬티를 내리는 것이다. 그 시점이 되면 백 명 중 99명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엉덩이를 들고 팬티가 얼른 내려 가는 것을 돕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 정신을 차리고 팬티를 움켜쥔 여자가 하나 있었다. 그때 윤성일이 화가 난 듯이 몸을 떼었더니 여자는 팬티에서 손을 떼었던 것이다. 윤성일이 다시 팬티를 내리자 여자는 저항하지 않았다. 백발백중이었다. 그때 윤성일은 가늘고 긴 숨을 뱉었다. 김가영은 잠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눈을 말똥거리고 있다는 것도 김가영이 알고 있는 것이다. 둘 다 똑같이 생각에 잠겨있다. 조금 전의 행동에 대한 후회와 미련 또는 감동을 떠올리고 있다. 윤성일은 눈을 감았다. 그래, 이대로도 좋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지만 나름대로 황홀하구나. 아니 뜨겁고 자극적인 섹스보다 오히려 더 여운이 길다. 비록 온몸에 뜨거운 가려움증이 일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말이다. 좋다. 눈을 감은 채 윤성일이 마음먹었다. 새로운 방법이다. 아끼자. 아니다, 아끼고 싶다.
둘이 일어났을 때는 오전 8시경이다. 먼저 일어난 김가영이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윤성일이 깬 것이다.
“형, 커피 줄까?”
하고 김가영이 물었는데 외면한 채였다. 이층 침대에 누운 채로 보면 김가영의 눈높이와 이쪽 시선이 평행선이다. 그래서 윤성일이 김가영의 볼에 대고 말했다. 울컥 일어난 충동을 참지 못했다.
“네 입술은 정말 달콤했어.”
그 순간이다. 외면한 채 서있던 김가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그것이 화면이 바뀌지도 않고 처리되었기 때문에 윤성일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이런 장면은 처음이다. 이럴 수가 있다니.
“가영아. 나 너 좋아해.”
그 반작용이 분명하다. 이렇게 말이 저절로 튀어 나왔지만 윤성일은 그 말을 제 귀로 듣고 나서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다른 때 같으면 부끄러워서 이쪽이 빨개졌을 대목이다. 그리고 이런 말 처음 써본다. 그때 김가영이 머리를 돌려 윤성일을 보았다. 여전히 얼굴은 빨갛고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는 것은 울기 때문이다. 김가영이 입을 열었다.
“형, 나 겁나.”
윤성일은 시선만 주었고 김가영의 말이 이어졌다.
“자꾸 그러지마, 형.”
“뭘?”
“말도 하지 마.”
“커피 잔이나 이리 내.”
윤성일이 손을 뻗쳤다.
“이런 말도 되냐?”
하노이에서는 옛 동문(東門) 근처의 가장 싼 숙박업소에 투숙했다. 스위트에 묵다가보니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 본래 계획했던 숙박지였다. 그러니까 싸다 자시다 말할 것도 없는 것으로 일상으로 돌아온 셈이다.
“음, 이만하면 됐다”
방으로 들어선 윤성일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방에는 침대가 두 개, 욕실도 있었고 벽에 TV와 탁자도 갖춰졌으며 깨끗했다. 이제는 둘이 자연스럽게 같은 방을 썼고 어색함도 많이 줄었다.
“먼저 씻을래?”
오전 10시 반, 긴 기차여행으로 지친 터라 둘은 오후부터 관광을 하기로 했다. 윤성일이 묻자 김가영이 머리를 끄덕였다.
“응, 꼼짝 말고 거기 있어.”
“아, 그럼.”
했다가 윤성일이 눈을 가늘게 뜨고 김가영을 보았다.
“내가 도망갈까 봐 겁나면 아예 같이 목욕할까?”
“움직이지 마.”
눈을 치켜뜬 김가영이 손을 권총처럼 만들고 윤성일을 가리켰다.
“한 발짝도 욕실로 가깝게 오지 마.”
그리고는 김가영이 몸을 돌렸으므로 윤성일이 등에 대고 말했다.
“발은 안 떼고 엎드리면 욕실 안으로 머리는 들어갈 것 같은데 괜찮을까?”
김가영은 대답하지 않았고 곧 욕실 안에서 열쇠 채우는 소리가 났다.
욕실에서 샤워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깨끗한 방이지만 방음장치까지 해놓지는 않아서 옆방의 남녀가 떠드는 소리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중국인 남녀다. 키득거리고 부시럭거리는 것이 엉켜있는 것 같다. 침대위에 누운 윤성일이 다시 욕실을 보았다. 그저 물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 뿐 다른 잡음은 일절 없다. 저 소리에 숨어서 몸을 문지르고 있을 것이었다. 초점이 멀어진 윤성일의 눈앞에 김가영의 알몸이 떠올랐다. 날씬한 체격이어서 몸매도 잘 빠졌다. 1미터 68쯤 되었나? 가슴 사이즈도 적당했고 다리도 미끈하다. 엉덩이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진 바지에 잘 어울린다. 그때 바지 주머니에 넣은 핸드폰이 진동을 했으므로 꺼내 보았다. 그 순간 윤성일이 숨을 들이켰다. 아버지 윤정수다. 한동안 전화기를 응시하던 윤성일이 마침내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붙였다.
“예, 아버지.”
“너 지금 베트남이냐?”
대뜸 윤정수가 그렇게 물었으므로 윤성일이 어깨를 폈다. 누나가 꼰질렀구나.
“예, 아버지.”
“당장 이리 와.”
윤정수는 항상 이렇다.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윤정수가 말을 잇는다.
“내일 아침 9시까지 내 사무실로 와. 알았느냐?”
“아버지, 왜요?”
이렇게 토를 다는 자식은 넷 중 윤성일 하나뿐일 것이다. 그것이 익숙해질 만 한데도 윤정수는 그때마다 화를 냈고 윤성일도 고치지 않는다. 역시 이번에도 윤정수가 버럭 소리쳤다.
“이 자식아, 왜라니? 당장 못 와?”
“아버지, 비행기 시간이.”
“박 비서가 다 해줄 거다. 당장 비행기 타, 이 자식아!”
“글쎄, 왜 그러시는데요?”
“내일 아침 9시다!”
그래놓고 통화가 끊겼으므로 윤성일이 어금니를 물었다.
“안 가.”
욕실을 노려보면서 말했지만 심장이 무겁게 느껴졌다. 자신이 결국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곧 박 비서한테서 전화가 온다. 그때 욕실 문이 열리면서 김가영이 나왔다. 들어갈 때의 차림 그대로인데 머리에 타월만 감았다. 윤성일의 시선을 받은 김가영이 눈을 흘겼다.
“왜 그렇게 봐?”
김가영의 얼굴은 반질거렸고 볼은 조금 상기되었다. 막 씻은 복숭아 같다.
“형, 씻어. 시원해.”
옆을 지나는 김가영의 몸에서 상큼한 향내가 맡아졌다. 그 순간 윤성일이 김가영의 팔을 잡았다. 김가영이 몸을 돌렸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잡힌 팔을 당기지도 않는다.
“가영아.”
윤성일이 불렀지만 김가영은 시선만 준다. 그때 윤성일이 김가영의 팔을 거칠게 당겨 침대위로 넘어뜨렸다.
“형, 왜 그래?”
김가영이 낮게 물었을 때 옆방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울렸다. 마침내 둘은 섹스를 시작했다. 그것을 들은 김가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형, 놔.”
“안돼.”
김가영의 바지 지퍼를 내리면서 윤성일이 서둘렀다.
“형, 안돼.”
이제는 김가영이 몸부림을 쳤지만 목소리는 낮았고 동작은 크지 않았다. 윤성일이 서둘러 바지를 벗겼을 때 김가영이 가슴을 밀면서 말했다.
“형,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빨개진 얼굴에 치켜뜬 눈에는 습기가 가득 차 있다. 그때 윤성일이 김가영의 팬티를 끌어 내리면서 말했다.
“나 오늘 돌아가야 돼.”
김가영이 주춤 움직임을 멈췄고 그때 윤성일은 바지와 팬티를 거칠게 벗었다. 김가영의 시선을 받은 윤성일이 몸 위에 오르면서 묻는다.
“가영아. 싫어?”
김가영은 눈만 크게 뜬채 대답하지 않았고 윤성일이 말을 잇는다.
“나 너를 갖고 싶어. 놓치기 싫어서 그래.”
그때 김가영이 두 팔을 올려 윤성일의 어깨를 쥐었다.
“형, 가져.”
그 순간 김가영의 골짜기에 닿아있던 윤성일의 남성이 진입했다. 김가영이 입을 딱 벌렸지만 신음은 뱉지 않았다. 대신 어깨를 쥔 두 손의 힘이 강해졌다. 윤성일은 어금니를 물었다. 몸이 합쳐진 순간의 강한 충격으로 머릿속이 멍해졌지만 눈을 치켜뜨고 김가영을 보았다. 김가영은 이제 눈을 감고 있다. 그러나 윤성일은 감은 눈에서 흘러내린 두 줄기의 눈물을 보았다. 윤성일이 머리를 숙여 김가영의 눈물을 입술로 빨아 닦는다. 그리고는 고통으로 옅게 신음을 뱉는 김가영의 입술을 덮었다. 방안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뜨거운 열기로 덮여졌다. 어느덧 김가영의 두 손이 윤성일의 목을 두 팔로 감아 안았고 신음이 더 굵고 길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윤성일은 자신의 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김가영의 몸을 더욱 세차게 끌어안았다.
“가영아, 미안해.”
거친 숨을 뱉으면서 김가영의 귀에 대고 그렇게 말했지만 대답은 듣지 못했다. 대신 목을 감은 두 팔에 조금 더 힘이 실려진 것을 느꼈다. 그렇게 둘은 한 덩이가 된 채 그대로 누워 있었다. 누구도 먼저 엉킨 팔다리를 풀려고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