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띠브에 왔다. 피카소가 말년을 보내며 그림을 그렸다는 곳, 그린 그림을 시에 기증을 해서 미술관을 만들었다는 곳, 그 미술관이 천하의 절경에 있다는 곳이니, 한 큐에 여러가지를 해결할 수 있는 코스다. 그림도 보고 풍광도 보고, 피카소 삶도 생각해 보고, 내 삶도 생각해 보고.
그러나 생각은 실패했다. 기차역에서 내려 도로를 건너 해변에 들어서는 순간, 생각이 정지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얀 요트 밭과 밝고 안정된 초록빛 바다의 강렬한 조화에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바다, 생각이 간단히 풍광에 제압당해 버렸다.
생각이 얼마나 번다한 것인지를 시각과 정서가 얼마나 밀접한 것인지를 깨달아야만 했다. 풍광에 얼어버린 생각은 하얀 요트 밭을 지나 성곽을 지나 피카소 미술관을 오르는 언덕에 이르러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앙띠브 역. 맞은 편으로 걸어내려가면 바로 앙띠브 해안을 만난다.





피카소 미술관 아래 카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햇빛바라기를 하면서 햇빛과 피카소의 기운을 같이 마시고 있는 거 같았다. 내려오면서 커피를 마시려 했으나 아쉽게도 다른 길로 내려와 커피숍을 끝내 찾지 못하고 메이어 전시관에 가는 걸로 대신해야 했다.
피카소박물관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바닷길이다. 바다가 아닌 골목길로 가면 위 카페를 만날 수 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피카소미술관은 피카소 그림보다도 아름답다. 그림에서는 아름다운 거 그 이상을 추구하므로 경쟁 가능한 것이지 아름다움만으로 경쟁하면 피카소가 이기지 못할 거 같다. 이 아름다운 곳을 택한 피카소의 감식안이 놀랍다.
피카소 미술관을 보면서 발견한 건 두 세가지. 하나는 그 아름다운 앙띠브를 그린 그림이 없다는 것, <앙띠브의 밤낚시>, <앙띠브의 해변> 등의 작품이 있다는데 이 박물관에는 없었고,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기증작 위주로 만들어진 이 미술관에는 적어도 없었다.
앙띠브와 관련없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만일 그렸다면 그 작품 위주로 기증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대부분의 작품은 앙띠브와 무관한 것인데 그럼 왜 여기 와서 그렸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무관한 작품들만 그렸을까? 풍광을 낭비한 것이 아닌가?
위 창살 사이로 비치는 것이 바로 미술관에서 내려다 본 지중해이다. 여기서 다른 그림만 그것도 왠지 인간을 분해하는 것같은 그림만 그렸다면 풍광 낭비가 아닌가. 그럼 화가에게 녹아든 풍광은 어떻게 투사되었는가.



피카소의 그림 중에서 특질을 잘 보여주면서도 인간을 분해보다는 조화의 관점에서 그린 그림으로 느껴지는 <삶의 즐거움>을 보고 감동하였다. 이런 그림은 아름다운 앙띠브 풍광 덕이 아닌가, 혼자 피카소에서의 앙띠브 흔적을 이렇게나마 찾아보았다.



피카소박물관 옆 뻬이네박물관. 그림의 함의로 보면 피카소보다 못할 게 없다. 앙띠브에 정착한 사사평론만화가. 쓰레기통을 밀고가는 청소부의 머리속에는 골프채통을 밀고가는 여유만만 중산층의 삶이 있다. 그러나 어두운 현실은 만만치 않다.
보통 관광객들은 피카소만 보고 여기까지 들를 염을 잘 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