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솜틀집 / 최병우//.
우리 집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솜틀집이었다. 건넛방 툇마루 옆 헛간에 발로 밟아 돌아가는 솜틀이 있었다. 아버지는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하시다가 겨울이 되면 햇솜, 묵은 솜, 가리지 않고 솜을 트셨다. 굳은 솜이 단단히 뭉쳐질 때면 솜틀의 톱니 망가질까 멈춰 세우시고 뭉쳐진 솜방망이를 빼내곤 하셨다.
틀어진 솜은 솜사탕처럼, 고운 눈처럼 포근한 이부자리가 되어주었다. 햇솜은 뽀얗게, 묵은 솜은 어둡게 날려 소복이 쌓였다. 아버지는 쌓인 솜을 대나무로 된 채로 널따랗게 들어내서 툇마루 돗자리 위에 옮겨놓고 솜 주인이 원하는 크기로 만들어 차곡차곡 포개셨다.
어떤 때는 솜틀을 멈추지 않게 하시려고 늦둥이 나를 불러 솜틀을 돌리라고 하셨다. 큰 바퀴를 왼손으로 잡아 힘껏 앞으로 돌려 시동 걸고 발로는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한다. 한꺼번에 많은 솜을 놓으면 뭉치니 손을 자주 놀려 부드럽고 넓게 펴 놓으라 하셨다.
키가 작아 높은 디딤대에 올라 일하려면 무척 힘들었다. 당장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래도 참아내면 아버지가 오셔서 나가 놀라고 하실 것 같아 계속 페달을 밟고 솜도 자꾸 펴 넣었다.
농한기라 남들은 다 쉬어도 아버지의 솜틀은 쉬지 않고 돌았다. 아버지의 부지런하심은 우리를 가르치시는 힘의 원천이었고 솜을 맡긴 사람들에게는 포근한 이부자리를 제공했다. 튼 솜을 보자기에 묶어 건네시고, 돈을 받으실 땐 아버지는 헛기침하시면서 겸연쩍어하셨다. 그리곤 저녁이 되면 초저녁부터 등잔불 끄시고 귀찮아하는 나를 꼭 껴안고 괜히 얘기를 붙이다가 내가 잠들면, 그때 당신도 주무셨다.
지금도 눈이 내리는 날이면, 하얀 솜들이 뽀얗게 쌓이던 그 옛날 광경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돌아보면 꽤 오래된 일이지만, 아버지의 따스함은 솜이불처럼 여전히 나를 감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