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에 비예보가 있어서 이동네 지각생들은 지난주에 모두 부랴부랴 감자를 심었다.
감자를 심는다는 것은 봄 농사를 시작한다는 것.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 한없이 미루고만 싶었는데 비가 더이상 미루지 못하게 데드라인을 만들어준다.
겨울농사의 최대장점은 그나마 병이 덜하고, 매일매일 돈이 쌓여 그나마 돈이 모인다는 것. 최대 단점은 겨울동안 쉬어줘야 하는 몸과 마음이 쉬지를 못해 봄농사를 시작해야 할 무렵 기운이 나지 않는다는 것.
하여튼 지난주부로 길고긴 겨울채소의 대장정이 끝났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유진, 지은과 밭에서 남은 비닐을 파내고, 수요일에는 혼자 감자를 심었고, 목요일에는 비가 왔고, 금요일에는 목포로 마지막 쫑파티 나들이를 갔다왔다. 식당을 예약하려고 전화를 걸었더니 목포에 최근에 확진자가 생겨서 다음주 일요일까지 문을 닫는다고 했다. 설마 확진자 2명에 온 도시가 다 문을 닫는 건 아닐테지 하는 의문과 염려가 생겼지만 그럼에도 금요일 나들이는 지난 겨울 채소 대장정의 마지막 공식일정이라는... 약간의 무게감을 가지고 그대로 진행했다. 바람이 불어 조금 쌀쌀하긴 했지만 오랫만에 도시 나들이를 하면서 셋이서 하하호호 했다.
유진 집앞에서 우리는 이제 정말 끝이네요~라는 인사로 마무리를 했다. 안녕, 겨울채소 그리고 유니온.
그리고는 주말은 완이와 함께 또 정신없이 지나가버리고 월요일이었던 어제 드디어 오롯이 혼자가 되었다.
며칠동안 간간히 지내왔던 혼자인 삶의 장점은 다시 채취해서 먹을 수 있는 생활이 가능해졌다는 것. 지난 1-2년 동안은 뭘 채취해서 먹고사는 일을 거의 못했던 것 같다. 채취하는데 드는 시간, 손질하는 시간, 그럼에도 양은 얼마 안되는데 사람들은 호로록 먹어버리고 나는 바쁘고. 점점 쑥도 안뜯고 고사리도 못뜯고, 꽃도 못따고 그렇게 되었었다. 혼자 먹으니 쑥도 한줌만 있으면 된다. 일요일에는 경훈과 그의 여자친구와 고사리를 따러 산에 올라갔다. 고사리가 제법 올라왔다. 선심쓰듯 내가 딴 고사리를 모두 안겨주었다. 이제부터 올라오는 고사리는 다 내것이니까! 혼자인 삶의 단점은 ... 죽은 쥐의 시체를 내가 치워야 한다는 것. 고양이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쥐를 잡아서 밥집에 가져오기 시작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먹는 놈도 있다. 꼭 머리와 꼬리만 남겨둔다. 온전한 시체보다 더 치우기 싫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시간이 지날수록 부패가 진행되어 조금이라도 빨리 치우는게 낫다. 으악~ 두번째 단점은 병뚜껑이 안따질 때 어떻게든 애를 써서 따내야 한다는 것. 끌까지 안따지는 것은 아직 없었다.
이제 날이 따뜻해져서 이제 밥집에 혼자도 있을만하다. 그동안은 추워서 불을 때야 됐었는데, 혼자있으면서 불때기가 싫어서 빵만드는 일이 아니면 밥집에 잘 안있었다. 어제는 오랫만에 밥집에 앉아서 컴퓨터 작업을 했다. 고양이들이 모두 들어와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스스로 알아서 다니라고 문도 만들어주고 했건만 내가 안에 있으면 계속 문열어달라고 울어대는 심보는 무엇인가. 너희는 집고양이가 아니라고 몇번이나 말했건만 아직도 알아듣지 못했구나.
완이 어린이집에서 낮잠이불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집에 있던 이불과 요를 찾아보았다. 여기저기서 누구한테 받은 것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베개도 필요하고, 이불을 넣을 가방도 필요하다. 아 베개는 다 작아져서 새로 구해야 할 것 같고 가방도 그렇게 큰게 없는데... 인터넷 검색해보니 어린이집 낮잠이불로 이미 세트로 팔고 있다. 그렇지만 살 수 없지.
어디서 베개 할만한걸 봐둔게 있었는데... 양희가 남겨두고 간 짐에서 베개도 아닌것이 방석도 아닌듯한 뭔가를 본 적이 있다. 다시 가서 보니 반을 자르면 완이 베개 두개가 나올 것 같아서 가지고 왔다. 반을 갈라봤다. 이런... 그 안에 직접 농사지은 목화솜이 들어있었다. 솜의 양이 얼마 되지 않아서 이런 크기에 이런 두께가 나왔구나. 목화를 하나하나 따서, 씨를 빼서 모았을 양희를 잠시 생각했다. 그랬었지. 우리의 귀농초반. 우리는 목화를 심고 꽃을 보고 예뻐하고 솜을 따서 모았었지. 옆집 할머니가 목화를 보시면서 '이런거 심지마~' 하면서 가셨고, 우리는 할머니가 이러셨어 하면서 낄낄댔었지. 이제는 자연스레 이런거는 심지 않게 되었지. 한 두 그루 꽃을 보기위해 심기도 하지만 이제 목화를 따고 솜을 거두어 씨를 빼서 솜을 모으지는 않게 되었지.
양희야 고마워, 덕분에 솜은 내가 잘 쓸게.
첫댓글 양희가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