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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가 됩시다
누가복음 19장1-10절
요즘 우리 귀에 많이 들려지고 우리 눈에 많이 보여지는 글귀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인생 대역전 이라는 글귀입니다, 사람들마다 성공이라는 꿈을 꿉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지금의 인생보다 더 나은 삶을 소망하기에 이런 말들이 급속도록
유행을 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인생 대역전"이라는 글귀는 로또복권이 내세우는 광고전략 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강하게 인식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도 수많은 열등감속에 성장한 한 사람이 자기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한번 본때를 보여 주어야겠다 생각하며 온갖 일을 다 하다가 드디어 사람들의 가치 기준인 부자라는 인생 대 역전에 성공한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삭개오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진정한 인생 대 역전이 부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됩니다.
진정한 인생역전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본문이 오늘 우리가 읽음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삭개오가 됩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삭개오라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삭개오는 어떤 사람입니까?
삭개오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성경에는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지 않지만 오늘 본문말씀2절을 통해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외에 다른 여러 사람들이 불러주는 이름이 있습니다.
2절을 보면 삭개오라 이름 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부모님이 지어주신 삭개오라는 이름은 전통적인 유대인의 이름으로서 본래의 뜻은 '청결한 사람' 또는 '의로운 사람'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좋은 이름을 가진 삭개오에게 많은 사람들은 삭개오라고 부르지 않고 오늘 본문속에서 키작은 사람, 부자, 세리, 죄인 이라고 표현 한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볼 때 삭개오라는 사람은 키가 작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고, 어쩌면 그 작은 키 때문에 어릴 때부터 많은 열등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내가 저 사람들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직업이 세리라는 직업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세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 이스라엘 나라에서 세리는 상당한 힘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삭개오는 세리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세리장이었습니다 .
요즘 같으면 세무서장이었습니다,
그것도 여리고라는 지역 교통의 중심지이고, 무역의 중심지인 여리고의 세무서장 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무서장이라는 힘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데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서 이스라엘의 지배국가인 로마에 세금을 일정량을 바치고 그 나머지는 자신이 착복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세리들이나 세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원망의 대상이었고 미움의 대상이었고 사람취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삭개오는 세상적으로 봐서는 출세한 사람이요, 로마 식민지시대에 성공한 사람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가슴이 답답했고 자신의 주위에 아무도 없는 외로운 사람이되었습니다.
길거리에 나가면 좋은 옷을 입고 거드름을 피우고 걸어다니지만 많은 자기동족들이 자기를 향해서 욕을 하고 손가락질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삭개오는 참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아 ! 이게 인생이 아닌데 이것이 내가 꿈꾸는 것이 아닌데라고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삭개오는 그동안 잃어버렸던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우리도 나이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누구 엄마 누구 아빠, 아니면 회사에서 과장님 아니면 사업체에서 사장님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처럼 그런 호칭을 들으면 기분이라도 나쁘지 않지만 이 삭개오에게는 항상 따라 다니는 말이 키작은 삭개오, 죄인, 세리, 참으로 자신이 듣기 싫어하는 비아냥거림의 소리를 듣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속에서 본문 9절에 있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불러주신 아브라함의 자손 즉 자신도 자신의 이름처럼 정결한 사람 의로운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을 믿고는 있지만 별로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그저 어릴 때부터 지켜 왔던 신앙이기에, 그냥 그렇게 무의미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교회는 다니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예수 믿는 냄새도 나지 않았고 어떨때는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도 당하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런 삭개오가 어느 순간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되어지고 그 안에 나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참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가지고는 있지만 하나님 없는 그리스도인으로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
그렇다면 지금 삭개오처럼 우리도 진지하게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삭개오가 아브라함의 자손 즉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 가는지 본문을 통해서 하나씩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삭개오의 행동을 볼수 있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삭개오는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실 삭개오는 세무서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기에 예수님에 대해서 벌써 듣고 알고 있엇을 것입니다,
또 본문 앞에 보면 예수님께서 여리고 들어 오시기전 여리고 이웃 동네에서 소경을 고쳐주는 것을 듣게 되었고, 그러한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것입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신앙의 출발점이 듣는데만 그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 중간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듣고 이제는 보고자 하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귀로만 듣던 그 예수님을 보고자 했던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에 대해서 너무도 많이 들었고 알고 있던 그 예수님을 보고싶고 만나고 싶은
열정이 그에게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삭개오가 예수님에 대해서 많이 알아서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고 귀로만 듣든 예수님을 볼려고 예수님께로 나아가니 예수님을 만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우리는 아마 이 삭개오처럼 예수님에 대해서 너무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방송을 통해서, 책을 통해서든, 인터넷을 통해서든 예수님에 대해서 너무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볼려고, 예수님을 만날려고 하지 않는 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에 대해서 듣는 것 참 중요 합니다
그러나 이제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보기 위하는 마음들이 있어야 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어떻게 합니까 ?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그 귀로만 듣던 주님을 보기 위해 예수님께로 나아가는데 많은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키가 작다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삭개오의 키는 150센티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요즘 중학교 1학년 보통학생의 키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어른이 었습니다 .
엎친데 덮친격으로 키도 작은데 삭개오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생각해낸 방법이 뽕나무 위로 올라가는 방법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생각 해 볼 수 있는 것은 삭개오가 주님보기를 간절히 원하고 만나기를 원하는 엄청난 열정이 뽕나무 위로 올라가게 했던 것입니다.
이 삭개오에게는 예수님을 만나는데 작은키와 많은 사람들이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이 예수님 만나는데 방해되는 일들을 보면서 그냥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아주 힘차게 주님을 향해 달려나가는 삭개오의 행동을 볼수 있습니다.
4절을 보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구체적이고 열정적인 신앙의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올라가니. 주님을 보기 위해서 앞으로 달려가 올라갔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만나는데 방해되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주님 앞으로 달려나가는데 나에게 방해되는 것들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앞으로 달려가 올라가는 신앙인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뒤로 후퇴하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삭개오에게는 예수님을 만나는데 많은 장애가 있었습니다.
일차적으로 신체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많은 사람입니다,
세 번째는 자신의 체면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것이 주님을 만나는데 아무런 장애나 방해가 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니 그것이 장애인데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고자 하니 그 장애가 오히려 예수님 만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신체적으로 주님을 만나는데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 영적인 상태도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내가 신앙 생활 한번 잘 해 볼려고 하고 주님을 만날려고 애를 쓰는데 때로는 한 교회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 방해 될때가 있습니다,
아니면 믿지 않는 내 가족이 될 수 있고 믿는 사람인 내 가족이 방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에도 나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삭개오를 막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삭개오에게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소개하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삭개오가 예수님 얼굴이나 보자고 소리 지를 때 그 중에 들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 개인감정이 앞서다 보니 삭개오에게 기회를 주고 싶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또한 삭개오는 체면의 장애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여리고라는 큰 도시의 세무서장이었기에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로마로부터 권력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 그 여리고라는 지역에서는 힘깨나 쓸수 있는 지역 유지였습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의원이나 장관 심지어 대통령에게까지 그들이 잘 못을 하면 뒤에서 욕을 합니다
그런데 앞에서는 어떻습니까? 욕을 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에게 힘이 있고 권력이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바로 삭개오도 그러한 사람입니다,
힘이 있습니다 욕을 얻어먹을지언정 할 수없이 삭개오라는 사람앞에서 사람들이 고분고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힘을 가진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위해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아이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체면도 불구하고 삭개오는 뽕나무위로 몸을 맡긴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말씀속에서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다른사람에게 어떠한 존재들인지 진지 하게 돌아보셔야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내 안에 주님을 만나기 원하고 보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과거에 내가 만났던 그 주님으로 지금 그 자리에 안주하고 있습니까
삭개오도 유대인이기에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았고, 예수님에 대해서 너무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현재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볼때는 부러움 없는 사람이지만 지금 현재 내 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주님을 만나기 위해 달려온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삭개오가 되어야 합니다, 과거에 알았던 그 주님을 오늘 지금 우리가 보기 원하고 만나기 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속에 있는 많은 무리가 저와 여러분 아니십니까?
예수님을 알고 듣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따라온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내 가족이나 이웃에게 내 교우에게 예수님 만나는데 방해하는 우리들은 아닙니까?
많은 무리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내려가는 무리들입니다 본문 후반에 가면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곳에 왜 갑니까?
여행하고 볼일이 있어 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예배하러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삭개오라는 한 사람에 대해서 좋지 못한 감정이 있다보니 예수님보다 내 감정이 우선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많은 무리들중의 한 사람에서 제외되는 저와 여러분들의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삭개오처럼 내가 주님을 만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체적으로 좋지 못하십니까 그렇다면 앉아 계신 그곳에 주님보기 원하고 만나기 원하는 자리로 바꾸셔야 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 때문에 방해가 되십니까?
여러분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방해하는 사람은 또 나 때문에 방해된다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신앙의 대상은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흔히들 이런말을 합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절대적으로 믿음의 대상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서로가 방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길을 비켜서 주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교회 안에 제도적인 문제가 있다면 제도를 고쳐서 주님 만나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해주어야 합니다,
교회안에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방해가 된다면 먼저 믿은 내가 안아주고 도와주고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또한 체면 때문에 방해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사회적으로 가면 이 정도 위치인데 내가 이런일 할 수 없지, 내가 교회에서 이 정도 위치인데 내가 할 수 없지 반대로 내가 사회적으로 별 볼일 없는 사람인데 교회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내가 교회에서 직분도 그런데 내가 무슨 일을 할수 있겠어 생각하고 계시지 않는지요.
여러분 아닙니다, 주님을 만나는데 그러한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 앞에서 삭개오가 되어야 합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앞으로 달려가 올라갔습니다 뽕나무 위로 올라 갔습니다, 어린아이나 하는 일을 세무서장 삭개오가 주님만나는 방해되는 것을 다 이기고 뽕나무 위에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마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어린아이 같은 믿음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어린아이에게는 꼭 부모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아이는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미주알 고주알 다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내 생각이 없고, 생각을 복잡하게 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합니다,
어른이 보기에는 철없이 보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보기 위하고 만나기 위하여 뽕나무위에 있는 어린아이같은 삭개오가 이런모습 아닐까요?
성도여려분
오늘 저와 여러분은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영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진정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고자 하는 소원이 있다면 그 분을 만나기 위해서 내 삶 속에서 주님 만나는데 방해되는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말씀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하나씩 제거하며 돌아섬으로 예수님께로 앞으로 달려가 올라가는 열정을 가지는 저와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주님을 만나기 위해 모든 장애를 뚫고 뽕나무위로 올라온 삭개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주님의 눈에 뛰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본문말씀 5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토록 듣고싶어 했던 이름을 불러주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예수그리스도였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하고는 틀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비아냥거리며 미워하는 목소리로 이름을 불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픈 과거들을 들추며 자신의 신체적인 결함을 들추며 자신을 불렀는데 우리 예수님은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인자하고 온유하고 다정다감한 사랑의 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더라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지금까지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인데 지금까지 너무 외롭고 힘든 삶이었지만 누구 하나 자신을 어루 만져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뽕나무를 쳐다보시고 삭개오야 이름을 불러 줍니다
이름을 불러 줄뿐만 아니라 삭개오의 집에 같이 있겠다라는 말씀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혼자였던 삭개오, 남들이 최고의 목표라고 하는 부를 가지고있던 삭개오였지만 그의 마음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주님이 같이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 우리가 진정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때는 언제 입니까?
내가 가장 연약할 때 내 허세, 내 허풍, 내 허영 이런저런 세상적인 가면을 다 벗어 던지고 내 모습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설 때 , 연약한 모습 허물이 있는 모습으로 내 자신을 세울 때, 그때 우리는 진정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연약한 그 때가 바로 강할 때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연약할 그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향해서 역사하시는 때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한 중년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아내의 시력이 너무 나빠져서 눈 수술을 했는데 결국 실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그녀의 직장까지 매일 출퇴근 시켜 주었습니다 ,
그런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은 아내에게 앞으로 각자 출근하자고 했습니다,
아내는 너무 섭섭했고, 배신감까지 느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내는 지팡이를 의지하여 많이 부딫히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버스를 타고 혼자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2년쯤 지나자 아내의 출퇴근길도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버스 운전기사가 부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참 복도 많습니다,
매일 남편이 부인보다 한 발짝 뒤에 따라와서 버스와 함께 앉아 있어주고 부인이 직장 건물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지켜보다가 등뒤에서 손을 흔들어주고 보이지 않는 격려를 해주니 얼마나 복이 많습니까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버스기사의 말에 부인의 섭섭했던 마음은 눈 녹듯이 녹아 내리고 부인은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외롭고 고난 당할 때 혼자밖에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모르지만 누군가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내 옆에 있는 성도 일수도 있고, 때로는 나의 부모님일수도 있고, 때로는 교회 교역자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과는 틀리게 변함 없이 우리를 지켜보아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고 의지하는 그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아무도 몰라줘도 그 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아시고 여러분을 위해 지금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세상기준에서 내 모습이 조금 부족해도 내 신앙의 모습이 많이 부족해도 그분을 보기 위해 그분을 만나기 위해 나아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 삭개오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너는 죄인이야 , 너는 아주 못쓸 사람이야, 너는 보잘것없는 사람이야 라고 비아냥거릴 때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야 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예수님 만나는데 많은 장애들을 다 이기고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할때 사랑의 주님이 텅빈 삭개오의 마음에 사랑으로 사랑으로 가득 체워 주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말씀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에 갈등과 외로움속에 있던 그 삭개오가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외로움과 아픔을 주님께로만 가져가면 되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니 그 외로운 삭개오, 상처많은 삭개오가 이제 하나님 사랑을 증거 하는 자로 변화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뽕나무위로 올라가십시다, 주님을 만나는 그 뽕나무 위로 말입니다,
예수님 만나는데 방해되는 여러 일들까지도 다 주님 만나는 도구로 사용하십시다,
그래서 삭개오야 라고 부르신 그 따스한 주님의 음성이 저와 여러분의 깊은 마음속에 메아리처럼 울릴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인생역전을 꿈꾸던 삭개오가 세상의 인생역전을 다 가지고 난 후에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마음속에 사랑의 주님, 안식의 주님, 치료의 주님이라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그 분을 만나기 위해 자신 앞에 놓여 있던 많은 장애들과 체면들을 다 내려놓고 뽕나무 위로 올라와서 주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은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우리의 삶 속에서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그 주님을 만나기 위해 오늘본문의 삭개오가 가졌던 믿음의 열정들을 가지고 주님 앞으로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의 귀한 믿음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
기도
치료자가 되시는 하나님
예수님 만나기전 삭개오의 모습을 가진 우리 성도님들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 만나기 원하고 결단하는 우리들에게 삭개오를 부르신 그 사랑의 음성과 인자함으로 우리의 심령을 어루만져 주시고, 우리의 삶이, 변화된 삭개오의 모습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아름다운 신앙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성령하나님을 통하여 날마다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