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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아리아 스크랩 세기의 디바… 레나타 테발디
황금이 추천 0 조회 41 15.08.17 19: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늘 듣곤하는 오페라 음반들을 꼽으라면 푸치니의 작품들일 것이다. ? 잘 모르겠지만 왠지 푸치니의 작품을 듣고 있으면 '오페라'라고하는 창살즉 '오페라'라기 보다는 현실에서 펼쳐지는 그런 쓸쓸한 애수가 느껴져 오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의 다락방고서적이 가득한 허름한 서점에서 들려오는 노래그런 빈한함의 리얼리티라고나할까. 푸치니의  작품은 오페라 극장에서도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 중의 하나로서 라보엠을 비롯 나비부인’, ‘투란도트등 푸치니의 작품만 해도 십여 차례 이상 관람했지만 프리 마돈나의 부재로 감동을 느껴본 적은 거의 없었다. 4년 전인가 나비부인에서 모 유명가수의 열창으로, 푸치니의 오페라에서 프리 마돈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하기도 했지만 만약 푸치니의 작품을 보러 간다면 절반은 그 (작품의)명성을 감상하러 간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정말 부르기 힘든 것이 푸치니의 음악이다. ‘라보엠도 그렇고 토스카도 그렇고… ‘투란도트는 더더욱 까다롭다. 이 부르기 힘들다는 푸치니의 작품아니 그녀가 나온다고하면 모든 표는 곧바로 매진되는 시대가 있었으니 바로 레나타 테발디가 등장했던 60년도의 메트로폴리단시대였다.

 

테발디는 알려졌다시피 라 스칼라시절 마리아 칼라스에 밀려 도망치듯 미국으로 건너온 이태리출신 소프라노였다. 나이는 칼라스보다 3살 많았고 라 스칼라 데뷰도 훨씬 빨랐지만 테발디가 그당시 그저 잘 나가는 소프라노였다면 마리아 칼라스는 작가 헤밍웨이도 말했듯  황금빛 목소리를 가진 태풍이었다. 영원한 2인자 테발디는 이후 메트로폴리탄에서도  칼라스와 반목했고 수많은 에피소드를 남겼지만 칼라스가 성공에 도취, 오나시스와 염문을 뿌리며 세상일에 미쳐있는 동안 노래로서 그 황금기를 구가했다. 가수로서 단명했던 칼라스에 비해 테발디는70년대 초까지 활약하며 그녀의 음색을 생생한 스테레오로 남길 수 있는 축복을 누리고 82(2004)에 영면했다.

영원한 2인자테발디가 칼라스에 밀린 것은 사실 칼라스와 대조되는, 미성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딘가 어둡고 허스키적인즉 칼라스적인 요소가 그녀에게도 있다는 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무도 완벽했던 창법토스카니니조차 감동했다는 그녀의 황금의 목소리는 그러나 칼라스의 그늘에서는 왠지 빛을 발하지 못했고, 칼라스가 사라지자 다시 광채를 발하기 시작했다.  아니 멧츠의 팬들은 릴릭(서정 오페라)보다는 드라마코티에 더 어울렸던 칼라스보다 더 많은 영역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었던 테발디에 열광했으며 매공연 마다 셀아웃을 기록하며 결국 68년 칼라스의 항복(화해)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칼라스는 그후 죽는 순간까지 테발디를 입이 침이 마르도록 추켜세웠다고하는데 동전의 양면이라고나할까, 어쩌면 이 둘은 서로의 재능을 시기하면서 또 서로를 동경하는아니 어쩌면 신은 2% 부족한 이 둘을 합쳐 세기의 디바오페라 퀸으로서의 그 완성을 이루었는지도 알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 그 어떤 노래도그 어떤 음악도 완벽한 것은 없다. 아무리 좋아하던 노래도 세월이 지나면 변질되고,  좋은 목소리도 흠이 가기 마련이다. 굳이 오페라 퀸이다, ‘세기의 디바이다 하며 호들갑을 떨수록 자연스러운 가치는 삭감되기 마련일 것다. 그럼에도 꼭 집고 넘어가고 싶은 가수가 한 명있다면 바로 레나타 테발디일 것이다. ? 전혀 다른 인격전혀 다른 가수 한 명이 또 한 명의 가수로 인해 조명받지 못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삶은 무대없는 드라마다. 화려한 역을 맡았다고 누구나 박수를 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진실한 연기리얼한 연기()를 펼치는 연기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박수의 영광일 것이다. 진실이 담기지 않은 노래는 가짜다. 사람들은 마리아 칼라스는 알아도 레나타 테발디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세상이 기억하는 것은 1등이지 2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그 진실의 모습에선 입장이 다르다. 토스카의 노래 '사랑에 살고 노래에 살고'…   누가 진실로 20세기의 토스카였을까?   'Vissi D'arte …’ 그 가슴 저리는 아리아를 들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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