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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평강의 말
빌립보서 1:1~11 I.
사랑의 고백
모처럼 경마장이 쉬는 날, 말들이 모여 말하는 유형에 따라 말들이 싫어하는 인간상 이 무엇인가 여론조사를 했더랍니다.
동상.
말 바꾸는 인간, 말 머리 돌리는 인간.
은상. 이 말 저 말 왔다 갔다 하는 인간, 말허리 자르는 인간.
금상입니다. 말꼬리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인간이었답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감정, 우리의 의지, “나”라는 존재가 입을 통해서 표현되어질 때에 우리 는 그것을“말”이라고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나님은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온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형상으로 창조한 인간에게 말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많고 많은 피조 물 가운데 말을 하는 언어라는 은총을 받은 피조물은 인간밖에 없습니다. 말하는 인간에게 친히 만드신 만물을 통치하도록 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다스리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말에는 세상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습니 다. 아뿔사! 인간이 범죄하고 탈락할 때에 인간의 말도 함께 타락을 한 겁니다. 그래서 인간의 말 속에는 독이 묻어나옵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았을 때 우리의 말도 우리의 효도 구원을 받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혀가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말에는 능력 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능력! 내게 맡겨진 사람들을 축복하는 축복권이 있습니다. 은혜 의 말, 평강의 말을 하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어 구원얻은 빌립보 교회에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축복합니다. 그리고 은혜의 말, 평강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은혜와 평강의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2절에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축복합니다. 3절부터 10절까지 여덟절 안에 “너희”라는 말이 10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기 “너희”는 은혜로 구원받은 교인을 말합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4절) 참 독특한 말입니다. 4절, 7절, 8절 계속 등장합니다. 구구절절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연애편지를 쓰는 젊은이처럼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3절 “생각할 때마다” 4절 “간구할 때마다” 7절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내 안에 너 있다”는 어느 연속극 생각이 납니다. 8절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이런 절절한 고백이 또 어디 있을까요? 창세기 2:23 남편이 아내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고백이 나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목회자가 섬기는 교회에 고백하는 최고의 고백이 오늘 본문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를 무리를 사모한다” 여기 “심장”이라는 말이 참 재미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사회 의학은 사람의 감정이 우리의 신체 기관 어디에, 장기 어디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생각은 우리 뇌에 있고, 감정은 피를 만들고 보내는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꿈을 꾸고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만드는 장기는 간, 사람의 행동과 추진력은 위장에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사내가 배짱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무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사모한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너희를 바라보니 너희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내 모든 장기가 벌떡 일어나서 너희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근사한 고백 아닙니까? II. 말이 씨가 된다. 이 세상에서도 어떤 사람이 행복하게 살까요? 얼굴과 몸이 예쁜 것 큰 자산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마음과 말이 예쁜 사람이 행복하게 살더랍니다. 다 예쁘면 금상첨하지요 TV에 얼굴 을 비추는 사람들 중에 저만 하면 예쁘고 행복할 것 같은데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 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대개 말이 예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품성이 꼬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관계가 깨어진 사람들입니다. 누에고치가 자기 입에서 실을 풀어 자신의 집을 짓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삽니다. 사람도 평생 자기가 입으로 말을 합니다. 그 말로 자기 인생의 집을 짓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긍정의 집을 짓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집을 짓습니다. 사랑의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사랑의 집을 짓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불평의 집을 짓고 살게끔 되어 있습니다. 부메랑의 법칙이란게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휘익 던지면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내게로 날아옵니다. 말을 하고 나면 그 말의 영향이 내게로 다시 돌아오는 겁니다. 우리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밭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러분의 인생밭에는 자신이 한 말, 다른 사람들이 내게 한 말이 씨앗처럼 떨어져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밭에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말의 씨는 벌써 많이 자랐습니다. 또 어떤 씨앗은 벌써 꽃을 피우고 있고 어떤 씨앗은 이미 열매를 맺었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7) 축복을 심은자 축복을 거둡니다. 저주를 심은자 저주를 거둡니다. 감사를 심은자 감사를 거두고 비난을 심은자 비난을 거두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입술에 열매는 자신의 입에서 나와 다른 사람에게 날아가기 전에 내 밭에 먼저 떨어집니다. 자기 말을 제일 먼저 듣는 게 자기 귀요 자기 뇌입니다. 이게 밭입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토한 모든 말들은 하나님 앞에 떨어집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수기 14:28)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 가정 안에서 부부 사이, 부모자식 사이, 교회에서, 목장 안에서, 교회 사역에서, 직장이나 친구 관계에서 정말 행복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한번 잘 살펴보세요. 거기엔 행복을 깨뜨리는 상처의 언어가 있을 것입니다. 부정적인 언어, 비판의 언어, 불평의 언어, 원망의 언어가 있다면 그게 요인입니다. 성공한 사람들 그 곁에는 성공의 언어가 있습니다. 실패한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 그 곁에는 실패의 언어, 불행의 언어가 반드시 있습니다. 붕어빵을 잉어빵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빵 틀을 바꾸면 됩니다. 말을 바꾸어야 인생이 바뀌고 공동체가 바뀝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빌리면 내가 은혜를 받았으면 내 입에서 은혜의 말이 나와야 합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 평강의 복을 받았으면 내 존재가 평강 덩어리가 되어서 평강의 말이 나와야 하는 겁니다. 덕을 세우는 말을 하라고 합니다.(엡 4:29) 내게 맡겨진 사람들을 세워 주는 내 부모, 내 자식, 내 배우자, 내 목장 식구, 내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세워 주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덕을 세우는 말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언 18:21) 나쁜 말이 아예 습관이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흔히 부모가 자식에게, 직장 상사가 아랫사람에게 네 실상을 파악해봐. 네 꼬락서니를 알라고 합니다. 비난하고 비판을 쏟아붓습 니다. 그러나 믿음의 부모들은 실상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 다. 어리석은 사람은 실상을 말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바라는 걸 얘기하는 겁니다. 믿음의 언어를 전해주는 겁니다. 축복을 전하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휴 목사님이 우리 아이의 실상을 몰라서 하는 그래요. 알아요, 충분히 안다고요. 그 아이 실상을 말하지 말라니까요. 그 아이를 향한 기도를, 믿음을, 축복을 바라는 것을 말하세요. 여러분 곁에 있던 소중했던 사람과 관계가 깨어진 경험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친밀 함이 깨어져서 어색했던, 지금도 회복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소한 말로 시작하여 그 아픈 결과를 우리가 먹은 겁니다. 젊은 연인들이 불같이 사랑하다가 상처내는 말, 독한 말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맙니다. 이혼하고 실패한 사람들끼리 인생을 다시 시작하자. 만든 프로드램이 돌싱즈. 돌싱 즈가 살면서 돌아가 보려고 하니, 혼자서 살면서 뭘 만들어 보려고 하니 더 어렵더래요. 애써 쌓은 사랑의 관계 100을 깨는 것은 한 번에 칼로 찌르는 결정적인 말이었습니다. 상대가 어떤 말을 싫어하는지 연구한 적이 없습니다. 만날 때마다 같은 말로 늘 쏟은 불평, 불만, 지적질하는 말이 관계를 깨뜨렸습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반대로 한마디 말이 천년우정을 깨뜨릴 수도 있습니다. 가령 고칠 수 없는 상대방의 약점을 말하는 것은 독약입니다. 실수 꼬투리를 한번 얘기했으면 됐지, 만날 때마다 두 번 세 번 열 번 반복하고 되씹으면 내 곁에 남아 있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 말 잘했다. 지난 설날 시집 식구들 앞에서 당신 나한테 뭐라고 그랬어? 다 해결한 문제인 줄 알았더니 비수가 터져 나옵니다. 매년 추석마다 당신네 식구들 행동 이젠 진절머리나. 나 이번 추석에 안 가. 너 혼자 가. 올 추석 시집 얘기, 처가 얘기 절대로 하지 마세요. 작은 사건으로 시작한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면전으로 확대됩니다. 주말 부부들이 참 많아요. 보니깐 행복한 부부가 있고 불행한 부부가 있습니다. 주말에 만나서 행복을 꽃피우고 또 일터로 가야 되는데, 일주일 내내 불행을 묵상하 고 상처를 묵상하고 상대의 약점을 묵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사이 논리가 생깁 니다. 자기 상처가 막 커져버립니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 저녁 문에 들어오는 순간 쌓아놨던 논리로, 쌓아놨던 상처로, 불행을 묵상했던 그것들로 다다다다다다다 쏟아 붓습니다. 그리고 다시 주일날 헤어지면서 또 한바탕하고 헤어집니다. 그런데 어떤 부부는 상대에 대한 그리움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좋은 장점을 얘기하 고 고마움을 감사한 마음을 묵상합니다. 금요일날 옵니다. 그래서 불이 붙는다고 불금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성령에 불을 붙여야지. 내가 은혜와 평강을 받았으면, 내 심령에 은혜와 평강의 언어로 넘쳐나야 되는 겁니다. 존중해주고 배려해줘야 되는데 어떤 부인이 입만 열면 당신이 뭘 알아? 당신이 뭘 알아? 남편이 말만 하면 당신이 뭘 알아? 당신이 뭘 알아? 그러고 밟아버립니다. 그런데 아뿔싸 남편이 죽었어요. 의사가 와서 눈을 살피더니 사망했습니다. 선고하 고 병실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나가자마자 남편이 숨이 돌아와서 여보 나 안 죽었어? 그러더래요. 그러자 눈을 자꾸 감기면서 당신이 뭘 알아? 의사가 죽었다 그러면 죽은 거야. 나 안 죽었어? 아니 당신이 뭘 알아? 의사가 죽었다면 죽은 거여. 그러더랍니다. III. 사랑의 말은 훈련이다. 한 25년 더 지난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몸이 허약해서 자꾸 병치레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우리 부교역자 중에 한 분이 목사님 골프를 권해주었습니다. 나 골프칠 시간 없다.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교회 집사님 한 분에게 부탁을 해서 근사한 골프채 한 채를 사 왔습니다. 여기서 돌발퀴즈입니다. 제가 골프를 잘 칠까요 못칠까요? 빙고! 제가 골프 선수가 되었을까요 못 되었을까요? 빙고! 여러분 집안에 골프채 있다고 골프 선수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집안에 비싼 피아노 갖다 놨다고 피아니스트 나오는 게 아닙니다. 손흥민을 꿈꾸고 축구공 사 줬다고 손흥민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경건은 연습하는 겁니다. 지옥은 가만히만 있으면 됩니다. 이 땅에 천국은 애쓰고 연습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선남선녀가 만나면 눈알이 커지고 뇌에서는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이 분비되기 시작합니 다. 소위 필이 꽂히게 됩니다. 상대가 섹시하게 느껴집니다. 함께 있고 싶어지고 뭐든지 해주고 싶어집니다. 그게 소위 말하는 눈이 가려졌다. 콩깍지가 씌어졌다. 여러분 옥시토신 이 눈을 가리면 그게 콩깍지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연애하고 결혼합니다. 6개월이 채 지나 지 않았는데 그 사랑스럽던 언어가 사라지고 찬바람이 쌩쌩 붑니다. 만날 때마다 가슴이 뛰더니 이제는 화난 얼굴 근육이 뛰기 시작을 합니다.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기억하세요. 그 외모만으로는 유효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아름다운 예쁜 언어가 더해져야 유효기간이 무한정 연장되는 겁니다. 남자들 근육 울통불퉁 만들었다고 거기서 가슴이 뛰는 유효기간이 있는 게 아닙니다. 엉뚱한 데 신경 쓰지 말고 상대를 향하여 무슨 말을 해야 되는지 연습하라는 겁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사랑이 쌓이기도 하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상대가 서로 지쳐가기도 하고 상처가 쌓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경건은 훈련을 통해서 강화되어집니다. 사랑의 언어, 은혜와 평강의 언어는 연습을 통해서 개발되어집니다. 사랑은 느낌이 아닙니다. 결심입니다. 상대를 아프게 하는 말은 평생 하지 아니하리라. 결심하는 겁니다. 예쁜 말, 고운 말, 품위 있는 말을 하는 게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 말을 하는 사람들,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아나운서들도 입에 피가 나도록 볼펜을 물고 연습을 합니다. 글을 쓰는 작가나 문인들도 남의 글, 좋은 글을 끊임없이 읽으며 살아가는 겁니다. 말하는 목사, 글 쓰는 목사로 살기가 쉬운게 아닙니다. 제가 적어도 50년 이상은 반드시 새벽 3시 4시에 일어나서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읽고 연습을 해도 요꼴 밖에 안 돼요. 경건의 연습이라는 게 쉬운 게 아니더라 그런 얘기입니다. 책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하나님이 내게 맡겨준 사람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교회 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의 은사가 무엇인지? 목장 식구들 성향이 무엇인지? 교사들 서로들 일하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서로 살펴야 합니다. 사랑하는 내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만드셨는지, 우리 아이의 꿈은 무엇인지, 은사는 무엇인지, 잘 하는 건 무엇인지, 못하는 건 무엇인지, 더 개발해야 될 부분은 무엇인지 연구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댄싱퀸”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서울시장이 되는 게 꿈이었던 남편과 무대에서 춤을 추는 댄싱퀸이 되고 싶은 아내가 서울시장 선거기간에 몰입해서 저 양반 부인 은 춤추는 댄서야! 문제가 된 겁니다. 그때 남편이 내 아내의 춤추고 싶은 꿈을 꺾지 말아야지. 부인은 내 남편의 비전을 내가 세워줘야지. 서로 자기의 비전을 내려 놓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게 알려지면서 시민들이 불같이 일어나서 시장도 되고 댄싱퀸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상대방의 비전, 이루고 싶은 그 소박한 꿈, 이걸 자꾸 세워드려야 됩니다. 상대를 무너뜨리면 안됩니다. 중단시키려고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IV. 하나님께 얘기하기(중보기도) 오늘 본문 말씀을 잘 읽어보면 사실 이렇게 보면 사실 인간 상호간 사랑의 언어, 은혜와 평강의 언어보다 더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 가족의 얘기, 이웃의 얘기, 그들의 아픔, 그들의 소망, 그들의 꿈, 그걸 하나님 앞에 자꾸 얘기하는 걸 뭐라 그래요. 중보기도라고 합니다. 3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중보기도 하는데 그냥 하는 게 아니고 감사하면서 그 사람을 향한 감사 거리를 찾아서 하나 님께 중보기도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간다는 게 문제를 만나고 문제를 풀어가는 겁니다. 문제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풀어가는 사람이 있고, 문제를 쌓아가는 사람, 문제를 더 얽어매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는 문제를 푸는 열쇠입니다. 불평, 원망은 문제를 쌓아가는 원흉입니다. 문제와 약점이 있고 섭섭함이 있어도 감사하면 문제가 사라집니다. 자꾸 내 문제만 얘기하면 문제는 더 쌓여져 가는 겁니다. 중보기도 하면서 감사 거리를 찾아서 기도하는 겁니다. 지금 지구촌의 가장 큰 위기는 기후위기입니다. 요즘 가뭄 아니면 홍수입니다. 이상 기후지 요. 감사에 가뭄이 들면 인생은 사막이 됩니다. 지금 지구촌이 ⅓이 사막화되어지고 있습니 다. 불평의 홍수가 나면 모든 행복은 쓸려 내려갑니다. 이 땅에 모든 인간의 마음엔 상처가 있습니다. 감사는 상대방의 질병, 상처, 모든 독소를 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겁니다. 우리의 뇌는 140억 개가 있습니다. 자꾸 감사하고 기뻐하면 뇌가 감사와 기쁨으로 저절로 작동되도록 조정이 됩니다. 그런데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판하기 시작하면 뇌는 그렇게 훈련 이 되어져서 불행으로 작동되어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내 뇌가 감사와 기쁨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갑니다. 내가 가는 곳에 행복이 가게끔 되어 있습니다. 불행과 비판과 비난으로 작동되어지면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로 그것이 흘러들어갑니다. 전염 되어집니다. 공동체가 불행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중복기도를 하는 또 다른 자세가 4절에 나옵니다.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억지로 예쁜 말을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내 존재가 본질이 기쁨으로 바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 존재가 은혜 덩어리가 되어야 은혜의 말이 나오는 겁니다. 내 존재가 평강 덩어리가 되어야 평안한 말이 나오는 겁니다. 내 존재가 기쁨 덩어리가 되어야 기쁨의 언어가 나오는 겁니다. 평소 시험만 보면 50점 받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서 80점을 받았습니다. 집으로 날아오듯 달려옵니다. 엄마~ 부르면서 시험를 던지면서 엄마 나 80점 받았어! 어깨를 뻐기기 시작합니다. 엄마가 하는 말이 시험 문제에 쉬웠구나! 니가 80점 받았으면 너희반 아이들 다 100점 받았겠 다. 80점 가지고는 안 되는가 보다. 더 노력을 해서 90점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아예 제트키로 날아옵니다. 마징가~~~ 하면서 날아왔습니다. 시험문제를 던지면서 엄마 나 90점 받았어! 틀림없이 너희 반 아이들 모두 100점 받았구나! 이것 봐 이 바보야! 이렇게 쉬운 걸 틀렸잖아. 이것 맞쳤으면 너도 100점 받잖아! 이런 엄마 곁에 행복한 아이가 나오겠습니까? 9절 이하를 보세요.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가 “점점 더 풍성하게 되기 위해서” 11절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우리가 받은 은혜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은총이 어떤 것인가? 풍성한 것입니다. 가득한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입니 다. 나의 온 존재 덩어리가 은혜로 꽉 차는 걸 말하는 겁니다. 이게 풍성이고 이게 가득입니 다. ♪만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것만 같은 그대~ 이게 풍성이고 가득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축복하다”는 말은 율로게오. 유(좋다)와 로고스(하나님의 말씀)가 합쳐서 된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나님의 가슴 속에 있는 그 기쁨의 언어를 찾아서 전달하는 게 축복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을 만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하나님의 심장을 헤아려서 그걸 찾아서 전달하는 율로게오, 유와 로고스라는 말이 합친 축복이라는 말입니다. 네 곁에 항상 율로게오, 좋은 말을 해주는 부모가 있다고 하는 게 얼마나 커다란 자산인지 아십니까? 내 곁에 나를 축복하는 배우자가 있고 친구가 있다고 하는 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축복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일하는 방법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축복할 때에 좋은 말을 하는 친구를 내 곁에 붙여주는 겁니다. 내 입이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축복하는 축복의 언어가 되시길 바랍니다. 프랭클린은 젊어서부터 정치가의 꿈을 안고 자랐습니다. 정치가로 승승장구하던 어느날 39살 나이에 소아마비를 앓고 장애인이 됩니다. 휠체어를 타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집안 식구들과 친구들은 낙향하여 시골에서 조용히 지내 것을 권고합니다. 그러나 그이 아내는 끊임없이 좋은 말로 축복합니다. 당신은 지금부터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작은 일을 하더라도 세상에 큰 일로 알려지게 될 것이에요. 프랭클린은 아내에게 “내가 회복할 수 없는 장애인으로 평생 살게 될 터인데 그래도 당신은 나를 사랑할 수 있겠소. 평생 축복하며 살 수 있겠소.” 그 때 아내가 하는 말 “여보, 나는 당신의 다리를 사랑한 게 아니에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의 존재를 사랑해요. 끝까지 영원히 축복하고 사랑할 것입니다.” 프랭클린은 아내의 끊임없는 좋은 말, 축복에 용기를 얻고 다시 도전합니다. 미국 정치사상 최초로 4선 대통령이 된 장애인 대통령, 세계대경제공항을 뉴딜정책 으로 이겨낸 위대한 대통령, 세계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뛰어들어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대통령입니다. 여러분의 하는 말이 잘못된 길로 가서 불행으로 치닫는 분 계십니까? 습관이 잘못되어 있는 분 계십니까? 140억 뇌의 구조가 이미 비난과 비판과 불행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오늘 예배를 통하여 어떻게 되는지 3개 국어로 얘기하겠습니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은혜의 말, 평강의 말, 축복의 말, 당신 자신과 공동체의 명운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미 여러분에게는 은혜와 평강의 말이 풍성하게 가득 차 있습니다. 불행의 언어, 비판의 언어, 저주의 언어, 상처의 언어, 그건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이미 십자가에 묻어버린 것 다시 끄집어내서 사용하지 마십시오. 이미 여러분의 모든 존재 덩어리 는 은혜와 평강의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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