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는 왜 가는가?, 불교는 왜 하는가?
목적이 분명하고 명확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교를 하는데 지속적인 힘이 생깁니다.
1.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
2. ‘소원성취를 위해서?’
3. ‘극락왕생을 위해서?’
4. ‘깨달아 해탈, 열반을 위해서?’
1) 절에 가는 것만으로 산란했던 마음이 조용해지며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2) 소원성취를 하려면 불공으로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3) 극락왕생하기 위해서는 아미타불께 의지하며 선행을 해야합니다.
1,2,3 이 목적이라면 그다지 불교에 대한 지식과 이해는 깊지 않아도 되며
어렵게 공부를 많이 해야할 필요성은 없습니다.
절에 가는 것만으로도,
또는 부처님께 절대 의지하는 것만으로도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겠지요.
4. 하지만 깨닫고 해탈, 열반이 목적이라면 공부를 해야합니다.
불교에 대한 지식, 이해, 실천 공부가 절대 필요합니다.
4번에 의거해서 2W1H로 살펴보면
1) What 불교? : 불교가 무엇이지?
2) Why 불교? : 왜 불교를 하지?
3) How 불교? : 어떻게 불교를 하지?
1) ‘불교가 무엇이지?’ 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뜻도 있고, 부처가 되는 법(佛法)’도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부처란 무엇일까요? 깨달은 사람을 부처(붓다)라고 합니다.
무엇을 깨달음이라고 할까요?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실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해서 만든
관념, 개념, 이념, 신념을 바탕으로,
즉 자신이 만든 색안경을 낀 채 보는 허상을 진짜인 줄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착각 속에 살다보면 자신도 괴롭고, 서로 다른 색안경을 낀 채 타인과도 다투게 됩니다.
2) ‘불교를 왜 하지?’ 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자유롭고 행복하게 주인되기 위해 불교를 하는겁니다.
종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다지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종이 아닌 주인으로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혜공부와 수행이 필요합니다.
권력, 재물, 명예 등 부귀영화, 또는 절대신,
심지어 부처님에게 조차 매이게 되면 대상에 종이 되어 끄달리며 살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탄생게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라고 하셨고,
열반하실 때도 ‘자귀의 법귀의 자등명 법등명’ 이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주인으로 사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종일지라도 가끔은 자신이 바라는대로 이루어지면 기쁘고
행운이 찿아오면 더없는 짜릿함과 쾌감이 생깁니다.
이런 것들이 행복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기쁨과 행운이 항상 하던가요?
기쁨과 행운 뒤에는 또 다른 괴로움과 불행이 생기게 되어
인생만사 색옹지마라는 말이 있듯이 쾌락과 괴로움은
롤러코스트 위에서 반복적으로 중생들을 춤 추게하며 흔들어 놓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쾌락과 행운이 행복이 아니라
괴로움이 소멸되어 안락한 상태가 행복이라고 하셨습니다.
3) 어떻게 불교를 하지? 에 대한 실천이 필요합니다.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한 지식과 이해가 생겼으면
그 지식과 이해의 바탕 위에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 실천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런 실천과 연습을 수행이라고 합니다.
스님들은 출세간에서 수행을 하지만,
일반인들이 스님처럼 수행을 따라하는 것은 어렵기에
세간, 즉 생활 속에서 수행을 해야 합니다.
수행으로 얻을 어떤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업식의 쇠사슬을 끊는 것인데
한마디로 자신을 묶고 있는 어리석은 견해의 쇠사슬과 생각의 쇠사슬을 끊은 것입니다.
5 가지의 어리석은 견해와 5 가지 어리석은 생각의 쇠사슬에 억매이면
자유롭지 못하고 종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구속하는 사슬이 단단하면 단단 할수록 자유롭지 못하고 힘들고 괴롭게 됩니다.
사슬을 끊으면 제대로 보게 되고 자유로워지고 절대행복으로 다가갑니다.
5가지 어리석은 견해가 끊어지면 지혜로워지며
탐진치만의 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돌려서 지혜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어리석은 견해는 올바른 이해가 있으면 해결되지만,
어리석은 생각의 사슬은 끊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사슬을 끊는 연습을 수행이라고 하며
불교에서는 2600 여년 동안 팔정도, 사념처, 무주상보시, 37조도품 등등
여러가지 뛰어난 수행법이 있답니다.
수행을 통해 괴로움은 소멸되고 절대 행복인 지복으로 됩니다.
불교에 입문하는 것은
중생이 아닌 보살, 붓다로 향해 가는 길로 들어선 것이고 일생일대의 획기적인 일입니다.
왜냐하면 아흔 아홉명이 잠꼬대를 하고 있을 때
깨어있는 한 명이 되는 희귀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중생의 괴로운 삶에서
지혜롭고 행복한 보살의 삶으로의 전환이라서 초발심시변정각’이라고 했습니다.
깨달아야겠다고 마음을 내는 것이 이미 지혜이며 깨달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