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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천박한? 맑스주의 인식(공부 자체를 안하고 떠도는 내용들만 주워담아 결론만 내버리는 천박한 비평방식)을 먼저 비평하고 3장으로 들어갑니다.
1. 우주론과 인식론에 대하여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중원문화) 에서)
<서론>근대 자연과학의 탄생의 시대적 배경
고대인들의 천재적인 자연과학적 직관이나,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님에도 산발적으로 이루어져 결론없이 소멸해버린 아랍인들의 재발견과는 달리, 《근대의 자연연구》는 과학적이며 체계적이고 전면적인 발전을 가져 온 유일한 자연연구였다. 이 근대의 자연연구는 근대사 전체와 마찬가지로 우리 독일인이 당시에 우리 민족을 덮쳤던 재난에 따라 《종교개혁》이라 부르는 위대한 시대에 시작되었다. 프랑스인들은 이 시대를 《르네상스》로, 이탈리아인들은 칭쿠에첸토(Cinquecento)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 명칭들 중 어느 하나도 이 시대를 완전히 표현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이 시대는 15세기 후반에 시작된다. 도시시민(부르조아)의 지원을 받은 왕권은 봉건귀족의 권력을 타파하고 본질적으로 민족성에 기초한 대군주국을 성립시켰으며, 이 대군주국의 내부에서 근대 유럽의 나라들과 근대 부르조아 사회가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고 시민과 귀족이 여전히 격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에 《독일 농민전쟁 :동학농민전쟁에 비견》은 미래의 계급투쟁을 예언적으로 암시해 주었는 바, 농민전쟁은 분노한 농민들을 무대로 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농민들의 배후에 손에는 적기를 들고 입으로는 재산의 공유를 외치는 오늘날의 노동자의 전신을 또한 등장시켰던 것이다. 비잔틴의 함락에서 구조된 필사본들과 로마의 폐허에서 발굴된 고대의 조각품들은 놀라움에 휩싸인 서구인들 앞에 《하나의 신세계, 즉 고대 그리스:노자의 새로운 해석에 비견》를 출현시켰으며, 그 찬란한 모습 앞에서 중세의 망령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탈리아는 미처 예감하지 못했던 예술의 개화기를 맞게 되었으며, 이 예술은 그 이후 다시 도달될 수 없었던 고전적 고대의 빛을 다시 비추어 주는 것으로 보였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에서는 새로운 문학, 최초의 근대문학이 성립되었다. 영국과 스페인은 그 이후 곧 고전문학 시대를 체험하였다. 옛 세계(Orbis terrarum)의 한계는 격파되었고, 지구는 비로소 본래의 모습대로 발견되었으며, 이후의 세계무역 및 수공업의 매뉴팩처로의 이행을 위한 기초가 닦아졌다. 매뉴팩처는 또다시 근대 대공업의 출발점을 이루었다. 교회의 정신적 독재는 파괴되었다. 게르만 제민족은 그 대다수가 교회를 직접 탈피하여 프로테스탄티즘을 수용했으며, 로만계 제민족 사이에서는 아랍인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으며 새로이 발견된 그리스 철학을 통해 풍부해진 쾌활한 자유사상이 더욱 더 깊이 뿌리를 내렸다. 이 자유사상은 18세기의 유물론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인류가 그때까지 경험했던 최대의 진보적 변혁이었으며, 위대한 인물을 필요로 했고 위대한 인물을 낳았던 시대였다. — 사고력과 정열과 성격의 거인들, 다재다능하고 박학다식한 거인을, 부르조아지의 근대적 지배의 기초를 닦았던 인물들이 단지 부르조아적 제약 속에 갇혀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반대로 시대의 모험적 성격은 그들을 다소간 충동질하였다. 당시의 대부분의 주요 인물들은 먼 곳으로 여행을 했고, 4~5종류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으며, 다수의 전문분야에서 이름을 떨쳤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위대한 화가였을뿐만 아니라 또한 위대한 수학자이자 역학자, 기술자였으며, 물리학 의 극히 다양한 부문에서의 중요한 발견들 역시 그의 공로에 힘입은 것이었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화가이자 동판화가, 조각가, 건축가였으며, 그밖에도 축성술의 한 체계를 고안해 내었던 바, 그의 체계는 훨씬 이후에 몽탈랑베르와 독일 근대 축성학에 의해 대부분 다시 받아들여졌던 착상들을 포함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가, 역사서술가, 시인이었으며 동시에 근대 최초의 중요한 군사저술가였다. 루터는 교회의 누적된 오물뿐만 아니라 독일어의 무질서까지도 청소해 내었다. 그는 근대 독일어 산문의 창시자였으며, 이후 16세기의 마르세이예즈가 되었던, 승리의 확신에 찬 합창곡들의 개사와 멜로디를 만들었다.
《당시의 영웅들은 아직도 분업에 노예적으로 종속되지 않았던 바, 우리들은 그들의 후계자들에게서는 인간을 제약하고 일면화시키는 분업의 작용을 너무나도 흔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특히 고유한 점은, 그들 중 거의 대부분이 당대의 운동 및 실천적 투쟁의 한가운데에서 활동하였으며, 당파적 입장을 취하고 혹자는 필설(筆舌)을, 혹자는 칼을, 몇몇은 양자 모두를 무기로 하여 투쟁에 가담했다는 사실이다. 》엥겔스의 인생론
여기에서 그들을 전인(全人)적 인물들로 만드는 그들 성격의 풍부함과 위력이 유래한다.
《골방학자들은 예외적 존재일 뿐이다. 그들은 이류 혹은 삼류의 인물들이거나 조금도 다치지 않으려는 용의주도한 속물들에 지나지 않는다.》배격하는 지식인류
자연연구 역시 당시에는 전반적 혁명의 한가운데에서 진행되었으며, 그 자체가 철두철미하게 혁명적이었다. 당시의 자연연구는 자신의 생존권조차도 쟁취해 내어야 했다. 근대철학을 발생시켰던 위대한 이탈리아인들과 손을 맞잡고 자연연구는 자신의 순교자들을 화형대로, 이단심문을 행하는 감옥으로 보내었다. 그리고 특징적인 것은, 신교도들이 구교도들보다도 자유로운 자연연구를 박해하는 데 더 열을 올렸다는 점이다.
《칼빈은 세르베토가 막 혈액순환로를 발견하려 할때 그를 화형시켰는데, 그것도 두 시간 동안이나 살아 있는 채로 불타게 했다. 이에 반해 이단자 심문소는 최소한 죠르다노 브루노를 단지 화형시키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것이다.》신.구교의 잔학성
자연연구가 자신의 독립을 선언하고 루터의 파문장 소각행위를 거의 동일하게 재현시켰던 혁명적 행위는 코페르니쿠스의 불후의 저작이 출판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 책을 출판함으로써 그는, 비록 소심한 어조를 띠고 있었지만, 말하자면 빈사상태로부터 최초로 자연의 설명에 있어서의 교회의 권위에 도전장을 던졌던 것이다. 비록 대립된 각 주장 간의 논쟁이 오늘날까지 질질 끌려지고 있고, 그나마 여러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잊혀지고 말았지만, 자연연구의 신학으로부터의 해방이 이루어진 것은 이때부터이다.
《이때부터 제과학의 발전은 엄청난 속도로 전진하였으며, 그 출발점으로부터의 (시간적) 거리에 대해 제곱의 비율이라 할 만한 속도로 힘이 증가되었다. 이제야말로 유기물질의 최고의 산물인 인간 정신에는 무기물질과는 정반대의 운동법칙이 작용하고 있음이 전세계에 증명될 때가 도래하였던 것이다.》 무기자연계의 역학적 속도법칙과 인간의 인식력의 속도법칙
막 시작된 자연과학의 제1기에 있어서 주요 작업은 근접해 있는 소재를 완전히 사용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고대는 유클리트와 프톨레마이오스의 태양계를, 아랍인들은 십진법과 대수학의 시초, 근대 수학 그리고 연금술을 유산으로 남겼다. 이에 반해 기독교의 중세는 전혀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자연과학, 즉 지구 및 천체의 제물체의 역학이 필연적으로 최고의 지위를 점하였고, 이 역학을 보조하기 위해 수학적 방법의 발견 및 완성이 또한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위대한 업적이 달성되었다. 뉴튼과 린네로 특징 지워지는 이시기의 말기에 우리들은 과학의 이 부분이 일정하게 종결됨을 보게된다. 본질적인 수학상의 방법들이 그 대강에 있어서 확립되었다. 해석기하학은 주로 데카르트에 의해, 대수는 나피어에 의해, 미분과 적분은 라이프니츠와 아마도 뉴튼에 의해, 동일한 발전이 고체역학에서도 일어났는데, 그 주요 법칙들이 궁극적으로 해명되었다. 마침내 태양계의 천문학에 있어서도 케플러가 혹성운동의 제법칙을 발견했으며 뉴튼은 이를 보편적 운동법칙이라는 관점 하에서 파악하였다. 자연과학의 다른 분야들은 이러한 잠정적인 종결에도 훨씬 못 미치고 있었다. 액체역학 및 기체역학은 이 시기의 말기에야 좀더 다루어졌다.
광학을 제외한다면 본래의 물리학은 아직 그 최초의 착수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광학의 예외적인 진보는 천문학의 실제적인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화학은 플로기스톤 이론을 통해 그제서야 비로소 연금술로부터 해방되었다. 지질학은 광물학의 맹아적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고생물학은 아직 존재할 수도 없었다. 끝으로 생물학 분야에서는 여전히 동물학과 식물학, 그리고 해부학과 본래의 생리학상의 엄청난 자료들을 수집하고 최초로 선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생명의 제형태의 상보비교와 그 지리적 분포에 관한 연구, 그리고 기상학적 조건 등의 생존 제조건은 아직 거의 문제시되지 않았다. 여기서는 단지 식물학과 동물학만이 린네에 의해 대략적인 종결에 도달하였다.
{수고의 여백에 엥겔스는 연필로 이렇게 주석을 달고 있다. 알프스의 유수조정(流水調整)의 경우에 토리첼리를 언급할 것.”}
그러나 이 시기를 특징지우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의 《독특한 전체관》의 산출이었는데, 그 중심에는 《자연의 절대적 불변성에 관한 견해》가 놓여 있었다.
자연은 그 자체가 어떠한 방식으로 성립되었든 간에 일단 존재하기 시작한 이상 그것이 존속하는 한 있는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혹성과 그 위성은, 일단 신비로운 “최초의 충격”에 의해 운동상태에 접어든 이상, 영구히 혹은 만물이 종말을 고하는 그날까지 각자가 예정된 타원형의 궤도를 계속해서 돌고 또 돈다. 별들은 영원히 자신의 자리에 확고히 정지해 있으며 “만유인력”을 통하여 서로를 그 자리에 고정시켜 둔다. 지구는 영원으로부터 혹은 그것이 창조된 날부터 (어떠한 경우에도) 변하지 않고 동일하게 남아 있다. 오늘날의 "5대주”는 항상 존재했으며, 항상 동일한 산과 계곡과 하천을, 동일한 기후, 동일한 식물상(相)과 동물상을 유지해 왔다. 설령 인간의 손에 의해 개조나 이식(移植)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동식물의 종은 그 발생에서부터 궁극적으로 확고히 결정되어 있었으며, 동일한 종은 계속 동일한 종만을 낳는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도처에서 교잡(雜)을 통해 새로운 종이 발생할 수 있음을 린네가 인정했던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시간의 진행과 함께 발전하는 인류의 역사와는 반대로, 자연의 역사에는 공간상의 전개만이 인정되었다. {이것은 또한 헤겔의 자연철학의 한계였다-엥겔스}
자연에 있어서의 모든 변화와 발전이 부정되었다. 당초에는 그토록 혁명적이었던 자연과학이 돌연히 철두철미하게 보수적인 자연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한 자연 속에서는 모든 것이 오늘날에도 처음 상태대로 남아 있었으며, 지구의 종말까지 혹은 영원한 미래에도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었다.
18세기 초반의 자연과학이 지식의 면에서나 소재 선별의 면에서나 고대 그리스에 비해 그토록 앞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재의 사상적인 사용이나 일반적인 자연관의 면에 있어서는 그토록 뒤쳐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에게 있어 세계는 본질적으로 혼란(카오스) 상태에서 유래한 것, 발전된 것, 생성된 것이었다.》노자철학과 궤를 같이 함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시기의 자연과학자들에게 있어서 세계는 화석화된 것, 변화하지 않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일격에 만들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과학은 여전히 신학 속에 깊이 침잠해 있었다.
과학은 도처에서 자연으로부터 설명될 수 없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궁극적 원인으로 찾아내려 했고 발견해 내기도 했다. 뉴튼이 탁월하게도 만유인력이라고 세례명을 붙였던 인력이 물질의 본질적 성 질로 파악된다면, 혹성의 궤도를 최초로 출현시킨 설명할 수 없는 원심력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식물과 동물의 무수한 종은 어떻게 출현하였는가? 그리고 영원한 과거로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님이 확언되고 있던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났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자연과학은 너무나도 흔히 만물의 창조주에게 그 책임을 전가시킴으로써 대답하였다. 이 시기의 초기에 코페르니쿠스는 신학에 절교의 편지를 보낸 반면 뉴튼은 신의 최초의 충격을 요청함으로써 이 시기를 종결짓는다. 이 자연과학이 도달했던 최고의 일반적 사항은 자연 제질서의 합목적성의 사상이라고 하는 볼프류의 피상적 목적론이었는데, 이에 따르면 고양이는 쥐를 잡아먹기 위해 창조되었고 쥐는 고양이에게 잡아 먹히기 위해 창조되었으며, 전체 자연은 창조주의 예지를 증명하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철학이 동시대의 자연의식의 제약된 상태에 현혹되지 않고 -스피노자로부터 위대한 프랑스 유물론자들까지 - 세계를 그 자체로부터 설명해 낼 것을 완강히 주장하면서 세부 사항에 있어서의 확증을 미래의 자연과학에 맡겼다는 점은, 당시의 철학이 누리는 최고의 영예이다. 나는 18세기의 유물론자들을 이 시기에 포함시키는데, 그것은 그들에게는 위에서 서술한 이외의 어떠한 자연과학상의 자료도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칸트의 획기적 저작은 그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며, 라플라스는 그들보다 훨씬 이후의 인물이다. 잊어서는 안될 것은, 비록 이 낙후된 자연관이 과학의 진보에 따라 도처에서 헛점을 드러내고 있다 하더라도 19세기의 전반부 전체를 지배하였으며, 그 주요한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모든 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화석화된 자연관에 최초의 돌파구를 마련해 준 사람은 자연과학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철학자였다. 1755년에 칸트의 『천체의 일반자연사와 천체이론》 이 출간되었던 것이다. 최초의 충격에 관한 문제는 제거되었다. 지구와 전 태양계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생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만 다수의 자연과학자들이 “물리학이여, 형이상학을 경계하라! 1749"라는 경고를 통해 뉴튼이 표명했던 바의 생각에 대해 그토록 혐오감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분명히 칸트의 이 천재적인 발견으로부터 무수한 잘못된 길, 잘못된 방향에 바쳐진 엄청난 양의 시간과 노동의 낭비를 덜어 주었을 제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칸트의 발견 속에는 이후의 모든 진보로의 도약점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만일 지구가 생성된 것이라면)그 현재 의 지질학적, 지리학적, 기상학적 상태 및 지구상의 동식물 역시 마찬가지로 생성된 것이어야 할 것이며, 지구는 단지 공간적으로 병렬된 역사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 순서지워진 단계적 역사 또한 지니 고 있어야 할 것이었다. 즉각 이러한 방향으로 확고히 연구가 계속되었더라면 자연과학은 오늘날 현재의 상태보다 훨씬 더 진전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으로부터 어떤 유익한 성과가 생겨날 수 있는 가? 칸트의 저작은 직접적인 성과를 보지 못한 채, 이후 라플라스와
{그 과학적 업적이 이 자연관의 제거에 가장 중요한 재료를 제공해 주었던 한 인물이 1861년에만 해도 이 견해를 얼마나 확고히 믿고 있을 수 있었던가 하는 점을, 다음의 고전적 귀절은 보여주고 있다. “모든 (우리 태양계의 질서는,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한에 시는, 현존하는 것의 보존과 영원불변의 지속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상의 어떤 동식물도 최고(最古)의 시대 이래로 더 완전해졌거나 이전과는 다른 것으로 변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가 모든 유기체에서 단지 병렬적 서열만을 발견하고 단계적 서열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처럼 인류가 신체적측면에서 항상 동일한 상태를 유지해온 것처럼 - 마찬가지로, 공존하고 있는 제천체가 아무리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다 하더라도, 이 형태속에서 발전단계의 차이를 인정할 만한 근거를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모든 피조물은 동일하게 자신 속에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매들러, 『대중천(문학)』, 베를린, 1861, 제 5 판, 316 쪽). "수고의 여백에 엥겔스는 이렇게 주석을 달고 있다. “옛 자연관의 고정성은 전 자연과학을 하나의 전체로서 일반적으로 총괄할 수 있는 토대를제공해 주었다. 프랑스의 백과전서파들에게 있어서는 아직 순수한 기계적 형태로 병렬적으로, 그리고는 동시에 생시몽과, 헤겔에 의해 완성된 독일 자연철학.”}
허설이 그 내용을 상세히 전개시키고 더 세밀하게 논증함으로써 “성운가설"에 점차 영예를 가져다 줄 때까지 오랫동안 이용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 이후의 제발견은 그의 가설에 최종적으로 승리를 가져다 주었던 바, 이러한 발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행성의 주요한 운동,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저항매체의 입증,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이루어진 우주 물질의 화학적 동일성 증명, 그리고 칸트가 이미 전제하고 있었던 연소상태의 먼지덩어리의 존재 증명 등.
그러나 만일 자연이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이라는, 막 형성되고 있던 견해가 다른 측면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했을 경우, 변화하고 있는 지구가 변화하지 않는 생물을 지녀야 한 다는 모순이 과연 그토록 빨리 대다수의 자연연구자들에게 의식될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은 의심해 볼 만한다. 지질학이 성립되었고,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형성되어 상하로 중첩된 지층뿐만 아니라 이 지층의 내부에 보존되어 있던 사멸한 동물의 갑각(甲殼)과 골격,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식물의 줄기와 잎, 열매 등이 이때 성립된 지질학에 의해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전체 지구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지표면과 그 위에서 생활하고 있는 식물과 동물들도 시간적인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인정은 초기에는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것일 따름이었다. 지구의 제혁명에 관한 퀴비에의 이론은 말로만 혁명적이었지 실제로는 반동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 이론은 일회적인 신의 창조행위 대신에 수없이 반복되는 창조행위를 주장함으로써 기적을 자연의 본질적인 동력으로 만들었다. 라이엘이 비로소 지질학으로 하여금 이성을 찾게 했던 바, 그는 창조주의 기분에 따라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혁명들 대신에 서서히 진행되는 지구의 변화에 따른 점차적인 제작용을 주장했던 것이다.
{수고의 여백에 엥겔스는 연필로 이렇게 주석을 달고 있다. “역시 칸트가 발견했던 해일에 의한 지구자전 방해현상도 이제야 이해되었다.”}
라이엘의 이론은 생물의 종이 불변적이라는 가설을 받아들임으로써 이전의 어떤 이론보다도 더욱 모순에 가득찬 것이 되었다. 지표와 모든 생활조건의 점진적 변화는 곧바로 생물의 점진적 변화 및 그 변화하는 환경에의 적응, 종의 변천의 가능성 등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통은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에서도 그 힘을 행사하고 있었다. 라이엘 자신은 그 모순을 보지 못했고, 그 제자들은 더욱 심했다. 이러한 사실은 단지 당시에 이미 지배적으로 되었던 분업으로부터만 설명될 수 있는데, 이 분업은 각자를 많건 적건 자신의 전문분야에 한정시키고 단지 몇몇 사람들에게만 전반적 조망의 가능성을 남겨 두었던 것이다. 그동안 물리학은 대단한 진보를 이룩하였는데, 그 결과들은 자연과학의 이 분야에 있어서 획기적인 해였던 1842년에 서로 다른 세 그룹의 인물들에 의하여 거의 동시에 요약되었다. 하일브론의 마이어와 맨체스터의 줄은 열이 역학적 힘으로 전화하고 역학적 힘이 열로 전화함을 증명했다. 열을 일정한 역학적인 대응량으로 치환할 수 있음이 확인됨으로써 이 성과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되었다. 동시에 그로브- 그는 직업적 자연연구자가 아니라 영국의 변호사였다-는 이미 성취된 물리학상의 여러 개별적 성과들을 간단히 응용함으로써 모든 소의 물리학적 힘, 역학적 힘, 열, 빛, 전기, 자기, 나아가 소위 화학적 힘조차도 일정한 조건 하에서는 어떠한 힘의 손실도 없이 서로 전화함을 증명했다. 이로써 그는 우주에 존재하는 운동의 양은 변하지 않는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물리학적인 방식을 통해 차후적으로 증명해 낸 것이었다. 그 결과 특수한 물리학적 힘들, 다시말해 물리학에 있어서의 불변의 “종”들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상호이행하는, 다양한 서로 다른 물질의 운동형태들로 해체되었다. 물리학적 힘들이 이런 저런 가짓수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 힘들 간의 연관과 이행이 증명됨으로써 더이상 과학에 의해 우연적인 것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다. 물리학은 그 이전의 천문학과 같이 운동하는 물질이 영원한 순환을 궁극적인 것으로 제시하는 것을 필연적이게 만든 하나의 성과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라이엘의 견해가 적어도 그 최초의 형태에 있어서 결함은, 지구에 작용하는 여러 힘들을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보정된 것으로 파악하였다는 데 있다. 그에게 지구의 냉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는 일정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연관도 없는 우연적방식으로 변화할 뿐이다.}
라보와지에와 특히 돌튼 이후에 이루어진 화학의 급속한 발전은 자연에 대한 낡은 표상을 다른 측면에서 공격하였다. 이제까지는 단지 생물의 조직 내에서만 산출되었던 합성물을 무기적인 방식으로 만들어냄으로써 화학은 화학법칙이 유기체뿐만 아니라 무기체에서도 동일한 타당성을 지니는 것임을 증명해 내었고, 이로써 칸트에 의해서도 여전히 주장되었던 무기적 자연과 유기적 자연 간의 영구히 넘을 수 없는 심연의 대부분 메워 주었다. 마침내 생물학적 연구영역에서도, 특히 지난 세기의 중반 이후 체계적으로 진행된 과학적 목적의 여행 및 탐험, 전 세계 모든 지역에 존재하는 유럽 식민지에 대한 그곳 전문가들의 더욱 정밀한 답사, 나아가 고생물학, 해부학, 생리학상의 진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미경의 체계적인 사용과 세포의 발견 이후로는 이미 대량의 자료들이 수집되어, 그 결과 비교연구 방법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 니라 동시에 필요한 것으로 되었다. 한편으로는 비교 자연지리학에 의해서 식물계와 동물계의 생활제조건이 확인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유기체들의 서로 동일한 제기관이 비교연구되었는데, 이러한 비교연구는 성숙된 상태에서뿐만 아니라 그 발생의 모든 단계에서도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구가 더욱 심도있고 정밀하게 이루어질수록,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자연의 굳어진 체계는 점점 더 해체되어갔다. 더욱더 많은 식물과 동물의 개별 종들이 아무리 해도 서로 구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활유어(魚, Amphioxus)나 비늘도롱뇽(Lepidosiren)176) 같은, 종래의 모든 분류를 조롱하는 동물들이 출현하였으며, 마침내 사람들은 그것이 식물계에 속하는지 동물계에 속하는지조차도 말할 수 없는 생물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고생물학 문서실의 빈 공간들은 날이 갈수록 채워졌으며, 식물학과 동물학이 점점 더 심각하게 빠져 들어가는 것으로 보였던 미궁상태로부터 구출하여 줄 실마리, 즉 생물계 일반의 대체적인 발전사와 개별 생물체의 발전사 간에 정확한 평행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에 대해 가장 완고히 부정해 오던 자들까지도 인정하도록 강요하였다.
특징적이었던 것은, 칸트가 태양계는 영구히 존재할 것이라는 주장을 공격하였던 때와 거의 동시인 1759년에 볼프(C.F. Wolff) 역시 종의 영속성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고 진화론을 선언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천재적인 예견에 불과하였던 이 진화론은 오켄(Oken), 라마르크(Lamarck), 바에르(Baer)에 의해 정형화되었으며, 정확히 100년 후인 1859년 다윈에 의해 결정적으로 완성되었다. 또한 그 이전에 이미 모든 생물체의 최종적인 형태구성 부분으로 증명되었던 원형질과 세포가 최하등생물의 형태로 독자적인 생존을 하고 있음이 발견된 것도 거의 같은 시대였다. 이 발견으로 인해 무기적 자연과 유기적 자연 간의 틈이 최소한으로 좁혀졌을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생물의 진화론이 맞서왔던 가장 본질적인 난관 중의 하나가 제거되었다.
새로운 자연관은 이제 그 개요를 완성시켰다. 모든 굳어져 있던 것들이 해체되었고, 모든 고정되어 있던 것들이 흩어져 버렸으며, 영구히 존재하리라 믿었던 모든 특수한 것들이 일시적인 것으로 되었고,
《자연 전체는 영원한 흐름과 순환 속에서 운동하고 있는 것임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우리는 그리스 철학의 위대한 창시자들의 견해, 즉 자연 전체는 그 최소의 것으로부터 최대의 것까지, 모래알부터 태양까지, 원생생물부터 인간까지, 영원한 생성과 소멸, 끊임없는 흐름, 쉼없는 운동과 변화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견해로 다시되돌아왔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는 천재적인 직관의 결과였던 것이 우리들에게 확정적이며 명료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순환과정을 경험적으로 증명해 내는 데 있어서 빈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빈틈들은 이미 확인된 것들과 비교해 볼 때 보잘것없는 정도이며, 또한 해가 거듭될수록 점차 메워져 가고 있다. 그리고 과학의 가장 본질적인 부문들 - 혹성외천문학(惑星外天文學), 화학, 지질학 이 시작된 지 채 100년이 못 되었으며, 생리학상의 비교연구가 과학으로서 존재해 온 지가 채 50년도 못 되었다는 사실, 거의 모든 생명의 기본적인 발전형태, 즉 세포가 발견된 후로부터 아직 40년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세부적인 증명에 어떻게 빈틈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소용돌이치면서 작열하는 증기덩어리들- 그 운동법칙은 수세기 동안에 걸친 제관측이 항성의 고유한 운동을 명백히 해명해 낸 이후에밝혀진 것이다 - 로부터 수축과 냉각을 통하여 은하계의 중심으로부터 가장 먼 항성권 속에 한정된 우리들의 우주도(宇宙島)의 무수한 태양과 태양계가 진화되었다. 이러한 진화가 어디서나 똑같은 속도로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우리들의 항성계 내부에 단순한 혹성체가 아니라 암흑의, 즉 다 타버린 태양들이 존재함을 천문학은 점점더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매들러).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세키에 의하면) 증기상태의 성운의 일부가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태양으로서 우리들의 항성계에 속하고 있다. 이들은, 매들레의 주장처럼, 다른 제성운이 멀리 떨어진 자립적인 우주상의 섬을 이루고 있을 가능성을 부여해 주고 있는데, 이 우주도의 상대적 발전단계를 우리는 분광기로 확인할 수 있다. 한 개별 증기덩어리가 태양계로 발전되는 방실을 라플라스는 지금까지의 연구 가운데서 가장 탁월하게 상세히 증명하였으며, 이후의 연구들은 그의 정확함을 날이 갈수록 확인해 왔다. 그렇게 형성된 개별 천체 - 태양과 혹성, 위성 -에 지배적이었던 물질의 운동형태는 우리가 오늘날 열이라고 부르는 운동형태였다. 원소의 화학적 합성은 현재의 태양의 온도에서도 전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때 열이 어느 정도까지 전기와 자기로 진환되는가 하는 것은 앞으로 계속될 태양관측이 밝혀줄 것이다. 태양에서 일어나는 역학적 제운동이 단지 열과 중력 간의 투쟁으로부터만 발생하는 것임은 이미 거의 확실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개별 천체는 그것이 작으면 작을수록 빨리 냉각된다. 이미 우리의 달이 오래 전에 죽은 별이 된 것처럼 위성과 소혹성, 유성 등이 가장 빨리 냉각되고 혹성은 그보다 느리며, 중심천체가 가장 느리게 냉각 된다. 냉각과정이 지속되는 동안 서로 전환하는 물리학적 운동형태들의 교차가 점점 더 전면에 등장하며 마침내 화학적 친화력이 작용하는 시점에 도달한다. 이 시점부터는 이전까지 화학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던 원소들이 서로 차이를 보이게 되고 화학적 특성을 갖게 되며 서로 결합을 시작한다. 이러한 결합은 온도가 낮아짐에 따라 계속 변화를 겪게 되는데, 온도의 하강은 개별 원소들뿐만 아니라 모든 요소들의 상호 결합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온도의 하강에 따라 가스형태의 물질 일부가 액체로, 나아가 고체상태로 이행하고, 그 결과 새로운 조건들이 창출되는데, 이 역시 화학적 원소들의 결합을 변화시킨다. 혹성이 딱딱한 표면과 고여진 물을 갖게 되는 시기는 그 혹성 자체의 열이 중심천체로부터 보내지는 열보다 점점 더 낮아지는 시기와 일치한다. 혹성의 대기권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기상학적 현상들의 무대가 되며, 그 표면은 지질학적 변화의 무대가 되는데, 이 지질학적 변화에 있어서 고온의 액체상태로 있는 내부의 외부에 대한 작용은 점차 약화되고 대기중의 하강물에서 생긴 축적물들의 작용이 점점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마침내 표면의 적어도 한 군데의 작지 않은 장소가 단백질이 생존할 수 있는 정도의 온도에 도달하게 되고 그밖의 여러 화학적 전제조건들이 유리하게 작용할 때에야 원형질이 형성된다. 이 전제조건들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는 놀랄 일이 못 되는데, 왜냐하면 아직 단백질의 화학식조차 확인되지 않았고, 또한 화학적 단백체의 종류가 몇이나 되는지도 모를 뿐더러, 나아가 아무런 구조도 갖지 않는 단백질이 소화, 배출, 운동, 수축, 자극에 대한 반응, 증식 등 생명의 모든 기본 기능을 완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불과 약 10년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의 진전이 이루어져 이 무형태의 단백질이 핵과 막을 형성하여 최초의 세포가 생성될 수 있는 조건들이 나타나기까지는 수천년의 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최초의 핵과 함께 전 생물계의 형태가 형성되기 위한 기초가 성립되었던 것이다. 고생물학적 기록들의 모든 유추들로부터 짐작할 수 있듯이, 우선은 유세포 및 무세포의 원생동물들의 무수한 종이 진화되었다. 이 종들 가운데 에오초온 카나덴제만이 유일하게 발견되었으며, 이 종들로부터 몇몇이 점차 최초의 식물로, 다른 종들은 최초의 동물로 분화되어 갔다. 본질적으로는 계속적 분화의 결과 이 최초의 동물들로부터 동물의 무수한 강(돼), 목(目), 과(科), 속(屬), 종(種)이 진화되었으며, 마침내 신경계의 발전이 최고도로 완성된 형태, 즉 척추동물의 형태가 나타났고, 다시 이 척추동물 가운데에서
《자연이 자기 스스로에 대한 의식에 도달하게 되는 척추동물 즉 인간》이 최후로 나타났던 것이다.
인간 또한 분화를 통해 생성된다. 단지 개체로서, 즉 단 하나의 난세포로부터 자연이 발생시킨 가장 복잡한 생물체로까지 분화되었을뿐만 아니라 - 아니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분화되어 왔다.
수천년 동안의 고투끝에 손이 발로부터 마침내 분화되었을 때, 즉 직립보행을 확고히 하게 되었을 때, 그때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분리되었으며, 분절음화된 언어와 그 이후로 인간과 동물 간의 틈을 넘어설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던 놀랄 만한 두뇌 발전의 기초가 놓여지게 된 것이다.
《손의 특화 이것은 도구를 의미》하며, 도구는 인간 특유의 활동,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조적 반작용, 즉 《생산을 의미한다.》
좁은 의미에서의 동물도 도구를 지니고 있으나 그 도구란 단지 신체의 지절(指節)로서 기능할 뿐이다 - 개미, 벌, 해리(海里)의 경우, 또한 동물도 생산을 하지만 동물의 생산이 주변의 자연에 대해 미치는 영향이란 전체 자연에 있어서 거의 무(無)에 가깝다. 단지 인간만이 자연에 자신의 낙인을 찍을 수 있었으며, 이는 인간이 식물과 동물을 적당한 곳으로 옮긴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거주지의 모습과 기후도, 심지어 식물과 동물 자체도 엄청나게 변화시킴으로써 이루어졌다. 인간은 단지 지구의 전체적 사멸만이 자신의 활동의 결과를 사라지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변화를 야기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도, 그리고 본질적으로 손을 매개로 하여 완수될 수 있었다.
자연개조를 위한 현재까지의 인간의 도구 중 가장 강력한 것인 증기기관조차도, 그것이 도구인 한, 궁극적으로 손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손과 함께 차츰 두뇌도 발전되었다. 우선은 개별적인 실제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제조건이 의식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이후에는 비교적 유리한 조건 하의 민족들이 그들을 조건짓고 있는 자연법칙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급속히 증가하는 자연법칙에 대한 지식과 함께 자연에 대한 반작용의 수단도 증가하였다. 인간의 두뇌가 손과 함께, 손과 병행하여,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손에 의해 상관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면 단지 손만으로는 결코 증기기관을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과 함께 우리는 역사에 들어선다.》
동물들도 그 발생으로부터 점차적 진화를 거쳐 오늘날의 상태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지니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역사는 동물들에게 있어서 (외부세계에 의해 - 역자) 만들어지는 것이며, 비록 그들이 그 역사에 참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 자신의 지식이나 의지가 없이 일어날 뿐이다. 이에 반해 인간은 스스로 좁은 의미에서의 동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자신의 역사를 의식을 갖고 스스로 만들며, 예견되지 않은 작용이나 조절되지 않은 힘들이 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게 되며, 역사상의 결과들은 이전에 설정된 목적과 더욱 더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척도를 인류 역사에, 심지어 현재 가장 발전한 민족에 적용시킬 경우에도 여전히 예정된 목표와 달성된 성과 간에는 엄청난 불일치가 존재하며, 예견되지 않은 결과들이 우세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통제되지 않은 힘들이 계획적으로 작동된 힘들보다 훨씬 더 강력함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역사적 활동, 인간을 동물상태로부터 인간으로 상승시켰고 인간의 모든 다른 활동들에 물질적 기초를 제공하여 주는 활동, 인간의 삶의 욕구들의 생산, 즉 오늘날 사회적 생산을 이루는 활동이 여전히 통제되지 않은 힘들의 의도되지 않은 작용 아래 종속되어 있고 의도했던 목적은 단지 예외적으로만 달성되며 훨씬 더 많은 경우에서는 의도한 목적과는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 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가장 발전된 산업국가들에서 우리는 자연력을 통제하여 인간에 봉사하도록 강요해 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생산을 무한히 증가시켰고 오늘날 한 어린이가 생산하는 것은 이전에 백명의 어른이 생산했던 것을 능가하고 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증가하는 과잉노동과 대중의 빈곤의 심화, 십년마다 한번씩 겪는 야단법석이 그 결과이다. 자유경쟁, 생존을 위한 투쟁 - 경제학자들은 이를 최고의 역사적 성과라고 칭송해 대고 있는데- 이 바로 동물왕국의 정상적 상태임을 증명했을 때 다윈은 자신이 인류와 특히 영국 국민들을 얼마나 쓰라리게 풍자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계획적 생산과 분배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생산이 의식적으로 조직될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생산 일반이 특정한 측면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관계 속에서도 다른 동물계로부터 이탈하여 스스로를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발전과정 속에서 그러한 조직은 날마다 더욱 필요한 것이 되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날마다 더욱 가능한 것으로 되어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한 조직으로부터 하나의 새로운 역사적 시대가 시작될 것이며, 그때에는 인간 자신과 인간활동의 모든 부분들이 특히 자연과학 역시,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것들을 깊은 음영 속에 드리우는 비약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생성된 모든 것은 몰락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시절이 수백만년 동안 지속될 것이고 수십만의 세대가 태어나고 죽을 것이다. 그러나 점차 꺼져가는 태양의 열이 폴란드로부터 들이닥치는 얼음덩어리들을 녹이기에는 더이상 충분치 못하게 되고, 차츰 적도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마침내 거기에서도 생활하기에 충분한 온기를 찾을 수 없게 되며, 생명의 마지막 흔적조차 점점 사라져 이제 달과 같이 죽어버린, 꽁꽁 언 천체가 되어버린 지구가 마찬가지로 죽어버린 태양의 주위를 캄캄한 암흑 속에서 점점 더 좁은 원주를 그리며 공전하다가 결국 떨어져 버릴 때가 피할 수 없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몇몇 혹성들이 지구보다 빨리 떨어질 것이며, 다른 혹성들은 지구보다 나중에 떨어질 것이다. 조화롭게 편제된 밝고 따뜻한 태양계 대신 이제 차갑게 죽어버린 천구(天求)는 세계 공간 속에서 자신의 외로운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태양계와 마찬가지로 우리 우주섬의 모든 다른 계들, 수없이 많은 모든 다른 우주섬들의 계들, 그리고 지구상에 인간의 눈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그 빛이 도저히 지구에 도달할 수 없는 계들조차도 똑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런 태양계가 자신의 수명을 다하여 모든 유한자의 운명, 즉 죽음에 도달하였을 때, 그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태양의 시체는 영원히 시체로 끝없는 공간을 굴러 다니고, 이전에는 무수히 다양한 차별성을 지녔던 자연력들이 영원히 인력이라는 하나의 운동형태로 단순화되어 버릴 것인가?
“혹은” 세키가 묻는 것처럼 (810쪽), “자연 속에는 죽어버린 계를 다시 원래의 상태인 작열하는 운무로 전환시켜 새로운 삶으로 다시 깨어나게 하는 힘이 있는가?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193)
물론 우리는 2×2=4라든가 물질의 인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여 증감한다는 식으로 그것을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자연관을 가능한 한 조화로운 전체로 만들어 내고 오늘날 극히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경험론자라도 그것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그러한 이론적 자연과학에 있어서 우리는 매우 흔히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양을 계산해 내야 하고 부족한 인식을 진전시키기 위하여 언제나 사고의 결과를 이용해야 했다.
《이제 근대 자연과학은 운동의 불멸성이라는 명제를 철학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했다. 》
이 명제 없이는 근대 자연과학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물질의 운동이란 단순히 조야한 역학적 운동이나 위치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열과 빛, 전기적, 자기적 장력, 화학적 결합과 분해, 생명 나아가 의식까지를 포함하는것이다. 물질이 그 무한한 시간적 존재의 전과정에 있어서 단지 한번만, 그 영원함에 비교할 때, 거의 눈깜짝할 시간 동안만 자신의 운동을 분화시키고 이를 통하여 이 운동의 모든 풍부함을 전개시킬 가능성을 가지며, 그 전과 그 후에는 영원히 단순한 위치변화만을 행한다고 주장하는 것 - 그것은 곧 물질은 사멸하며 운동은 일시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운동의 불멸성은 단지 양적으로뿐만 아나라 질적으로도 파악되어야 한다. 》
어떤 물질의 순수한 역학적 위치변화가 적합한 조건 하에서는 열, 전기, 화학적 작용, 생명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 이 조건을 산출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러한 물질은 운동을 상실한 것이다. 자신에 속하는 다양한 형태들로 전화할 능력을 상실한 운동은 여전히 운동의 잠재력(Dynamis)은 지닐지라도 활동성 (Energeia)은 잃어버린 것이며, 이에 따라 부분적으로 파괴될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경우 모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다음은 확실하다. 우리 우주도(宇宙島)의 물질이 (매들러에 의하면) 적어도 2억개의 별들에 속하는 태양계-물론 그 점차적인 사멸도 확실하다 - 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정도의 엄청난 양의 운동- 그 양식은 현재 알 수 없다 - 을 열로 전환시켰던 때가 있었다. 어떻게 이러한 전환이 일어났던가? 세키 신부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태양계의 미래의 사멸해 버린 잔해들이 새로운 태양계의 원료로 변할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주를 추론해 내든가 아니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기를 강요받는다. 즉 우리 우주도의 태양계의 작열하는 원료는 자연적인 방식으로, 스스로 운동하는 물질에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운동변환에 의해 산출된 것이며, 이 운동변환의 조건들 역시 수천 수백만년이 걸렸다 하더라도 물질에 의해 산출되었으며, 또한 이러한 조건들이 다소 우연적으로 산출되었다 하더라도 우연 속에 내재하는 필연성에 의해 이러한 조건들은 재산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전환의 가능성은 날이 갈수록 인정되고 있다. 제천체는 서로 낙하하여 충돌하게 된다는 궁극적 규정을 갖고 있다는 견해에 이르고 있으며, 심지어 그러한 충돌 시에 발생할 열의 양까지 계산되고있다. 새로운 별이 갑자기 번쩍인다든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던 별이 갑자기 더 밝은 빛을 발한다든가 하는 천문학의 보고들은 그러한 충돌로부터 가장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이때 운동하고 있는 것은 태양 주위의 우리 혹성군이나 우리 우주도 내부의 태양들뿐만아니라 우리 우주도 전체가 세계공간 속에서 다른 우주도들과 일시적, 상대적 균형을 유지하면서 계속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로이 떠다니는 천체의 상대적 균형조차도 단지 상호규정적 운동에 의해서만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우주공간의 온도가 어디서나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극소부분을 제외하고는 우리 우주도의 무수한 태양의 열이 공간 속으로 사라지면서 세계공간의 온도를 단지 1백만분의 일도(°C)라도 높여 보려고 헛되이 노력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 엄청난 열량은 어떤 결과를 낳는가? 이 열량은 세계공간을 데워 보려는 시도 속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는가? 이 열량은 실제로는 사라졌고 단지 세계 공간이 10개 혹은 그 이상의 0을 앞에 달고 있는 아주 작은 온도만큼 데워졌다는 사실 속에서 이론적으로만 존재하고 있을 뿐인가? 이러한 가정은 운동의 불멸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세계상의 천체가 연속적으로 충돌함을 통해 모든 존재하는 역학적 운동이 열로 전환되어 이 열이 세계 공간에 방사됨으로써 결국 모든 "힘의 불멸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운동이 정지하게 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허용한다(이는 운동의 불멸성 대신에 힘의 불멸성이라는 말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가를 어느 정도 드러내 준다). 따라서 우리들은 세계 공간에 방사된 열이 어떤 방식을 통하여 - 이 방식을 증명해 내는 것은 앞으로 언젠가 자연연구의 과제가 될 것이다 -다른 운동형태로 전화할 수 있는, 그리하여 다시 집적되고 활동성을 되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사멸한 태양이 작열하는 증기로 재전환하는 데 놓여 있던 주요한 곤란이 해소되는 것이다. 부언하자면, 여러 세계가 영원한 시간 속에서 반복적으로 교체된다 는 것은 끝없는 공간 속에 무수한 세계들이 병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보충해 주고 있을 뿐이다 - 이 명제의 필연성은 반이론적인 양키두뇌의 소유자인 드레이퍼 같은 인물도 인정하지 않을 수없다. 물질의 운동은 영원한 순환과정이다. 그것은 지구의 년개념으로는 도저히 제대로 측정할 수 없는 장시간에 걸쳐서야 그 행정(行政)을 완결짓는 순환과정이며, 생명과 자기의식이 활동하는 공간이 협소하듯이 최고의 발전시간, 유기적 생명의 시간, 자신과 자연에 대한 의식을 갖는 존재자가 생존하는 시간 역시 짧게 제한되어 있는 순환과정이다.
{"끝없는 공간 속의 세계의 다양성은 끝없는 시간 속의 교체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The multiplicity of worlds in infinite space leads to the conception of a succession of worlds in infinite time") (드레이퍼, 『(유럽의 지적 발전사』, 제 2권, (325쪽)}
이 순환과정 속에서 물질의 모든 유한한 존재방식은 그 물질이 태양이든 성운이든, 개개의 동물 혹은 동물의 속(屬)이나 화학적 결합 혹은 분해이든 모두 똑같이 일시적일 뿐이며, 영원한 것은 단지 영원히 스스로 변화하고 운동하는 물질과 이러한 변화와 운동을 지배하는 법칙들뿐이다. 그러나 이 순환과정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아무리 자주 그리고 무자비하게 일어난다 하더라도, 수백만의 태양과 지구가 생성되고 사멸한다 하더라도, 한 태양계 내에 단지 하나의 혹성에서라도 유기적 생명을 위한 제조건이 마련되기까지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생물의 한 가운데로부터 사고하는 두뇌를 가진 동물이 나타나 단기간 동안 생존을 위한 제조건을 발견하고 그후 가차없이 절멸되기 이전에 이미 무수한 생물이 나타났다가 멸종해야 한다 하더라도 -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 즉 물질은 그 모든 변천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동일한 것으로 남을 것이며, 그 속성 가운데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지구상에서 그 최 상의 번영, 즉 사고하는 정신을 다시 절멸시킬 강철의 필연성이 동시에 이 사고하는 정신을 다른 어디에선가, 다른 언제인가 다시 생성시키고야 말 것임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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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비평)
1 (의견)
올려주시는 글 어렵지만 잘보고 있습니다. 본문 서두에서 통칭한 《고대인들》의 천재적인 자연과학적 직관이나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기록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대표적이거나 일례로... 그 핵심이 나타난 내용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했는지요 * 자연 과학적인 직관.. 그리고 * 가장 중요한 의미에 대한 내용이란 무엇일까요? 이는 곧 뒤의 내용과 이어진 독일에서 잘 됐다는 자연연구랑 연관되는 것 같은데요...
만약 《고대인들 》 지칭이 서양 그리스 쪽이라고만 한다면 이제는 적극적으로 제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거든요..
《자연과학적 직관이나 가장 중요한 의미》에 대한 내용도 함께 왜냐하면 태곳적 부터 이어내린 조선사상의 종점 /출발점 / 기화/궁극점/이 있으니까 비교 검토 내지 일치점을 좀 살펴 보아야 하니까요.
(답글) 엥겔스의 고대는 《그리스》시대의 자연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의견)
너른들님...
그리스 자연철학/의 근간/에서 말하는 지수화풍 4대 원소설이요.. 불교철학에서의 지수화풍 사대설과도 일치하죠.. 노장사상에는 그렇게 구체적으로 분류 분석한 글귀는 없잖아요~~?
부도지를 보셨는지 모르겠는데요 우주적 근원으로서 첫 스토리로 지수화풍이 언급돼 있고 그리고 이후에 순행을 통해 전지구적으로 천부의 이치를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전하게 되지요...자연과학적 인식을 공유하기로써 유호씨가 언급한 만물이 수數에서 나왔다는 명제도/천부지수/ 서양에서 피타고라스 학파가 있게되는/수비학/ 요인이라고 봅니다.. 결론은 기록상으로 보더라도 노자사상 보다도 훨 이전에요..
(답글) 그렇습니다. 문제는 어느 시점에 고대의 선조들의 정신을 새롭게, 창조적으로 계승해서 발전태로 내놓아 자기민족의 문명과 기술을 발전시키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민족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다는 것 아닐까요
(답글에 댓글)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현재 과학계에서도 우주의 근원시스템인 통일장의 모델을 어디에서 먼저 발견 정립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라고 합니다. 천지만물을 실은 우주는 거대한 반도체 ! 영원히 가동이 멈추지 않을 무한동력 시스템입니다.
2 (엥겔스 자연변증법 추가내용)
- 엥겔스의 사상해방과 인간정신의 발전속도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입장》
자연연구의 신학으로부터의 해방이 이루어진 것은 이때부터이다. 이때부터 제과학의 발전은 엄청난 속도로 전진하였으며, 그 출발점으로부터의 (시간적) 거리에 대해 제곱의 비율이라 할 만한 속도로 힘이 증가되었다.
이제야말로 유기물질의 최고의 산물인 인간 정신에는 무기물질과는 정반대의 운동법칙이 작용하고 있음이 전세계에 증명될 때가 도래하였던 것이다.
-엥겔스의 우주관.자연관
새로운 자연관은 이제 그 개요를 완성시켰다. 모든 굳어져 있던 것들이 해체되었고, 모든 고정되어 있던 것들이 흩어져 버렸으며, 영구히 존재하리라 믿었던 모든 특수한 것들이 일시적인 것으로 되었고,
《자연 전체는 영원한 흐름과 순환 속에서 운동하고 있는 것임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우리는 그리스 철학의 위대한 창시자들의 견해, 즉 자연 전체는 그 최소의 것으로부터 최대의 것까지, 모래알부터 태양까지, 원생생물부터 인간까지, 영원한 생성과 소멸, 끊임없는 흐름, 쉼없는 운동과 변화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견해로 다시되돌아왔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는 천재적인 직관의 결과였던 것이 우리들에게 확정적이며 명료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우주진화와 지구의 탄생으로부터 최종 인간의 탄생까지
《자연이 자기 스스로에 대한 의식에 도달하게 되는 척추동물 즉 인간》이 최후로 나타났던 것이다.
인간 또한 분화를 통해 생성된다. 단지 개체로서, 즉 단 하나의 난세포로부터 자연이 발생시킨 가장 복잡한 생물체로까지 분화되었을뿐만 아니라 - 아니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분화되어 왔다. 수천년 동안의 고투끝에 손이 발로부터 마침내 분화되었을 때, 즉 직립보행을 확고히 하게 되었을 때, 그때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분리되었으며, 분절음화된 언어와 그 이후로 인간과 동물 간의 틈을 넘어설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던 놀랄 만한 두뇌 발전의 기초가 놓여지게 된 것이다.
《손의 특화 이것은 도구를 의미》하며, 도구는 인간 특유의 활동,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조적 반작용, 즉 《생산을 의미한다.》
3 (개인비평)
우리민족의 사상.역사에서 단군시조사상과 동학사상을 건너뛰고 갈 수 없듯이 헤겔-맑스철학을 건너뛰고 (니체니 러셀이니 하이데거니 화이트헤드니 건너뛰고 가도 문제없는 사상들) 현대역사와 철학을 논하는 것들은 죄다 장사치들뿐입니다. 주체사상은 우리민족의 전통적인 사상과 헤겔-맑스사상을 모두 완벽하게 포섭한 현대유일무일의 사람중심의 철학사상입니다. 노자사상은 그 당시의 유학적 지배담론에 대한 비판담론으로서 유물론적 자연철학의 기초위에서 인간세의 도와 덕을 논한 사상입니다. 그러기에 끊임없이 해석되고 재해석될 수록 생활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4. (도올 비평)
어떤 사상체계든 《개념》에서 《현실》로 구체화할 수 있어야 그 사상체계의 생활력과 과학성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물론 사상도 발전하는 것이므로, 《현실》경험속에서 새롭게 등장하는(인식되는)거을 포섭해 나갈 개념형성과 체계확장도 필요합니다. 《추상적 개념》만 제시해서는 《신적직관:그 런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을 가진 사람만 수긍할 수 있습니다. 헤겔적 개념체계로는 《구체적 보편》을, 즉 사상개념(보편)이 현실의 구체성(개별)과 통일됨을 드러내 드러내 줄 수 있어야 사상의 현실성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도올은 천박하게도? 맑스가 틀렸다고 단언합니다. 이런 망발은 학자로서는 《근거》를 정확히 제시하고 비판해야 함에도 현대 사상가(너절한)의 주장을 근거로 댑니다. 그것도 두리뭉실... 《자본론》만 하더라도 지금 읽어보아도 하나도 틀린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제 수준에서는) 사회도 자연도 모두 자기운동하는 존재이고 끊잉없이 변화발전 합니다. 사상체계는 얼마나 그런 《운동체》를 정력학 관계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동력학 관계를 그 내적동력 요소나 내적 모순관계에 의해 《개념》과 《범주》의 연관체계로 구성해 내느냐 하는 것인데, 그 학체계를 성립시킬 당시의 분석자료와 내적 발전동력 요소들이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변화.변형.변질.개량.수정되어 가는 운동과정에 있기에 사상적용에서는 《현재적 시점》에서 변경된 요소들이 그 당시와 비교해서 어떻게 운동해 왔는지 그 역사과정을 다시 분석해서 학체계.사상체계를 보강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5 맑스주의 사적 유물론의 개념체계인 《생산력》과《생산관계》의 내적모순에 의한 역사적운동은 《범역사적 필연성》을 가진 운동법칙이지만, "생산력이 발전하면 생산관계가 저절로 혁명적으로 변화하는게 아니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반대로 생산력이 낙후된 상태이면 생산관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건 좌편향이 아닌가?" 이러한 의문과 논쟁이 맑스 이후로 이론적으로, 실천과정에서 끊임 없이 제기되었고, 실제로 그 문졔로 좌우편향이 극심하게 발생되었습니다. 우리 혀명 역사에서는 이런 철학적 문졔를, 사람중심으로 재구성해서(인류역사를 사람 중심으로 재해석함) 《생산력이란 사람이 자연을 개조해 나가는 능력의 도달수준》이고, 《생산관계란 인간이 사회관계속의 지배관계》이므로, 생산력의 발전이란 인간의 자연개조를, 생산관계의 문제는 인간의 사회개조의 문체를 그 본질로 하는 것이므로, 생산력, 생산관계의 개조도 결국 인민대중이 주체.담지자라는 주체사상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민대중에 의거해야 생산력도 발전하는 것이고, 생산관계의 개조도 인민대중이 주체적 자각과 자기운동으로 벌여나갈 수 있도록 올바른 지도와 조직화를 벌여 나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6 <무위지치>에 관하여
《무위지치》란 기실 《시작이 반이다!》라는 격언과 궤를 같이 합니다. 《올바른 방항과 방법론 제시》로 《지도라는 무위의 위》가 《시》가 되는 것이고, 대중은 사상조직적으로 지도른 받아 안아서 행위와 과정과 결과(만물지 모)를 낳게 되는 것이고, 결국 자주적 주체의 자기힘으로 해 낸 것이기에 그 공은 주체의 성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무위를 무행, 무지도. 방임 으로 해석하는 것은 모두 문자 자구해석에 매달린 것입니다. 《무위위지치》는 지배와 예속이 없는 동지적 관계 사이에서만 가능한 사회주의 정치의 《지도와 대중의 결합방식.정치방식》입니다.
반면, 자기 잘난 체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학자(번역학자)는 도저히 조선의 정치가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전개되는지, 조직 하나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 어떤 문제가 벌어지는지, 운동이란 무엇인지, 운동과제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어떻게 벌여나가야 하는지, 단한번도 《실천》에 자신을 투여해 본 적이 없으니 온통 머리에는 잡동사니 개념들로만 가득차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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