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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감영>
2020년 새로 복원한 건물이지만 제주도까지 관할하던 전라관찰사의 위상을 찾는 거 같아 반갑다. 여기저기 감영이 완전히 새로 복원되거나 훼손된 부분의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구의 경상감영, 원주의 강원감영은 주요 건물이 남아 있어 원상회복이 용이하지만, 전주는 모두 훼손되어 완전 복원을 해야 했다. 어렸을 때는 전북도청사 안에 감영이 숨어 있었는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복원해주신 모든 손들에 감사를 표한다.
1.방문지 대강
명칭 : 전라감영
위치 :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로 55
방문일 : 2025.2.11./12.
입장료 : 무료
2. 둘러보기
일제는 36년동안 참으로 많은 일?을 했다. 경기전과 전라감영을 훼손 축소한 것도 그중 하나다. 감영부지는 1937년에 12,000평에서 5,100평으로 축소되었다. 1921년 감영지에는 도청이 신축되었다. 복원하는 데 100년이 걸린 것이다.
정신이 훼손되지 않았으니 물리적 복원은 가능하다. 물리적 회복에는 강인한 각성도 따라온다. 훼손 이전보다 더 강력해진 공동체가 되어 아름다운 정신을 어려운 나라들과 나누고 있다. 그 사이 원망할 대상은 너무 나약해져 원망도 증오도 재미없게 되었다. 역사 선후역전의 순리를 체감한다.
전라감영은 한번도 이전되지 않았다. 경상감영이 여러 곳으로 이전하여 최종적으로 대구에 안착하였고, 충청감영이 충주에서 공주로, 경기감영이 수원에서 서울로 이전한 것과 견주면 전주가 전라도의 중심으로서 흔들림없이 자리했음이 확인된다. 원주감영도 이전하지 않았지만, 전주와 원주는 도시의 위상이 다르다.
경상북도 권역에는 상주와 대구에 두 개의 경상감영이 있다. 상주는 조선조에 대구와 안동으로 옮겨가며 사라진 것을 2021년에 복원하여 '태평성대 경상감영공원'이라 하였다. '경상도'의 이름을 만든 도시이니 위상에 걸맞는 거 같기도 한다. 대구는 중요건물이 남아 있어 위상을 그대로 유지했던 곳이다. 1970년 경상감영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의 휴식처를 만들었으니, 전라감영의 복원에 시사하는 것이 많은 곳이다.(본카페 참조)
대구 감영은 실제로 가보면 웅장한 전통의 위상은 그대로이면서 많은 시민들이 방문하는 휴식공간이어서 매우 여유로운 느낌을 준다. 전통의 권위와 풍모에 현대 시민들의 여유롭고 편안한 일상이 조화를 이루어 있어 내 안에 자리한 역사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여주 강원감영은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 당시의 건물이 원래의 위치에 잘 남아 있는 곳으로 감영의 원래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보인다. 조선조에도 감영의 이전이 이루어진 바가 없고, 경상도나 전라도처럼 위세가 강한 곳이 아니어서 비교적 외부 영향을 덜 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덕분에 옛모습을 가장 장 볼 수 있는 곳이 되었으니 이 또한 전라 감영 복원에 힘이 될 것이다.
2-1. 전라감영 소개
전라감영은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할하는 지방통치관서로 지금의 도청에 해당하며 조선 초부터 1896년까지 약 500년 동안 지금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제주도를 관할하던 감사(관찰사)가 근무하던 곳이다. 조선시대의 전라감영은 정문인 포정문, 감사의 집무실인 선화당, 주거공간인 연신당과 감사 가족의 처소인 내아, 누각인 관풍각 등의 건물 등 모두 40여 채가 있었다. 189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라감영은 전라북도 도청의 행정업무 공간으로 사용하였으나 근대화 과정에서 대부분 소실되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선화당도 1951년에 폭발 사고로 불타버렸다.
2015년 옛 도청 건물을 철거하고, 2017년부터 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선화당, 연신당, 내아, 관풍각 등을 복원하고 2020년 10월에 1단계 사업을 완료하고 문을 열었다. 개방된 전라감영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아 전주대사습놀이 등의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연신당 뒤에는 전라감영의 유일한 흔적이라 할 수 있는 수명이 200년이 넘는 보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선화당에서는 전라감영의 옛 모습을 디지털 영상으로 볼 수 있으며 문화해설사와 함께하는 정기해설투어는 하루 세 번 선화당과 관풍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문화해설을 듣고 싶은 방문객은 원하는 시간에 전라감영 정문으로 모이면 된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전라감영은 조선시대 호남과 제주 등 56개 군·현을 관할하던 전라도 최고 지방통치 행정기구로 896년까지 500년간 자리했다. 하지만, 소실과 중건을 반복하다 일제강점기 때 신식건물로 바뀌었고 1951년 6·25전쟁 당시 화약고 폭발로 선화당 등이 불타 사라졌다. 전북도와 전주시는 2017년 전라도 정도 1000년을 기념해 104억원을 들여 복원사업을 추진해 2020년 완공했다.
경기감영과 충청감영은 함께 다루지 못한다. 충청감영은 공주에 최근 복원되어 '충청감영지'라 불린다.
전라감영은 8483㎡ 부지에 전라관찰사 집무실이자 전핵심 건물인 선화당을 비롯해 내아(관찰사 가족 거주 공간), 민정과 풍속을 살피던 누각인 관풍각, 관찰사 휴식처인 연신당, 관청 안채인 내아, 비장 사무 지원을 위한 보조공간인 비장청 등 7채로 복원됐다.
3. 다른 지역 감영 모습
경상북도 상주도 2021년에 경상감영을 복원하였다. 대구로 경상감영이 이전한 뒤 완전히 사라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 둘 다 '경상감영공원'이고,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된다. 경북권에는 두 개의 감영이 있다. 상주는 완전 복원이고 대구는 대부분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유적이다.
강원감영은 원주에 있다. 시청 등이 생기면서 일부 건물이 모습을 잃었지만, 대부분 잘 남아 있어 소중한 역사 자료가 되고 있다. 전라감영은 완전히 본모습이 훼손되었지만, 원주와 대구감영은 일부가 잘 보존되어 있다. 전주는 조선왕조의 본향이어서 경기전과 함께 일제에 의한 의도적 훼손이 더 심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3-1. 대구감영 : 경상감영공원, '대구 경상감영지'
대구 중앙로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경상감영공원은 조선 선조 때 경상감영이 있던 곳으로 그 터를 보전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1910년부터 1965년까지 이곳에 경상북도 청사가 있었고 도청이 옮겨간 후 1070년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경상감영은 조선시대 경상도의 행정과 군사, 재판 등을 관할하던 행정조직이었다. 옛 경상감영 내에 선화당, 응향당, 제승당, 응수당, 징청각 등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지만, 현재 경상감영공원 내에는 경상도 관찰사 집무실인 선화당(1972년 12월 26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과 살림채 건물인 징청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만이 남아 있다. 선화당은 현재 관아 건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경상감영의 누각 관풍루(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는 1906년 달성토성으로 옮겨졌으며, 관찰사와 대구판관의 선정을 기리는 총 29기의 선정비가 이곳 경상감영공원에 남아 있다. 경상감영공원은 선화당과 징청각이 푸른 숲과 어우러진 도심 속 공원으로 옛 건물의 멋을 살린 정문, 분수, 돌담, 산책로와 조국통일을 기원하는 [통일의 종] 등이 조성되어 있다. 대구 도심 중앙에 위치하여 중앙공원으로 불리어지기도 하였다.
주소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 (포정동)
(우:41918)
홈페이지 http://tour.daegu.go.kr/index.do
*경상감영은 경주시, 상주시, 성주군, 대구 달성군, 안동시 등지를 옮겨 다니다가 선조 시기 대구로 최종 이전하였다. 당연히 이때는 광역시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을 때다. 그러다 고종 시기 경상도가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나뉘며 경상감영은 경북만 관할하게 됐고,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경상북도청이 되었다.
8.15 광복 후에도 경북도청으로 계속 쓰이다가, 6.25 전쟁 때 대구가 잠시 임시수도였던 시기에는 경상감영 전체를 통째로 정부청사로 쓰기도 했다. 이후 경북도청은 1966년 북구 산격동의 현재 대구광역시청 산격청사 건물로 이전했고, 경상감영 자리는 중앙공원이 되었다가[1] 1997년 문희갑 대구광역시장에 의해 옛 경상감영 건물을 중심으로 한 공원 재조성으로 정비되고 경상감영공원으로 개칭됐다. 2017년 4월 26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538호 '대구 경상감영지'로 지정되었다.
공원 내 주요 시설로는 연못, 선화당(보물[2]), 징청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등이 있다. 이 중 선화당에는 국보 제330호로 지정된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가 있었으며, 현재는 그 터에 레플리카가 전시되어 있다. 이에 추가적으로 옛 대구경북지방병무청 부지(남쪽의 우체국 옆) 등을 매입하여 과거 경상감영 일대를 완전히 복원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해당 위치에 있다 1920년 달성공원으로 치워진 관풍루를 다시 제자리로 옮겨오고, 바로 옆에 있던 중삼문을 복원할 예정이다.# 우체국은 전망을 가리므로 옆 주차장에 신축 이전할 계획이다. (나무위키 전재)
3-2. 상주 경상감영 : '태평성대 경상감영공원'
상주시(시장 강영석)가 역사와 전통문화 체험은 물론, 지역관광 활성화를 위해 지난 2013년 첫 삽을 뜬‘조선 경상감영 재현공사’를 완료하고 5월 6일 문을 열었다.
상주시 복룡동 일원(부지면적 65,114㎡)에 조성된 경상감영공원이 2013년 첫 삽을 뜬 지 8년 만에 고풍스러운 옛 모습을 드러냈다. 총사업비로 188억 원이 투자됐다.
경상감영은 관찰사(현재 도지사)가 집무하던 관청으로, 왕산 인근에 있었다. 상주시는 당시 경상감영 자리가 현재 도심이어서 상주의 관문인 복룡동에 시설을 재현했다.
경상감영공원은 상산관 외 17개 동의 전통 한옥과 광장 및 녹지로 구성되어 있다. 주 건물인 청유당은 조선시대 관찰사가 집무하던 곳이며, 상산관은 임금에 대해 예를 행하던 장소이자 중앙에서 온 관리의 숙소로 사용됐다. 관아를 지키던 포졸들이 근무하던 건물인 사령청도 있다.
상주시는 고증을 거쳐 경상감영을 건립했으며, 상주가 경상도의 중심이었다는 역사적 의미를 알리면서 역사문화교육공원, 관광자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상주시, 경상감영공원 고풍스러운 옛 모습 드러내다!, (데일리대구경북뉴스=황지현 기자, 2021년05월06일)
3-3. 원주 강원감영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의 26개 부, 목, 군, 현을 관할하던 강원도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조선 태조 4년(1395)에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실시됨에 따라 감영이 폐지될 때까지 500년 동안 강원도의 정청(政廳) 업무를 수행했던 곳이다.
감영의 규모는 선화당(정청)을 비롯하여 재은당(내아), 포정루(정문), 4대문, 객사 및 부속건물 등 31동 건물이 있었으나 원주시 청사, 재향군인회관 등이 생기면서 그 모습을 잃어 버려 현재는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의 건물만이 남아 있다. 2000년 발굴조사 결과 중삼문터, 내삼문터, 공방고, 책방터로 추정되는 건물터와 포정루에서 중삼문터와 내삼문터를 거쳐 선화당으로 이어지는 보도, 선화당을 중심으로 하여 외곽으로 둘러쳐진 담장터, 행각터 등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선화당 뒤편에 있는 연못터인 방지의 호안석축 등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잘 남아 있다.
강원감영지는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 당시의 건물이 원래의 위치에 잘 남아 있고, 중삼문, 내삼문, 공방고터, 책방고, 보도, 담장, 행각 등이 있던 흔적과 같은 관련 유구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또한 강원감영 이전의 원주목 관아의 건물터 등이 그 아래층에 그대로 잘 남아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관아 건물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유적이다. (강원감영 홈피)
선화당. 전라감영 내삼문을 지나면 정면에 선화당이 있다. 선화당은 모든 감영에 다 있는 중심 건물이다. 선화당은 어디나 내삼문을 지나면 바로 만나는 중심에 위치하는 건물로 행정 처리의 중심이다. 관찰사가 도정을 수행하던 곳이다.
: "선화당(宣化堂)은 조선시대 각 도(道)에 설치되었던, 오늘날의 도청에 대응하는 감영(監營)의 중심 건물이다. 이름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승류선화(承流宣化, 임금의 교화를 받들어 백성에게 덕화를 편다)에서 나온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각 도의 행정, 사법, 군사를 관장하는 관찰사가 공무를 보는 건물이므로, 감영의 제일 중심에 위치하고 감영을 구성하는 여러 건물들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로 지어졌다. 감영에서 가장 큰 건물은 선화당이지만, 감영 소재지에서 가장 큰 건물은 보통 객사(客舍)이다. 조선왕조의 광역 행정구역이 8도 체제로 되어 있었으므로 선화당 건물도 전국에 8채가 있었다. 1896년에 13도 체제가 실시되면서 선화당도 13개로 늘어나고 일부 감영 소재지에 변동이 있었다.
지방 관아에서 선화당의 역할을 하는 건물, 즉 지방관이 공무를 보는 중심 건물을 동헌(東軒)이라 하며, 지방 군영에서는 진헌(鎭軒)이라고 한다. 진헌은 때로 동헌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나무위키 전재)
관풍각. 관찰사가 민정과 풍속을 살피던 누각
영조 편액의 해석에 대해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백성이 오로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건해야 나라가 안녕하다". 이렇게 해야 앞뒤가 더 유연하게 연결되는 듯하다.
담장 너머로 본 관풍각과 선정비군
객사
#전주가볼만한곳 #전라감영 #전주위상 #선화당 #경상감영 #감영비교
첫댓글 500년 동안 한 자리에 있던 감영이라 위풍이 당당합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자리지만 새로 지은 건물이라 새집 증후군?이 좀 있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