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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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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최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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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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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시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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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시가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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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끝이 삭도같은 섣달의 에이는 어둠이, 잿빛으로 내려앉는 겨울 저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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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광을 베어 내며, 메마른 산과 산 능선 아래 움츠린 골짜기로 후벼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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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벗은살이 버슬버슬 얼어 터지는 등성이와 소스라쳐 검은 뼈대를 드러낸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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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허리를 예리한 날로 후려쳐 날카롭게 가를 때, 비명도 없이 저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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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봉은 먹줄로 금이 간 몸 덩어리를 오직 묵묵히 반공에 내맡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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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피는 검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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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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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의 서슬이 회색으로 질린 허공에서 바람 소리를 일으키며 노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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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패기에 거꾸로 꽂히자, 그 칼 꽂힌 자리에서는 먹주머니 터진 듯 시커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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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토혈처럼 번져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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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어둠이고, 어둠이 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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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이 칼 맞은 자리마다 언 산의 생살이 무참히 벌어지고, 어둠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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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바구니 속으로 소금같이 저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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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원정을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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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으로 날리며 온몸에 먹금을 긋는 바람의 칼날 어디에도, 이른 봄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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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는 풀잎을 어루어 쓰다듬던 훈기는 묻어 있지 않았고, 산 또한, 하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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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솟구쳐 검푸르게 두른 소나무 둥치 아래 자잘히 피었다 지던 풀꽃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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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리, 오보록한 송이버섯들을 다 벗어내 버린 맨살로, 속수무책 내리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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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의 칼날을 받으며 잠자코 캄캄하게 어두워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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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중천에 놋뙤약볕 불무같이 이글거릴 때, 달구어진 땅 위로 솟아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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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금 서늘한 약수를 마시게 해 주던 호성암의 작은 샘,헉헉지열을 토해 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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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숨을 쾌연하게 씻어 내려 흐르던 계곡의 물살이며, 그 물살이 굽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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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다가 베폭같이 쏟아지던 폭포도 지금은 얼어붙어, 진군하는 이 어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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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거나 쓸어 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제 살속 깊이 동상으로 허옇게 박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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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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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새암과 여름날의 물살이 없었더라면 이 한겨울 삼동의 핏줄에 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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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박히는 일 또한 없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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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치는 발날에 죽지를 맞은 노적봉은 상처로 먹물 드는 어둠을 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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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고 차라리 웅크리어 보듬으면서 멍든 바람 소리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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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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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선 어둠은 가차없이 그 울음을 잘라 버리고,그 울음을 잘라 버리고,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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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은 먹피로 무릎에 떨어져 흥건하니, 너적봉의 어둠은 그만큼 더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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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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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서슬은 하는도 잿빛으로 질리게 하는데,발도 없는 노적봉 몸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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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야 어찌 당해 낼 수 있으리, 그저 다만 더 이상 찌를 곳도, 자를 곳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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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곳도 없을 만큼 온몸이 어듬에 난자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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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는 먹장같이 무겁게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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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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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노적봉은 아둠을 피하지도,울지도 않고,오직 묵적으로 캄캄하게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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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이르러, 아직도 이 산을 겨누던 어둠은,어느결에 저보다 더 어두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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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봉에 부딪쳐 그만 곤두박질의 허리, 밤의 기둥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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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중의 밤, 자시치고, 산은 제품에 넘어진 어둠을 내치지않았다.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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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 안았다. 그리고 빙렬로 벌어진 칼자국마다 저미어 스며드는 어둠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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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은 몸속으로 빨아들여 그 살의 갈라진 상처를 메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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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둠은 칼날이 아니라 검은 아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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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밤내 어둠에 베인 자리를 더 큰 어둠이 되어 어둠으로 아물리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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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봉은, 이윽고 어둠의 어미처럼, 저를 치던 어둠을 크게 품어안고 의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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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우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은, 처음에는 검푸르게 번뜩이는날을 휘둘러 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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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었지만, 제가 벤 그 자리로 소리 없이 흡입되어 안겨 버렸다.그래서 어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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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봉을 찌르고 벨수록 노적봉은 그 어둠보다 더 크고 깊어지니, 검은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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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마루 같은 이 산 앞에 어둠은 드디어 칼을 놓는다. 귀순하는 것이다. 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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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유령처럼 허공에 떠돌던 어둠조차 자력에 이끌린 듯 이 산으로 딸려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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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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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차 오르고 쌓인 어둠이 목까지 밀리어, 더는 어찌할 수 없는 허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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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하게 곧추세우고 있던 노적봉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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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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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운 한숨에,섣달 그믐밤의 한천을 낮게 가리운 구름이 옆으로 밀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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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막 뒤에 숨아 있던 별빛 몇 개가 희미하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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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 대로 어두워진 어둠이 절정에 이르러 허리가 휘이며 자시가 기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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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는 시간의 자리를 바꾸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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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시란, 날과 날의 경계에 선 어둠의 극이지만, 또 어젯날은 가고 새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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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 온 교차 영송의 시간이기도 한것이니라. 기운이 바뀌는 것이지.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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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하룻날의 시간에만 있는 일이겠느냐. 한 달에도 있고, 일년에도 있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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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한 달을 두고 본다면 초하루 그믐이 그 시간이고, 일년을 두고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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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가 바로 그 시간이다. 왜냐, 그믐밤과 초하루 사이의 자시에는 하늘의 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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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서로 딱 합허게 되니, 합삭아니냐. 해는 위에 떠 있고 달은 밑에 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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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광선에 눌려 태음이 전혀 빛을 못나타내는 것이 바로 이때다.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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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없지. 빛을 가두어 버리니까. 그래서 한 달 중에 가장 큰 어둠이 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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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하고 극성한 시간이 이때인 게다. 허나 이 시간을 고비로 정점에 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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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기울기 시작하고 달빛은 싸래기만큼씩 길어 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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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로부터 어제의 달은 지나가고 새달이 되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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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치를 일년 가운데 찾아본다면 동지 절서라. 동지라면 너도 아다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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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중에 밤이, 어둠이 제일 긴 날 아니냐. 태양은 땅에서 가장 멀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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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천이고, 이 엄동설한 찬 기운에 삼라만상이 꽁꽁 얼어붙어 녹을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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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데, 거기다 밤은 질기게 길어, 천지의 기운이 자시.합삭에 이른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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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다. 허나, 이 동지에, 지나간 기운이 다하고 새 기운이 들어오는, 금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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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년의 교차가 이루어지니, 동짓날을 지나면 새해로 보는 까닭이 여기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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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야. 묵은 어둠이 제 양을 다하고 조금씩 스러져 물러가기 시작하는 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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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다. 바로 이 동지를 고비로 묵은 기운, 추운 기운, 어두운 기운이 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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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면서 대신 새 기운, 다순 기운, 밝은 기운이 싹을 틔우거든.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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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 지나 오는 섣달은 자월이라 하는 게다. 자.축.인.묘의 자. 십이지의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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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일련의 끝달에 붙여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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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시가 지났다고 한순간에 해가 뜨지는 않으며, 그믐이 지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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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하루부터 달이 둥글어지는 것은 아니듯이, 동지가 지난 다음에도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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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밤은 낮보다 길지만, 이미 어둠의 기운은 팽창하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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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가고, 새로 태동하는 광명의 기운은 아직 비록 발아에 불과할지라도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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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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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가지 않아 수가 차면 이윽고 가장 길었던 어둠을 가장 짧게 만드는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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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게 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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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을 보자면, 어둠을 지그시 참을 줄도 알아야 하고, 다가오는 광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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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기다릴 줄은 모르면서 오직 참기만 한다면 터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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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것이요, 또 참기는 하지만 기다리는 것이 없다면 그 합벽을 하게 암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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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을 어찌 이길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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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천리가 이럴진데, 한 나라의 운명이나 사람의 일생도 이에서 다를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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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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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천자문 뒤풀이에도 자시생천 하늘 천, 축시생지 따 지, 인기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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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하지 않으냐. 자시에는 태양이 땅밑에 드니 만물이 어두워 오직 하늘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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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행하고, 축시에는 동쪽으로 당겨 가니 동방이 벌어져 땅이 제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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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고, 인시에는 더 밝은 기운이 터올라 날이 새는지라, 날 새면 자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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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므로, 인시부터는 사람의 시간이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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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어둠이 물러가고 사람이 세상을 주재하는 그 인시에 이르도록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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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어둠의 새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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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사람도 그 동안만은 세상을 어둠한테 내주고 죽은 둣이 자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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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순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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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와는 반대로 하루에 태양이 가장 밝아 온 천지에 어두운 곳이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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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쨍한 오시가 있고, 한 달에는 보름이 있어 어디 하나 이지러진 데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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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게 큰 빛을 온전히 발하는 망워이 있고, 한해에는 일년 중에 낮이 제일 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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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가 있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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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것들이 시간의 자리를 바꾸는 원리는 자시.초하루.동지나 조금도 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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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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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엄연한 질서 속에서, 안 보이는 천지의 내부 기운은 이미 동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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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온.명암.신구를 서로 교처했지마는, 보이는 현실 생활 습속으로는 섣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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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날과 정원 초하루에 금년과 명년의 자리를 바꾸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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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자시가 지났으니 젓달 그믐 어제가 아니요 오늘이며, 작년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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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갑신년 머리에 앉은 이기태는 전에 없이 큰사랑으로 부른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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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에게 무거운 입을 열어 한 마디씩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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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어찌 천지 운행에만 한하는 말이겠느냐. 한 나라의 흥망과 성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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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고, 한 가문의 흥왕.쇠미도 이와 똑같은 것이며, 한 인간의 일생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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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원리는 적용되는 것이다. 어두운 기운이든 밝은 기운이든 새 기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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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되리라, 하는 징조로 봐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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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아들 강모가 집안에 있었더라면 그를 앉혀 놓고 해야 할 말들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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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가 가 있는 곳을 알 수 없는 지금, 고적한 슬하에 대를 이을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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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재는 아직 무릎 아래 유아인지라, 그는 효원을 마주하고 이처럼 이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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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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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부인 생존시에는, 해마다 섣달 그믐날 저녁이면 한 해를 무사히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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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식구가 모여서 부인에게 '묵은 새배'를 드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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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무탈하니 다행이라." 하는 말씀으로 일년 지나온 굽이를 싸다듬어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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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앞에 둘러앉은 식구들은, 때마침 깎아 들여오는 흰 무를 한 입씩 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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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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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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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이 시리게 무를 먹고 난 이기태는 크게 소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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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태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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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습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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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 인제 새해에는 모든 일이 그저 순조롭고 무사 태평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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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부인은 만면에 미소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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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른 식구들도 따라서 속으로 '무사 태평'이라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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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쌍의 하루하루는 좋은 일보다 궂은일이 더 많아, 그날위에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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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삼백예순다섯 날은, 켜켜이 근심으로 자욱하고 검댕이져서, 이제 돌아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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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을음 덩클덩클한 굴뚝 속 같은 한 해. 그러나 그만만 해도 견딜 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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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었다. 때로는 여름날에 우박 치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고, 북풍 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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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에 꾀벗을 일 생기는가 하면, 느닷없이 천길 낭떠러지에 까마득히 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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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기도 하고, 폭우 속에 악산을 헤매어 기어 넘기도 한다. 그러면서 오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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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신 인간이 겼는 수모와 오욕과 서러움, 억울함, 원통함, 그리고 가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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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게 얹힌 눈물과, 어디다 대고 말 한 마디 못한 채 저 혼자 시커멓게 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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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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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들이 가는 해와 더불어 무 먹은 뱃속같이 속 시원하게 소화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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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게 내려가 버리라고, 사람들은 섣달 그믐난 저녁이면 둘러앉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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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를 베어 먹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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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모든 실과들이 울긋불긋 요사스럽게 눈을 현혹시키는 색이 있거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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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모조리 깍아 낸다 해도 그 안에는 깡치가 뭉쳐 도사리고 있거나,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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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치보다 더 단단하여 잘못하면 이빨 부러지게 하는 씨가 있기 쉬웠다. 복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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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난 대추 씨를 보라. 또 그렇지는 않다 하더라도 그 무슨 형태로든지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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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애 씨는 박혀 있게 마련이어서 그냥 먹으면 목에 걸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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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만은 껍질도 희고 속도 희어 안팎이 모두 티없이 끼끗한데다, 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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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고, 먹을 때 걸리거나 뱉어야 할 것이 하나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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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새해의 나날이 그와 같이 밝고 환하여, 하는 일마다 순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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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지기를 비는 소박한 마음이 그런 시속으로 전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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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도, 고슴도티 가시 돋힌 밤송이를 손가락 찔리며 까서, 그 속의 알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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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내, 질긴 껍질을 칼로 벗겨 내고, 또 그 안에 떫디 떫게 뒤덮인 비늘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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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겨 내야 하는 밤을 먹으면서 "무사 태평." 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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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망치나 방망이로 그껍질을 두드려 깨야 하는 호두을 까 먹으며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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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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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그것을 으깨지 않고 제대로 껍질을 까기도 어렵거니와 겨우 그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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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손 치더라도 그 다음에 드러나는 호두 속으 구절양장, 올록볼록, 오밀조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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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복잡하기 이를 대 없는 그 속을 들여다보고는 차마'무사 태평'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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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나오지 않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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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에 비기면 무는 무미한 듯 늠연한 생김새가 군자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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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 한 토막으로 그처럼 궂은 날은 씻어 버리거 밝은 날은 부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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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면 오죽이나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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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채가 아직 나이 어려 대여섯 살 먹었을 때는, 청암부인 혼자 덩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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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양자 기태의 묵은 세배를 받고, 두 모자 마주앉아 무를 깎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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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십여 년이 지나 그가 성혼하였을 때는 새각시 율촌댁과 나란해 부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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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앞에 앉았고, 해가 지나 딸 강련이와 아들 강모가 자라면사부터는 설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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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꽃봉오리처럼 화사해졌다. 딸은 남의 식그라, 부실한 대로 나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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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으로 가고, 강모는 대실에 장가들어 효원을 아내로 데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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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제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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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부인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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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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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느꺼은 심정을 가누지 못하고 소리 없이 낙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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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방안이 가득 다 내 식구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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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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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부인은 아들 내외, 손자 내외. 그리고 이제 곧 날이 풀리고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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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어염믄 증손자를, 마치 감고 싸서 장롱 속에 갚아 간수해둔 보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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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모르게 꺼내 보듯이 하나하나 눈여기어 이윽히 바라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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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이기채는 사랑으로 나와 뚜껑이 단정하게 덮인 종이 상자 빗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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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냈다. 그것은 활짝 펼치면 거의 장판지 한 장 정도의 넓이가 되지만, 접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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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세로가 한 자씩이나 됨직한 상자 모양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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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여러 겹 덧발라 부해서 누렇게 기름을 먹인 이 빗접은, 중심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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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한 개을 세운 높이로 네무진 테투리를 두르고, 그 내모를 또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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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으로 나누어, 작은 칸 속에는 각기 빗이며 동곳.살쩍밀이 같을 것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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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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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머리를 빗을 때는 이 빗접을 넓게 펼치어 쓰고, 다 빗은 다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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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접어 간편하게 밀어 놓는 것인데, 혹 어디 출행ㅎㄹ 일이 있을때는 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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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닐 수 있도록 다회를 친 매듭끈까지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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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접의 뚜껑에는 한복판에 색지를 접어 가위로 오린 녹색 꽃이 탐그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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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하게 피어 있고, 의 둘레 네 귀퉁이에는 노랑.주황.보라.남색의 매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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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들이 솜씨 있게 오려 붙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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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체는 결코 아무 데서나 머리를 빗는 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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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이른 새벽 동이 트기 전데 집안의 누구보다 맨 먼저 일찍 일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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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온 집안이 카랑카랑 울리게 기침 소리를 내면, 아직도 머뭇머뭇 검푸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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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뒤안이나 헛간 모퉁이에 고여 있던 어둠은 깜짝 놀라 무색해지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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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 소리를 들은 방방에서는 황급이 인기척이 부시럭부시럭 들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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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들이가 놋대야를 받쳐들고 큰사랑 마당으로 달음질치면, 이기채는 어느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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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방에 나와 대추 씨 같이 단단해 보이는 체수를 꼿꼿이 새우고 뒷짐을 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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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가져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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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낯을 씩고는 방으로 들어와 이 빗접을 펼쳐 놓고 넓은 종이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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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앉었다. 그리고는 행여라도 머리카락이 방바닥에 흩어지니 않도록 조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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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껏 머리를 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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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무슨 의례를 행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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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상투를 좆아 동곳을 꽂은 다음에는 한 올이라도 떨어진 머리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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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면 반드시 주워서, 그것만 모아 싸두는 종이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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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하여 비록 저절로 빠진 쓸모없는 터럭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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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지라도 함부로 하지 않고, 정월 초하룻날부터 섣달 그믐날까지 소중히 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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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수아였다가, 비로소 그믐밤에 태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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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채가 해마다 그 머리처럭 뭉치를 들고 사랑 마당으로 나가 공손히 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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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그는 생가의 부모보다 청암부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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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그에게 몸을 주신 이는 낳은 부모이련만, 웬일로 머리터럭 태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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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린내 자욱한 섣달 그믐날 저녁이면, 연기 속에 망연히 서서 그는 길러 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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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종부, 청암부인을 더욱 절실하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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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더쩌다가, 지차의 자손으로 생긴 사람이 한 가문의 종손으로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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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험난한 시절에. 나라는 망하고, 가문은 창씨를 하여 조상의 성을 무참히
<br>
빼앗긴 채 잃어버린 오늘. 나에게 신ㅊ발부을 주신 생부.생모가 누구이시든
<br>
그것은 한낱 사사로운 인연이요, 다만 마음에 둘 따름이지만, 강보에 싸인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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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슬하를 떠나 이제 백발에 이르러, 나에게 터럭 주신 이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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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는 지금의 어머니이시라. 그이는 종가의 아들이 종손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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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키우섰으니, 나는 한부모의 자식이 아니라 매안 이문의 자식인즉.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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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해야 내 도리와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 다만 천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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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손을 면하여 강모를 두었고, 그놈 또한 조상의 음덕으로 철재 하나 두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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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 가지고 일을 다 했노라 할 수 있는가. 어쩌든지 그것들을, 이 집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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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손으로서 가문의 지붕이 되고 중추가 되도록 실하게 길러야 할 터인데.강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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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 저렇게 유약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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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글뭉글 밀려오며 페 속으로 자욱이 끼쳐드는, 터럭 타는 누린 연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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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채의 가슴을 채우면서 미어지게 하는데, 그 연기 복판에 강모의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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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게 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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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강모는 어이없게도 이기채에게는 단 한 마디 언급도 없이 홀연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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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 버리고 말았다. 비단 이기채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할머니 청암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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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율촌댁, 아내 효원에게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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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청암부인은 뒤미처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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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만주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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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적떼 출몰하는 허허벌판에 누구를 보고, 무엇을 하러 갔단 말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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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채는 기색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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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의 음악학교를 가겠다 했던 그가 만주로 갔다는 것이 도무지 엉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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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감나지 않아, 처음에는 누구 남의 말을 잘못 듣고 전한 것이려니, 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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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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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 사촌형인 강태와 함께 간 것이 분명해진 것은, 기표가 사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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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놓아 탐지해 온 말을 들은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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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주 혼자 간 것보다는 종형제 나란히 갔으니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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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에서는 더러 위로의 말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빈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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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떤 종손인가. 어떻게 이어진 종손이라고 이렇게 어이없이 무엇을
<br>
보자고,조상의 사당을 비우고 되놈의 벌판으로 가 버릴 수 잇을까.
<br>
그러다 돌아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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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그믐날 밤에는 장 등을 하지만, 꼭 그래서만이 아닌 등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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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지도 모르는 강모를 기다리듯이, 대문간과 중문간, 사랑 마당, 뒤안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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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와 행랑채, 외양간이며 헛간, 곳곳에서 붉은 주황으로 꽃불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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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었지만. 강모의 발소리는 아직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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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이맘 때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야광귀 이야기가 음식 장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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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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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 귀신은 섣달 그믐날 밤에 낼온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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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심이가 턱을 추켜들고 불을 때는 안서방네한테 물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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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이러어케 하늘에서 낼와 갖꼬 살째기 사람 사는 집이로 들으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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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방에 널려 있는 이 신 저 신 신어보고, 저한테 맞는 놈을 돌라간다고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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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여? ㅇ날부텀. 너는 그런 이얘기 안 들어 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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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디. 신을 잊어 불면 어쩌간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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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가 없지 어째. 일년 내내. 사램이 신을 신어야 어디를 댕기는 거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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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허든 마실을 가든, 근디 신이 없응게 어디 갈 수가 있겄냐? 꼼짝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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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살이제, 까깝허게, 일년 동안 그로고 오그리고 앉엿으먼 머이 좋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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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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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먼 어쩐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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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렁게 그날은 토방으다 신 벗어 두먼 안되제이. 딱 들고 들으가서 웃목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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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든지 어디 시렁에다 올려 놓든지. 조심해야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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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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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심아, 너 그 야광귀가 신발 못 돌라가게 허는 꾀가 머인지 알겄냐?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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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신통헌 거이 있기는 있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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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잉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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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심이는 고개를 옆으로 꼬고 안서방네는 웃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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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를이 그녁 뚫린 체를 걸어 노먼 되야. 마당 가운데다가 지드란헌 장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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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으댄허게 세워 놓고이. 그곡대기다가 이 체를 딱 둘러씌워 놓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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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거지맹이로. 될 수 있으면 구녁이 아조 촘촘허고 많은 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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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면 더 좋것네? 쬐간헌 것보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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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그렇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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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디, 체가 왜 야광귀 막는 비방이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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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야기는, 철재를 무릎에 앉힌 율촌댁한테서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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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주부로서, 바깥에서 주재해야 하는 알은 효원의 몫이엇거, 방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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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지는 마른 일은 율촌댁이 하는 까닭에, 율촌댁은 손자를 데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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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도 하면서 잠시 재롱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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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하늘에서부터 내려오자면 먼 길이라 다리가 아프지 않겄냐.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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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내려앉기 전에 어디 앉을 만헌 데가 없는가아 둘러본단다. 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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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장대 끝에 앉은 게야. 넓적헌 물건도 하나 뵈니 오직이나 쉬기에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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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앉고 보니 이게 생전에 본 일이 없는 것이거든. 테는 동그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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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을.....구멍이 촘촘 뚫렸으니. 이게 뭔고. 테 눈이지. 그래서 야광귀는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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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체에 눈이 얼마나 되는가 하고 세어 본단다. 하나,둘,서이,너이, 그런데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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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눈이 좀 많으냐? 고고마한 그 눈을 세 나가던 이놈이 그만,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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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었더라? 잊어 버리고 말었네. 그래 다시 처음부터 하나.둘.서이.너이.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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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했지. 그러다가 또 모르게 되고, 그러면 다시 세다가 또 잊어 먹고,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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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이나 새로 해 봐도 잘 안되니 밤새도록 체를 붙들고 끙끙 씨름을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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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 닭이 울고 동이 트면, 할 수 없이 야광귀는 그냥 빈 손으로 하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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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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