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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이야기 스크랩 류큐신보에 실린 4.3 기사-/琉球新報ー前森記者
그리조아 추천 0 조회 51 18.06.15 20: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琉球新報社提供>


 2018년 4월 10일 화요일/ 류큐신보 문화면 


4.3 사건 공부 여행, 한국 제조도 70년 추념식


과제공유 평화에의 염원

기지강행과 겹치는 헤노코


  화산이 만들어낸 용암동굴과 풍성한 자연이 아름다운, 한국남부에 있는 제주섬. 세계자연유산 등록으로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지만, 70년 전에 군과 경찰이 수 만 명의 섬사람들을 학살한 '4.3 사건'은 그다지 알려지 있지 않다. 오키나와현 제주회의 회원인 여성 17명이 4월 1일부터 3일까지 제주도 현지를 방문하여 추념식에 참가하였다. 공부가 많이 되었던 여행을 되돌아 본다.


 오키나와현 제주회는 2001년부터 2004년도에 실시된 오키나와현과 제주여성들의 교류사업 후에 발족하였다. 2017년도에는 총회에서, 지역역사연구가인 아라가키 야스코(71) 씨가 제주 4.3에 관해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제주회 회원들이 제주도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아라가키 씨가 동행하고, 오키나와현 여성단체협의회의 회원과 오키나와현 의원도 가세하였다.


  ●숨겨진 역사


 제주도의 길을 버스로 달리고 있으니까 "4.3 추념" 등이 쓰여진 플랭카드가 보이고, 다니는 곳 여기저기에 내걸려져 있다. 4.3 사건은, 한반도의 남북분단체제 고정화에 반대하는 주민이 봉기한 것이 발단이 되었고, 1948- 54년까지 계속되었다. 오랫동안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못박혀 유족들도 그에 관해서는 입을 열지 못했다. 희생자가 3만 명이 된다면서도 거의 이야기되지 못한 역사다.

 일행은 첫날, 제주4.3 연구소의 이규배 이사장의 안내로, 4.3 평화기념관을 둘러보았다. 태평양전쟁 후, 구일본군이 퇴거하게 되자 주민들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구소련과 미군에 의해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제주는 미군정 아래에 놓였다. 1948년 4월 3일에 주민들이 봉기하였으나 진압한다는 명분하에 수많은 주민이 학살당했다. 기념관에서는 사진과 영상으로 역사를 소개하고 있었다. 이 규배 이사장은, '미래를 위해서는 복수나 미움이 아니라, 사죄하고 화해하여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통점


 이튿날, 제주대학교의 조성윤 교수가 4.3과 군에 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조교수는, 미군은 표면상으로는 4.3 에서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군에 무기를 제공하였고, 한국군도 미국 측에 상황을 보고 하였다고 설명하였다. "군과 경찰은, 지금까지 4.3에 관해서 사죄를 하지 않았다'면서 '4.3 해결을 위해서는 군과 경찰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같은 민족인데 왜 이렇게까지 탄압을 했나요?', '유족에 대한 보상은?' 등등 질문을 이어갔다.


 오키나와처럼, 군사기지문제도 안고 있는 제주도.  조교수는 2017년에 제주에 새로 건설된 해군기지에 관해서 언급했다. 강정기지의 주민들은 계획단계에서부터 기지건설에 반대했지만, 그들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건설이 완료된 현재도 반대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조성윤 교수에 의하면, 이에 더 나가 공군기지도 만들려는 움직이 있으며 '4.3의 경험을 통해 제주도 사람들은 군대가 국민을 보호해주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고시의 헤노코에 미군의 신기지 건설 문제로 흔들리는 오키나와의 모습과 제주의 모습이 겹쳐졌다.

 공통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첫날 저녁에 여성단체인 <제주여민회>와 교류회를 했다. 단체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 영순 씨는 , 제주가 옛날에는 독립국이었다는 것, 괸당문화가 강하며, 이혼율이 전국 최고라는 것을 소개해주었다.

 김 대표에 의하면, 제주여성은 강하고 일 잘한다고 알려졌지만, 실지로 제주도에서는 최근까지도 (강한 여자가 아니라) 남자만 국회의원을 하고 있으며, 여성은 비정규고용만 많을 뿐 지위가 높지 않다고 한다. 김 대표는 "많은 여성이 사회에 정치에 참여하여 사회가 변화되기를 기대하기에 우리들도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3일은 70주년 추념식이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추념식장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하여, 4.3 족들과 제주지역의 고등학생 등등, 다양한 세대들로 붐비고 있었다.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진 각명비 앞에서 많은 유족들이 손을 모으고 있었다. 추념식에는 오키나와현 제주회 멤버 17명 외에도, 가수 海勢頭豊(우미세도유타카)씨와, 제주대학으로 유학온 오키나와 현 출신의 학생 등 스무 명이 넘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참가했다.

 오키나와현 제주회의 大城貴代子(오오시로키요코) 회장은 4.3 추념식을 보고 있자니 오키나와의 위령제의 광경이 떠올랐다고 한다. "제주사람들의 슬픔에 공감했습니다. 여성은 평화의 선구자니까 오키나와에 돌아가서도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평화의 소중함을 통감하고 제주여성들의 활동에 자극받은 여행이었다.( 마에모리. 前森の記事)



-2018년 6월 15일 김미정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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