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과거를 딛고 꽃길을 걷는 봄날이 되리, 미니 보영백화점
이학주
미니 보영백화점 앞에서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구경을 하고 있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기타를 치면서 버스킹을 하는 장면이다. 매주 일요일 1시면 어김없이 공연이 열린다. 트로트, 7080, 팝송 등 다양한 음악을 한다. 또 시화(詩畫)를 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한다. 그러면 시장에 계시는 어머니들이 와서 음악을 듣고 가기도 하고,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멈춰서 시를 감상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시장이라는 곳이 사고팔고 이 기능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에 문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버스킹의 주인공 박○순(여, 47) 씨는 구역전 부곡동에서 나고 자랐다. 그 때문에 묵호는 고향이다. 어렸을 때 묵호까지 심부름을 왔고, 묵호여중을 다녔다. 시장에 오면 먹자골목이 있어서 언니랑 몇 백 원 들고 와서 떡볶이, 어묵 같은 것을 사먹었다. 롯데리아가 처음 생겼는데 그곳에 한 번 가보는 게 꿈이었다. 콜라, 감자튀김, 햄버거를 처음 접할 때였다. 그 후 동해프라자가 생겨 그곳 지하에서 친구들과 음식을 사 먹었다. 박○순 씨가 대학을 갔을 때는 벌써 천곡동이 커지면서 묵호가 공동화 현상이 일어났다.
묵호를 다시 찾게 된 것은 남편 때문이었다. 남편이 이곳에 와보고는 맘에 들어서 정착하게 되었다. 2008년이었는데 옛날의 화려했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스산한 분위기였다. 그때 상권활성화 차원에서 요리경연대회를 했는데 재미로 나도 나가볼까 했는데 파전을 해서 2등을 했다. 부상이 먹거리 부스를 우선 배정해 주는 것이었다. 그게 인연이 돼서 2013년도 가을에 이곳에 와서 장사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파전을 파는 장사를 하면 임대료가 삭감된다고 했는데, 그걸 포기하고 ‘카페묵호’를 차렸다.
“묵호라는 이름을 너무 좋아해요. 어렸을 때 묵호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좋았어요. 없는 게 없었고, 사람들 때문에 길을 걷기가 힘들었어요.”
박○순 씨가 생각하는 묵호의 이미지다. 먹을 게 많은 번화한 동네였다. 그때 골목이 너무 많아서 잘못 들면 찾아나기지 못할 것 같아 가던 길만 갔다. 그런 기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마침 남편이 논골담길 등의 일에 종사하게 되어 이곳 묵호에 다시 정착하게 되었다.
카페묵호를 하면서 보영백화점을 열어 그 옆에 상호 이름을 썼다. 그랬더니 이곳 묵호사람들이 와서 상호 이름을 대면서 유명한 뭐가 빠졌다고 얘기를 해준다. 여기 써 놓은 상호보다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더 유명한 상호와 추억이 서린 상호가 있는 것이다.
“여기 보영백화점은 묵호에서 수공예품 하시는 물건 대신 팔아주는 거예요.”
이곳이 동해시 경제과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임대료가 조금 나간다. 그래서 카페묵호를 하면서 임대료를 내면서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시간제 종업원을 두었다. 그런데 그게 여러 사정으로 여의치 않아 박○순 씨가 2018년 12월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키페묵호에 출근하게 되었다.
“손님들이 처음에는 시장에 커피숍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마셔보고는 생각이 바뀌어 아예 텀불러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 늘어났어요. 일부러 찾아오는 단골이 늘었지요.”
박○순 씨는 환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얘기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좀 잠잠해지면 수공예 하시는 분들이 모여 소규모 프리마켓을 할 계획이다. 코로나 아니었으면 벌써 했을 거란다. 버스킹과 프리마켓을 함께 하면 어울릴 거란다. 여기가 먹거리장터인데 사실 커뮤니케이션 광장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전통시장 속 소통의 광장은 이름만 들어도 참 잘 어울린다.
박○순 씨의 바람처럼 이곳이 묵호의 동쪽바다중앙시장에서 또 하나의 명소가 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