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국립공원 속리산(1058m)
(충북 보은군, 경북 상주시 화북면)
2007년 5월 6일(일요일) 맑음
산꾼에게만 허락된 자연의 큰 선물!
1970년 3월 24일 국내에서 여섯 번째 국립공원(산악 국립공원으론 4번째)으로 지정된 속리산은 일찍이 해동 8경의 하나로 또는 ‘작은 금강산’으로 불려왔다. 신라 시대 학자 고운 최치원(857-?) 선생은 속리산을 탐방하고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산은 세상을 멀리하지 않는데 세상이 산을 멀리하는구나! 라고 의미심장하게 읊어 속리산의 경관이 성취하기 어려운 도의 경지에 비유할 정도로 빼어남을 강조한 글을 남겼다. 속리산의 이름은 한문으로 풍속 俗 자에 떠날 離 자를 써 속세를 떠난다는 뜻이 있어 누구든지 풍진 세상의 일을 잠시 잊고 선경에 빠져 이속(離俗) 할 수 있게 하는 산이 속리산인 것이다.
우리나라 등줄기인 백두대간의 산 속리산은 기이한 바위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양산(남성 산)이다. 멀리서 속리산을 바라보면 톱니바퀴 같은 울퉁불퉁한 바위들로 하늘선이 그려진다. 그러므로 얼핏 생각하기엔 감히 사람이 범접지 못할 험한 산 같지만, 바위봉우리 사이로 교묘히 사람이 드나들 길을 마련해 두고 있다.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이라면 속리산을 찾아 세상의 고단한 일을 내려놓고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온갖 시름을 잊을 수가 있다. 특히 백두대간의 정기를 받아 몸과 마음의 기운을 충전시키는 넉넉한 산이 속리산이기도 하다.
속리산의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없어 산의 가인이라 할 만하다. 한마디로 말해 자연이 빚은 놀라운 바위 예술이다. 조선의 지리학자 이중환 선생은 택리지에서 속리산은 “석세가 높고 크며 여러 겹으로 된 봉우리의 모든 돌 끝이 뾰족뾰족하게 생겨서 마치 처음 피는 연꽃 같기도 하고 멀리서 횃불을 벌인 것 같기도 하다” 고 했다. 속리산은 8이란 숫자와 유달리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산의 이름도 광명산, 지명산, 구봉산, 미지산, 형제산, 소금강산, 자하산, 속리산의 여덟 개에 이르고 천왕봉을 비롯해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의 8개 봉을 지녔다. 또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신선대, 봉황대, 산호대의 8개의 바위 멧부리와 내석문, 외석문, 상고내석문, 상고외석문, 배로석문, 금강석문, 상환석문, 추래석문의 여덟 개의 석문이 있다.
눌재의 백두대간 표지석
속리산은 대전 근교의 산이라 10대 어린 시절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숱하게 탐방을 했다. 험한 말티 고개를 버스가 넘지 못해 하차하여 고개까지 올라간 기억도 있는 등 속리산 곳곳에는 나의 발자취가 묻어 있다. 오늘은 15년의 역사를 갖은 정암 산악회 산악대장으로 대원들을 인솔하여 산행에 나선다.
속리산의 바위봉우리
적막한 공기가 흐르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의 산행 들머리엔 문장대 3.3Km란 팻말이 서 있었다(9:40). 널찍한 차도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9:45). 왼쪽은 성불사와 오송폭포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길이 문장대 가는 길이다. 오른쪽 길로 산 오름이 시작된다. 계곡을 왼쪽에 끼고 20분쯤 오르니 문장대 1.8Km란 팻말이 반긴다(10:05). 계속하여 문장대 1.2Km(10:20)와 0.6Km(10:34)란 이정표 팻말이 서 있는 곳을 지나 백두대간 능선에 자리 잡은 문장대 휴게소에 올라선다(10:40). 휴게소에서 5분쯤 더 오르니 속리산 최고의 빼어난 전망을 선사하는 문장대 꼭대기다(1054m, 10:45).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문장대의 정수리는 약 30평쯤 되는 평지를 이루었다. 속리산의 수많은 바위봉우리가 날카로운 뾰족 봉우리로 사람의 범접을 허용하지 않는 데 반해 문장대는 100여 명의 사람에게 호연지기를 길러줄 널찍한 바위를 제공하여 일망무제의 감동이 밀려오는 조망을 선사했다. 사방팔방으로 막힘없이 터지는 문장대의 전망은 환상적이다. 동쪽으로 도장산이 가깝고 그 뒤로 문경의 산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서로는 관음봉, 묘봉, 상학봉으로 뻗은 서북 능선이 보기 좋고 천왕봉부터 시작된 한남금북정맥의 산줄기가 한정 없이 뻗어 나간다.
남쪽은 천왕봉으로 이어진 백두대간 산줄기와 구병산이 조망된다. 북으론 백두대간의 산 청화산이 지척이고 대야산으로 달리는 백두대간 산줄기가 옹골차다. 10분 정도 조망을 즐긴 다음 문장대 휴게소로 되 내려온다. 11시 18분까지 올라오는 대원들을 기다린 후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3.4Km 거리인 천왕봉을 향해 나아간다. 가볍게 오르고 내리는 능선을 타고 신선대 휴게소에 올라선다(11:31). 이어서 평평히 2분쯤 가다가 1분 정도 내려오니 천왕봉 2.1Km란 안내판이 반긴다. 경업대(0.4Km)로 내려서는 능선을 지나(11:41) 1분쯤 평평히 가다가 2분쯤 약간 내려선 다음 1분 정도 올라간다. 뒤돌아보니 문수봉, 청법대의 암봉들이 병풍 같은 바위벽을 자랑하고 있다.
백두대간 능선 길은 좁지만, 산죽 사이로 뚜렷이 나 있었다. 3분 정도 바위봉우리 왼쪽 사면으로 조금 내려서다가 2분쯤 오르니 천왕봉 1.6Km란 이정표 팻말이 서 있다(11:53). 나무 계단을 타고 오르다가 또다시 뒤돌아보니 지나온 백두대간 능선에 솟아있는 암봉들이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조금 더 올라간 산마루에서 2분쯤 평평히 나아가다가 또 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가 바위봉우리에 올라선다. 이어서 오른쪽 사면 길로 2분 정도 진행하다가 이젠 왼쪽 사면 길로 나아간다(12:04). 곧이어 1분쯤 내려서다가 오르막길이 된 나무 계단 길로 비로봉(1032m)에 올라선다(12:08).
비로봉을 뒤로하고 1분쯤 내려서니 천왕봉 1.2Km란 팻말이 반기며 눈앞에는 신통하고 묘한 바위봉우리가 불끈 솟아있다. 비로봉 주변에서 바라본 속리산 풍광은 암봉들이 저마다 독특한 멋으로 아름다움의 절정을 나타내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고스락(정상)인 천왕봉도 뚜렷이 보이면서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환희의 마음으로 6분쯤 내려서니 천왕봉 0.9Km란 안내판이 서 있다. 계속하여 5분 정도 더 내려간 다음 오르막 능선 길이 시작된다. 천왕 석문을 통과하고 헬기장이 자리 잡은 능선에 올라서니 천왕봉 0.6Km, 하산지점인 장각동 3.7Km란 안내판이 반긴다(12:26).
헬기장을 뒤로하고 7분쯤 더 올라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천왕봉에 올라선다(12:33). 백두대간의 산이면서 한남금북정맥이 시작되는 천왕봉에는 물줄기가 낙동강, 금강, 한강으로 갈려 삼파수봉 이라고도 부른다. 걸어왔던 문장대까지 백두대간 능선과 말티 고개로 뻗어 나간 한남금북정맥 산줄기를 살펴보고 법주사를 향해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한다(12:43).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10분쯤 되 내려오니 법주사 5.1Km란 팻말이 반기는 하산지점이다(12:53). 이젠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22분쯤 산에서 내려오니 바위에 뿌리를 둔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분재 같은 아름다움을 뽐내는 곳에 이른다(13:15). 바로 석문을 거쳐(13:17) 두 계곡이 만나는 세심정 부근으로 내려가 세수하고 손을 씻는다.
형제봉 표지석(뒤의 천왕봉이 웅장하다)
세심정부터 법주사까지는 차도 다닐 수 있는 널찍한 평지 길이다. 호서 제일 가람인 법주사에 닿아 행복한 산행을 마치고 국보 3점과 보물 4점이 있는 법주사 경내를 둘러본다. 신라 진흥왕 14년(533년) 의신이라는 스님이 인도에서 불교 공부를 마친 뒤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법주사의 이름은 부처님의 말씀(法)이 머물렀다(住)는 데에서 얻어졌다. 높이가 33m나 되는 청동미륵대불과 국보 55호인 팔상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법주사를 뒤로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오리 숲과 상가를 지나 외곽지역에 시설한 주차장까지 한동안 걸어가 행복했던 산행을 마친다(1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