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
< 무엇이 비어있는가? >
🌱관세음보살이 강 건너 참자유에 이르는 지혜인 반야바라밀다를 깊이 수련할 적에 오온이 모두 비어 있음을 불현듯 발견하고 이 깨우침으로 모든 괴로움을 극복하였느니라.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심을 베푸는 보살입니다.
다시 말해서 중생의 고통을 깊이 귀기울여 듣고 편안하게 해주는 법을 아는 존재입니다.
‘아발로키타(avalokita)'는 ’깊이 들여다보다‘, ‘관하다’라는 뜻이며 ‘이슈바라(isvara)'는 ‘주인’, ‘뛰어난 사람‘, ’다스리는 자‘라는 뜻입니다.
합치면 실체를 깊이 들여다보는 수행을 통해 자신의 주인이 되어 성취 가능한 가장 큰 자유를 성취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보디(bodhi)'는 ‘깨어남’을 뜻하며,
‘사트바(sattva)'는 ’중생‘을 뜻하므로 이 둘을 합친 말인 ‘보디사트바(bodhisattva)',
즉 ’보살‘은 깨어난 중생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때로는 보살이고 때로는 보살이 아닙니다.
관세음보살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여서 때로는 남성의 모습으로,
때로는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중국, 베트남, 한국,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을 ‘관인’, ‘콴암’, ‘관음’, ‘카논’ 등으로 부릅니다.
관세음보살은 깊이 보고 들을 수 있으므로 자신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러한 깊은 이해로부터 대자비심이 생겨납니다.
관세음보살은 현실의 참다운 본질을 깊이 이해함으로써 일체의 두려움을 초월했습니다.
[반야심경]에서 관세음보살은 사리푸트라에게 이 심오한 깨달음인 반야바라밀다를 드러내 보입니다.
사리푸트라는 부처님이 법을 가르치던 당시 가장 뛰어난 제자였다고 합니다.
🌱‘프라즈냐’는 통찰이나 이해를 뜻합니다.
‘파라미타’는 건너편 기슭,
즉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세계 너머 깨달음의 세계로 가거나 넘어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반야바라밀다는 우리를 강 건너 참자유로 인도해주는 지혜입니다.
지혜는 단순한 지식과 다릅니다.
이해와 지혜는 마치 물과 같아서 흐르기도 하고 꿰뚫어 통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우리가 집착하는 관점이나 지식은 견고한 성질을 띠기 때문에 이해의 흐름을 막을 수 있습니다.
불교적 관점에서 지식은 참다운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우리는 사다리를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지식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합니다.
사다리의 다섯 번째 단에 머물러 있으면서 꼭대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면 여섯번째 단으로 발을 딛고 올라갈 가망이 없습니다.
자신의 길에서 진보하려면 자신의 관점을 초월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관세음보살에 따르면 이 종잇장은 비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분석에 따르면 종이는 삼라만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는 모순처럼 보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오온이 모두 비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형상을 뜻하는 색,
느낌을 뜻하는 수,
인식을 뜻하는 상,
마음의 의지작용을 뜻하는 식이 모두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비어 있다는 것일까요?
비어 있다는 것은 언제나 무엇인가가 비워졌다는 뜻이기 마련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물 한 컵을 보여주면서 “이 컵은 비워졌다는 뜻이기 마련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물 한 컵을 보여주면서 “이 컵은 비어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당신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아니요, 물로 가득차 있습니다.”
물을 따라버린 뒤 같은 질문을 하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이제 비었습니다.”
무엇이 비었다는 것일까요?
비었다는 것은 무엇인가가 비워졌다는 뜻입니다.
이 컵은 아무것도 비어 있지 않은 상태일 수는 없습니다.
무엇이 비었는지를 알지 못하면 ‘비었다’는 말에는 아무런 뜻도 없습니다.
물을 따라버린 컵에는 물이 들어 있지 않지만 공기가 비어 있지는 않습니다.
이는 굉장한 발견입니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이 오온이 공하다,
즉 오온이 모두 비어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관세음보살님, 무엇이 비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오온은 영어로 ‘다섯 가지 모아 쌓은 것’이라는 뜻인 ‘five heaps' 또는 'five aggregates'라고 번역하며,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를 이릅니다.
이 다섯 가지 구성 요소는 끊임없이 흐르는 다섯 개의 강과 같습니다.
우리 몸을 의미하는 색•수•상•행•식의 강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멈추는 일없이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이 다섯 강의 성질을 깊이 들여다보다가 이 모두가 공하다는 사실을 홀연히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묻습니다, “무엇이 비었다는 뜻일까?”
그 답은 이러합니다.
“분리된 자아가 비었다.”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