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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삼봉(嶋潭三峰)>
꿈속의 공간 도담삼봉이다. 그 화려한 명성을 생각하면 현지에 도착해서도 이리저리 고불고불한 길을 다니며 드러나 있고 숨어 있는 실체를 확인하는 맛이 있어야 감동을 음미할 터인데, 툭 트인 공간에 한꺼번에 모든 정경이 다 들어와 조금 허전하고 싱거운 기분도 든다. 더구나 물이 줄어 뱃놀이할 흥도 나지 않는 데다 실제로 운행도 하지 않고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볼 길도 없다. 멀리서 여전히 한눈에만 보아야 하니 더욱 그렇다. 물이 줄어 바위 아래 발목이 드러나 있어 신비한 맛도 감소된 듯하다.
앞에는 관광지 상가가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고, 너른 주차장이 있고, 삼봉공원에 삼봉스토리관이라는 전시관까지 있다. 현대적 건축물과 대비되니 갑자기 도담삼봉이 매우 비현실적 공간으로 여겨진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보고 뭐에 감동했을까, 생각이 여기 미치니 이제 가슴이 가득해지는 기분이다.
방문일 : 2021.4.7.
위치 : 충북 단양군 매포읍 하괴리 산 20-40
가. 구경하기
도담삼봉은 그 자체가 비현실적 공간인 것처럼 아름답고 오묘하기도 하지만, 수많은 시인묵객이 자신을 투영하여 생긴 문화적인 층위가 더 근사한 구경거리인 듯하다.
1. 도담삼봉(嶋潭三峰) 소개
단양팔경 중 하나로, 2008년 9월 9일에 명승 제44호로 지정되었다. 단양팔경은 도담삼봉(島潭三峰), 석문(石門), 하선암(下仙岩), 중선암(中仙岩), 상선암(上仙岩), 사인암(舍人岩), 구담봉(龜潭峰), 옥순봉(玉筍峰) 등이다. 이중 지형의 훼손이 많은 곳을 제외한 도담삼봉, 사인암, 석문, 구담봉, 옥순봉 등 다섯 곳이 국가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국가명승 44호
단양 도담삼봉 (丹陽 島潭三峰)
(Dodamsambong Peaks, Danyang)
충북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 195번지
2. 도담상봉을 읊은 시
이황 〈도담삼봉(嶋潭三峰)〉
山明楓葉水明沙 산명풍엽수명사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三島斜陽帶晩霞 삼도사양대만하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爲泊仙楂橫翠壁 위박선사횡취벽
신선 되어 뗏목을 푸른 절벽에 기대고 자려다가
待看星月湧金波 대간성월용금파
이윽히 바라보니 달과 별이 금빛 파도로 솟는다
서형수(徐瀅修 1749~1824)의 시
세 봉우리가 사이좋게 나란히 솟았는데 / 三峯亭峙雁行開
아름다운 정자가 제이대에 높이 앉았네 / 飛閣高臨第二臺
완연히 물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 宛在水中如有待
뿌리 없는 산발치는 어디에서 왔는가 / 無根山脚自何來
봄 지나도록 복사꽃을 따라 흘러가지 않고 / 春歸不逐桃花去
비 온 뒤 푸른 안개 쌓인 것 유독 바라보네 / 雨後偏看翠靄堆
여기에다 조화옹이 솜씨를 부려 / 到此天工逞巧手
영주와 방장에다 봉래를 만들었구나 / 瀛洲方丈又蓬萊 (전재)
농암 김창협(金昌協)의 시
강 빛은 어둑어둑 저녁놀 이는데 江光黯黯晩霞生
뱃머리에 삼봉이 눈에 훤히 들어오네 鷁首三峯照眼明
깎은 듯한 구름뿌리 솟아오를 땅 없고 戍削雲根無地湧
삐죽한 기러기 줄 하늘에 만들어지네 參差鴈序自天成
소나무 끝 늙은 매 배에서 솟아오르는데 松梢老鶻衝船起
깊은 물 밑 잠긴 용 피리 응해 우는구나 泓下潛龍應笛鳴
짐짓 나무꾼에게 신선 길을 묻고 싶네 欲借樵柯問仙路
석문 깊이 들어서자 바둑 소리 들리누나 石門深入聽碁聲 (전재)
*포토존이 멋지다. 인간이 신선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인 것도 같다.
다산 정약용 단양절구오수(丹陽絶句五首) 중 도담(島潭) 시
봉래도가 날아와 푸른 못에 떨어진 곳 蓬島飛來落翠池
낚싯배 바위 문을 조심스레 뚫고 가네 石門穿出釣船遲
어느 누가 솔씨 하나 가져다가 심어서 誰將一顆雲松子
물 위의 나뭇가지 쏴쏴 소리 보탰는고 添得颼飅到水枝 (전재)
2) 그림과 민요
단양군수로 부임한 이황이 시를 지었다. 이황 외에도 많은 시인묵객들이 다투어 소재로 삼아 많은 시와 그림을 남겼다. 황준량, 홍이상, 김정희, 김홍도, 정선, 이방운 등등이 시와 그림을 남겼다.
겸재의 삼도담(三島潭), 단원의 병진년화첩(丙辰年畵帖) 속에 있는 도담삼봉, 이방운(李昉運)의 사군강산삼선수석첩(四郡江山參僊水石帖) 속 도담(島潭), 또 칠칠(七七) 최북(崔北)의 단구승유도(丹丘勝遊圖) 등, 도담삼봉 그림이 많이 남아 있다.
이들의 시서화 덕분에 도담삼봉은 자연에서 문화가 되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서화는 가시적 실체로 남았지만, 민중이 도담삼봉을 보고 남긴 이야기는 전설로, 민요로 구비되어 마음의 눈에 남았다.
남한강 자락 단양에는 〈삼봉용왕제소리〉와 〈띠뱃노래〉, 〈짐배노래〉 등 여러 민요가 전해진다. 이중 〈짐배노래〉는 도담삼봉으로부터 시작된다.
영월 영춘에 흐르고 내리는 물은 도담삼봉 안고 돌고
도담삼봉 흐르는 물은 만악(학?)천봉 안고 도네
만악천봉 흐르는 물은 옥순봉을 안고 돌고
옥순봉에 흐르는 물은 흘러흘러 잘도나 가네
영월에 영춘에 흐르고 내리는 물은
도담삼봉 안고 돌고
앞편강에 띄우는 배는 님을 실은 꽃배인데
뒤편강에 띄우는 배는 놀이하는 놀배이고
얼씨구 좋다 절씨구 좋아 술렁술렁 잘도나 가네 (한국콘텐츠진흥원)
영월, 영춘, 도담삼봉, 옥순봉은 장삿배가 물길을 따라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경로다. 옥순봉도 도담삼봉과 함께 단양팔경의 하나다. 장사일을 끝내고 천하의 절경인 단양 부근을 배를 타고 내려갈 때는 장삿배의 고달픔을 잊고 아름다운 자연에 빠져든다. 남한강은 단지 아름다운 자연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산의 공간이다. 생산은 생활을 영위하게 해주고, 아름다운 자연은 삶을 고양시킨다. 이들이 삶을 긍정을 넘어 신명을 내는 배경이다.
*삼봉
민요 외에 간단한 전설도 전승된다. 세 봉우리를 형상에 따라 장군봉, 첩봉, 처봉 등으로 붙인 지명 전설이 그것이다. 전설에는 남편이 아들을 얻고자 첩을 들여 아내가 돌아앉은 것이라 하였다. 늠름한 모습의 중봉이 장군봉, 교태 어린 여인의 모습인 남봉이 첩봉, 이를 외면하는 듯한 북봉이 처봉이라 한다. 또 바위 모양에서 아버지봉, 딸봉, 아들봉이라고도 한다. 이 두 세트의 이름이 서로 섞갈려 불리기도 한다.
황포돛대가 멋지지만 물도 줄고 코로나도 있고 해서인지 운행이 되지 않는다.
*삼도정(三嶋亭)
중봉의 육각정자 삼도정은 1766년(영조 42) 단양군수로 부임했던 조정세(趙靖世)가 짓고 능영정(凌瀛亭)이라 했다. 이후 1900년대에/1807년? 김도성(金道成)에 의해 사각정자 목조건물로 지었는데, 1972년 대홍수로 유실되었고, 1976년 김상수?가 다시 지은 정자가 현재의 삼도정이다.
나. 생각해보기
<정도전(鄭道傳)의 호 삼봉(三峯)과 민중의 호설(號說)>
1. 도담삼봉 유래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의 호 삼봉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이곳 도담삼봉에서 연유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 삼각산에서 연유했다는 것이다. 도담삼봉 설은 한영우 선생의 설이 퍼진 것이라는데, 『정도전 사상의 연구』(서울대출판부, 1973)에서 단양지방 구전 설화를 정리한 내용과 <삼봉집> 해제의 내용은 비슷한데 해제의 해당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정도전의 아버지 정운경(鄭云敬)이 젊었을 때 이곳을 지나다가 어떤 상(相) 보는 사람을 만났다. 상 보는 사람은 그에게 10년 후에 혼인하면 재상이 될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정운경은 그 말대로 10년 뒤에 삼봉에 다시 돌아와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나서 아이를 얻게 되었다. 그 아이를 길에서 얻었다 해서 이름을 도전(道傳)이라 하고 부모가 인연을 맺은 곳이 삼봉이므로 호(號)를 삼봉(三峰)이라고 지었다.”
‘도전(道傳)’을 길에서 얻었다는 말이라는 것이 좀 이상하다. 유학자적 견해로서는 도를 전한다는 말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정도전의 부친 정운경(鄭云敬)은 공민왕 때에 형부상서(刑部尙書)에 오른 사족(士族)인데, 장차 재상이 된다는 아들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까 의문이 생긴다. 호 또한 부모가 인연을 맺은 곳을 호로 삼을 수 있을까? 일반적인 작명과 작호의 방식과 다르니 식자층으로서는 이러한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이것은 민중들의 작명 방식이 식자층과 다르기 때문이다. 업어 들어오면 업동이고, 삼월에 낳으면 삼월이다. 길에서 전해준 인물이니 도전이다. 부모가 특별한 인연을 맺지 않았으면 태어나지 않았을 터이니 인연 맺은 곳을 호로 삼는다. 이 또한 민중의 작호 방식이 아닐까 한다.
2. 삼각산 유래설
삼각산 설은 정도전이 삼봉재를 짓고 살던 서울 삼각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삼봉은 삼각산의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세 봉우리를 말한다. 그 삼봉이 삼각뿔처럼 생겨서 삼각산이다. 한영우 교수도 1999년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에서는 “그의 옛집인 개성 부근의 삼각산에서 차명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을 부언했다. 정도전의 문집 삼봉집에는 단양이나 도담삼봉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삼각산 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는다.
3. 삼각산 설에 대한 의문
그러나 삼각산은 나라를 상징하는 산인데, 감히 신하로서 국가의 상징물로 호를 삼을 수 있을까. 조선왕조 시절에는 기휘(忌諱)를 매우 철저히 했다. 임금이나 집안 어른들의 이름을 언급하거나 그 이름을 따서 작명하는 것을 삼가는 관습이 ‘기휘(忌諱)’이다. ‘피휘(避諱)’라고 하며, 줄여서 ‘휘(諱)’라고도 한다. 기휘도 하는데, 왕조 설계자가 앞서서 참람(僭濫)되게 호를 삼각산 삼봉(三峯)으로 짓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만일 다른 사람이 지어줬다면 작호의 동기를 적어줬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호설이 삼봉집에 수록될 가능성이 높다.
삼봉집에 수록된 시 ‘삼봉(三峰)에 올라 경도(京都 : 개경)의 옛 친구를 추억하며(登三峯憶京都故舊)’, ‘삼봉으로 돌아올 때 약재(若齋) 김구용이 전송해 보현원(普賢院)까지 오다(還三峯若齋金九容送至普賢院)’를 호의 근거로 삼기도 하나, 그것은 어차피 정황적 근거일 뿐이다.
작호의 동기나 배경을 알려주는 직접적인 근거는 호설(號說)이다. 호설은 작호의 이유와 함축된 의미 등을 밝힌 문장이다. 호설에서는 호의 의미에 맞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밝히기도 한다. 호설은 자기가 직접 짓거나 남이 지어주기도 한다. 삼봉집에는 호설이 수록되어 있다는 말이 없다. 삼각산 설이나 도담삼봉설이나 둘 다 기록으로 남은 호설은 없으므로 둘 다 직접 근거는 없고 추론일 뿐이다.
* 정도전의 동상이다. 삼봉 호를 도담삼봉에서 가져갔다 한다.
4. 도담삼봉설과 설화의 의미
하지만 삼각산설에서 간과한 것이 있다. 설화의 의미이다. 전부터 도담삼봉을 호의 근거로 삼아왔다는 설화가 전승된다면 그것이 근거로서 더 효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삼봉과 관련된 단양에는 또 하나의 구체적인 인물전설이 전해온다. 이것은 도담삼봉 앞 삼봉스토리관에도 기록 판넬이 전시되어 있다.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 그래서 단양에서는 정선군에 매년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어린 정도전이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가져온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는데, 아무 쓸 데 없는 봉우리에 세금까지 낼 이유가 없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후에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민중의식 속에서 삼봉은 단양 사람이고 그것도 매우 영웅적인 인물이다. 설화 속에서 정도전은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아름다운 이곳 경치를 매우 좋아했다고도 한다. 정도전의 출생담 또한 매우 구체적이면서, 일반적인 영웅 출생담의 ‘신이한 출생’ 모티브를 갖고 있다. 정도전의 다른 인물전설과 출생담이 복합적으로 전승되는 것으로 보아 민중설화 속에서 정도전과 단양과의 인연은 매우 견고하다고 할 수 있다.
자기가 사는 인연 있는 고장을 호로 삼는 것은 일반화된 관행이었으므로 도담삼봉을 호로 삼는 것은 자연스럽다. 게다가 이처럼 떠받드는 민중이 있는 단양의 삼봉을 호로 삼고자 했을 가능성도 높다.
우리는 전부터 잠자고 숨쉬는 것같은 너무나 당연하고 누구나 아는 것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정도전의 호가 도담삼봉에서 왔다는 것을 인근에서 너도나도 다 안다면 굳이 기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런 설화는 정도전 시절부터 이 인근 사람들의 입에 널리 회자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민중이 지은 ‘호설’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혹시 조선을 왕의 나라가 아닌 신하의 나라로 만들고 싶어했던 의지가 삼각산을 호로 삼고자 하는 의도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그럴 수는 없으니,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민중의 호설 도담삼봉설을 내세우고 본인의 마음속으로는 삼각산의 삼봉을 호로 삼으며 위로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삼봉의 호가 공식적으로 문제된 적은 없으니 말이다.
실제 삼봉 안에는 도담삼봉과 삼각산이 이중적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설화속 인간인 자연인 정도전과 사료 속 공신(功臣)인 공적인 정도전 말이다. 이런 복합적인 인물형이 호에서 하나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두 가지 호설이 어느 층위에서 접근하느냐만 다를 뿐 모두 진실일 수 있다. 다만 오늘날의 자료로는 민중의 설화가 더 확실한 근거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다.
가장 허망한 것은 이 스토리관. 정도전만 해도 이야기거리가 한 짐은 될 거 같은데, 스토리관에 스토리가 없다. 입장료는 커녕 발품값도 건지지 못한 거 같은 기분, 좀 허망한 곳이다.
참고문헌
신용호(2020), 호설과 시장(동양문화총서 19), 전통문화연구회
한정주, 삼봉(三峰) 정도전④유교적 의미의 이름과 삼각산에서 차명한 호, 헤드라인뉴스, 2014.05.25.
이한성, [겸재 그림 길 (68) 도담삼봉] 300년 전 그림 넉 점이 남긴 삼봉 변천사, cnbnews 제690호, 2020.12.3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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