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이민 2기 404. 따알화산 폭발 (1월 15일)
2020.01.26
하나 남은 햇반을 마저 물에 끓여서 누룽지처럼, 죽처럼 만들었다. 김과 멸치조림, 남은 김치로만 먹고 골프장으로 나갔다.
빨리 전기가 들어와야 하는데 냉장고가 걱정이다.
차를 몰고 복잡한 재래시장 가는 게 꺼려져서 한꺼번에 한 달 치 수산물, 육류를 냉동실에 가득 채워 놓았는데 이렇게 며칠씩 단전이 되니 그것도 저것도 모두 걱정 뿐이다. 제발 불이 들어오기만 소망한다.
약속대로라면 오늘은 밀라가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인데 분명히 안 나올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내 필리핀 휴대폰에 밀라가 보낸 영어 메시지가 뜬다. 인터넷과는 무관한 폰이니 그래도 연락은 닿은거다.
그녀가 동생 생일을 맞아 찾아간 바탕가스쪽에 피해가 크고 길이 끊어져서 차가 못 다닌다는 것이다. 아직 이쪽으로 오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일도 불확실하다는 걸까? 우리는 이제 지쳐간다.
한국으로 서둘러 가야하는 걸까? 하지만 그것도 문제다.
공항도 폐쇄되었다더니 제 때 못 떠난 승객들로 힘들테고, 그것보다도 이곳의 문제를 밀라에게 지시도 못한 채 훌쩍 떠나버리면 이 후의 화산재 청소며 뒷정리는 또 어찌해야 하나?
그런데 실랑쪽과 따가이따이 쪽에는 전기와 수도가 연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 동네도 어서 되었으면, 부러운 조바심에 애가 탄다.
골프백을 싣고 이글리지에 나가보았다.
우리동네보다 훨씬 아래쪽이라 그런지 주변이 한결 나아보인다. 웬종일 스프링클러로 360도방향을 회전하며 물을 뿜어대니 잔디도 깨끗하고 플레이어들도 여전히 북적거린다.
오후 늦게까지 운동을 하고 샤워도 하니 기분마저 상쾌하다.
메인 클럽하우스에서는 인터넷도 잘 되어서 한꺼번에 48개의 카톡을 받고 또 답장도 보냈다.
골프 시작 전에 후래쉬와 휴대폰, 필리핀폰까지 충전기기를 꼽아놓고 필드에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충전이 다 되어 있다.
이 와중에도 길거리에는 유니폼을 갖춰입은 마을 사람들이 성상을 모시고 길고 긴 행렬을 이루며 행진을 하고 있다. 차가 지날 적마다 화산재 먼지가 대단하게 날린다.
바깥에서 저녁까지 사 먹고 집에 들어가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의 그 적막한 몇 시간이 최고로 힘들다.
촛불 아래 책을 읽을 수도 없고, 할 얘기도 없고, 오두마니 앉아서 한참만에 시계를 보면 겨우 10분이 지난다.
제발 전기와 수도가 해결되길...불이라도, 아니 물이라도, 제발 한 가지라도...
첫댓글 한참 지난 이야기들을 읽는 지금
내 마음이 답답해 오는 기분이다.
6번째 이야기에 빠저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