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멜랑콜리아 상태에 빠진 한 남자가 어떤 작가와 교류하게 된 사정을 이야기해줬다. 내가 그 작가와 교류하게 된 연유를 묻자 그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수십 년 전에 봤던 영화 속 한 장면에 대해 이야기했다. B급 미국 영화였는데 등장인물인 형사가 히스테릭한 여자를 면담하는 동안 여자가 흐느끼며 우는 장면이었다. 여자가 방금 목격한 살인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말로 표현하자 형사가 대뜸 '사실만 말하시오'라고 여자에게 고함을 친다. 여자의 상실이라는 '진실'과 형사가 요구하는 '사실' 사이의 대비가, 그 남자 환자에게 그토록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그는 말했다. '진실은 결코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수많은 멜랑콜리아 사례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상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창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길고도 힘든 과정이며 각 개인은 자신과 자신의 관심사에 가장 알맞은 형태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어떤 우울한 상태든 그런 상태를 연구한다는 것은 진실과 사실의 구분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애석하게도 요즘의 (상담과 관련된) 보건기구들은 사실을 더 중시하고 환자의 정신세계가 아니라 관찰 가능한 행동을 더 주시한다. 고통을 줄이고 증상을 없애는 일을 치료의 주된 목표로 생각하고 수면과 식욕, 생산성이 모두 정상으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만년에 변형된 형태로 재발할 수 있는 증상의 억제가 증상의 분석을 대신할 위험이 있다. 이 억제의 과정에서 진실의 차원은 정교해지지 않고 억압된다.
우울 상태의 배후에 있는... 과정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발화와 대화가 필요한데, 이는 짧지도 즐겁지도 않은 일이다... 약을 먹는 것과 달리, '말하기'는 '듣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불가능성을 전달하는 것이 멜랑콜리의 경험에 중요한 것이라면, 그 말을 받아줄 누군가가 그의 구멍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찾기라는 힘든 임무를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애도는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애도자는 '슬픔의 비밀을 함께 나눌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 지점이 바로 예술이 인간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지점이다.... 프로이트는 '모든 사람은 자기를 구원할 방법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말을 인용한다. 곧 그는 예술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 대리언 리더 <우리는 왜 우울할까>
2.
라캉은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식을 통해 여성성이 본질을 갖고 있지 않음을 역설했다. 우리가 의거해야 할 곳은 여성적 주체들의 경험이다. 너무나 흔한 동시에 예외적이기에 결코 환원 불가능한 경험, 보편성과 특수성을 절묘하게 배합하고 있는 독특한 경험, 치열한 분석 과정을 통해 접근되지만 끝내 '분석 불가능한 것'의 가장자리에 닿아 있는 경험이다..... 여성성은 냉혹한 진실이나 진정성 있는 본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라지는 실재에 가깝다. 그리고 사라지는 실재에 대해서는 어떤 확정된 팩트도 있을 수 없다. 팩트 체크가 좌절되는 한계 지점, 팩트와 픽션이 식별 불가능해지는 지점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잃어버린다면, 여성성이라는 수수께끼에 대해 모종의 해답을 손에 넣었다는 착각의 환상에 빠지지 않을까. - 박영진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3.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서, 나는 타자의 존재란 풀리지 않고 공유만이 가능한 수수께끼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수수께끼를 함께 나누는 일, 그것을 사람들은 사랑이라 부른다. - 조르조 아감벤 <내가 보고 듣고 깨달은 것들>
4.
글쓰기란 만물을 새롭게 듣는 것이다. -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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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생부에게서 목숨을 잃을 뻔한 아이가, 말할 수 없는 순간들을 뚫고, 내가 일하는 그룹홈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룹홈에 오고 얼마 뒤, 생부는 아이와 연락하게 해달라고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고, 아이는 겁에 질린 채로 나에게 달려와 생부와 연락을 끊고 살게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아이의 보호자 자격으로 아이와 함께 법원을 찾아가 피해아동 보호 명령 신청을 하고 접근 금지 명령을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다시 집에 돌아가게 되면 이번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아이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아닙니다. 아이는 사실 이렇게 매끄럽게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단어 하나도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몸을 떨었습니다. 사건을 심리하던 법원의 가정보호사건조사관은 "감정을 토로하지 말고, 피해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사건만 이야기하라"며 아이를 닦달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맞고, 부엌칼로 살해 협박을 받고, 효자손으로 피멍이 들도록 맞은 아이였습니다. 아직도 아빠가 찾아올까봐 뒤를 돌아보는 아이였습니다. 조금만 갑작스러운 소리가 나도 사슴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는 아이였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이 자리는 아이가 말하는 자리입니다!"
전달 불가능한 그 진실을 품고 어쩔 줄을 몰라하는 아이 곁에서 분노가 치솟던 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진실(아이는 아버지가 자신을 죽일 것만 같은 위협을 느꼈다) 이 사실("그래서 아버지가 너를 그래서 찔렀니?" "아니요."-아이가 도망을 가서 찌르지 못 함)과 같지 않아서 속에서 천불이 나는데 동시에 눈물이 흐르던, 그런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전달이 불가능한 진실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찾아, 구멍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 만물을 새롭게 듣고 싶어서 자꾸만 행간에서 치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를 구원할 방법을 찾아서요.
말문이 막히던 순간, 함께 하는 어른이 있었다는 사실이 아이에게는 먼 훗날 다른 문을 열게 되는 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마음이 아프고 정신적으로도 복잡하셨을 텐데 아이 곁을 지켜주셔서 다행이고 고맙습니다.
우울 환자에게 약 처방보다 들어주기, 아이의 눈물에 말 못하는 사정을, 인내를 가지고 들어주기만 해도 해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또 다른 입장에서는 들어주는 시간에 쫓겨 끝까지 들어주지 못하는 상황도 이해됩니다. 오늘 수업 시간 말씀하신 증언보다 증거를 채택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의 생각이 매 순간 다르다는 사실, 또한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