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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일 세미나 [토론 정리]입니다. 가독성을 고려하여 한 차례 더 정리하였습니다.
제33기 현대사상세미나 01
백철현: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사회주의적 애국주의는 대치하는가(토론 정리)
토론자: 제국주의 국가들, 일본이라든가 미국이라든가 과거에 독일 이탈리아 등등, 혹은 지금 이스라엘 같은 나라들의 민족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는 게 좋을까요? 본질적으로 그들 스스로 자기 민족을 파괴하는 것일 수 있는데, 어쨌든 그들이 말하는 민족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좋을지요.
발제자: 애초에 이 논란의 출발이 민족주의는 단일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민족주의 일반을 통틀어 말해서는 답이 없다. 오히려 다른 나라를 억압하고 통제하고 착취하는 부류의 민족주의가 있습니다. 그게 파시즘으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억압당하는 민족은 억압에 맞서서 싸울 거 아니예요. 거기에는 당연히 자신의 자결권을 지키려고 하는 그런 민족주의, 저항적 민족주의가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나라를 억압하는 민족주의나 배외주의 하고, 자기 나라의 민족적 전통이나 정치적 자결권을 지키고 사수하려고 하는 것은 완전히 대립되는 것 아니에요? 후자를 억압하면서 전자가 나오는 거죠. 민족주의를 통으로 전자로만 봐버리면 후자의 저항적 측면을 부정해버리는 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예를 들어 민족해방 투쟁의 역사들도 부정하게 되됩니다. 그러나 이 투쟁은 과거에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미국 대사관을 쫓아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고 있고요. 지금 중동에서 팔레스타인의 투쟁은 민족 해방 투쟁이죠. 그것은 자본주의에 맞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싸움이 아니잖아요. 팔레스타인 투쟁은 민족해방 투쟁이라는 걸 인정해요. 민족 해방 투쟁은 더 이상 없다고 얘기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러시아의 제국주의도 얘기하지만, 돈바스의 러시아 민족도 억압당하는 거예요. 자기 언어도 못 쓰게 하고 라디오도 폐쇄하고 4만 명 학살하고 그것 때문에 러·우전이 실제 벌어지기 시작했잖아요.
그런 민족 억압의 문제가 실존합니다. 우리에게도 미제국주의는 그런 지배 형태로 실존하고 있고, 또 일본에서도 조선민족에 대한 억압이 있어, 다양한 형태로 민족 문제는 실존하고 있습니다. 민족 문제나 민족주의는 아주 복잡한 것이어서 단순화하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민족주의는 다 나쁜 거야 이렇게 보는 겁니다.
토론자: 하나의 공동체로서 민족은 근대에 들어서 나타난 개념인데, 이것을 중세 사회나 노예제 사회 아니면 도시국가, 옛날 부족 사회 시대까지 다 연장하여 하나의 민족 개념으로 묶는 것은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하듯이 지금 현재 필요해서, 무수한 사실들을 재구성하는 거잖아요.
민족 개념에다가 옛날의 사실들을 끼워 맞춘 게 민족사인데, 단군이 존재했는지도 정확히 증명되지 않았는데 신화적인 고조선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을 현재의 민족 개념에 다 넣어 역사 서술을 하고, 또 이 민족 공동체는 영원히 갈 것으로, 장구한 세월 지나 공산주의가 실현될 때까지 이게 계속 된다고 보는 것은 좀 문제 아닌가요. 민족 개념에 대해 조금 더 엄밀하게 좀 논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중세나 왕조시대에 짐이 국가라고 그러면서 멋대로 통치하던 그 시대에 진짜 공동체 의식이라는 게 있었을까요? 주권을 일반 민중들이 운명을 좌우할 수 있어야, 주권이 민중들에게 있어야 진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는데, 왕이 혼자 지배하는 사회는 왕의 국가지 그게 진짜 민족 공동체냐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저항적 민족주의는 식민지 시대에 이야기가 많이 될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저항적 민족주의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민족주의가 종이 한 장 차이 아닌가. 독일이 게르만 민족을 내세우고 민족 공동체 이야기하면서 다른 나라들을 침략해 갔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았던 약소 국가들이 또 더 작은 국가들을 침략하는 걸 보게 됩니다. 미얀마 같은 데서도 약소 민족들을 상대로 한 인종청소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독일에서 히틀러가 강조했던 민족 공동체와, 제국주의의 침략받았던 민족 개념이 근본적으로 다른 거냐, 거기서 얘기하는 민족 공동체도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구성된 개념 아니냐, 이것을 방법론과 연결할 때 뭔가 논리적 비약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발제자: 그래서 저도 유보적으로 그 부분 얘기를 했고, 그럼에도 합리적인 측면은 이거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단군 문제와 관련해 제 입장은 일단 일제가 신화라고 조작한 거다, 단군은 실존 인물이다, 실제 그 당시 부족들을 실제 통일해서 강력한 중앙집중 국가를 만들었다, 하나로 통일시켰다 이렇게 보고 있는 겁니다. 이에는 생산력의 발전 등의 여러 가지 역사적 근거가 있습니다.
그것이 일제가 얘기하는 신화가 아니고 실제 하나의 부족의 통일이라고 하면, 단군이 국가적 부족을 통일한 존재로 실존한 것 아니냐 이렇게 역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요. 그게 민족이냐 민족체냐 이런 논쟁이 있지만, 단군이 부족을 통일했고 고조선이 지배했다는 사실은 역사적 근거가 남아 있잖아요. 그걸 신화라고 얘기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그때 지금과 같은 국가적 통일성이 있었느냐, 그렇지는 않았겠죠. 엥겔스도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민족체에 대해 얘기했잖아요. 그 민족체가 아니었겠냐 이런 생각인데, 지금 자료를 보고 있어요. 지금은 연구 과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역으로 선생님은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 보시는 건가요?
토론자: 아닙니다. 여러 가지 공동체 개념들이 있는데, 민족 공동체는 근대에 와서 적어도 주권이 일반 국민에게 있을 때 얘기할 수 있다는 거죠. 민족은 하나의 관세 하나의 행정구역 하나의 시장으로 집중되면서 형성됐다 보기 때문에 독일의 통일 이탈리아 통일 등, 부르주아적 산물로 민족이 형성됐다고 보는 겁니다. 공동체라는 개념을 실존하는 여러 가지 공동체와 도덕적 의미의 공동체를 섞어서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요.
발제자: 도덕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일단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고 그다음에 발해 등이 있었단 말이에요. 우리가 근대 일본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식민지 민족 해방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민족을 재구성했던 것이며, 그때의 공동체의 개념과 지금의 공동체 개념은 차원이 다른데 왜 그걸 똑같게 연결시키는가, 유럽적 상황과 아시아나 한국이나 조선이나 똑같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 아니에요?
토론자: 아니 유럽 얘기는 아니고요. 보통 민족 개념 얘기할 때, 예를 들면 혈연을 제일 많이 따지고 그다음에 언어적 문화적 종교적 요소 이렇게 한 4가지 정도를 주요하게 보잖아요. 그랬을 때 지금 지금 쓰고 있는 민족 개념과 단군 시대까지를 같은 공동체로 엮을 수가 있겠냐, 그런 개념이 동일하게 적용이 되겠느냐는 거죠.
발제자: 근대 와서 형성된 개념을 옛날 역사에 다 두드려 맞춰 재구성했다는 문제에 관련해서는, 역사를 지금의 필요에 의해서 만드는 필요성이 하나 있고, 민족사 자체로 우리가 규명할 부분이 있는 거라거 봅니다.
다만 이북의 문제는 토론할 여지가 있고 여러 가지 동의 안 된 측면이 아직까지 있지만, 그러면 역으로 유럽의 민족 형성과 이쪽이 똑같냐, 우리가 실천적인 토론을 한번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유럽에서는 공국으로 무수하게 나눠져 있었지만, 우리는 그런 게 또 아니잖아요. 왕권이 강화되면서 언어의 통일성과 더불어서 좁은 지역에 통일이 이루어졌습니다. 단군 시대 때 과연 경제적 공통성이 어느 정도 될 건지는 논란이 있겠지만, 조선 시대까지도 하나의 민족이 아니고 통일이 안 됐나 이런 것은 좀 비판적으로 본다는 겁니다.
토론자: 또 다른 문제, 예컨대 이스라엘이 피억압 민족이었다가 스스로 억압 민족이 되는 그런 문제는요?
발제자: 그건 나쁜 놈들이죠. 과거를 잊어버리고. 누군가의 간섭과 정치적 억압 없이 자신의 민족 문화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이라면 자신들이 해방된 후 다른 민족을 억압하면 안 되겠지. 그런 사례들은 당연히 있겠지만, 팔레스타인 민족이 싸우는데 ‘야 너네들도 나중에 해방되면 똑같은 놈 될 수 있어 어차피 화장실 갈 때 나올 때랑 다르다’ 이런 얘기를 할 수는 없지요. 지금 제국주의의 억압에 맞서 싸우지만, 독립 후 다른 민족을 억압한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싸워야 되는 것이지요. 누군가의 정치에 의해서 억압당하지 않고 자신의 정책으로 자주적이려고 하는 노력들은 우리가 지지해야 된다고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탈레반은 반동 아니냐 이런 얘기하는데, 탈래반의 반동성을 들어서 미국의 모순들, 제국주의 모순을 은폐하는 건 더 문제라고 봐요. 탈레반의 모순들은 미제가 물러나고 난후 아프간 민중들이 해결할 문제죠. 미국은 탈레반이 반동이고 여성을 억압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아프칸 민족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했단 말이죠. 민중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미제를 척결해 낼 때 탈레반은 국제적으로 진보적 역할을 수행한 거죠.
국제적 차원의 모순이 있고 미국의 제재로 인한 국내적 차원의 모순도 여전히 있지만, 그런 문제가 해결된 후에, 탈레반이 여성을 억압하고 민중을 억압한다면 그제서야 민중들이 자신의 모순들과 싸울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 거죠. 이란도 국제적 진보성이 있지만 공산주의자를 억압하기도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걸 근거로 해서 이란의 진보성을 부정해버리고 투쟁임을 부정해버리면 제국주의 논리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예멘은 미국이나 영국 제국주의에 침략을 당하면서도 팔레스타인 억압에 맞서 싸우는데, 그 예멘의 영웅성을 얘기 안 하는 것은 제국주의 논리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리비아를 공격하면서 리비아 정권이 어땠고 어디를 공격하면 어디가 문제야 이러는 것은 국제적 차원의 제국주의 모순을 은폐하는 수단이 됩니다.
토론자: 이현숙 선생님의 문제의식도 의미 있어 보입니다.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를 놓고 볼 때 한국 사회는 엄연히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고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이라는 원칙에 비춰보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민족 개념의 지배적인 양태를 생각하면 부르주아적인 민족주의가 그냥 팽배할 것 같거든요.
한국 사회가 그사이에 상당한 경제 성장을 통해서 이제 제3세계 가난한 나라들 저임금 노동 착취를 통해 초과이윤을 뽑아오고, 이를 통해 노동자계급 상층부를 매수하고 사회의 서열구조를 만들어 놨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구조에서 한국 사회도 전쟁을 직접 일으키거나 그러지는 않지만 제국주의의 중요한 특징들 초과이윤 가져와서 이렇게 분할 통치하는 구조를 상당 정도 이미 가지고 있지 않느냐 하는 문제에서요.
그래서 민족 해방 문제를 다룰 때 한편에서는 한국 사회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억압성 그러니까 제국주의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 앞으로 그렇게 나갈 수 있는 걸 어떻게 막을 것이냐 할 때는 여전히 노동자 계급 관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문제의식은 우리가 공유하고, 계급 문제를 좀 더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민족 해방 문제를 한국의 해방만 아닌 세계 민족 해방과 같이 관련지어서 고민하다 보면 이제 좀 더 국제주의 정신에도 충실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그러는 과정에서 레닌이 고민했던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을 결합하는 혁명 방식도, 한국 사회에서는 좀 더 독특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 보입니다. 레닌은 그걸 분류해서 서구 선진 국가들의 경우에는 프롤레타리아혁명 그다음에 식민지의 경우는 민족 해방 쪽에 더 방점을 뒀단 말이죠. 한국의 경우는 그게 양자가 다 얽혀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민족 해방 문제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또 우리가 억압하는 역동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계급 해방 문제가 더 전면으로 나와야 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을 생각하면 이현숙 선생님이 제기했던 문제의식에도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고 봅니다.
발제자: 그렇다면 그것이 노정협에 대한 비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우리가 오히려 원론적이고 구체적이며 균형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을 취한다고 보거든요. 민족 문제와 계급 문제는 씨줄과 날줄입니다. 우리 운동이 NLPD로 나눠 분열됐잖아요. 분열이 지금까지 왔는데, 저는 운동이 하나의 통일적 운동이 되고 단일 운동이 되면 이게 분열될 리 없다고 봅니다.
민족 문제는 역사적 모순이고 자본주의는 구조적 모순입니다. 그런데 이 구조적 모순만을 보면 역사적 모순이 반감하게 되고, 또 그 반대는 반대지요. 소위 PD로 남아 있는 세력들이 주시하는 노동계급의 모순도 한국사회 현실의 모순의 반영이에요. 반대로 통일 문제도 현실의 모순의 반영인 거예요.
주요 모순은 시기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거지만, 양자가 분열되기 때문에 운동이 문제가 많다는 거예요. 각자의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을 테지만, 계급성을 얘기하며 오늘날 대단히 협소해지고, 분단 문제는 이제 포기해버리는 겁니다. 통일을 얘기 안 하고 분단과 반미를 얘기 안 하는 데까지 가버렸어요. 심지어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되고 있어요. 진보당 의원 지금 진보적인가요? 반미적인가요? 진보당이 반미 안 내걸어요. 의회주의 때문에. 인권이나 기후 당연히 싸워야 하지만 제국주의랑 싸움 없이 가능할까요. 그래서 오히려 양자의 모습이 좀 긴밀하게 결합해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민족과 계급을 같이 봐야 한다는 거. 그래서 마오가 모순론에서 제국주의가 심각해 보일 때는 제국주의가 주요 모습이지만, 국내적 모순이 두드러질 때가 있다고 얘기했지요.
제국주의 반대를 얘기하면서 제국주의와 결탁해온 세력들 특히 민주당하고 결탁하려고 하는 건 반미가 아닌 거예요. 제국주의 역사는 철저하게 현지 권력자들을 내세우기 때문에 반미를 얘기해 온전하게 싸우려면 국내 계급 노선에 충실해야 하는 거예요. 계급 모순을 타협적으로 다루면서 반미를 얘기하는 건 가짜 반미입니다. 따라서 온전하게 민족과 계급 취지를 다 통일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땅 분단된 사회에서 제국주의적 모순과 질곡을 해결해야 하는데, 분단 문제를 한 번도 염두에 안 두고 먼저 혁명을 하겠다, 민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없이 이거는 심각한 좌편향이라는 거거든요. 매개가 없다는 겁니다. 민족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제국주의 모순을 해결해야 하지요.
그런데 노동 삼권이나 이런 문제를 해방 이후로 미루는 경향들이 있어요. 그건 말이 안 됩니다. 비정규직 문제나 이런 계급 문제를 나중에 미룬다 하면 누가 싸우겠어요? 이거는 같이 통일적으로 가야 하고 그래서 오히려 각자의 약점을 극복해서 민족과 계급을 통일적으로 가야 한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부르주아지들이 발전하면서 민족주의를 왜곡하는 면이 있죠. 예를 들면 조국은 ‘이번에 한일전이다’라고 했지요. 하지만 조국이 반미를 내세우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역사적 감정에 편승해서 반일만 내걸면서 뒷구멍으로는 미제에 의해서 농락당하면서 한미 군사협상을 해버리고 그러니까 이들은 오히려 민족주의의 대변자가 될 수 없다는 거예요. 부르주아지들은 민족 문제 대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올바른 균형을 유지하고 가야지, 하나의 모습을 보고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운동의 발전이 없습니다.
토론자: 통일 속에서 보자고 할 때도 매 주체마다 더 절실한 게 있고 더 결정적으로 보이는 게 있고 자기가 그동안에 축적해온 자료와 정보에 따라서는 강조점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것들을 어떻게 조율해 가느냐 하는 과정이 또 필요할 것 같거든요.
발제자: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자주파들이라고 하는 데 가서는 계급성을 얘기하고, 소위 PD라고 하는 데 가서는 민족성이 부족한 걸 얘기하는 겁니다. 각자에게 그게 부족하기 때문에 각자 부족한 걸 채우는 겁니다. 제 모토는 각자 부족한 걸 얘기하고, 그게 우리 운동의 통일과 단결의 지점이라고 보고 있어요.
토론자: 우선 분명히 할 관점은 오늘 발제가 단순한 학술발표와 다르다는 거죠. 맑시즘을 기본으로 깔고 있는데, 맑시즘은 혁명하겠다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보면 대단한 책입니다. 그렇지만 맑스주의는 그들보다 훨씬 실천을 강조했고, 아는 걸 뛰어넘어서 세상을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완벽하지는 못했죠. 우리로 치면 고조할아버지쯤 되는 분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어요?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방법도 조금 제시했어요. 그중에서도 노동자 계급을 이야기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이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을 첨예하게 겪고 있기 때문에 혁명의 주력군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좀 틀렸죠 맞지는 않았죠.
맑시즘 초기 혁명가들, 또 맑시즘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혁명을 혁명문으로 봤고 맑스조차도 노농연맹조차도 생각을 못했어요. 연대연합에 대해서 생각을 못했다는 거죠. 파리 꼬뮌도 그 모습을 보니까 노동자들이 전부 나서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아닌 심지어 룸팬 PT들까지도 달라붙어서 뭔가 좋은 걸 만든단 말입니다. 파리 코뮌은 실질적으로 맑스가 머릿속에 생각했던 하고 다르다는 거죠. 역사를 이제 어떻게 볼 것인가, 인간 사회라는 것이 그렇게 법칙 정립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계획했던 것조차도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의식이 굉장히 중요시되기도 합니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깊어지면 공황이 일어나거나 노동자들이 봉기를 일으키거나 해야 하는데, 실제로 맑스가 예견했던 선발 자본주의국들이 자본주의 기본 모순을 가장 첨예하게 안고 있었지만 혁명은 한 군데도 안 일어났어요. 러시아의 어떤 한 소녀가 마르크스 이론을 얼핏 이렇게 접하고 나서 너무 좋아가지고 그 좋은 혁명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요? 러시아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요? 물어보니까 맑스는 선발 자본주의국가 영국 같은 나라들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하더라고요.
존재-의식 태제 같은 것도 굉장히 중요하고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그 이후에 혁명에 목숨을 바쳤던 그리고 혁명 연구에 목숨을 바쳤던 많은 사람들이 많은 선배들이 맑스 이론을 이렇게 저렇게 실천과 이론 이론과 실천 구체와 추상 추상과 구체 이런 변증법적 고민을 하면서 발전시켜왔거든요.
결론적으로 오늘 발제자가 이야기한 것은 그런 맑시즘 이론이거든요. 즉, 어떻게 혁명할 것인가 우리가 여기서 어떤 사건이라든가 용어에 대해서 화학적 물리적 분석을 하는 거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사건이라든가 용어가 있으면 이 민족주의라는 용어가 있으면 그걸 과학적으로 분석해버리면 뭔 의미가 있겠어요? 어머니의 눈물을 화학적으로 분석해버리면 엄마의 눈물은 소금 플러스 순수 맑은 물 이렇게 되는 거죠. 어머니의 눈물을 이런 논의 자리에서 소금 플러스 맑은 물로 해석을 해보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민족주의라든가 국가라든가 계급이라든가 이 모든 것들은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실천을 전제하지 않고 학술적으로 분석해 봤자 별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그것들을 혁명 이론적으로 다시 우리가 받아들이고 고민하기 위해서는 필요하겠죠. 그런 작업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화학적인 분석보다는 어떤 용어라든가 이데올로기가 있으면 그것을 현재 우리가 하고자 하는 시공간 속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되거든요.
오늘 많은 얘기가 나오는데 그중에서 중요한 게 애국주의, 민족 등등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제가 공부를 안 했지만 전공이 앤트로폴로지 인류학 하는 거거든요. 인류학이 뭐냐 하면 식민지 연구학입니다. 식민지 맨날 총칼로 할 수 없으니까 연구했던 학문이 인류학입니다. 인류학적으로 보면 이 지구상의 유럽이 자본주의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사악한 문명을 만들어내 전 지구를 유럽화시킨 거죠. 유럽화시킬 때 인류학이나 학문이 기여했던 게 이데올로기적인 거거든요.
민족이라는 개념은 생물학적 개념이 아닙니다. 민족이라는 개념 이데올로기입니다. 국가라는 개념도 이데올로기고요. 그 실체도 있죠. 우리가 운동을 전제로, 변혁을 전제로 이런 개념을 사용하고 분석하고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파성이라는 것들이 들어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민족이라는 개념에 혁명적 노동자 계급적 당파성이 들어갔을 때 그 민족이 우리 것이 되는 것이고 부르주아 당파성이 들어오면 적들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전선을 하지 않고서는 노동자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혁명할 수 없습니다. 지구상에 소규모 민족 단위가 500만 개가 넘어요. 그쪽에서는 민족이 굉장히 중요해요.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중요하고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하고 혁명을 위해서도 중요해요. 이 통일전선적 관점에서 혁명을 하고자 할 때 민족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적절히 잘 사용해서 반혁명 방파제로 쓰이고 있는 민족 개념을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걸 이제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요.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 사회의 3대 모순 3대 정치적 과제, 분단모순, 민족모순, 계급모순 3대 모순이잖아요. 이 3대 모순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면서 어떻게 하면 힘을 잘 합쳐가지고 이 사회주의 공동체로 나아갈 것인가 그런 개념에서 이 발제자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이면 좀 더 발전적인 논의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토론자: 저는 운동하시는 분들하고 생각하는 바가 조금 다릅니다. 굉장히 리버럴하기 때문에 사실 제목부터 조금 의구심이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사회주의 애국주의는 배치됩니다. 선생님 말씀은 배치되지 않는다는 거죠. 항상 근데 애국주의라는 말이 이게 굉장히 듣기 좋은 소리지만 사실 다르게 표현하면 국수주의의라는 비하의 말로도 충분히 해석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국가는 민족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이 에로스라는 말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냐면 자기 국가만 사랑하고 다른 국가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 쉽게 말하자면 제국주의 세계의 이념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어떤 개념입니다. 그렇다해도 국제주의하고 애국주의는 어쩌면 항상 대치 되는 개념이 아닐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발제자: 국가라고 이야기할 때, 우리는 실질적으로 있는 어떤 국가라는 형태, 그것에 대해서 이념적으로 뭔가 규정하는 것은 각자 다를 수 있다 하더라도 실재로서 국가는 존재한다라는 거죠. 식민주의 시대에 국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식민주의 시대에 있는 구성원들, 식민지인들이 자기들이 해방될 수 있는 어떤 조건을 만드는 거예요. 국가를 형성하는 겁니다. 그런 과정은 굉장히 정당하다고 봅니다. 그런 건 정당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국가가 가지는 국가에 대한 어떤 이념이라는 것은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애국주의라는 것이 국제주의랑 대치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말씀하시는 데에는 어떤 맥락이 좀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토론자: 질문이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사회주의 애국주의라고 했는데 결국은 사회주의 사회 마지막 단계로서의 공산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소멸한다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로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알 것 같은데 여기서 굳이 사회주의 애국주의라고 표현을 했단 말이에요. 애국주의는 또 민족하고도 또 다른 하나의 국가에 대한 충성이잖아요. 그래서 국가주의적 표현을 이걸 굳이 써야 하나 하는 이런 의문이 하나 있고요. 다른 하나는 여기 상당히 많은 부분을 이현숙이라는 분 입장을 주로 비판하는데 초점이 있어서 그러면 노정협하고 노사과연하고 가장 큰 차이는 뭐지 이런 의문이 좀 생겨가지고, 혹시 정리해 주실 수 있는지요.
발제자: 국가가 소멸하는데 왜 애국주의냐는 얘기를 하는데, 국가주의적 개념하고 애국심하고 좀 약간 다른 것 같아요. 이북에 대해 특히 저도 궁금했어요. 우리는 국가를 폭력의 도구로 알고 있잖아요. 근데 이북에서 맨날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애국심만 가지면 입장 좀 달라도 같이 할 수 있어 이런 얘기를 계속하잖아요. 심지어는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공산주의적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이것이 서로 제대로 철저하기만 하면 양자를 통일적으로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저는 고민해 보다가 우리가 너무 국제주의를 일면적으로 보는 거 아니냐 이런 생각에 이르렀어요. 지금 우리 운동의 질곡은 너무 국제주의가 없어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이 어마어마한 학살을 보는데, 오늘 서울역에서는 이스라엘 국기 들고 시위하고 있더라고요. 극우적인 종교 단체인 것 같은데, 저들은 저렇다 하더라도 이 어마어마한 학살에 대해서 노동자들도 사실 별 반응이 없어요. 자기 임단협과는 관계 없지만 이거에 대해서 궐기하고 파업까지 벌여야 할 상황이고, 진짜 어마어마한 학살인데 너무 국제주의 관점이 없고 자기 문제만 협소하게 봅니다. 그것이 우리 운동에 가장 부족한 문제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사실 국제주의가 부족한 문제도 주요 쟁점이에요.
또 하나는 국제주의를 잘못 해석한 문제도 있습니다. 노동자 국제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족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상당히 도외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도 역사적으로 해결 안 되는 이런 문제가 있고 분단 문제가 있는데, 이런 문제를 너무 도의시하는 거 아니냐 하는 문제를 얘기했습니다.
보통 저들이 애국심을 통해 민중을 동원하지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적 내용과 민족적 형식을 얘기하는데, 우리 말에 긍지를 갖고 우리 말을 발전시키고 우리 전통문화 중에 좋은 것을 더 발전시키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는 겁니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긍정적인 것들은 더 발전시켜내고, 그러면 사회적 내용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이지요.
근데 사실은 이북에 대한 얘기 많이 안 했어요. 다음 기회에 더 하고요 이북에서는 애국심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잖아요. 애국심 하나만 되면 입장이 달라도 같이 할 수 있다 이런 게 일제시대의 산물일 뿐인지, 지금은 그런 얘기를 많이 해서 저도 많이 궁금했는데, 그러면서 또 공산주의를 얘기한단 말입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좀 토론 과정에서 더 많이 얘기해서 좋은 얘기 많이 나오면 좋을 것 같고요. 아무튼 지금 결여된 게 많이 있기 때문에 이번 주제가 우리 운동에 필요한 이런 것들을 많이 채워나갈 수 있는 그런 좀 풍부한 자리가 됐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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