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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4 :
목적항이 Oran으로 fix되다. 미친다. 계속 황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연 4일째다. 배가 용케 견뎌 주는 것이 천만 다행이다. 그저 먹고, 보이지도 않는 하늘을 쳐다보고 밀어 닥치는 파도에 눈길을 둔 체 생각을 공중에 띄워 놓고 하루 또 하루를 보냈다. 가장 괴롭고 안타까운 시간. 이처럼 배가 싫고 내 집, 내 가족이 그리운 때가 없다. 이 지루함. 이 길을 택한 내 자신을 원망하기 열 두 번도 더했고 하늘을 향해 수월찮이 욕도 했다. 바람보다 더 크게 그나마 방향도 바람과는 다르게 밀려오는 거대한 너울이 두렵기까지 하다. Course도 제대로 유지할 수 없고 되지도 않는다. 그저 밀려가는 데로 둘 뿐이다. 다만 조금이래도 덜 흔들리는 방향으로-. 그것이 무엇보다 절실하고 간절한 소망일 뿐이니까.
Feb. 8(월) :
정오 위치가 항로상에서 약 60여마일 북상해 있다. 그럴 수 밖에-. 꼬박 6일을 계속 휘저어 놓았으니-. 전 북태평양이 벌집을 쑤신 듯 해놓았다. 용케 견디어 온 것이 스스로도 대견스럽다. 자정쯤 Gibraltal Strait를 Passing하다. 오늘의 정월 대보름. 달을 보고 깊은 절 한 번을 했다. 아무런 뜻도 없지만 왜 그런지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저 무사히 대서양을 또 한번 건넜다는 감사의 표시랄까. 다음 항차는 Limon-Antwerp라고 했으니 앞으로 두 번은 더 왔다 갔다 하기로 결정된 셈이다. 갈수록 아득하다.
그간 10여명의 선원들이 하선할 것을 원했고 개개인을 불러 면담을 했으나 별반 이득도 없다. 원칙대로 밀고 나가야 겠다.
Feb. 9 :
14:10 Oran 외항에 도착. Anchoring하다. 먼저 와있던 Greece선박의 Capt.가 불러서 대응해보니 너무 가깝다고 조금 떨어져 달란다. 이번에는 그냥 버티기로 했다.
Feb. 10 :
12:40시 Pilot 승선. 전에 한번 본 놈이다. Banana를 10상자나 달란다. 가져 가거라. 너네들 것인데-.
Feb. 11 :
전에 왔던 세관 놈들이 또 지랄을 했다. 담배 2Ctns 때문이다. 결국 더러운 걸 보고 참지 못한 내가 잘못인가 보다. 그렇게 약점을 찌르지 말고 모른 척 했더라면 술이나 한 몇병 가지고 갔을 것을-. Agent의 Mr. Jauwi란 놈도 똑 같은 놈. 결국 벌금이랍시고 받아 간 놈을 그놈이 아닌가. 덕분에 술과 담배는 안 뺏긴 셈이다. 피장파장이다.
Feb. 12 :
오후 6시 출항. 다음이 Livorno에서 Vado Savona로 바뀌다. 한 번도 제대로 계획대로 맞아 들어간 적이 없다. 입항 중 No.4 Cargo Winch의 유압 파이프가 터져 곤욕을 치루었으나 아무런 Claim이니 Delay는 없었다. 갈수록 고장 회수가 잦아지는 느낌이다. 아직도 8월까지는 버텨야 한다. 과연 잘 될는지?
Feb. 14 :
08:30 이태리의 Savona 외항 도착. 바로 접안하다. 역시 선진국답게 모든 것이 서비스 위주의 Agent 업무가 시원스럽다. 오랜만에 다시 겨울 맛을 본다. 짖궂은 겨울비로 그냥 배에 머문다.
Feb. 15 :
07:30 Agent에 가다. 대아에 전화. 신 상무와 통화하다. 교대에 관한 것은 캄캄 무소식이고 태평이다. 모두들 8월에 일본에 오는 줄로 알고 있다고 -. 천만이다. 저녁때 집에 전화하러 다시 나왔으나 여의치 못해 그냥 귀선. 지중해성 기후의 특성을 여지없이 발휘하는 겨울비가 청승스럽게 주룩 주룩 퍼붓는다. 아무런 防波시설이 없는 Banana부두. 풍력 5-6의 강풍이 계속한다. 10시부터 시작된 Panana Inspect! 생각보다 된통 걸렸다. 늙은 영감이 능구렁이처럼 슬슬 사람을 생으로 잡는다. 14:00에 마치다.
Feb. 17 :
터미널의 교환양에게 부탁하여 두 번 건 전화. 당신의 목소리. ‘나를 붙들어 달라’는 마지막 한마디가 몹시 안타깝다. 편지에서 읽은 서울 형님의 작고와 아울러 가슴 깊숙이 찔려 오는 당신의 마음! 과연 어쩌면 좋을 것인가? 써 두었던 대아와 Anglo의 서신을 찢고 다시 쓰다. 가급적이면 교대 해줄 것을 의뢰하다. 아무래도 받아 들여 질 것 같지 않아 불안하기도 하다. 저녁때 터진 No.1 B. C. D Deck의 Cargo Damage. 갈수록 태산이다. 다된 죽에 코빠지는 격이 아닌가. 그처럼 주의를 기울여 왔는데- . 도무지 이유를 찾지 못한다. Brain이 누설한 것이 분명한데 -. C/E는 기어이 아니란다. 심지어 손으로 찍어 맛을 보아도 짜다. 적어도 5-600 상자는 된다. 젖었다. 전 선원을 동원 할 수 있는데 까지는 새 상자에 Re-packing을 했다. 다행이 터미널 측의 수화주측에서 순순히 응해 주긴 했다. 하기야 내용물 자체는 하등의 변함이 없었으니까. 밤새워 만든 Sea Protest. 그것을 왜 도착 즉시 하지 않았던가? 매 항차 하지 말래도 해오던 것이었는데-. 방심이었다.
Feb. 17 :
꼬박지샌 지난밤. 일찍 Agent에 가다. Pine Crest에 전화. 일단 보고해 놓고 볼일. Protest가 안 된다고 Mr. Alexsandro가 얘기하다. 다시 P & I Club에 연락. 결국 공증인의 동의를 얻어 간단히 Sea Protest를 만들다. 천만다행. P & I Club의 Mr. E. M.
Capurro와 Check했으나 역시 원인은 불확실. 습기찬 해수보라가 Fan Motor로 Suction한 것이 아닐까 하는 내 주장은 거절. Brain Pipe의 파손을 주장한다. 결국 약 250Ctns는 Reject. 새 상자를 수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 그대로 Damage처리 할 것을 동의하고 P & I Club에서 처리 할 수 있다고 했다만 기분이 씁쓸하다. 찡그린 뭇 사람들의 표정들. 짓궂으리만치 각가지 질문 공세를 펼쳐올 Salen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출항 직전 Agent. Mr. Alexsandro가 가져온 Terminal Capt.의 Claim Note. 일단 ‘Only for Receipt’라고 하고 뒤에 Reply하기로 Remark한 뒤 Sign은 했으나 그 친구의 몇마디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다. 20:00시 강풍 속에 두 척의 Tug-boat의 도움을 받아 겨우 출항하다. 다시금 Limon까지 갈 일이 아득하지만 이것이 곧 내 길인 것을 -.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형님의 모습과 당신의 목소리. 그처럼 멀리 있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아득하기만 하다. 한 동안 가졌던 Wife 초청의 꿈! 다정히 이국의 거리를 함께 걸어보는 상상. 내가 해 주고 싶었던 털 코트를 입고 좋아하는 그의 모습을 그려보는 즐거움. 마음끗 쌓였던 회포를 마음과 몸으로 풀어 보려했던 그 순간순간들의 아련한 꿈들이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과연 사는 것이 무엇인가? 좀 더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던가. 정현이의 목소리. 그리고 ‘아빠’하고 힘없이 부르던 은영이의 목소리도 그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그래 모두 모두에게 미안하다. 모자라는 애비가 분명하다.
교대 희망자 13명, 내 자신까지 포함하면 14명을 Anglo와 대아에 Report하다. 그리고 다음 항차 Antwerp와 Hamburg에서 가능하면 해달라고 했다. 과연 들어 줄런지는 의문이다. 이번 항차도 결코 편안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안고 있다고 보자.
(그리고 여기서 잠깐 뜸을 띄운다. 아마도 그 다음 항차에 적하항인 중앙아메리카의 어느 항구에서 적하 중 몸을 굽는다고 며칠간 수영복만 입고 강한 햇살 밑에 딩굴었던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한참 후에 인식한 일이지만 이 해 4월에 유럽으로 가는 도중 원인불명의 어지러움 증세로 쓰러졌다. 그 부분부터 다시 이어본다. )
Apr. 4. 1982 :
21:00 갑자기 발병. 위치 북위 24도-56. 서경 060-56. 선교를 둘러보고 기관실 Control Room으로 가는 도중 격심한 현기증이 일어남.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빙글빙글 돌기만 함. 즉시 방으로 돌아옴. 약 3시간을 계속함. 2번 구토. 머리와 몸을 꼼짝할 수가 없음. 단 정신은 너무 또렷함. 23:00경 일단 현기증은 멎음.
Apr. 5 : Grusel(?)을 먹다. 정상 생활함.
Apr. 6 :
낮에는 이상없이 정상. 20:00경 세 차례에 걸쳐 꼭 같은 현기증 증세가 있었음. 저녁 식사 후 오락실에서, Bridge에서, 취침 전 목욕탕에서였다. 그러나 21:00시부터 계속 격심한 현기증이 있음. 전보다 다소 약해진 느낌.
Apr. 7:
계속되는 현기증. 머리가 내 몸에 붙어 있다는 감각이 없음. 2/O의 지압도 받음. 단 증세는 한 가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심하게 도는 것. 정신은 몸과 별개인 듯 극히 정상적임. 이런 증상은 히로시마마루에 승선 중 마지막에 동경에서 한번 경험한 적이 있다.
Apr. 8 :
아침부터 계속 증세가 있음. Owner에게 긴급 수배를 타전 함. 오후부터 다소 둔화. 겨우 눈을 뜸. 오른쪽으로 누우면 약간 덜하나 왼쪽으로 누우면 심함.
21:15시 위치 북위 43-28. 서경 031-34 영국의 Royal Navy Hospital과 VHF로 교신. Portside Radio를 경유, 감도가 나빠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증세만 간단히 얘기함. Plymouth 외항에 도착 즉시 의사를 대기시키겠다고 하며, 수시로 연락하라고 했음. 살았다는 생각이 듬. 아마도 Owner측에서 긴급 수배를 한 모양.
통신실까지 업혀 가서, 책상 위에 머리를 얹어 놓은 체 교신함. 아무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나, 그나마 그들과 영어로 서로 이해가 될 수 있을 만큼 대화가 가능했다는 사실에 대해 그간 짜증 속에서도 열심히 영어에 매달렸던 결과에 깊은 감사와 보람을 가짐.
Arp. 9 :
10:50 영국 Royal Hospital에서 호출. 상태를 묻고, Plymouth C.G(코스터가드)의 Doctor란 사람과 재교신. 목에 이상이 있는 듯하며, 정확한 ETA를 알려달라고 함.
13:00시부터는 후두부 좌측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가끔 발생하기 시작함.
16:00시부터 거의 현기증이 멎음. 머리를 약간이나마 움직일 수 있음이 무엇보다 다행.
21:00시부터 약간 회복. 머리를 벽에 기대고 앉을 수 있었음.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눈에 보이는 것이 오른쪽으로 이동해 보임. 머리를 어디든지 기대지 않으면 고개를 들고 있지 못한다.
Apr. 10 :
09:58 Plymouth C.G와 다시 교신. ETA 알리고, 도착 즉시 Doctor 대기할 것을 확임함. 위치 북위 48도00. 서경 015-35. 머리를 움직이면 현기증이 생기고 어지러워 움직일 수가 없음. 우선 머리를 가눌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임. 앉아서 겨우 벽에 머리를 기댄 체 얼굴을 닦고 면도를 함. 계속 죽만 먹고 소화제를 3-4차례 복용함. 식욕은 잃지 않은 듯 함. 오후 다소 좋아진 듯 하나, 두통에 미열이 옴.
Apr. 11 :
10:45 Plymouth 외항 도착. 즉시 Harbour Pilot 가 승선하고 이어서 Doctor. Agent 그리고 Port Health Office가 승선함. Doctor에 의한 검진결과 별다른 이상을 발견치 못함. 신경관계 같다며 정밀 검사를 위해 3-4일 입원을 권함. Agent, Doctor와 협의, 첫 기항지인 독일의 Hamburg에서 입원하기로 하고 Sea Pilot 수배함.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 보담도 우선은 잠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약을 준다. 단. 심한 두통, 불면이 있을 때만 먹으라고 했다. 아마도 수면제인 모양이다.
12:45 항만 도선사 하선함.
14:30 Brixham에서 Sea Pilot 승선. 저녁에 약을 먹은 후 6시간 숙면을 했으나 꿈이 많았음. 움직일 수는 있어나 어지러워 혼자 걷지를 못함. 혼자 움직이다가 실내에서 두 번 넘어짐. 그러나 조타수들의 부축으로 Bridge에 올라가 Pilot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Hamburg에서 교대. 입원하기로 결정 준비함. 책과 유리 재떨이 등을 상자에 넣어 갑판장에게 맡김.
Apr. 14 :
Hamburg 부두에 접안까지 전적으로 Sea Pilot의 수배로 이루어 졌음. 접안 즉시 Ambulance에 실려 짐과 함께 병원으로 향함. 침대 위에서 몸을 묶일 때는 눈물이 남. 병원 도착 즉시 옷을 갈아입고 Test에 들어감. 혈액, X-ray(가슴과 머리의 앞, 뒤). 심전도 등등. 그러나 원인을 발견치 못했다고 함. 오후 4시경. 다시 귀 검사와 제 자리 걸음 걷기 Test를 실시. 원인이 귀에 있음을 발견. 내일 이비인후과 전문 병원으로 이송한다고 함 19:00 혈압이 145-110임을 간호원이 일러주고 감. 접시에 담아 온 야채만의 죽은 더욱 서글프고 비참하게 함
Apr. 15. :
아침부터 오른쪽 눈에 심한 충혈과 통증이 있음. 10:10 다시 Ambulance에 실려 Hamburg 병원에 도착. 3인용 병실에 입원, 가수용됨. Agent 다녀감. Salen의 Telex를 가져옴. Owner. Anglo에 Air Mail를 의뢰함. 간호원들이 영어를 몰라 불편함. 밤에는 한국인 간호원들이 온다고 했음. 16:30 760호실(2인용)로 정식 입원 처리됨. 오전의 오른쪽 눈의 통증은 낮잠을 자고 난 후 없어졌으나 흐릿하고 찜찜함. 점심을 역시 야채 죽 한 접시. 이러다간 여기서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을 아닐는지?
18:00 전문의사가 진료시작. 청력 Test. 농 검사 등이다. 청력이 아주 나쁘며, 농(濃)은 균을 배양하여 그 균에 맞는 항생제를 만들어 투약하기 위함이란다. 양쪽의 고막이 없단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중이염. 내가 듣기로는 태어난지 7일만에 앓기 시작하여 근 40년을 고생해온 것이다. 원인은 양수가 들어갔다고 했다. 내가 기억하기만 해도 경북 대학병원에도 수월찮이 드나들었고, 심지어 양쪽 귀 앞에 뜨거운 뜸을 뜨기도, 지렁이 녹인 물이 좋다 해서 그것으로 치료를 받아본 적도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정말 고역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로선 의술의 한계 밖이었다. 그것이 결국 오늘의 이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우선 코약부터 투약한다. (약명: Otriven. 10ml. Lösung 0.1%). 양쪽 귀도 막는다. 더욱 적막강산이다. 7층에서 내려다보는 Hamburg교외의 봄 풍경 그리고 학교와 아담한 Apart와 자그만 단독주택 등을 내려다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아직 가끔은 간호원의 부축을 받아야 움직이지만 왠만하면 혼자서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다행이고 속 시원한 일이다.
22:00 한국인 간호원 Mrs. 洪과 Nienke를 만나다. 집에서 전화로 연락을 받고 좀 일찍 나왔단다. 눈물이 날 만큼 반갑고 고맙다. 두 분 모두 간호원으로 꽃다운 나이에 派獨. 지금은 중년이 되어 남편과 자녀를 가진 가정주부로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Mrs.홍은 경남 진주가 고향이며 같은 한국사람과, Mrs. Nienke는(본명은 박혜숙) 강원도 홍천 아가씨였으나 지금은 독일인과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둔 사람이다.
01:00까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다 처음 본 사람들 같지 않게-. 역시 핏줄 그리고 동족의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영국보다 독일에서 입원을 원한 것도 바로 이 점을 고려한 것이었다. 역시 잘했다는 생각이다. 의학은 영국보다 독일이 앞선다고 했다. 잘 판단했다고 얘기 해준다. 여러 가지를 물어 봤다. 첫번째는 원인이다. 중이염으로 귓속의 와우관(사람 몸의 평형을 유지하는 달팽이관)의 한쪽이 손상되어 평형감각을 유지하지 못해 한쪽으로 만 뱅뱅 돌았단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 자세한 일정은 아직 확실히 모르겠으나 통상 먼저 염증을 완치한 후에 수술, 고막을 해 넣는단다. 그렇지 않으면 재발의 우려가 있단다. 이 병원은 특히 이비인후과가 유명한 병원이라 잘 됐다며 시간이 걸리더래도 완전히 치료를 받고 가란다. 수술실에는 역시 Mrs. 李라는 한국 간호원이 있어 많은 도움이 될 거란다. 지금까지의 불안이 가신다. 귀가 펑 하고 뚫리는 기분이다. 살았다는 안도감이랄까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내일쯤 집에 전화를 하고 편지도 띄워야지.
Apr. 16(금) :
혈액 채취. 09:00-10:00 X-ray를 머리 부분만 10번을 찍었다. 그리고는 EKG 검사(?). 이제는 식당에 가서 빵과 Tea 등으로 스스로 식사를 하게 됐다. 오후에 옷장과 가방을 정리, 장기 입원에 대비하다. 병원의 입원복을 있으니 잠옷은 없어도 되겠다.
14:00 병원 담당 과장의 허락을 받은 다음 Sign를 하고 Mrs. Nienke의 안내로 은행에 들러 $300를 717D.M(독일마크)로 바꾸고, 스립퍼, 휴지, 봉투 등을 사고 15:20시 Texi로 돌아오다. Mrs.닌케의 도움이 계속 클 것으로 본다. 마침 오늘이 그의 은행가는 날이라 일찍 퇴근하게 되어 있어 가는 길에 나를 도와주게 된 것이다. 엊저녁에 약속한 일이다. 그러나 입원 중 외출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책임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병원의 허가를 필요로 한댔다. 15:50 집에 전화 아내와 통화하다. 그 어느 때보다 감회가 깊은 느낌이다. 16:00 역시 이 병원에 간호사로 근무하는 Mr. Kim이 찾아 왔다. 소문을 들었다고, 그는 내과에 근무하며 자기 부인도 이 병원의 간호원이다. 수술실에 있다는 Mrs. 이성자를 소개해 준다. 23:00 (한국시간 17일 06:00) 대아의 신택균 전무에게 전화하다.
밤에 잠이 안 온다. 생활을 다시 Tight 하게 그리고 Regular하게 쓰도록 짜야겠다. 얼마나 걸릴는지 아직은 예측을 못한다. 혈압을 재었으나 정상이랬다.
Apr. 17(토) :
05:30 체온과 맥박을 Check. 의사 치료 있었음. 목욕과 세탁 실시. 조용한 오후. 함께 입원해 있는 영감님의 할멈이 다녀가다. A-12 병동에 입원 동기생(?) 16명이 함께 식사하다. 다시 집과 대아에 편지.
Apr. 18(일) :
12일 만에 처음을 담배 한 대를 피워보다. 역시 무리다. 끊자. 지금까지 매 식사 후에 꼭 한 대씩 피워오던 담배이다. 3일째 통변이 안 된다. 음식 탓인가? 매일 빵과 치즈, 우유 등이 지금까지와의 Style과 완전히 달라졌다. 긴장 탓도 있겠지. 잠옷을 벗고 평복에 스웨트로 갈아입다. 운동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 230계단을 걸어서 오르내리기로 하다. 아직은 다소 무리인 듯하다만 너무 운동이 없다. 역시 조용한 일요일. 그러나 투약시간은 틀림없이 지키며 모든 것이 정해진 시간약속에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마음에 든다. 당직 Doctor가 지나가다 잠시 보자며 눈알의 움직임을 Test해보고 많이 좋아진다고 한다. 비공식 진료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14:00- 16:00 사이에는 많은 면회 온 가족들로 붐빈다. 가장 Homesick을 느끼는 시간이다. 3일만에 시원한 대변을 보다. 그러면 그렇지!
Apr. 19(월) :
Dr.Strüven이 치료. 약만 바꾸어 넣다. 잠이 불규칙하다. 낮잠을 삼가야겠다. 12:10 -20 Frau(독일어로 영어의 Mrs.) Nienke 다녀가다. 김밥을 만들어 오다. 집. 대아. 선주에게 편지 띄우다. 저녁 후 사과 2개를 사다. 오후 Mr. Meyer영감님께 독일어 강습을 받다. 옛날의 생각이 아련히 떠오른다. 21:00 Mrs. 홍이 다시 출근. 배추 김치와 무우무침을 가져다 준다. 낮에 Frau Nienke에게 받은 김밥과 함께 야식을 하다. 입맛이 개운하다. 자정까지 얘길 나누다. 시간을 너무 뺏은 것 같으나 그도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하기야 당직은 정해진 투약과 순시 이외는 돌발 사고가 없는 한 그냥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된단다. 커가는 두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야간근무를 자원하고 있으며 대부분 개인의 사정을 병원측에서 받아들여 준단다. 역시 선진국이다.
Apr. 20(화) :
Dr. Strüven이 치료. 양쪽 귀에 약을 넣지 않고 정맥주사를 맞다. 팔에다 프라스틱제 주사침을 꽂아둔 체 뚜껑을 덮어두고 오후 1시 40분 그 뚜껑을 열고 다시 주사액을 투입한다. 이 약이 가장 내가 보유한 균에 잘 듣는 페니실린제란다. 퇴근길에 Frau Nienke들렸다. 편지 부탁하고 잔돈 7DM 받고 어제 김밥 그릇과 사과 2개를 주다. 빈 그릇에 마음밖에 채워 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어제부터 한약과 Vitamin을 복용 시작하다. Mrs. 홍이 가루비누와 독일어 책, 사전을 갖다 준다. 이번 주일은 20:00 - 06:00까지 근무란다. 22:00시와 06:00 두 차례 그로부터 주사를 맞았다. 역시 그에게 청력검사 실시. 왼쪽이 나쁘다고 했다.
Apr. 21(수) :
Frau Nienke가 역시 독일어 교본과 사전을 갖다 준다. 옛날 처음 독일에 와서 무척 이 책들과 씨름했다고 감회가 어린 모양이다. 같은 방에 있던 Herr(독일어로 영어의 Mr.). Meyer영감님 퇴원. 그는 목젖을 수술로 제거하러 왔었다. 대부분 독일에서는 감기가 들든지 하면 목젖을 제거해버린다고 한다. 특히 어릴 때일수록 더욱 좋단다. 오후 Frau 서금자. Herr 高 만나다. 역시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한국인들이다.
전번에 이야기 들은 Mrs. 이성자가 찾아 왔다. 대구 신명여고 출신, 부군이 독일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한 사람이다. 이비인후과 수술실에서 근무 중. 체구가 작으만하며 차분하고 조용하다. 앞으로 많은 도움을 부탁하다. 더욱이 대구 이야기에는 친밀감이 더하다.
Professor Dr. Münzel이 직접 검사. 금요일쯤 수술을 하겠단다. 오른쪽이 나쁘니 그쪽부터 먼저 하겠다고. 염증은 거의 치료가 다 돼가니 염려할 것 없단다. 그는 이비인후과 과장이면서 대학교수를 겸하고 있단다. 그 밑에 부과장으로 Dr. Enget. Dr. Brunck horst. Dr. Strüven. Dr. Sniridoff. Dr. Lüdwig 이 있다. 나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과장과 부과장 그리고 Dr. Strüven 이다. 15:00 다시 주사. Agent 영감님 다녀가다. 과자봉지를 내민다. 고맙다. 20:30 Frau 홍을 통역으로 Dr. Strüven과 얘기. 내일 일단 오른쪽을 수술 예정. 수술 후 1주일 후에 다시 왼쪽을 수술. 한 주일 후 일단 퇴원을 시키고 10여일 정도 기다리다가 실밥을 따고 다시 경과를 볼 예정이란다. 그 동안의 퇴원에 따른 문제는 Agent와 상의하란다. 현재로 봐서 뼈에는 이상이 없고 수술이란 곧 고막 재생을 위한 것이란다. 현기증은 염증이 치료되면 자연히 치유될 것이며 수술과는 무관하며, 문제는 균이 치유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었다고. 퇴원 후에도 3-4개월간 정양이 필요함. 아직 염증은 완전히 치유되지는 않았으나 계속 치유되고 있으니 괜찮을 것임. 수술하는 날은 종일 굶어야 한다나. 그러니 오늘밤부터 일체 먹지 말라고 한다. 바짝 긴장이 되고 신경이 쓰인다. 자정 넘어 Frau 홍이 괜찮다며 소문은 내지 말라며 야식을 특별히 만들어 준다. 먹으면 수술 시 구토를 일으키는 수가 종종 있어 굶긴다고 한다.
Apr. 22(목)
10:00 독일인 간호원이 와서 주사를 한 대 놓는다. 약간 피로하게 하는 일종의 최면제라고 한다. 수술 중 불안함을 없애주기 위한 것인 모양. 10:30 - 12:00 수술 실시. 바짝 긴장을 했다. 전신마취를 하지 않았음이 다행. 칼이 귀 앞쪽을 눌러 잘라 감을 느낀다. 다행이 Frau 李가 가끔 한번씩 ‘Mr. 서’하고 불러주는 것이 그렇게 위안스러울 수가 없다.
수술 후 종일 잠을 자다. 입술이 마르고 못 견딜것만 같다. 저녁 8시쯤 Frau Lee가 왔다. 예상했던 것 보다 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귀뼈를 갉아 내고 고막을 해 넣었다고 했다. 1주일 후에 나머지 왼쪽을 마져 수술하겠다고 하더란다. 수영은 절대 엄금. 가급적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랬다. 귓구멍이 좁은 편이라고도 했다. 수술 후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고 이상이 느껴지면 즉시 담당간호원에게 이야기하랬다. 종일을 굶었다. 저녁이 Soup 한 접시, 자기 전에 홍 여사가 다시 우유와 수프 한 그릇을 갖다 주었다.
Apr. 23(금) :
06:00 아침 주사시 Frau 홍이 다음 주일은 휴가라 5월초에 다시 출근하니 다시 보잔다. 마치 엄마를 떼어놓는 아이의 심정 같다. 급하면 집에 전화하라고 번호를 적어준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아침부터는 다시 옷을 갈아입고 식사를 하다. 오전은 내내 잠만 온다. 아직 어제 수술시 마취기가 남은 모양이다. 14:00 주사는 큰 것 2개를 놓는다. 지금까지는 큰 것 하나와 작은 것 한 개를 맞았었는데-. 아직도 정신이 얼얼하다. 15:00 전화를 했으나 안 된다. 고장인가? Frau Nienke가 잠시 다녀가다. 자정쯤 집에 전화하다. 아직 편지를 못 받은 모양. 목소리를 듣는 것만 해도 살 것 같은 기분이다. 턱과 머리 위로 흰 붕대를 칭칭 감았는데도 전화소리가 들리는 것이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고 다행스런 일이다.
Apr. 24(토) :
엊저녁에 비가 오더니 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다. 기분처럼-. 변비가 차츰 나아져 간다. 다소 긴장이 풀리는가 보다. 무료한 하루다. Herr. 김이 다녀가고 Herr. 고가 퇴근길에 그의 두 아이를 데리고 왔다, 콜라 두 병을 사들고-. 애들이 너무 귀엽다. Nitoku Maru호가 함부르그에 정박 중이고 Unity Reefer호는 28일 입항예정이라는 소식을 듣다. 어지러운 기운이 아직도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마음껏 움직여 보고 싶은 강한 충동이 있다. 영영 이렇게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함께 입원중인 Herr. Knack의 마누라가 다녀가고 그의 TV로 종일을 보내다. 그는 월요일이면 퇴원이라고 좋아한다. 편지를 썼으나 부치지를 못했다. 내일을 다시 일요일(Sonntag)인데 어찌 하루를 보낼 것인가?
Apr. 25(일) :
어제보다 한결 기분이 맑고 보이는 것이 산뜻한 느낌이 든다. 07:00시부터 20분간 산책을 해보았으나 역시 무리인 것 같다. 오전 중에는 조용히 침대에서 쉬기로 하다. 약간의 잠도 자고-. 오랜만에 화창한 날씨를 본다. 파란 하늘 가운데를 나르는 비행기의 두 줄기 구름 항적이 선명하다. 아마도 남쪽에서 북으로 나는 같기도 한데, 어디로 가는 비행기일까? 저걸 타야 하는데. 오후 3시쯤은 면회자들로 북적인다.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것이 한결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다행이다. 분명히 좋아지는가 보다. 수술 후에는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았다. 이상유무만 확인하고 주사만 계속한다.
창밖으로 내려다 본 파란 잔디밭에 헬리곱터 한 대가 내려앉고 환자가 실려온다. 나도 저 신세가 될뻔 했다. 내일쯤 다시 전화해야겠다. 앓기 시작한지 20여일이다. 계속 그 동안 어지러운 상태였으니 무리일 수밖에-. 어서 갔으면 싶다. Frau 홍에게 전화하다. 급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안부 전화를 빌미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을 따름이다.
Apr. 26(월) :
간밤엔 잠을 설쳤다. 어제와는 달리 또 찌뿌린 날씨에 바람이 찹다. 4월 하순인데도-. 08:30시 5일간 같이 있던 Herr. Knack이 퇴원하다. 반가워하는 그의 표정과 심정이 이해가 간다. 길가에 세워둔 차까지 TV와 Radio 등 짐을 들어다 주고 악수로 인사를 나누다. 여전히 움직이는 것이 불안하다.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TV가 없으니 더욱 허전하다. 함께 있던 꽃 한송이마져 없어졌다. 텅 빈 공간이 된 느낌이다. Herr. 고가 다시 음료수 두 병을 들고 와 주었다.
Dr. Stauven이 Frau 홍을 불러 함께 점검한다. 아픈 데는 없고 입안 양쪽에 이상한 줄이 생겼음을 얘기하다. 치아와 나란히 생긴 것이며 양 볼이 약간 부었기 때문이니 괜찮다고 했다. 또 안심. 저녁 식사 후 마침 Frau Lee가 약 가지러 왔다가 만났다. 휴게실에서 1시간 가량 얘기를 나누었다. 오늘이 야간 대기 근무란다. 단 하나뿐인 아들 때문에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또 학문을 하는 남편의 뒷바라지에 아직도 생활의 영향을 받는단다. 역시 여자의 작은 몸집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님을 다시 느낀다. 독일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도 제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있뎄다. 일단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독일에서는 설 수 없게 되어 있으니 그것도 문제이고 한국으로 가봐야 기다리는 자리는 없으니 오도 가도 못하는 입장이다. 두 내외의 직업상 어릴 때부터 부모의 애정을 모르고 자란 외동아들의 사고방식이 현지의 환경과 어울려 더욱 어렵게 된 것 같다.
두 번 전화했다. 편지를 받은 모양. Unity Reefer 교대자가 28일 오는 모양. 편지라고 보냈을 라나. 역시 숙면을 못하고 뒤척이다 말았다. 왜 이럴까? 온갖 잡념과 망상이 뒤따른다. 이래선 안 되는데-. 머리가 가려워 미치겠다. 붕대를 했으니 어쩔 수도 없다.
Apr. 27(화) :
아침 식사 전 15분간을 걷다. 오늘 다시 화창한 날씨다. 일기가 변덕이 심하다.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의 자전거 행렬이 싱싱하다. 어제 입원한 젊은 친구가 오늘 아침 입안을 수술 받다. 지난 두 주일간의 결산을 해 본다. 전화비용이 많이 나갔다. 이젠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삼가자.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모른다.
Anglo 서 사장에게 편지 받다. 고마운 내용이다. 머리 붕대를 풀고 귀만 덮는 까만 붕대로 바꾸다. 한결 시원하다만 머리 밑이 더욱 가렵다. 저녁에 애들에게 편지 쓰다. 왼쪽 오금지와 우측 허벅지가 가려워 간호원에게 물었더니 주사에 의한 알레르기현상이란다. 8일만에 나타난다. 잘 때 알약을 먹고 연고를 발랐으나 가려움이 가시질 않는다. 낮에 항문이 가렵고 이상해서 두 번이나 뜨거운 물에 씻곤 했는데 그것도 결국 알레르기 탓이였나 보다.
Apr. 28(수) :
알레르기 때문에 주사를 중단하다. 더 이상 효과가 없단다. 새벽에 주는 알약을 먹었더니 얼얼하다. 오늘쯤 U/Reefer 교대자가 오려나? 12:00경 Prof. Münzel 및 Dr. 들의 회진이 있었다. 그러나 저네들만 얘기하고 Report를 본다. 다만 간간히 Frau Lee란 말만 들린다. 좋아진다고 한마디를 남기고 갔다. 15:30 Dr. Strüven이 왼쪽 귀를 검사. 많이 좋아졌으나 아직 냄새가 조금 남아있단다. 지금까지의 주사는 페니실린이였는데 이제 더 필요하지 않으나 주사바늘은 며칠만 더 놔둬 보잔다. 오른쪽 수술한 귀는 내일 붕대를 떼내고 검사하며 3-4일 후에 왼쪽을 수술할 예정이랬다. 왼쪽 다리가 너무 가렵다. 연고 보다는 가루약이 낫다고 가루약으로 가져다 준다. 아픈 것보다 가려운 것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리, 허리 그리고 머리마져 온통 벌겋게 물들었다. 머리에는 비듬이 덕지덕지 앉았다. 손만데면 우수수 떨어진다. 종일 꼼짝을 안 했다. 왠일인지 여늬 날보다 우울한 기분이다. 오후 다시 산보. 그러나 아직도 날씨가 싸늘하고 바람이 세다. Agent의 MR. Belohonbeok의 집에 전화했더니 U/Reefer가 함부르그에 입항하지 않는다고 한다. 왠일인지는 자기도 모른단다. 왠일일까? 퇴원에 따른 주거문제로 내일 오후에 병원으로 오겠다고 했다. 새로 입원한 젊은 친구의 애인인가 싶은 아가씨가 왔다. 물론 저네들의 습관이겠지만 포옹과 진한 뽀뽀는 심한 스트레스를 가져다준다. 먼저 번 Herr, Knack에 비하면 영 쌍놈이다. Herr 고가 다녀가다. 이번 주말에는 저의 집에 가잔다. 그의 부인이 같은 徐氏라 그런지 생각해 주는 것이 고맙다. 일찍 누웠는데 의외로 Frau 홍이 왔다. 비번인데 갑자기 결원이 생겨 호출을 받았다고 -. 그리고 Frau Nienke도 왔다. 오늘밤은 근무조이나 그간 무척 바빴단다. 밤중에 조용해지자 셋이 어울려 새벽 2시까지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다. 재미도 있었지만 같은 한 사람은 같은 동족과 다른 한 사람은 독일인과 결혼하여 애를 낳고 생활하는 두 Frau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Dr. Swiridoff의 말로는 Agent를 통해서 빨리 귀국하도록 하라는 연락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병원으로서는 왼쪽을 마져 수술해야 한다고 했단다. PineCrest에서 연락한 것일까? 내일 Agent가 온댔으니 종합적으로 얘길 해야겠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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