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날 아침, 제 어린 시절의 아담한 보금자리, 이제 다시 한 번 더 볼 길 없는 뷔소네를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사랑하는 저의 임금님의 팔을 잡고 가르멜 산을 올라갔습니다. 전날 저녁처럼 온 집안이 모여서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영했습니다. 예수께서 사랑하는 친척들의 마음에 내려오시자, 제 둘레에서는 느껴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원고 A 69r°)
눈물을 흘리지 않은 건 저밖에 없었습니다마는, 우리에게 수도원 문을 향하여 나아가라는 눈짓을 하는 것을 볼 때 가슴이 ‘어떻게나 몹시' 뛰는지, 발을 옮겨 놓을 수가 없을 듯 하였습니다. 가슴이 이렇게 너무 심하게 뛰다가 죽지나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저는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아! 그 순간! 겪어 본 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원고 A 69r°)
잠시 후 제 뒤에서 방주의 문은 닫히고 저는, 어머니가 되셨었고 앞으로는 제 행동의 표본으로 받들 ‘사랑하는 언니들'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리하여 제 원은 마침내 이루어져서, 제 영혼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그윽하고 깊은 평화를 맛보았습니다. 이 마음속 평화는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7년 반째나 제 몫이 되어서 아무리 어려운 시련 중에도 그것을 잃지 않았습니다.
(원고 A 69r°)
주교님은 예절 날을 1월 10일로 정하셨습니다. 참으로 오래 고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얼마나 아름다운 명절이었습니까...?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눈조차 소복히 내렸습니다... 제가 눈을 무척 좋아했다는 걸 원장님께 말씀드렸던가요...? 어렸을 적에는 그 하얀 빛깔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가장 즐거운 일의 하나는, 눈송이가 펄펄 내리는 아래 걸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눈에 대한 이 취미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저는 겨울의 조그만 꽃이며, 또 제 어린 눈에 비친 자연의 첫번 치장이 아마 눈덮인 흰 망토였던 까닭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 착복식 날, 자연도 저와같이 하얗게 치장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 즐거운 날의 전날 저는 때때로 가랑비가 내리는 회색 하늘을 서글프게 바라보았습니다. 날씨는 아주 따뜻해서, 저는 눈을 볼 희망을 버렸었습니다. 다음날 아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명절은 즐거웠으며 제일 아름답고 제일 즐거웠던 꽃은 사랑하는 저의 임금님이었습니다. 여태껏 그토록 아름답고 ‘의젓했을' 때는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분을 찬미하였으니, 이날은 아버지가 승리하신 날이요, 이세상에서의 마지막 명절이었습니다. (원고 A 72r°)
마지막으로 저의 사랑하는 임금님을 안아 보고 다시 봉쇄 안으로 들어갔을 때 회랑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꽃과 촛불 가운데에서 제게 미소하시는 ‘분홍빛 예수 아기 석상이었고, 눈을 돌리니 ‘눈송이’가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뒤뜰은 저처럼 소복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고운 예수님의 마음씨입니까! 당신의 어린 약혼자의 원을 채워 주시려고 눈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아무리 권세가 있다 하더라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눈을 내리게 할 만한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아마 세속 사람들도 이러한 생각을 해보았을지 모릅니다. 어떻든 확실한 것은 제 착복식 날 눈이 온 것을 조그만 기적으로 보고 온 읍내가 이상히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제가 눈을 좋아하는 것은 별취미라고들 했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눈과같이 흰 백합을 사랑하시는 그분, 동정녀들의 정배이신 분의 ‘형언할 수 없는 자애’가 더 밝게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원고 A 72v°)
지루하고 피곤한 일을 위해 자매가 필요했을 때 데레사는 항상 자신을 바쳤습니다. 특히 빨래를 할 때 그녀는 자기 포기에 재능이 있었다.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 찬물로 헹구거나 뜨거운 물로 씻기 위해 세탁실에 머무르는 것이 더 좋은지 물었습니다. "오! 답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찬물에 가는 것이 귀찮으면 다른 사람도 귀찮게 한다는 신호입니다. 그럼 거기로 가세요. 반대로 따뜻하다면 세탁실에서 기호대로 머물러요. 최악의 장소를 택함으로써 우리는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자기 절제와 애덕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그 후 나는 그녀가 세탁실에서 가장 더운 곳과 공기가 가장 적은 곳을 정확하게 차지하는 것을 왜 보았는지 이해했습니다. (성심의 마리아 증언)
가대 중앙에서 내가 주간 소임이었을 때 큰 소리로 기도를 낭송하면서 성무일도를 낭송하는 동안 얼마나 자랑 스러웠습니까! 사제들이 미사 때 똑같은 기도를 하신 것을 기억하니 자랑 스러웠습니다. 저도 그처럼 축복받은 성사 전에 큰 소리로 기도하고 축복과 사죄를 전하며 제가 1선창 이었을 때 복음을 읽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노란수첩 1897 년 8 월 6 일, 6 번째 말.
제가 아직 수련 수녀였을 적에 하느님께서 일깨워 주셔서 행한 애덕의 행동이 기억에 떠오릅니다. 아주 하찮은 것이긴 하지만, ‘은밀한 데서 보시고’, 행동의 크기보다는 속마음을 더 중히 보시는 성부께서는 후세를 기다리지 않고, ‘제게 이미 갚아 주셨습니다., 그것은 성 베드로 자매가 아직 성당에도 나가고 식당에도 나가고 있을 때입니다. 저녁 묵상 때 그 자매는 제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여섯시 십분 전이면 묵상을 하다 말고 이 자매를 식당으로 데려다 주어야만 했습니다. 간호 수녀들은 환자들이 너무 많아서 이 자매를 데리러 올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때 너무나 아파서 자기 안내자를 좋아하지 않던 가엾은 성 베드로 수녀를 만족하게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작은 일을 제가 맡겠다고 하기는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곧 내게 해준 것이다.”(마태 25, 40)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니, 애덕을 행할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공손하게 그 이를 데려다 주겠노라고 했습니다만, 제가 돌보아주는 것을 승낙하게 하기까지에는 여간 힘이 들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저는 그 일을 맡게 되었고, 말할 수 없는 선의를 보여서 완전히 성공하였습니다. (원고 C 28v°)
글쎄, 나는 십자가의 길을 시작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하느님을 향한 너무나 격렬한 사랑의 불에 완전히 사로 잡혀다고 말하는 것 외에는 설명 할 수 없습니다. 오! 그 불과 달콤함이 동시에! 나는 사랑으로 불타고 있었고, 순간 순간 죽지 않고는 이 열정을 견딜 수 없을 것임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는 성인들이 자주 경험 한 이러한 상태에 대해 말하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단 한 번만 경험했고, 곧바로 습관적인 메마름 상태로 되돌아갔다. (노란 수첩, 1897년 7월 7일, 두 번째 말)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