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학문으로써 (본래 저절로 그러한 성性을 알아차리는 바를) 일삼게 되면, (마음속에서 무위를 일삼고자 하는 바가) 나날이 더해지게 되고, 도道로써 (본래 저절로 그러한 성性을 일삼는 바를) 일삼게 되면, (몸속에서 유위를 일삼고자 하는 바가) 나날이 덜어지게 된다. (학문과 도道로써, 마음과 몸속에서 유위를) 덜어내고 덜어내게 되면, (마음과 몸이 본래 저절로 그러한 성性대로) 무위하는 바에 이르게 된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위학爲學은) 학문으로써, (본래 저절로 그러한 성性을) 알아차린다는 말이다. (위도爲道는) 도道로써 (본래 저절로 그러한 성性을) 일삼는다는 말이다. (이른바, 학문으로써, 본래 저절로 그러한 성性을) 알아차리게 되면, (본래 저절로 그러한 성性) 이것이 (마음속에서) 넓어지게 되고, 따라서 (본래 저절로 그러한 성性이 마음속에서) 무늬지워지게 되며, 따라서 (마음속에서 무위無爲를) 일삼고자 하는 바, 그것이 나날이 더해지게 된다. (이른바, 도道로써, 본래 저절로 그러한 성性이) 일삼게 되면, (본래 저절로 그러한 성性) 이것이 (몸속에서) 어우러지게 되고, 따라서 (본래 저절로 그러한 성性이 몸속에서) 질서지워지게 되며, 따라서 (몸속에서 유위有爲를) 일삼고자 하는 바, 그것이 나날이 덜어지게 된다. 〔율곡栗谷은 무위無爲의 실천을 위한 성性의 인식, 성性의 인식을 위한 “학문學”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데, 독창적인 입장이다〕
學以知言. 道以行言. 知, 是, 博之, 以文, 故欲, 其, 日益. 行, 是, 約之, 以禮, 故欲, 其, 日損.
이른바, 세상 사람들의 (본래 저절로 그러한) 성(性; 四端·太極·命·道·德)은 (마음과 몸이) 온갖 (무위無爲를 일삼기를) 잘하는 바가 저절로 그러하게 충족되는 바의 가운데 자리한다. (이른바, 마음과 몸이 무위無爲를 일삼기를) 잘하는 바는 (마음과 몸이 일부러 일삼아) 보태지고 더해지는 (특별한) 이치를 가지는 바가 없다. 단지, (마음과 몸이 무위無爲를 일삼기를 잘하는 바는) 그 기(氣; 七情)가 건네준 물건인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欲; 有爲)가 얽히고설킨 바를 덜어내 없애는 바일 따름이다. (이른바, 마음과 몸이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얽히고설킨 바) 그것을 덜어내고 또 덜어냄으로써, (더이상) 덜어낼 수 있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바에 이르게 되면, 그 (마음과 몸은) 본래 저절로 그러한 성性을 되돌이키게 된다.
盖人性之, 中萬善, 自足. 善, 無加益之理. 只當損去其氣, 稟物欲之, 累耳. 損之又損之以至於無可損, 則復其本然之性矣.
여기까지가 제6장이다. (제6장은 무위無爲를 통한 수기修己의 의미를 설명한 장으로서) 앞 (제5)장(의 내용)을 이으면서, 다음 (제7)장의 (무위無爲를 통한 치인治人의) 의미를 일으킨다.
右第六章. 承上章, 以起下章之義.
첫댓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저의 부족함 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