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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이란 제3세계 사람들이 미국을 이상적인 나라로 동경하는 것을 뜻한다. 이민자들에게 미국은 출신 계층과 상관없이 성실하게 노력하면 성공과 번영을 이룰 수 있는 국가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너도나도 새 인생을 시작하려고 미국 이민을 꿈꾸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이다. 꿈은 현실이 아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한갓 환상일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미국을 이상적인 국가로 동경하기 일쑤인데, 미국의 실상은 상상하는 것과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사회는 미국 대도시 중산층 이상의 생활이다. 미국사회의 빈곤층 문제는 가려진 채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어느 사회보다 빈부 차가 극심하며 계층 간의 갈등이 심각한 나라이다. 최근으로 올수록 미국의 경제성장이 하향 곡선을 이루면서 빈곤 문제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20세기에 호황을 누렸던 공장지대는 21세기에 들어와서 급격하게 쇠퇴한 상태여서 지역적 불평등도 고착화된 상태이다.
산업도시가 몰락하자 도시의 중심부는 점차 슬럼화 되고 있다. 오하이오의 철강 도시가 “일자리와 희망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큰 폭으로 사라져가는 동네”인 것처럼, 미국사회도 점차 몰락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 제조업이 쇠퇴하는 반면 국가부채는 엄청나게 늘어나는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 들고 있는 상태이다.
민주주의도 크게 후퇴하여 트럼프와 같은 권위주의자가 권력을 장악하여 독선적 횡포를 부리고 있다. 이른바 ‘트럼피즘’은 선거 불복과 폭력을 조장할 뿐 아니라 정부 기구들을 헌법이나 국가보다 트럼프 개인에 충성하도록 강요하는 한편, 미국 우선의 보호무역주의와 관세 압박으로 경제적 침탈을 일삼고 있다. 지금 중국은 자유무역주의와 다자주의를 표방하며 개방적 무역체제를 추구하고 있는데, 오히려 미국은 그와 반대로 보호무역주의와 일방주의를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중국과 반대로 미국이 자유무역을 거부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그러므로 APEC회담에서도 미국과 중국이 자유무역 표방을 두고 ‘경주선언문’ 합의에 난항을 겪기도 했다.
미국의 빈곤층 사회는 한국보다 문제가 더 심각하다. 재산세에 의한 공립학교 운영으로 빈곤 지역 학교는 교육의 질이 낮아서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다. 대도시에는 집 없는 노숙자들이 계속 늘어날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은 의료보험에서 소외되어 만성 질환을 겪기 일쑤이고 평균 수명도 크게 낮다. 빈곤 지역에는 실업률과 범죄율이 특히 높고 마약 중독자들이 많은 것은 물론, 총기 소지에 따른 치안이 불안하여 밤에는 안전하게 나다닐 수조차 없다. 따라서 미국의 빈곤 문제는 단순히 소득 수준이 낮은 것을 넘어서 범죄와 마약, 폭력, 총기, 치안부재, 슬럼화 등의 복합적인 문제와 서로 얽혀 있다. 그러므로 미국은 겉으로 보기에 부국일지 모르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빈곤 문제가 심각한 나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을 기회의 땅으로 믿는 이민자들의 꿈이지만, 미국 내 빈곤층이 꾸는 꿈이기도 하다. 미국의 빈곤 계층도 같은 꿈을 꾸지만 이룰 수 없는 희망고문일 따름이다. 실제로 빈곤 계층에서 벗어나 신분 상승을 하는 일은 ‘개천에서 용 나는 격’으로 상당히 어려운 까닭이다. 이러한 빈곤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자신이 직접 겪은 대로 가감 없이 솔직하게 서술한 것이 J. D. 벤스의 <<힐빌리의 노래>>(흐름출판, 2017)이다. 저자 벤스는 지금 미국 부통령이다.
2. <<힐빌리의 노래>>는 미국내 빈곤계층의 아메리칸 드림에 관한 저자의 자전적 회고록이다. 개인적으로는 회고록이고 가족사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미국의 어두운 면을 충격적으로 폭로한 빈곤계층 보고서이자, 백인 노동자 사회의 고질적 병증을 포착한 질병 진단서이며, 내일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절박한 아우성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 제목을 <<힐빌리의 노래>>가 아니라 “힐빌리의 슬픈 노래”로 번역해야 제격이다. 왜냐하면 원제의 엘레지(Elegy)는 노래(song)가 아니라 비가(悲歌) 곧 애절한 노래 또는 슬픈 노래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책은 낙후된 소도시 공장지대, 이른바 ‘러스트벨트’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저자의 생생한 자서전이자 체험적 고백록이다. “운이 좋으면 수급자 신세를 면하는 정도이고 운이 나쁘면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는 조건 속에서 살아남은 자신의 삶을 여과 없이 서술함으로써 성장 에세이의 한 지평을 열었다. 그가 지금 미국 부통령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미국에서 미국에서는 힐빌리(Hillbillies)란 ‘가난한 촌뜨기’ 또는 ‘산골 촌놈’을 뜻한다. 힐빌리는 백인 노동자들이지만 마치 신분이나 인종처럼 경제적 빈곤이 대를 이어 세습되었다. “우리에게 가난은 가풍이나 다름없다. 우리 조상들은 대개 남부의 노예 경제 시대에 날품팔이부터 시작하여 소작농과 광부를 거쳐 최근에는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살았다.” 세대에 따라 농업노동의 날품팔이, 소작농, 광업시대의 광부, 산업시대의 기계공으로 구체적 직업은 바뀌었으되, 육체노동자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힐빌리를 으레 경멸하는 말로 쓰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세태에 맞서서 가치중립적인 뜻으로 쓰고 있으며, 힐빌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서술한다. 따라서 그는 힐빌리를 이웃이나 친구, 또는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동네 사람들’로 일컫기도 한다. 이러한 정서적 공감대와 달리 힐빌리 사람들의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냉정함도 잃지 않았다.
힐빌리들은 언행이 거칠고 폭력적이며 성생활이 문란한데다가 걸핏하면 마약을 하고 가정과 아이들을 돌보지 않기 예사이다. 매사에 게으르며 있어 보이려고 과소비를 하기 일쑤이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힐빌리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어떤 부정적 모습이든 솔직하게 다 털어놓는다. 그러므로 제목을 <<힐빌리의 노래>>라고 퍽 낭만적으로 변역했지만, 읽는 내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까닭에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3. 힐빌리들 가운데도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무조건 두 부류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첫 번째 부류는 금수저로 태어난 행운아이다. “이들은 부유하고 인맥이 좋은 집안 출신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삶이 정해져 있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부류는 재주꾼으로 태어난 실력파이다. “이들은 타고난 두뇌 덕에 실패를 하려야 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가난을 세습하는 힐빌리들 가운데에는 첫 번째 부류의 금수저는 찾기 어렵다.
따라서 “누군가 성공했다고 하면 그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한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권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힐빌리들은 고된 노력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백인 노동계층이 화이트칼라 백인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오랜 시간 노동한다는 조사보고는 명백하게 잘못되었다. 물론 그들이 일을 적게 하는 것은 게으름 탓이 아니라 사회적 일자리 부족 때문이다.
저자가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할보(외할배)와 할모(외할매), 엄마의 영향 덕분이다. 할보는 저자에게 학교에서 아직 배우지 않은 수학을 가르쳐 주었다. 2년에 걸쳐 할보와 함께 복잡한 수학문제를 풀었고 잘 풀면 아이스크림을 상으로 받았다. 엄마는 저자가 글자를 알기도 전에 도서관에 데려가 도서 대출 카드를 만들어주고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언제든지 어린이 책을 집으로 빌려올 수 있었다. 이 둘이 어린 저자를 성장시키는 큰 기둥이었다.
할모는 싸움도 경험을 통해 배우도록 했다. 주먹으로 얼굴을 맞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물었을 때, 할모는 망설임없이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할모가 저자의 빰을 정통으로 가격한 것이다. 상대방이 덤비기 전에는 절대로 싸우지 말라는 싸움의 원칙도 가르쳐주고 상대방을 쓰러뜨리게 하는 싸움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할모에게 배운 대로 왕따를 주도하는 학생을 가격하여 쓰러뜨리고 할모로부터 칭찬을 듣기도 했다.
할보와 할모는 어딜 가든 외투 주머니나 자동차 좌석 아래에 장전된 총을 늘 준비하고 다니는 전형적인 힐빌리였다. 그런대로 행복한 시절이었지만 부모가 할보와 할모 곁을 떠나 이사를 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때가 열한 살 무렵이었다. 엄마와 새 아빠 ‘밥’이 늘 부부싸움을 벌인 것이다. 욕설과 폭력이 오가고 살림살이가 부서졌다. 학교도 싫었지만 집에 가기는 더 싫었다.
그때부터 학교 성적이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집에서 겪은 정신적 충격으로 건강도 나빠졌다. 그러나 이런 환경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힐빌리 이웃들은 곧잘 싸움을 했다. 따라서 저자의 부모도 비정상이라 할 수 없다. “언제나 싸움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저자가 싸움을 피해 숨을 곳은 없었다. 나중에는 부모의 싸움을 구경할 정도로 싸움에 중독되기도 했다.
부부 싸움의 끝은 이혼이었다. 자살 소동 이후 엄마는 두 번째 남편과 이혼한 뒤 원래 살던 할보네 이웃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바람이 나서, 몇 달마다 상대를 바꿔가며 남자친구를 사귀고 으레 새벽 2,3시쯤 집에 들어오기 예사였다.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엄마는 파티와 술을 즐겼으며 주사까지 부렸다.
저자는 집을 뛰쳐나와 할모 집으로 가서 엄마를 만나기 싫다고 했지만 할모가 달래서 다시 엄마를 만났고, 엄마는 그때마다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곧잘 화해했지만, 때로는 모자간에 격렬한 추격전이 벌어지고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그 소동으로 엄마는 감금되고 재판까지 받았으며 저자가 원할 때만 엄마와 살기로 약속하고 할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
엄마가 이혼과 재혼을 거듭한 까닭에 형제자매 관계가 매우 복잡했다. 아버지가 바뀔 때마다 거기에 딸린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생물학적 아버지와 법적 아버지가 달랐으며, 법적 아버지도 헤어져서 떠났으므로 생일날 축하 전화조차 받지 못했다. 어머니의 거듭된 재혼에 따라 저자에게 아버지는 아주 여럿이었으나 사실상 한 사람의 아버지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사랑하는 누나인 ‘린지’조차 아버지가 다른 이부(異父) 남매였다. 할모에게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반려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린지 누나는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고 저자를 잘 돌봐주고 지켜주었으며, 때로는 엄마 노릇까지 해주었다. 누나는 외모가 예뻐서 모델 오디션 예선에 뽑혔지만 뉴욕에서 하는 결선에 출연할 경비가 없어서 포기해야 했다. 가난 탓에 누나의 꿈은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4. 어느 날 엄마는 저자의 생물학적 아버지 ‘돈 보먼’과 통화를 시켜주었다. 아빠가 만나고 싶다고 하자 엄마의 동의를 얻어서 아빠를 만났다. 아빠의 집은 넓은 농장이었으며 여러 종류의 가축을 길렀다. 강아지 ‘대니’와 들판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잔디밭에 드러눕곤 했다. 아빠의 집은 이상할 정도로 늘 평온했다. 다툴 때도 서로 언성을 높이지 않고 모욕적인 말을 주고받지도 않았다. 이전에 엄마로부터 들은 아빠에 관한 말과 전혀 딴판이었다.
아빠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자기를 버린 것이 사실인지 가끔씩 물어보았다. 아빠가 양육권을 포기했다는 할모와 엄마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양육권을 지키려고 변호사를 선임해서 투쟁했지만, 양육권 분쟁이 저자를 더 망가지게 할까봐 걱정했다는 것이다. 아빠가 면접 교섭권으로 만나러 오면, 저자는 아빠에게 납치당해 할모를 못 보게 될까 봐 침대 밑에 숨어 있곤 했다. 그런 아들을 본 아빠는 친권 포기가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마음을 바꾸어먹었다는 것이다.
아빠와 아빠가 다니는 교회가 좋아서 개종하고 천년왕국설의 예언에 따라 2007년에는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고 믿었다. “교회에서는 기독교인이 품어야 할 성품에 관한 이야기보다 동성애자들의 로비나 크리스마스 전쟁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기억나는 교회의 가르침 가운데 하나가 절대 바람을 피우지 말라는 것이고, 둘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저자는 결혼을 한 번만 하기로 작정했으며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려고 노력했다. 그때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세속의 아버지가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그때 형성되었던 종교적 견해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게 되었다.
할모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신은 모든 계획을 가지고 있으므로 절망할 필요가 없으며 결코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사람이 불행을 겪는 것은 신이 돕지 않아서가 아니라 신이 도움의 손길을 보냈는데도 계속 뿌리치기만 한 사람의 잘못이라는 일화를 곧잘 들려주곤 했다. 할모는 방황하는 저자를 언제나 보듬어주는 영원한 안식처 같은 분이었다. 저자에게 ‘우리 집안에서 성공할 사람은 오직 너뿐’이라는 말을 자주하며 희망을 심어 주었다.
할보는 저자의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대신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실제로 수학과 총 쏘는 법을 가르쳐주고 남자가 알아야 할 것도 가르쳐 주었다. “자기 집안의 여성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남자를 알 수 있다”고 하며, 특히 여자들에게 화를 내지 못하도록 했다. 고장난 차를 수리하는 걸 좋아했으며, 늘 권총을 가지고 다녔다. 성격이 다혈질이어서 딸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참 나오지 않자, 어느 변태 녀석에게 강간당하는 줄 알고 장전한 권총을 들고 화장실 문을 박차며 들이닥치기도 했다.
간호사였던 엄마는 술에 절어 있었는가 하면, 환자의 약을 빼돌려가며 약을 할 정도로 마약성 진통제에 빠져 있었다. 엄마가 약물중독 치료 센터에 입원하자, 저자는 할모의 집에서 생활하며 할모를 힘들게 만들었다. 누나는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저자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이여서 할모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하기로 했다. 힘들었지만 오히려 돌볼 엄마가 없어서 이전보다 수월했다.
5. 엄마는 약물 중독에 벗어났지만 남성 편력은 여전했다. 저자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 엄마는 맷 아저씨네 집으로 들어가 살겠다고 하며, 저자를 데려가려고 했으나 저자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엄마와 함께 떠나지 않으면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유일한 대안이 이혼한 친아빠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아빠 집으로 들어가 아빠와 의붓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평온한 가정이어서 별 문제가 없었지만 아빠는 기독교적으로 엄격한 신앙 전통을 따르고 있어서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아빠는 결코 무섭게 굴지 않았다. 그러나 클래식 록 음악도 자유롭게 들을 수 없었고 카드 수집도 몰래하게 되었다. 아빠가 자기 행동에 대하여 뭐라고 할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할머니가 전화로 “여기가 너희 집이란다. 언제나 그럴 거야.”라고 말하자 할모 집이 그리웠다.
다음날 저자는 아빠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할모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할모집도 편하지 않았다. 할모가 자기 탓에 노년의 삶을 안락하게 누리지 못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엄마를 따라 맷 아저씨 집으로 갔으나 셋의 관계는 얼마 가지 못했다. 엄마가 간호사로 일하고 있던 직장의 켄 아저씨와 결혼하게 된 까닭이다. 따라서 저자는 엄마를 따라 다시 켄 아저씨 집으로 옮겨가야 했다. 그러나 엄마와 켄 아저씨 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거기서도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도망치듯 다시 할모 집으로 돌아갔다.
이런 와중에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저자의 출석률은 최악이었고 성적은 거의 낙제할 위기에 이르렀다. 낙제는 겨우 면했지만 끔찍한 진창에 빠져 있었다. 저자만 나락으로 떨어진 것도 아니다. 엄마는 더 심각했다. 여전히 약물을 하며 간호사 일을 하고 있는데, 간호협회에서 면허 갱신 판단을 위해 불시에 소변 검사를 하게 된 것이다. 엄마는 약물 복용을 모면하기 위해 고등학생인 저자에게 소변을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저자는 마약을 복용하지 않겠다던 엄마가 약속을 어긴 것은 물론,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엄마의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했다. 어릴 적에 딸의 행실을 호되게 다그치지 않은 할모에게도 그 잘못을 따졌다. 그러나 “그래도 네 엄마고, 내 딸이잖니. 우리가 엄마를 도와주면 이번에는 정신을 차릴 지도 몰라.”하고 달래는 할모의 말에 소변을 제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엄마는 소변 검사를 무사히 통과해서 밥줄은 떨어지지 않았다.
6. 할모와 함께 사는 것은 좋으면서도 인내심이 필요했다. 할모에게 짐이 된다는 근심을 떨쳐버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할머니의 다혈질적인 성격과 험악한 잔소리를 견뎌내야 했다. 특히 세 가지 규칙을 지켜야 했는데, 하나는 좋은 성적 받기, 둘은 일자리 구하기, 셋은 할모 일을 돕기였다. 셋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만만찮았다.
그렇지만 할모와 함께 지낸 세월이 저자를 절망에서 구해냈다. 할모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할모와 함께 한 시간이 인생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전혀 몰랐다. 할모의 권유로 식료품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아마추어 사회학자가 되었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면서 계층 분화 현상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를테면 가난한 사람들만 분유를 구매했던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부유층은 대부분 모유 수유를 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외상 장부가 없는데 신용이 좋은 부유층 고객에게는 1000달러가 넘는 외상 장부도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복지 제도를 악용하기도 했다. 푸드스탬프로 식품을 구입한 다음 정가보다 저렴하게 되팔아서 현금을 받아 술과 담배를 사는가 하면, 보조금으로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휴대전화를 소지했다. 복지제도를 악용하여 보조금을 편취하거나 복지 혜택을 과도하게 누리는 ‘복지 여왕’이 등장함으로써 빈곤층을 불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할모는 빈곤층에 대한 정부의 지원에 대해 이중적이었다. 정부가 너무 퍼준다고 맹비난을 했다가, 정부가 국민을 지독하게 안 도와준다고 혹평도 했다. 기분에 따라 급진적 보수주의자 되기도 했고 사회민주주의자가 되기도 했다. 저자 또한 정부의 지원 부족을 비난하다가 정부의 지원이 문제를 더 키우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할모는 늘 두 신을 모시고 살았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 다른 하나는 미합중국이었다.” 저자와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도 그러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미국인들은 미합중국이란 거짓 신에게 속고 있다. 힐빌리 출신인 저자 또한 미국을 우상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절규한다. “2014년,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는 브라이언은 음식을 조금 더 먹고 싶다는 말조차 편히 하지 못했다.”고 털어놓는가 하면, “신이여 우리를 도와주소서. 불쌍한 미국인들을 도와주소서!” 하고 간절하게 기도한다.
힐빌리의 열악한 생활 문제는 어느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문제이고 계속 되풀이되는 악순환이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피폐해지고 망가진다는 사실이다. 고성을 지르며 난장을 벌이다가 경찰에 끌려가는 일이 예삿일이다. 부유하거나 인맥이 좋은 사람들은 도시로 이주하면서 마을에는 점점 가난한 이들만 남게 되었다. 이런 문제를 다룬 사회학자 윌슨의 실로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도심의 흑인을 관찰한 저서인데, 힐빌리 사람들을 다룬 것과 아주 흡사했다.
힐빌리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보면 정상적이지 않기 일쑤였다. 욕지거리와 싸움과 마약, 방탕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가난함에도 절약은커녕 상류층인 척하려고 돈을 낭비하기 일쑤였다. 자녀들 성적이 낮으면 화를 낼 뿐 집안에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일자리 구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고 일자리가 생겨도 꾀를 부리다가 해고당하기 일쑤이다. 식습관도 직접 요리하지 않고 매식하기 예사이며 운동습관이란 아예 없다. 마치 요절하려고 작정한 사람들 같다. 그러므로 할보와 할모처럼 고지식하고 성실하며 독립적인 사람들은 상당히 드물었다.
7. 저자에게 할모의 집은 일시적인 피난처가 아니라 삶의 희망을 주는 보금자리였다. 왜냐하면 할모 집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엄마의 남성 편력으로 해마다 아빠가 바뀌고 낯선 집으로 들어가 살기를 일곱 차례나 했기 때문이다. 10학년 말부터 12학년이 끝나갈 무렵까지 할모 집에서 ‘다른 사람 없이’ 할모와 함께 살았던 평화로움 덕분에 행복했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한 계기가 골프 연습이었다. “부자들은 골프를 치며 사업 얘기를 주고 받는다”며 할모는 골프를 배우라고 권했다. 학교 골프 대표팀 입단하기 위해 레슨도 받고 골프장에서 일하며 무료 연습 기회도 가졌다. 입단에는 실패했지만 그 정도의 실력은 갖추었다. 친구들도 새로 사귀었다. 모두 공부 욕심이 있었으며 대학에 갈 작정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처럼 대학에 갈 결심을 하자 성적이 쑥쑥 올랐다. 오하이오 주립대로 가려고 마음을 정했으나 학자금이 문제여서 입학서류를 작성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이때 사촌 누나의 권유로 해병대에 입대하기로 결심하였다. 할모는 끝까지 반대했으나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해병대 훈련은 힘들었지만 잘 견뎌냈다. 훈련에서 낙오되지 않고 해병대가 되자 생활의 여유도 생겼다. 늘 할모의 신세만 졌는데, 이제는 월급으로 할모의 보험료를 대신 낼 수 있게 되었고 가족들에게 식사 대접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늘 보살핌을 받기만 하다가 누군가를 보살펴주는 느낌을 처음으로 겪었다. 그러나 할모를 보살피는 상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폐 질환으로 혼수상태에 빠져서 마침내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슬퍼했지만 저자는 울지 않았다. 자기 혼자서라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저자는 해병대 복무 중에 인생을 바꿀 만한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자신은 강대국에서 태어나 문명의 이기를 누렸으니 얼마나 행운아인가 하는 자각이었다. 둘은 해병대 생활에서 어른답게 사는 법을 배운 점이다. 도저히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홍보 장교 역할을 대리 수행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낙오자처럼 살지 말거라’고 꾸짖은 할모의 충고도 한몫 했다. 해병대가 형편없던 저자의 정신력을 의지의 사나이로 바꿔 놓았다. “노력 부족을 능력 부족으로 착각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제대 후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정확하게 알아차렸다.
제대 후 입학한 오하이오주립대학 생활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쉬웠다. 해병대에서 자신감만 얻은 것이 아니라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능력도 갖추었다. 모든 수강 과목에서 A 학점을 받았다. 두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강을 하고 과제를 하느라 시간이 모자랐지만 “늦게까지 과제를 한 뒤 서너 시간만 자고 일찍 일어날 때 느껴지는 뿌듯함이 좋았다.” 조기 졸업을 위해 방학 중에도 수업을 들었고 학기 중에도 최저 학점의 두 배가 넘는 학점을 수강했다. 거의 매일 4시간만 자고 공부와 일을 했다.
그 결과 1년 11개월만에 복수 학위를 취득하며 최우등 학생으로 졸업했다. 8월에 졸업하는 바람에 로스쿨에 입학할 수 없어서 이모가 살고 있는 할모 집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미들타운에서 지냈던 이 시기가 저자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미국은 불경기로 암울한 상황이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오바마는 훌륭한 대통령이었지만 종교부터 혈통에 이르기까지 터무니없는 헛소문을 퍼뜨리며 음모를 꾸미는 세력이 있었다. 언론은 불신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음모설에 솔깃해서 오바마는 미국을 파괴하려는 이방인으로 믿었다. 오바마가 추진하려던 건강보험도 보험자에게 마이크로칩을 삽입한다는 헛소문으로 훼방을 놓는가 하면, 오바마가 3기 연속 집권을 위해 계엄령을 선포할 거라고 거짓 뉴스를 퍼뜨렸다. 낙오자가 된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탓이라고 외치는 우파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특히 백인 노동계층이 가장 극렬했다. 트럼프가 힐러리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된 배경이기도 하다.
8. 저자는 예일대학 로스쿨에 진학했다. 예일은 빈곤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으므로 학비 전액을 면제 받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 덕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예일에는 유명인사들 출입이 잦았다.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의 특강도 있었다. 온갖 유명인들이 두루 모여서 ‘마치 수재들의 할리우드 같았다.’ 그렇지만 기죽지 않고 그들과 겨루었다. 첫 리포트가 혹평을 받았지만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을 때까지 노력했다.
성적은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으나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은 여전히 친구들과 큰 차이를 드러냈다. 교수와 동기들이 힐빌리의 생활을 신기하게 여길 정도로 저자는 예일대에서 문화적 이방인이었다. 예일인들의 생활방식이 힐빌리와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사회적 계층에 따라 문화적 수준과 취향이 다르다는 사실을 ‘아비투스’라는 개념으로 나타냈는데, 저자는 천박하거나 저급한 힐빌리 문화의 아비투스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 자신도 급격한 신분 상승에 내적 갈등을 겪었다. 고향에서는 명문대에 다니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애썼다.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중산층 생활로 바뀌어갔다. 영국 여행도 하고 오케스트라 연주회도 보러 다니며 설탕에 중독된 식습관도 바꾸었다. 생활의 변화로부터 신분 상승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촌티를 벗어날 수 없었다. 로펌에서 초대한 저녁 만찬에서는 식당 분위기에 압도당했으며 와인 고르는 법을 몰라서 당혹스러웠다. 모르고 스파클 워터를 마시고 역겨워서 내뿜기도 했다. 식기와 숟가락, 버터 바르는 칼, 포크 등이 모두 여럿이어서 사용 방법을 여자 친구에게 전화로 물어본 뒤에야 비로소 사용할 수 있었다. 촌티 나는 행동에도 면접을 통과하고 로펌으로부터 일자리를 제안 받았다.
2년 전만 해도 열군데 넘는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그런데 예일 로스쿨을 겨우 1년 다녔는데, 그 이유만으로 저자는 유명 변호사들로부터 로펌에 취업 제안을 받았다. 굳이 구직 시장에 이력서를 뿌리지 않아도 좋았다. 예일 로스쿨 학생이라는 이력과, 인맥으로 구성된 ‘사회적 자본’이 큰 가치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특히 예일 법률 저널에 논문이 실리거나 편집위원 역할을 하면 유명 로펌 취업도 가능했다. 판사 밑에서 법률업무를 보조하는 재판연구원 자리도 있었으나, 일보다 사랑을 택하라는 교수의 조언을 듣고 그 기회를 포기했다.
저자는 연인인 ‘우샤’와 함께 가는 길을 택했다. 사귀는 중에 서로 충돌이 있었으나 엄마의 싸움 방법을 본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싸우다가 자기도 모르게 뛰쳐나왔지만 곧 돌아가 사과하고 화해했다. 저자는 어릴 때 남편을 수시로 바꾸는 엄마로부터 겪은 일상이 트라우마로 작동했다. 미국의 노동계층은 이런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특히 많았다. 그러한 생활은 자녀에게 대물림되기 일쑤이다. 혼돈은 혼돈을 낳고 불안정은 불안정을 낳는 것이 미국의 힐빌리 가정이다. 따라서 저자는 “아주 멀쩡할 때조차 시한폭탄 같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배우자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소중한 꿈을 이루려면 늘 정신을 차리고 집중해야 했다.
9. 저자는 로스쿨 졸업을 하고 새로운 세계의 일원이 되었다. 예일대 로스쿨의 졸업생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예일 법률 저널의 전 편집자이며 변호사 협회의 회원이었다. 우샤와 결혼하고 다른 가족들처럼 둘 다 성을 ‘벤스’로 바꾸었다. 좋은 직장에 다니며 집도 사고 반려견 두 마리와 함께 살았다. 신분 상승으로 청운의 꿈을 이루고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것이다. 그러나 힐빌리의 출신 배경을 가진 저자는 엄마가 약물 중독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실제로 엄마는 아직도 약물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아편을 구하려고 다섯 번째 남편의 재산에 손을 댔다가 집에서 쫓겨나서 오갈 데가 없었다. 엄마의 피난처를 제공하기 위해 고향 마을의 허름한 모텔까지 찾아가야만 했다. 엄마 문제는 출세한 아들이나 정부도 해결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약물 중독처럼 열악한 환경에 중독되어서 스스로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저자는 힐빌리 사람들의 시각에서 현실을 포착하고 정책을 세우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도 “문제를 만든 건 정부도, 기업도, 그 누구도 아니다. 모든 문제는 우리가 만들었으므로 우리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괴물에게 쫓기는 악몽을 꾸곤 했다.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부터는 꿈이 달라졌다. 괴물에게 쫓기는 꿈이 아니라 스스로 괴물이 되어서 불쌍한 강아지를 쫓는 꿈이었다. 강아지가 두려움에 떨면서 슬픈 눈으로 저자를 돌아보자 목을 조르는 대신 강아지를 꼭 안아주었다.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 든 감정은 화를 참아냈다는 안도감이었다.
그의 꿈은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하나는 쫓기는 자에서 쫓는 자가 되었지만 괴물이 아니라 보살피는 자로서 신분 상승의 역할을 자각했다는 뜻이다. 둘은 화를 자제하지 못하고 폭발하는 힐빌리로서 기질이 상당히 순화되어 안도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지배층으로서 특권을 누리는 자가 아니라 노동자 계층을 보듬어주는 상류층이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상류사회가 저자처럼 각성하고 실천한다면 미국사회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의 모범이 될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러닝메이트가 된 저자가 얼마나 힐빌리 계층을 끌어안고 갈지 의문이다.
10. 저자는 힐빌리의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 가운데 누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러나 딱 부러진 답은 제시하지 못한다. 미국의 힐빌리뿐 아니라 한국의 빈곤층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 옛말에도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고 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은 끝이 없어서 나라의 힘으로도 속 시원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다. 국가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당사자의 노력과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해결 가능하다는 뜻이다.
가난을 순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람들은 보수주의자이다. 국가 복지 정책의 문제점을 들면서, 국가가 나설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스스로 문제해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가난이 제도와 체제 문제여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적극적인 복지 정책 마련에 관심을 기울인다. 국가가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방관하기만 한다면 사실상 국가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개인이 노력하도록 이끌어주는 일도 국가가 나서서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면 3자가 함께 나서야 한다는 것이 낸 생각이다. 첫째 가난한 사람들 스스로 희망의 의지를 갖고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자력적 의지를 갖추도록 하는 적절한 교육과 제도적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둘째 정부의 일방적 지원 정책의 수정 보완이다. 정부 정책은 당사자의 실제 처지와 상황에 맞아야 한다. 제공자 중심의 양적 지원에 만족하지 말고 수요자 중심의 질적 지원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체계적인 행정 지원을 해야 한다.
셋째 상류층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함께 하는 동행이다. 가난하다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 존중하며 그들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상류층이다. 자기들이 상류사회의 삶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는 결과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이 중요하다.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필요하지만 불우이웃과 함께 하는 활동이 더욱 절실하다. 빈부 계층에 따라 분절되어 있는 사회적 경계를 허물고 격의 없이 그들과 더불어 삶을 누리는 일을 주기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식 직후에 국회 청소 근로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한 것은 매우 상징적인 보기이다. 기념촬영에 머물지 않고 그들과 함께 영화 관람을 한다든가 박물관 전시를 구경하고 음악 감상회에 참석하는 등 중산층 문화를 공유하는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경제적 빈곤 못지않게 사회적 소외와 문화적 차별이 그들을 더 서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시적 재정 지원에 머물지 말고 그들과 함께 하는 사회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 인식에 입각하여 작가 얼 쇼리스(Earl Shorris)는 노숙자와 재소자, 빈민들에게 ‘클레멘트(Clemente) 코스’라는 인문학 강좌를 무료로 제공했다. 인문학적 지식과 성찰적 사고 능력을 길러줌으로써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유로운 시민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최고의 교수진을 갖추고 등록금과 교재가 무료인 것은 물론 교통비와 아이들의 보육 서비스까지 제공해서 수강의 장벽을 완전히 허물었다. 수강생 다수가 대학에 진학했으며, 치과의사와 간호사, 상담가 등 전문 직업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세계적인 인문학 교육의 보기가 되었다. 이처럼 인문학자들의 재능기부도 빈곤 퇴치에 한몫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성찰해 본다.
저자는 이 회고록으로 세계적 명성을 획득했다. 저술 당시와 달리 지금은 미국 부통령의 지위에 올랐다. 아무나 오를 수 없는 막강한 지위이다. 여전히 슬픈 노래만 부를 수 없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책을 세워서 빈곤을 양산하고 대물림하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 활동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지위에 있다. 따라서 이제는 <힐빌리의 슬픈 노래>와 같은 회고록이 아니라, 슬기롭고 혁신적인 대안정책 성과가 담긴 <힐빌리의 희망찬 노래>를 저술할 수 있도록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저자 벤스는 미국 차기 대통령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그를 주목하고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