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이 말하다
윤연옥
마르셀 뒤샹 작 「샘」에 관심이 집중된다. 예술책자에서 만났던 그의 돌려놓은 남자소변기는 엉뚱하기 짝이 없다. 달랑 소변기 하나를 돌려놓고 작품이라고 우기는 작가의 상상력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 관심이 갔겠다. 작가의 심기가 불편한 걸까 궁금했으리라. 소변기는 결코 우아하거나 사랑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익숙한 변기이기에 오히려 그의 작품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아무리 봐도 토라진 삼각형의 소변기에는 물이 나오는 10개의 작은 배출구와 오줌이 흘러나가는 하나의 구멍만 있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왼편에 까만색 영문의 변기 제작 회사 이름이 있을 정도이다. 얼핏 보면 전립선을 향한 건강캠페인 포스터 같기도 하다.
세기의 배우나 최고의 권력자라 하더라도 하나 같이 생리작용을 해결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의 생리적이고 본능적이며 친숙해야할 변기를 ‘마르셀 뒤샹’이 거꾸로 놓고 작품으로 승화시켰으나 보는 눈이 무딘 나는 따라잡기 쉽지 않은 것이다. 흔히들 외치는 낯설게 하기다.
눈으로 보던 미술이 근래 개념적인 것으로 변하였다 하더라도 변기에서 예술을 찾아내야 하는 한 순간은 내게 주어진 커다란 과제이다. 누군가 나를 향해 인생을 숙제하듯 살지 말고 축제하듯 살아보라고 권하였으나, 숙제요 고민일 수밖에 없다.
지난 날 멀리 있어야 할 뒷간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안방까지 들어와 앉은 화장실, 그곳에서 상상과 아이디어가 창출된다고 하나 선뜻 감이 안 잡힌 것이다. 혹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는 역설적 의도라면, 글 쓰는 작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욕심이 많아 버리지 못한다면 주제가 바로서지 않는다. 무리해서 끌고 가다보면 길을 잃거나 두 개의 길이 날 때가 있다. 힘은 힘대로 부치고 글은 글대로 엉키어 고생을 하게 된다. 글이 아닌 글을 다시 고치려면 늑장대응에 새로 쓰기보다 더 힘이 든다. 하나, 이 소변기 앞에서 두 개의 길이 있을 리가 없다면 분명 고정관념 버리기겠다.
마르셀 뒤샹 역시 버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에 의미를 두었지 싶다. 번뇌로부터의 탈출, 탈출을 위한 번뇌 같은 것, 내가 버리는 것과 작가가 버리는 것에는 차이가 있지 싶어 고심한다. 내 고정관념으로는 작품을 이해하기가 어렵다하자 누군가 상식을 벗어나보라고 귀띔한다.
한〇렬 평론가의 ‘문학적 낯설게 하기란, 사십 오도의 각도로 걸려있는 그림을 통하여 설명 된다.’고 하였다면 뒤샹은 백팔십도 거꾸로 돌려놓는 파격적인 상상에 예술을 담고 있다.
상상력을 따라잡을 수 없는 답답함에 예술 책자 한 장을 더 넘긴다. 날마다 사용해도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것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신발장, 강철이나 깡통 혹은 쓰다버린 냄비나 방전된 배터리가 설치예술가들의 손에서 작품으로 태어나는 시대다. 비로소 엉뚱함에서 예술이 발아 되는 것을 받아들인다.
가끔 변기에 침 뱉고 코풀어 동댕이칠망정 멀리하여서는 살 수 없는 변기이다. 예술에 OR코드가 있다면 한 번 찍어 가로 세로 두 방향의 빠른 답을 얻고 싶다. 정답을 안다면 ‘알레그로 비바체’로 노래하고 싶으나, 상식으론 따라 갈 수 없는 상상이 답이라고 돌아온다.
강화의 어느 호텔 벽에는 아톰과 부처님이 서로 등을 지고 앉은 작품이 전시돼 있다. 부처님은 앉아있고 아톰은 서 있는 그림, 이 역시 한 화가의 엉뚱함이요 낯설게 하기는 아닐까 싶다.
어느 날, 새롭게 채우던 날들의 체험과 낯선 곳에서의 거듭나기야말로 예술로 연결되는 새로운 각도이다. 내친김에 대책 없이 꼿꼿하던 고개와 허리를 깊이 숙여 세상을 거꾸로 바라본다. 많은 예술가들이 외쳐대는 공통점이 거기 있다. 식상함으로부터의 탈출, 흔한 것 버리기이다. 비로소 긴 시간 과녁을 쏘아보던 화살에서 풀려난다. 익숙한 것을 생소하게 하려니 이제야 창작이 말을 걸어온다.
하면 나도 그간 가족과 이웃과 세상을 고정관념의 눈으로 바라보며 편협하게 살았을 수도 있다. 가족들을 향해 맞춰간 게 아니라 나의 식구들이 내게 맞춰 왔을 것이라는 마음에서 서둘러 내 정지된 관념의 빗장을 풀어 놓는다.
흔한 남자소변기가 내게 요구한 것은 상상의 눈과 마음의 눈으로 보기였다. 비틀어보고, 돌려놓고 보고 미끄럼틀을 거꾸로 타는 순수한 어린 애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소변기가 토라져 앉았던 까닭을 이해하자 비로소 창작이 발아된다. 남자소변기가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닫혔던 내 눈이 이제야 눈을 뜬 것이다. 모든 예술가가 외치던 점을 알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다.
수필 쓰기에 있어서도 추녀 끝에서 자라는 고드름처럼, 거꾸로 보며 고정관념을 뒤집어야 한다는 나름의 이론을 편다. 거꾸로 매달린 얼음이 서서히 녹듯이 주제도 녹아야 한다. 나의 말에 돌아앉은 뒤샹이 거들었겠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이번엔 내가 호응하며 또 한 장의 책장을 넘긴다.
윤연옥
1993년 사단법인 《창작수필》 등단, 중앙대학교문인회부회장 역임.
수필집: 『내 삶의 반환점에서』, 『쉬운 말이 그리워』, 『결과 결 사이』 합 5권
수상: 인천문학상(2001년도), 인천광역시문화상(문학), 인천예총예술상, 《에세이포레》문학상 외 다수.
현재: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에세이포레》편집자문위원, 25년 《문학나무》 시 등단.
------------------------------------
주소: (우: 21618) 인천광역시 남동구 서창남로 17, 1108동 102호
핸드폰: 010 2440 0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