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대창 창녕조씨 추원재(追遠齋),부제학 조상치(曺尙治)
자료 : 만만이의 세상보 카페에서 발취
작성일자 : manmaninfo ・ 2024. 4. 7. 23:11
영천 대창에서 북안쪽으로 가다 보면 운천보건소 못 미쳐 도로가에 창녕조씨 추원재 이정표가 보인다.
창녕조씨 부제학공파 추원재
좁은 농로따라 한참을 들어가니 오래된 재실이 보였다.
경상북도 영천시 운잠길 32
추원재(追遠齋)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운잠길 32-121
추원재는 조선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단종 때 부제학을 역임한 조상치(曺尙治)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창녕조씨 영천 입향조에 대해서 알아보면...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을 비조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영천 입향조인 조신충(曺信忠)은 1383년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관직은 가선대부(嘉善大夫) 좌익병마사(左翼兵馬使) 판희천군사(判熙川郡事)이다.
고려조의 명신이던 조신충은 하륜(河崙)·이숭인(李崇仁)·이색(李穡)과 더불어 좋은 벗이었다. 우왕과 창왕(昌王)이 연달아 폐위되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공은 벼슬을 버리고 도읍에서 멀리 떨어진 부인의 고향 경상북도 영천 창수촌(蒼水村)[현 영천시 금호읍] 마단(麻丹)마을로 은거하였으며, 그 후손들이 영천 지역에 세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창녕 조씨는 영천의 대성(大姓) 중의 하나로, 세거지는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의 삼호리·오계리·구암리 그리고 영천시 대창면의 병암리·신광리 등이며, 과거 신녕현(新寧縣) 지역이던 영천시 화남면의 삼창리·안천리·귀호리,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등이다.
부제학 조상치(曺尙治)
조상치(曺尙治)[?~?]의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자경(子景), 호는 정재(靜齋)·단고(丹皐),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객령 조수(曺隨)이고, 할아버지는 좌정승 조익청(曺益淸)이다. 아버지는 강계병마사 조신충(曺信忠)이며, 어머니는 판서 최중연(崔仲淵)의 딸 영천최씨(永川崔氏)이다. 부인은 목사 김천일(金千鎰)의 딸 의성김씨(義城金氏)이고, 아들은 조변흥(曺變興)·조변륭(趙變隆)·조변안(趙變安)·조변강(曺變康)·조변정(曺變正)·조변옹(曺變雍)이다.
조상치는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고, 1419년(세종1)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사재감주부가 되었다. 1424년 좌정언에 임명되어 집현전에서 지냈고, 세종·문종·단종 3대를 섬겨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과 더불어 총애를 받았다.
1455년(단종 3) 집현전부제학에 발탁되었고,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뒤 예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김시습(金時習)·박제(朴濟)·박도(朴渡)·박규손(朴奎孫)·박효손(朴孝孫)·박천손(朴千孫)·박인손(朴璘孫)·박계손(朴季孫)과 함께 철원에 은거하였다. 조상치 등은 김화의 초막동에 숨어 「자규사(子規詞)」를 지어 부르며 세조의 왕위 찬탈을 규탄하고 단종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조상치는 이후 고향인 영천으로 돌아가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고 한다.
조상치는 1791년(정조 15) 단종의 무덤인 장릉(莊陵)에 안장되었다. 조상치의 묘비에는 “노산조 부제학 조상치의 묘[魯山朝副提學曺尙治之墓]”라고 새겨 세조의 신하가 아님을 밝히며 충절을 기렸다. 조상치는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에 있는 구은사(九隱祠)에 배향되었고, 구은사에서는 매년 조상치 등 구의사(九義士)의 충절을 기리는 제례를 올리고 있다.
추원재 현판
추원재 향나무
추원재 주소
추원재와 관리사 전경
현재는 관리가 안되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