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 모으라♡
성경: 여호수아 2장 18~21절
찬송: 532, 27, 552, 258
설교: 이 경준 목사님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가서 거리로 가면 그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손을 대면 그의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하니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여호수아 2: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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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맞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여 두신 복이 넘치게 임하여지기를 기도합니다. 명절에는 그동안 흩어져 살던 부모님과 자녀들 그리고 친척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일 것입니다. 서로 덕담을 나누며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는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지내온 일들이 화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여러분께서 가족과 친척들 앞에서 라합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가족과 친척들에게 주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소식을 전함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여 두신 가나안 땅에 모두 들려 올라가는 복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불러 모으라”로 정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점령하기 위하여 나아가던 앞에는 큰 성 ‘여리고’가 있었습니다. 가나안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여리고 성을 점령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사람들이나 여리고 성 사람처럼 강대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나약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랬음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정탐꾼들을 비밀리에 여리고 성으로 들여보내서 성안의 사정을 두루 살폈습니다. 그리고 라합의 집에 숨어들어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번 명절에 우리가 전할 복의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언제 그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라합에게 전하여진 말처럼 우리도 가족과 친척에게 그 말씀을 전하여 모두 함께 구원받을 수 있는 반열에 서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여리고 성으로 숨어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행동은 여리고 사람들 가운데 은밀하게 소문으로 돌기 시작하였고 여리고 성 사람들은 그 소문을 듣고 무서워서 떨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생각할 때도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나약한 민족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서워하며 떨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당시에 가장 강력한 나라였던 애굽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고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 중에서 해방이 되도록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널 수 있도록 물을 갈라놓아 주셨고, 또 이스라엘 백성의 앞길을 방해하는 어떤 대적들도 용서하지 않으시고 물리쳐 주셨으며, 물 한 방울도 구할 수 없는 광야의 땅에서 40년 동안이나 기적의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시고 보호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라합의 집에 숨어든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이 자신들을 보호하여 준 라합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으로 점령할 때 자기들이 말한 것을 꼭 지켜서 죽음을 면하라고 합니다. 그들이 그녀에게 약속한 것은 두 가지였는데 그 첫째는 창문에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붉은 줄을 매어 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군대가 그 집에 있는 사람들을 해치지 않고 피하여 갈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을 벗어나기 전날 밤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마지막 재앙, 곧 애굽에 있는 모든 동물과 사람들의 장자가 죽임을 당하는 재앙이 내려졌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재앙이 미치지 않게 하시려고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집의 문설주와 문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라합은 그 말을 지켰습니다. 그것만이 여리고가 함락이 될 때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크게 붉은 깃을 매달아 놓았을 것입니다. 작게 만들어 매달거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매달아 놓으면 이스라엘 군대가 혹시 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할 수가 있을지 몰라서 높이 크게 달아놓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방법도 그래야 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자랑거리라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구원의 상징인데 왜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마지막 날은 우리 모든 인류에게 홀연히 다가올 터인데 언제까지 믿음의 표식을 숨겨두고 살아가려고 하십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8장 38절에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자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권하여야 합니다. 자기만 알고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 믿음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정탐꾼들이 두 번째로 한 약속은 가족을 집으로 모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지키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라합은 그의 믿음대로 가족들에게도 자기 집으로 모이라고 권하였겠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비웃고 힐난(詰難)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이유로 모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설교 초반에 말한 바가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은 아주 나약하기 짝이 없는 민족인데 누가 누구를 침공한다는 것이냐? 라고 반박하며 오히려 웃음거리로 삼았을 것입니다.
노아의 때도 그랬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며 홍수가 나서 멸망이 올 것이라고 외치고 다녔을 때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친족들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 멸망의 날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구원에 동참하지 않았던 노아의 친족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수장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가족이라도 친척과 친구일지라도 예수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전도하기가 그렇게 어렵습니다. 거절당하고, 비난당합니다. 심지어는 절교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럴지라도 권하여야 합니다, 본문에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창세기 6장 13절에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또 18~19절에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이것입니다. 믿지 않는 가족, 친척, 친구, 그리고 모든 이웃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찾아가서 권해야 합니다. 호의적인 사람이 없을지라도, 거절당하고, 핍박당하고, 비난도 당하겠지만 생명이 걸린 일이기에 포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라합도 결코 포기할 수 없어서 전했습니다. 노아도 그랬을 것입니다. 귀찮아도, 멸시당해도, 어려워도, 전해야 하는 것이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화단에 꽃을 피워보겠다고 하면서 씨를 뿌리고, 한두 번 물을 주어보고, 기다리다가 싹이 나지 않는다고 물주기를 포기하여 버린다면 그 화단에 꽃이 피어나지 못한 책임은 당신의 책임이 될 것입니다. 끝까지 노력하고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지치지 않고 꽃 피기를 기다리며 가꾸고 물을 주었었다면 개중에는 꽃을 피운 것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꽃이 피어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은 당신의 책임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희망이 없었던 마지막 생명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살리려고 노력하였던 당신의 그 사랑과 그 희생이 칭찬받게 될 것입니다.
이 시대를 향한 우리들의 사명 그것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요사이 빈번히 방송 매체로 선전되는 사회모금단체에 전화 몇 통화했다고 사명을 다한 것일까요? 빵 한 조각과 물 한 모금이 육신의 생명을 얼마 동안 연장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전하도록 맡겨진 사명, 곧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영혼을 영원히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구하는 일에는 희생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귀찮다고, 힘들다고, 어렵다고, 손해가 난다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 그 사명은 우리가 얻을 영원한 나라를 담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회란 말을 많이 쓰시지요. 기회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기회의 특징은 순식간에 떠나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를 위하여 일할 기회의 시간이 우리 곁을 떠나버리고 후회가 남게 된다면 그것보다 더 슬픈 것은 없을 것입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생명을 전할 기회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 기회의 시간이 덧없이 떠나가 버리기 전에 우리들의 가족과 이웃과 친척들을 향하여 권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3절에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라고 말입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가서 거리로 가면 그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손을 대면 그의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하니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여호수아 2:18~21)고 하셨습니다.
라합이 정탐꾼들의 말에 순종하여 붉은 줄을 창문에 매어 놓았을 때 여리고 성이 멸망하는 상황에서도 그 부모와 형제와 아버지의 가족들은 모두 구원을 받았듯이 우리도 믿지 아니하는 가족들에게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믿는 우리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전함으로 우리 부모와 형제와 친인척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게 하소서!
우리가 예수님을 전함으로 때로는 반대와 멸시와 핍박과 조롱을 당하는 상황에 처할지라도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핍박과 멸시와 저주를 당하시며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듯이 우리도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고 주의 복음 전할 때 사랑하는 가족들이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는 은혜가 임하게 하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