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식소설가,통섭(統攝 Consilience)의 밭을 갈다 - 내항문학 제31호 2012.11.10
오용식 소설가, 통섭(統攝,Consilience)의 밭을 갈다 / 이담하
내가 ‘내항문학’을 가입한 지가 햇수로 4년이 되니 그 회원들을 알게 된 것도 4년.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같은 지역에서 문학(어떤 의미에서는 동업자이면서 경쟁자)을 하는 모임에서 인연을 말한다면 엄청난 인연이다.
소설가이며 수필가인 오용식 선생님을 내항문학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 첫 만남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오는 에피소드를 빼놓을 수 없다.
2009년 수집한 시집(시집,동시집,사화집.시창작이론서,외국시 등)과 차(茶) 종류와 도자기, 그림과 침향 등을 집에 두기에는 분량이 너무 많아 부평에 사무실을 열었을 무렵 내항에 가입했다. 시집 10만 권을 목표로 하고 1차 목표는 만권을 모아 비닐 천막을 치고라도 시집 박물관을 하려는 마음을 아는 분들이 시집을 많이 기증해 주셨고 오용식 선생님도 그 중 한 분이다.
내가 내항에 들어간 그해 10월에 책을 만들 무렵인데 정경해 선생님 출판사에서 교정을 본 후 소래 포구에 가서 회원들과 저녁을 먹을 때 내 옆에 오용식 선생님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시집을 모은다는 말을 듣고 차 트렁크에 싣고 오셨다는 말씀에 너무나 고마웠고 시집을 기대하며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다른 회원들이 가고 밖에서 오 선생님을 기다리는데 한동안 나오지 않아 주인한테 물어보니 선생님이 화장실에 가신 것 같다고 했다. 책을 받으려고 한 십 분 기다리는 것이 뭐 대수랴. 그때 오 선생님이 가게를 나오는 데 배를 움켜쥐고 얼굴이 하얗게 되어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그 뒤로도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리더니 선생님은 결국 운전을 못하고 구급차를 부르게 되었다. 점심때 먹은 떡이 상한 모양이라며 계면쩍어 하셨다. 119 구급차의 동승하여 토하는 모습을 보니 미안한 얘기지만 살짝 웃음도 나왔다.
그 뒤 결국 소중한 그 책들은 며칠이 지나서야 오 선생님으로부터 받게 되었다. 오선생님이 기증하신 책들은 1920년에서 1945년 전에 출간한 희귀원본(문학사상 영인본)이었는데 내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었다. 고마우신 선생님이지만 오 선생님을 생각하면 119가 자꾸 떠올라 웃음이 난다.
오 선생님의 작품 중 첫 번째 읽은 것은 ‘은수저’라는 단편소설이다. 나의 감(感)으로 나는 이 작품 속에, 요즘 젊은 작가들의 인위적인 감각과 언어의 유희인 현란한 문체만 있는 것이 아닌, 뭔가 큰 깊이가 내포된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시골에서 초등 시절을 보내고 청소년기에는 산업화의 과도기를 겪고 있는 서울 생활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소설 속에서 작가는 노인에 대한 휴머니즘이 진하게 묻어나 있다. 어려서 고생하고 늙어서 대접받는다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은 이 격변의 시기에 철저하게 유린된다. 어려서는 부모와 노인들, 결혼해서는 시부모로부터 공경과 희생을 강요받고 살아온 주인공은, 이제 나이가 들어 그 모든 노고를 보상받는 시점에 와서 오히려 어린아이와 며느리에 치여서 살아가고 있다.
그 노인에게 은수저는 응당 그녀가 받아야 할 보상을 상징한다. 마침내 자신의 가치와 자존심과 보상을 상징하는 은수저를 찾아가는 노인의 모습에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그 세대의 연민을 엿볼 수 있었다. 오용식 작가는 명확하고 높은 수준의 주제 의식과 철저한 사실주의를 부드러운 스토리 전개로 접목시켜 훌륭한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한편의 해상도 높은 정물화를 보는 듯 따뜻한 마음으로 읽은 정말로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문학회 등의 모임을 통해 많은 대화를 나누어 본 결과 작가의 문학 속에는 진화생물학적, 과학적, 삶을 꿰뚫어 보는 혜안의 결과물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러한 심도 있는 지적 시도가 나타난 작품이 바로 ‘존재코드’이다.
선생님의 '존재의 코드'를 보고 이분은 그냥 일상생활에서의 잔잔한 내용이나 복잡한 인간사만을 대상으로 쓰는 게 아닌, 보통 작가가 다루지 않는 다른 화두를 다루고 있었다.
그 소설을 읽어 보고 그 깊이로 보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존재의 본질과 갇힌 계(system)에서 규정된 존재로 그저 존재할 뿐인 가엾은 우리들의 삶을 잘 표상화 하였다. 이 소설은 매우 독특한 것으로, 오 선생님의 다른 글과 마찬가지로 그 인간 본질 추구에 대한 그 치열한 탐구 정신과 깊은 철학적 배경이 잘 녹아 있다.
‘플라톤의 그림자’는 사실 이해하기 매우 힘든 작품이다. 재미는 있는 것 같은데 주제가 무엇인지,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지 난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오 선생님이 내게 추천한 진화생물학적 저서들을 탐독하고 과학적 사실들을 이해하고 나서야 어렵지만 높은 수준의 주제 의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플라톤의 그림자’는 그야말로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적 지식을 이해하지 않고 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글들이다. 하지만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 확장된 표현형, 수전 블랙모어의 ‘밈', 평행우주론과 끈 이론과 같은 깊이 있는 지식 체계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인간의 본질에 대한 간단한 정리와 미적 표현에 큰 박수를 아니 보낼 수 없다.
작가의 말 중에 ‘자연과학적 지식 없는 인문학은 환타지’라는 말은 큰 감흥으로 다가왔다. 진리에 대한 무지의 안개를 걷어치우고 창의적 사고와 또 그것이 검증된 것만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진리라는 말 속에서 그의 지성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더불어 단편적인 과학적 지식 체계는 단순한 앎의 나열에 불과하는 것이고, 그 지식을 ‘의미’와 연결하여 ‘美’로서 구현해야지 의미를 가진다는 말에서 크게 공감한다. 결국 그의 작품 세계의 기본 중의 기본은 바로, ‘진리 추구와 그것의 미적 창조’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실마리가 단 하나도 허투루 있지 않고 치밀하게 글의 끝으로 연결이 되어, 구성면에 있어서 탁월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사람이 젊다고 다 젊은 사고를 갖고 있지는 않다. 영어와 영문학을 전공한 결과인지 모르겠으나, 오 선생님은 서양 문학과 서양의 합리성에 부합하는 사고를 가진 분이다. 그 합리적 사고와 절대적 과학 사고가 본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오 선생님은 철학적인 가슴으로 꽃은 왜 아름다운지, 왜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사람의 얼굴은 왜 호감과 비호감으로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음악은 왜 사람을 매료하는지를 자문하고 있다. 먹고살기에 바쁘고, ‘어떻게 해야 잘 먹고 잘살 수 있을까’에만 몰두하는 일반사람들에 비하면 ‘왜 잘 먹고 잘살려고 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이는 오용식 작가는 그야말로 특이한 사람이다.
본인도 항상 자랑스레 얘길 했지만 지리산 기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작가는 아마 넓은 들과 높은 산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 광활한 자연 속에서 자문자답하며 문학과 과학, 종교와 철학, 자연과 음악을 통해 베토벤의 운명처럼 진실과 진리의 목표를 구하려고 글을 써왔을 것이다.
언젠가 오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죽음은, 내가 더 이상 베토벤의 음악을 못 듣는다는 것은 슬픔 이상이다.’라고. 그의 음악적 추구는 여타 문학세계와 연결이 되어 그의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말은 내 스스로에게 ‘문학을 뜨겁고 절실하게 대한 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하게 했다. 공자님 말씀에 '시즉절' 이라는 말이 있는데 ,시경(詩經)에서 ‘사무사 (思無邪)’의 경지를 말하지만, 시경이 강조하는 대목은 ‘시즉절 (詩卽切)’, 풀어 말하면 시인의 삿된 마음이 없는 절실한 마음인 것처럼 오 선생님이 문학뿐 아니라 음악 분야에 대해서도 관심을 넘어선 절실한 마음을 보고 어느 순간에 내가 문학을 소홀히 한 부분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지금까지 오 선생님은 세가지 정도의 큰 카테고리를 삶의 큰 방향으로 삼은 듯하다.
첫째는 음악이다. 개인적으로도 오 선생님이 추천해서 usb에 담아준 음악들을 유용하게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오 선생님이 좋아하는 음악 분야는 가히 ‘세상의 모든 음악’이라고 말할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 음악에 정통해 있다. 본인 스스로도 음악이 문학보다도 더 큰 가치 추구라고 하는 그의 음악적 감성은 인정 해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클래식 음악, 그중에서도 베토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는, 그의 삶을 지탱하는 큰 대들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물론 그의 문학이다. 일상적이면서 피상적인 그런 것을 글로 쓰는 것은 에너지 낭비라는 그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쓸 필요가 전혀 없는 수준 낮고 따분한, 그리고 가벼운 그런 글들은 오 선생님의 글 속에는 없다. 하나하나가 큰 주제 의식을 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연에 대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주변에 보이는 식물들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전원의 낭만을 즐기기 위해, 그리고 나무를 더 기르기 위해 충청도에 땅을 사 집까지 지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자연에 대한 열정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듣기로는 집안 가득 식물이 들어차 있는 것도 아마 지리산 근처 출생이라는 배경이 한몫한 게 아닐까?
문학 모임에서 단양을 간 적이 있었는데, 고수동굴 앞에서 십만 원이 훨씬 넘는 돈을 들여 돌을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저런 큰 돌을 뭐 하러 사나 했는데 나중에 석부작으로 멋있게 꾸며 카페에 올려놓은 그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 돌이 단양 팔경 중 하나인 석문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오 선생님을 보면 생각나는 단어는 통섭과 실사구시이다. 그의 문학은 인문학과 자연학, 그리고 미학이 용광로 속에 녹아들어 본인만의 작품세계를 갈고 구축하는 걸 볼 수 있다. 이것은 사실에 바탕을 두고 진리를 탐구하여 공리공론을 떠나 정확한 고증을 바탕으로 과학적, 객관적 학문 태도에 이르는 중국 청대(淸代) 고증학(考證學) 학문 방법론으로 우리나라 실학파(實學派)에도 영향을 미친 실사구시(實事求是)이며, 1998년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저서《통섭, 지식의 대통합》을 통해 다시 알려지기 시작한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지식의 통합"이라고 부르는 통섭(統攝,Consilience)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