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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7. 4. 현대사상 세미나(현대 맑스주의1) 이하준 선생님 발제문
'호르크하이머는 맑스주의자인가?: 초기, 중기, 후기 사유에서 맑스의 이론적 위상'과 발표 동영상입니다.
호르크하이머는 맑스주의자인가?
초기, 중기, 후기 사유에서 맑스의 이론적 위상
이 하 준(한남대)
1. 들어가며
호르크하이머 사회철학에서 맑스 철학의 영향은 지대하다. 그의 사회철학적 발전은 맑스 철학에 대한 입장의 변화, 즉 수용과 비판의 내적관계에 따라 변화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르크하이머 맑스 철학의 수용은 관념론적 역사철학의 한계와 비판을 통해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한 비판적 사회철학을 구축하려는 이론 형성사적 문맥과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 혁명의 성공과 독일의 사회주의ㆍ공산주의 운동의 전개 및 나치와 파시즘 출현과 결탁이라는 역사적 경험에 대한 반성적 문맥 속에서 그 구체성을 드러낸다. 호르크하이머에게 맑스 철학의 수용과 비판의 관점은 칸트와 헤겔의 관념론적 역사철학, 철학적 인간학, 실존철학, 현상학과 같은 세계관의 철학, 실증주의 철학에 대한 비판논리와 기존 사회 비판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GS11, 451). 호르크하이머의 맑스 철학 수용과 비판은 그의 철학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며, 교조화된 맑스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초기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입장을 고수한다. 호르크하이머에 대한 맑스 철학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는 맑스 철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서나 단일 주제 논문을 집필하지는 않았다. 이 글은 먼저 비체계적으로 서술된 호르크하이머의 맑스 철학의 수용과 비판을 크게 비판이론 이전 시기, 1930년대 비판 이론기, 도구적 이성 비판기, 후기로 나누어 맑스에 대한 호르크하이머의 입장과 그 속에 나타난 연속성과 단절을 추적한다. 둘째, 후기 호르크하이머의 철학이 보수화되었고 종교철학적 관심으로 회귀하면서 맑스 철학과의 결별을 시도했다는 일반적 이해가 제한적 타당성만을 갖는다는 것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셋째, 본 논문은 맑스 철학에 대한 호르크하이머 철학의 고유성과 맑스 철학의 수용과 비판에 나타난 그의 철학의 한계와 의의를 따져 볼 것이다.
2. ‘비판이론’ 전(前)의 맑스 철학의 수용
호르크하이머의 맑스와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은 맑스 비판, 정통 맑스주의적 이론비판 및 소비에트 공산주의, 동유럽 공산주의, 중국공산주의 비판과 같은 현실 사회주의 비판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호르크하이머의 맑스와 맑스주의에 대한 입장의 형성은 맑스 이론과 현실, 정통 맑스주의의 이론과 그것의 현실화에 나타나는 이론과 실천의 간극과 모순에 대한 반성적 성격과 함께 새로운 환경 변화에 대한 새로운 비판적 사회철학의 정립이라는 적극적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초기 저작은 그가 맑스와 엥겔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사회비판에 어떻게 수용발전 시키는지 그 단서를 제공한다. 맑스에 대한 호르크하이머의 본격적인 연구는 1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독일 사회의 일련의 변화와 나치가 정치세력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해나감에 따라 맑스 연구에 더욱 매진한다. 그 당시 호르크하이머는 ‘혁명이냐 국가사회주의의 지배이냐’ 하는 두 가지 가능성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했으며, 맑스주의야말로 우파의 총체적인 공포정치에 대한 유일하고 적절한 이론적 대응인 것으로 파악했다(GS7, 346). 이러한 사실은 호르크하이머의 맑스에 대한 이론적 관심이 사회비판과 정치비판이라는 실천적 관심으로부터 촉발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호르크하이머가 맑스의 주요테제들을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그는 소위 정통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과 거리두기를 일관되게 지켜왔으며 현실 사회주의로서의 소련 체제에 대한 비판도 지속해왔다.
일반적으로 호르크하이머 연구자들은 맑스 철학의 수용을 1920년대 중반이후로 잡고 있다. 맑스적 사유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초기의 문헌은 호르크하이머가 1920년 쓴 「경제원리(Das Wirtschaftsprinzip)」라는 제하의 노트에서이다. 이 글에서 호르크하이머는 경제 원리야말로 경제학에서 핵심적인 문제영역이며, 경제 원리는 기관을 가진 존재나 그렇지 않은 자연 및 의식적인 현상과 무의식적인 현상의 세계에서도 유효한 자연법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반적인 자연법을 경제원리라고 이름붙이는 이유는 경제가 인간의 행위와 관계하며, 모든 행위의 발생은 자연의 질서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호르크하이머에게 자연적 질서란 인간행위의 원리로서 경제 원리를 의미이다. 이 원리는 어떠한 예외도 인정되지 않으며 이 원리에 반하는 어떠한 행위도 불가능하다. 「경제원리」는 경제학 이론을 논의하지 않는다. 위의 글은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분석적으로 다룬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론적 성격을 갖는다. 위의 글은 사회분석과 사회이론에서 경제 원리를 핵심문제로 간주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한 1930년대 들어와 프로이드 심리학의 사회철학에 결합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맑스의 하부-상부구조 이론모델의 변형이 예고되어 있지도 않다(GS11,16). 1926년에서 1931년에 사이에 쓴 호르크하이머 잠언록인 『여명』과 비판이론의 강령서라고 할 만한 논문 「전통이론과 비판이론」에서는 「경제원리」의 시론적 성격을 벗어나 맑스적 입장이 강화되었다. 이들 저작에서 호르크하이머는 사회이론과 역사이해에 있어 경제적 토대의 중요성, 상품분석과 교환가치의 전일화, 이익극대화 논리, 자본주의의 모순에 관한 맑스의 분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호르크하이머 전집 간행자인 군젤린 슈미트 뇌르의 말처럼 『여명』은 그 어떤 시기나 그 어떤 저작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회주의에 대한 강조와 그것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조심스런 전망을 제시한다(GS2, 467). 그의 주장은 『여명』첫 번째 잠언인 여명에서 호르크하이머가 당시 시대의 처한 상황을 이중적으로 서술하는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이데올로기가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것이 공허하면 공허할수록 그것들이 보호받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은 점점 더 무자비하다. 동요하는 우상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열의와 (그로 인한) 공포의 정도는 여명이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GS2, 313). 여기서 여명이란 계급의식의 증대와 제국주의가 중세교회보다 더 교묘한 억압과 지배의 장치들을 가동하는 위기적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20세기초 인플레이션과 그로 인한 사회적 위기는 호르크하이머에게 사회주의의 실현가능성과 그것의 실현이 국가사회주의를 막는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였다. 실제로 그는 1970년 헤르세와의 대화에서 혁명의 성공가능성을 믿었다고 고백한다(GS7, 891). 그러나 호르크하이머 자신이 이 문제에 관해 일관된 입장을 가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이에 대한 군젤린 슈미트 뇌르의 지적 역시 부분적 타당성만을 갖는다. 그의 주장과 달리 『여명』에서 호르크하이머는 자본주의 체제의 공고화, 인간의 상품가치화가 사회주의 혁명의 가능성 자체를 좌초시키는 동인이라고 말한다. 노동자 계급의 분열로 인해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단일전선을 형성할 수 없다는 점 역시 중요한 원인이다.
맑스가 보여준 바와 같이 자본주의적 경제 과정에서 기계의 사용으로 인해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 수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점점 낮은 비율이 실제로 노동에 종사하게 된다. 이러한 노동종사의 감소는 프롤레타리아 개별단위 계층의 상호관계를 변화시킨다. ... 이전에 전체 노동자계급과 룸펜 프롤레타리아 간의 괴리가 있었듯이 오늘날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과 예외적으로 혹은 전혀 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사이에 유사한 괴리가 존재한다. ... 노동과 궁핍도 분리되었으며 이것은 다양한 직업영역에 분포되어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노동자들에게 좋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그러한 노동자들의 비참함은 현재 사회형식의 조건과 토대이다. ... 혁명에 대해 가장 직접적이고 절실한 관심을 갖는 이들인 실업자들은 전쟁 이전의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학습 능력, 조직화 및 자본주의적 운용에 통합된 사람들에 대한 계급의식과 신뢰성을 갖지 못한다.(GS2, 373 이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호르크하이머의 회의는 위와 같은 상황뿐만 아니라 당대의 좌파정당의 분열과 무기력, 리더십 부재 등의 복합적 요인에 기인한다. 그의 독일 공산당(KPD)에 대한 비판은 공산당의 이론적 입장의 도그마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에 따르면 독일 공산당은 맑스의 유물론을 문자적으로 신봉함으로써 유물론적 내용, 다시 말해 현실세계 인식에 실패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혁명을 위한 실천적이며 이론적인 차원의 준비를 할 수 없게 만들었으며, 유물론을 내용 없는 이데올로기로 전락시켰다. 정치적 측면에서도 공산당은 환경의 변화를 포착하지 못하고 슬러건 만을 반복하며 정치적 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한 채 도덕적 훈계만을 하고 있다(GS2, 378). 두비엘에 따르면 호르크하이머가 공산당 유물론의 도그마화와 실천역량의 빈곤을 비판하지만, 바이마르 공화국의 말기에 그가 공산당의 당원이었음에도 사민당(SPD)보다는 공산당의 입장에 더 가까웠었다. 공산당의 교조화와 실천력에 대한 비판보다 호르크하이머의 사민당에 대한 비판은 좀 더 과격하다. 호르크하이머에게 사민당의 관점은 ‘자본주의의 토대위에서 인간적 상황의 실제적인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놓치는 오류를 범한다. 이는 사회주의 혁명을 포기하는 의회주의와 조합주의로 나타난다. 호르크하이머는 사민당이 사회주의 혁명이론의 모든 요소를 폐기하고 현실을 고수ㆍ집착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의 사민당 관점에 관한 비판의 정점은 개혁파로 자처한 사민당의 개혁정책과 이데올로기가 자신들이 빈번히 싸워왔던 실증주의의 후손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는 비판에서 확인된다(GS2, 377). 그에게 사민당의 입장은 더 이상 맑스의 그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호르크하이머는 1937년 「전통이론과 비판이론」에서 사회적 총체성에 대한 노동자 인식과 사회구조의 분화가 사회변화의 중요한 난제임을 언급한다. 이 주장은 1947년 저작인 『도구적 이성비판』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불가능성에 대한 좀 더 다양한 논의로 재등장한다. 그에 따르면 노동대중은 사회의 메커니즘을 개념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며, 대중문화는 그들의 미성숙한 의식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장치들을 동원한다. 사회혁명의 불가능성은 노동대중 내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바로 노동귀족과 노동대중과의 괴리이다. 호르크하이머에 따르면 이 괴리는 노조 간부, 노동귀족이 노동자의 전체의식을 대변하려 시도하지만,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은 산업체제에 의존하는 데 기인한다. 노동대중은 노조간부들의 지도의 대상이 되었으며, 노조의 지도자들은 자본가그룹처럼 노동대중을 통제하는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호르크하이머는 노조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노동대중에 근거하지 않고, 산업체제에 의존함으로써 사회비판, 변화의 필요성을 더 이상 주장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노동 귀족화된 노조 지도자들의 자본가 그룹이 주장하는 기술주의적 입장에 대한 공공연한 동의는 새로운 사회로의 변화 요구 자체를 스스로 거부하는 결과를 야기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불가능성에 대한 호르크하이머의 또 다른 논거는 노조 조합원과 비조합원간의 균열이다. 이는 사회변화를 위한 노동자 그룹의 사회적 연대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내포한다(GS6, 152 이하).
3. 비판이론기의 맑스 수용과 중립화
비판이론의 출발을 알리는 호르크하이머의 저작은 사회연구소 소장 취임연설 「사회철학의 현재상황과 사회연구소의 과제」이다. 그는 이 연설에서 비판이론이 사회철학이며 사회철학의 궁극적 목표는 사회적 삶의 연관문맥 속에 있는 인간의 운명을 해명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사회철학은 칸트, 헤겔, 쉴러, 하르트만의 철학에서처럼 초인격적 영역에서 개별 인간을 다루거나 하이데거와 같이 추상적이고 고립된 전망 부재의 실존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또한 인간의 문제를 사실성과 개인 상호간의 관계 문제로 환원하는 실증주의적 태도를 거부한다. 그의 사회철학은 물질적, 정신적 문화 전체 속에서 인간을 파악 한다. 비판이론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철학과 다양한 개별 학문 간의 협동연구, 경험연구와 이론간의 변증법적 상호침투가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호르크하이머는 철학이나 그 어떤 개별학문이 인간의 운명에 대한 실체를 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GS3, 20). 변증법은 개별학문과 철학, 경험과 이론을 매개하는 방법이다. 변증법적 방법은 “생생한 대상들의 상을 구분하는 오성에 의해 획득된 추상된 계기들로 만들어가기 위한 모든 지적 수단의 핵심”(GS3, 184)이다.
호르크하이머는 변증법적 방법의 모범을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찾는다. 「오늘날 철학에서 합리주의 논쟁」에서 그는 맑스가 교환가치, 가격, 노동시간 등에 대한 경험적 연구결과들을 현대의 사회형식으로서 ‘자본’개념과 상호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호르크하이머에게 『정치경제학 비판』은 경험적 조사로서의 연구(Forschung)와 경험에 근접한 일반적 이론의 형성으로서 서술(Darstellung)의 모범적인 사례이다. 물질적 삶의 과정은 다양한 형태의 형성단계를 거치게 되며 사적 유물론 다름 아닌 경제적 영역의 법칙성에 근거해 세계사를 설명하는 것이다. 맑스의 『자본론』은 이와 같은 생각을 증명한 핵심저작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호르크하이머의 입장은 이중적이다. 그는 맑스의 유물론적 변증법과 사적 유물론을 사회 이론적 관점에서 파악하면서 동시에 맑스의 입장을 중립화한다. 한편으로는 맑스를 수용․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 정통주의 맑스주의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유물론적 사회이론을 기획하는 호르크하이머에게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관점을 일정부분 중립화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는 정치경제학 비판의 범주를 넘어서 경제영역과 문화 전 영역을 연구대상으로 삼으며 연구과제도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의 문제를 넘어서 인간의 운명에 대한 해명으로 삼는다. 비판적 사회이론은 더 이상 계급적 당파성에 기초하지 않으며 보편과 특수, 이론적 기획과 개별경험을 변증법적으로 매개시켜야 한다. 호르크하이머 철학의 당파성을 거부한다. 철학의 과제는 맑스가 포이에르바흐 테제에서 선언한 ‘세계를 변혁’에 있지 않고 현실비판과 유토피아를 상정하지 않는 중단 없는 부정적 비판에 있다(GS4, 344).
호르크하이머는 1935년 노트에서 사적 유물론을 인간의 상태를 개선시키려는 투쟁의 한 부분으로 간주한다. 호르크하이머에게 사적 유물론, “그것은 이 땅의 인간들이 자본의 피비린내 나고 우둔한 지배와 그러한 질서의 파쇼적 집행자 아래 살기보다 지속적으로 행복하고 현명한 삶을 사는 희망찬 목적이 될 수 있다.”(GS12, 247) 그러나 이와 같은 희망을 실현하는 주체를 프롤레타리아에서 찾지 않고 인간 일반의 의지와 노력과 활동성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인간이 역사적 삶의 형식의 생산자로 이해된다. 이 시기의 사적 유물론의 지위는 더 나은 인간의 상태로 나아가는데 있어 유일한 투쟁의 지침이 아니라 기존 질서에 대한 비판과 투쟁을 진작시키는 비판적인 사고와 비판적인 활동을 추동함으로써 인간 일반의 해방이라는 실천적 과제의 차원으로 이해된다. 사적 유물론은 “노예상태로부터 인간의 해방을 목표”(GS4, 219)로 하는 비판이론에 의해 중립화되는 것이다.
사적 유물론의 중립화에 관한 또 다른 단서는 사적 유물론을 하나의 열려진 이론(offene Theorie)으로 간주하는 데 있다. 호르크하이머는 사적 유물론이 역사의 역동성을 가능한 한 규정적인 형식으로 반성을 시도하지만, 역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최종적인 시각이라고 주장할 수 없으며, 오히려 지속적인 연구에 의해 스스로를 교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열려진 이론으로서 사적 유물론을 해석하려는 호르크하이머의 이론적 입장은 그 자신의 비판이론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는 「전통이란과 비판이론」에서 비판이론 자체를 열려진 이론으로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비판이론은 변화하는 역사와 사회에 각 단계와 변화하는 인간에 근거하며, 비판이론 자체는 어떤 일반적인 기준도 갖지 않는다. 비판이론은 사회에 대한 부정적 규정, 다시 말해 비판적 활동 속에서 자신을 위치지울 수 있다. 따라서 비판이론의 내용은 고정적인 실체를 갖지 않는다. 사적 유물론의 중립화는 비판적 사회이론 연구 과제의 설정에서도 확인된다. 호르크하이머는 “사회의 경제적 삶과 개인들의 심리적 발달 그리고 학문, 예술, 종교라는 정신적 내용뿐만 아니라 법, 윤리, 유행, 여론, 스포츠, 오락, 라이프스타일을 포함하는 문화영역 간의 연관관계”(GS3, 32)를 비판적 사회이론의 연구과제로 삼았다. 이것은 사적 유물론의 중립화를 통한 새로운 유물론으로서 비판적 사회이론의 전개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과제를 수행하는데 심리학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호르크하이머는 심리학이 사회와 역사 해석에 있어 "보충학문(Hilfswissenschaft)"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포로이드의 심리학적 방법론을 개별연구나 사회연구소 연구프로그램에 광범위하게 적용해 왔다. 호네트는 비판이론기에 호르크하이머가 사회에 대한 경제적인 해석관점과 심리학과 같은 경제외적인 카테고리를 상호통합 시키는 것이 중요한 방법론적 고려였다고 지적한다. 심리학학 방법론은 경제적 영역에서 야기한 사회계급간 긴장과 갈등이 어떻게 유지 되는가를 설명하는데 적용된다. 새로운 유물론으로서의 비판이론, 새로운 사회철학은 이와 같은 연구 방법론적 확장을 통해 맑스적 틀을 넘어 전개되기 시작한다.
한편 호르크하이머는 교조주의에 의해 “잘못 이해된 맑스”의 정당한 이해를 요구한다. 호르크하이머는 정통 맑스주의의 경제주의(Ökonomismus) 비판을 통해 맑스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 사회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고자 한다. 경제주의는 “물질적 존재로서 경제를 유일하고 참된 실재”로 간주하다. 경제주의는 “법, 예술, 철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심리적인 것과 인격성이 송두리째 경제로부터 파생”(GS3, 32)된다는 추상적이고 잘못된 맑스 이해에 근거한다. 호르크하이머에게 있어 경제주의는 정부에 대한 개별자들의 실제적 관계, 특별한 이해를 가진 상대적으로 확고한 사회그룹이 존재하고, 사회적 차이가 유지되거나 심화되는지의 여부, 실제적인 민주주의와 사회기관의 본질적인 계기의 발전 정도와 같은 사회화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문제 영역을 포착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다. 그러나 호르크하이머 자신은 경제주의 비판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경제부분이 비판적 사회이론을 추구하는 비판이론에서 여전히 핵심적인 문제임을 비판이론 시기의 주요 논문인 「전통이론과 비판이론」, 「전통이론과 비판이론 후기」, 「철학의 사회적 기능」등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호르크하이머의 경제비판이 사회에 대한 변증법적 분석을 시도하지 못하는 단순히 관념화된 경제주의 비판임을 알려준다.
4. 이성비판기의 맑스 수용과 거리두기
1930년대와 1940년대 초 호르크하이머는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비판이론의 방법론적 모범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정치경제학 비판을 넘어선 새로운 비판적 사회이론을 기획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194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그는 도구적 이성비판에 근거한 문명비판으로 철학적 관심을 전환시킨다. 벨머는 독일 노동운동의 실패, 파시즘과 스탈린 체제의 테러 등이 호르크하이머로 하여금 ‘새로운 이론적 지향’을 모색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도구적 이성비판』과 같은 해 출간된『계몽의 변증법』에서 호르크하이머의 맑스 정치경제학과의 거리두기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두 저작에서 그는 맑스적 정치경제학 비판의 틀을 벗어나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역사철학적 차원에서 고찰하는 문명비판, 이성비판으로 자신의 철학을 새롭게 전개한다. 호르크하이머는 『도구적 이성비판』는 “현대 산업 사회 문화의 저변에 놓여 있는 합리성”(GS6, 25)개념을 천착한다. 그 합리성은 다름 아닌 이성의 자율성을 포기하고 인간과 자연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성의 도구화를 의미한다. 그는 이성에 내재한 정의, 평등, 행복, 관용과 같은 이념이 이성이 지배의 도구로 전락함으로써 어떻게 자신의 비합리성을 드러내는지를 밝히고자한다. 이와 같은 호르크하이머의 철학적 관심의 전환은 『계몽의 변증법』에서 계몽의 자기 파괴성, 다시 말해 "왜 인류가 진정한 인간적인 상태로 들어가는 대신에 새로운 야만상태에 빠지게 되었는가"(GS6, 16)을 이성 비판적 차원에서 해명하려는 동일한 이론적 목표를 설정하게 만들었다. 맑스 철학과 거리두기는 1942년의 글인「권위적 국가」에서도 나타난다. 위 글에서 호르크하이머는 사회분석틀의 중심을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정치적이고 문화적 차원으로 무게중심을 옮긴다.
이 시기에 호르크하이머는 자신이 이전에 사용하던 맑스적 개념 자체를 의도적으로 중립적인 개념으로 대체시킨다. 라이엔과 브란센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어떻게 맑스적 용어를 중립화했는가를 자세히 추적한다. 그들에 따르면 독점의 개념은 문맥에 따라 경제기구, 대량생산의 행위자, 현대산업 시스템, 문화산업, 시스템, 콘체른, 트러스트 개념 등으로 대체되었다. 자본개념은 경제, 힘과 같은 개념으로 대체 되었다. 맑스의 생산관계 개념은 보다 중립적인 경제의 형식개념으로 대체되었으며, 계급지배 대신 지배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 밖에 착취라는 개념은 노예화라는 보다 일반적인 개념으로 대체 되었다. 이 시기 이후 계급의 역사라는 개념 역시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호르크하이머 철학의 전환과 맑스적 개념을 중립화하는 일련의 변화가 맑스 철학과의 결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의 「반유대주의의 요소들: 계몽의 한계」에서 시민적 반유대주의 분석을 유대인들의 경제적 기능과 역할, 성과라는 경제적 분석틀을 사용한다. 「문화산업: 대중기만으로서의 계몽」장에서도 문화산업을 작동시키는 기본 메커니즘인 이익극대화의 경제원리와 경제적 선별메커니즘에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해서 설명한다. 이 장에서 호르크하이머가 설명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문화산업 내에서 문화독점(Kulturmonopole)이 어떻게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차원에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이 점에서 라이엔과 브란센이 지적한 맑스적 개념의 중립화 테제는 변화된 맑스 분석틀의 내용적 거리두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맑스의 정치철학적 개념을 문화 분석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더 적절한 개념, 다시 말해 맑스의 정치경제학 용어의 문화이론적 재정의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맑스 철학과의 또 다른 거리두기의 사례는 계급 없는 사회에 대한 테제 비판이다. 호르크하이머는 계급 없는 사회의 가능성 문제가 아닌 계급 없는 사회 자체가 인간적인 사회라고 단정지울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그는 계급 없는 사회가 모든 것이 좋을 수 없으며 정작 그런 사회가 실현된다하더라도 그것은 위로부터 관리되는 세계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맑스철학과의 거리두기와 함께 호르크하이머의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점점 거세진다. 그에 따르면 맑스주의는 역사 문제의 사회주의적 해법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맑스주의자들에게 맑스주의는 여전히 전체진리(die ganze Wahrheit)이다. 교조화된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은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과격한 비판으로 나타난다. 호르크하이머는 현실사회주의를 ‘권위주의 국가’, ‘억압체제’, ‘총체적 관료주의’, ‘거짓의 산물’, ‘야만의 단계’와 동일시한다. 이와 같은 비판의 수사학은 후기 호르크하이머의 현실사회주의 비판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이와 같은 호르크하이머의 입장은 한편으로는 독일 공산당과 동유럽 공산당에 대한 소비에트의 관리와 통제, 권위주의 국가화된 레닌과 스탈린체제에 대한 그의 공격적인 시각의 반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문명 비판적 역사철학적 전회의 반영이기도 하다.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에서 역사의 진보와 퇴행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 호르크하이머에게 인간과 계급간의 갈등과 모순에 근거한 맑스의 역사철학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간과하고 인간의 문제에만 매몰된 오류를 범한 것이다.
5. 후기 호르크하이머의 맑스비판
맑스 학습기라고 할 수 있는 비판이론 이전의 시기와 맑스 철학의 새로운 확장으로서의 비판이론기, 비판이론에서 이성비판으로 전환기, 그 이후인 1960년대 이후 호르크하이머의 철학은 또 다른 변형을 거치게 된다. 많은 호르크하이머 연구자들은 후기의 호르크하이머를 초월성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신학적 계기를 그 자신에 담지 하지 않은 어떠한 철학도 존재하지 않는다”(GS7, 276)거나 “비판이론은 적어도 신학적인 것에 대한 사고, 즉 다른 것에 대한 사고를 내포한다”(GS7, 393)는 호르크하이머의 철학적 입장에 근거해 논의를 전개한다. 호스펠트는 호르크하이머의 관심의 전환을 “무신론적 맑스주의자로부터 초월성을 예감하는 비맑스주의자로의 변화”로 파악한다. 포스트는 후기 호르크하이머가 보여주는 신학적인 것, 초월적인 것에 대한 탐색의 원인을 맑스주의와 초기 비판이론의 이론적 범주로 기술할 수 없는 그 무엇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그뮌더는 후기호르크하이머가 초기의 비판이론의 이념인 정의로운 사회의 이념을 희생시키면서 신학으로 접근했다고 주장한다. 전기와 중기에 비해 후기 호르크하이머에 있어서 초월적, 신학적 계기성을 더욱 더 드러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들은 호르크하이머가 이해하는 신학의 의미, 신학적인 것이 담지 하는 현실 비판적 함의에 주목하지 않으며, 1930년대 방식의 사회비판 프로그램을 일관되게 수행할 수 없는 ‘완전한 관리사회’로의 변화와 이에 대한 비판 이론적 대응을 간과한 것으로 보여 진다. ‘완전히 다른 것에 대한 동경’은 슈미트가 옳게 지적한 바와 같이 “관리되는 사회로부터 빠져나오려는 유한한 존재의 동경”인 것이다. 후기 호르크하이머는 ‘완전히 다른 것에 대한 동경’이 반드시 종교철학적 차원에서만 이해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같은 시대에 이루어진 철학대담에서도 호르크하이머는 이성적인 사회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것에 대한 전망의 본질적인 차이를 말하고 있지 않다. 호르크하이머는 ‘완전히 다른 것에 대한 동경’을 말하면서도 여전히 “철학의 참된 사회적 기능은 현존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GS7, 401)이라는 비판이론기에 설정한 철학의 과제를 고수한다. 또한 호르크하이머 자신이 ‘완전히 다른 것에 대한 동경’을 종교철학적으로 해석할만한 단서를 체계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후기의 호르크하이머는 여전히 유물론적 입장을 버리지 않았으며 경제적인 관점에서 사회를 분석하는데 맑스 없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현실사회주의와의 최종적인 결별은 후기 호르크하이머의 정치적 보수화로만 이해 될 것이 아니라 ‘자유의 사상가’로서 맑스를 재해석하고 현실사회주의로부터 맑스 철학을 구분 지으려는 그의 노력과 관련이 있다. 특히 관리되는 세계에 대한 논의는 자본주의 체제 발전에 따른 자유의 종말과 관련이 있다. 이 지점에서 호르크하이머가 맑스에게 배웠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자유에의 동경”(GS7, 379)은 인간 일반의 보편적 자유에 대한 동경으로 발전한다. 먼저 후기 호르크하이머의 특징인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과 결별의 원인을 살펴본다.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호르크하이머의 비판은 1961년의 글 「문화비판으로서의 철학」에서 확인된다. 여기서 그는 맑스가 비판했던 초기 산업화 시대의 영국보다 오히려 러시아가 더 인간을 잔혹할 만큼 기능화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같은 해의 논문「쇼펜하우어의 현재성」에서 호르크하이머는 소비에트 체제가 ‘총체적 관료주의(totalitäre Bürokratie)’에 도달 했으며 오히려 혁명전의 짜르 시대보다도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GS7, 139). 호르크하이머의 소비에트 체제비판은 레닌, 스탈린 체제 지배하의 현실사회주의 비판을 넘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비판과 중국 모택동 체제 비판으로 이어진다. 호르크하이머가 보기에 동유럽 독재체제는 간교함, 도구, 교조화의 정신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들의 체제 작동방식은 니체를 히틀러 식으로, 예수를 대심판관으로 이해하는 방식그대로 운용되고 있다. 그에게 동유럽의 독재 권력은 “거짓의 산물(Lügengebilde)”에 불과하며, 맑스의 철학은 단지 의식조작의 도구로 이용될 뿐이다.
동유럽국가에서 맑시즘은 그것의 목적론적이고 이상적인 요구가 거부된 채 마치 실제적인 종교처럼 기능한다. 그것은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 의식조작의 도구로서 봉사하고 있다.(GS7, 196)
동유럽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호르크하이머의 비판은 1965년 쓰여진「자유의 위협」에서 수행된 중국공산당 비판에도 동일하게 표현되고 있다. 모택동 체제하의 중국에서 개인의 의미, 개인의 자유는 말해질 수 없다. 단지 “국가적 우리(das nationale WIR)라는 새로운 우상이 존재”(GS7, 139)할 뿐이다. 호르크하이머는 여기에서 ‘전복된 계몽(umgeschlagene Aufklärung)’의 현실을 읽어내고자 한다. 그에게 중국사회주의 현실은 ‘야만으로 이행하는 단계’로 포착된다(GS8, 279). 주목할 만한 사실은 호르크하이머가 동유럽 체제를 비판 할 때 맑스의 철학과 현실사회주의를 분리하며, 맑스의 철학을 옹호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호르크하이머의 관점에서 동유럽체계는 맑스의 자유의 철학을 왜곡하고 권력화에 악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문맥에서 호르크하이머는 맑스의 철학을 자유의 철학으로 간주하며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자유’가 맑스 철학적 주제라고 강조한다. 맑스의 관심은 ‘자유의 확대와 자유의 확산’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자유야말로 맑스 시대의 유일하고 적절한 목표이며 맑스는 사적 유물론을 통해 이를 근거지우고 있다고 본다. 호르크하이머가 보기에 레닌이나 그의 동료들도 권력을 잡기이전에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해 노력 했다.
한편 1968년 호르크하이머는 「오늘의 맑스」에서 맑스 이론에 대한 총론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다. 호르크하이머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통해 맑스의 역사전망이 실패했음을 분명히 한다.
“역사는 맑스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진행되었다. 그가 분석했던 자본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의 빈곤화는 확실히 진전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에 의해서 기대되었던 혁명은 좌절되었다.”(GS8, 306)
위의 인용구는 호르크하이머가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프롤레타리아의 빈곤화가 가속화 된다는 맑스의 혁명이론과 단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호르크하이머는 노동자 계급의 경제적 상태가 맑스 시대보다 계속해서 나아졌으며 단순 육체노동자가 사무직 노동자로의 지위 상승과 삶의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또한 사무직 노동자가 사회에서 의미 있는 사회그룹이 되었다고 판단한다. 오늘날처럼 계급구조가 고착된 서구사회에서나 유사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는 한국적인 상황에서 호르크하이머의 주장은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독일과 유럽사회에서 계급구조의 유동성이 제도적으로 확보되기 시작한 1960년대 후반이라는 사회문화적 변동기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제한적 타당성을 갖는다. 호르크하이머는 위의 주장에 근거해 맑스의 위기이론(Kriesetheorie) 역시 거부한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경제적 위기는 점점 드문 현상이 되어 가고 있으며 정부의 조정에 의해 위기 발생을 방어하고 약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올바른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회적 연대가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의 폭발적 사회연대의 형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호르크하이머의 입장은 혁명개념의 중립화와 프롤레타리아 사회연대에서 인간 일반의 보편적 연대라는 새로운 희망과 연관되어 있다. 그는 혁명이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될 수 있으며, 파쇼적인 폭력지배로부터의 해방을 기대하는 인간의 희망 속에 혁명이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GS7, 371). 호르크하이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불가능한 관리되는 체제하에서 자유의 실현을 위한 인간의 연대를 주창한다. 억압의 산물인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적 연대 대신에 관리되는 사회에서 인간의 연대(Soridarität der Menschen)가 비판이론의 새로운 과제가 되는 것이다.
호르크하이머는 맑스의 자본 중앙화와 집중화 테제에 대해 재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맑스는 자본의 중앙화와 집중화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이해했다. 그것을 사회주의의 시작으로 보는 것 역시 잘못된 것이다. 호르크하이머의 맑스비판은 경제적 문맥에서 이루어 지지 않고, ‘관리되는 세계(Verwaltete Welt)’에 대한 비판 차원에서 행해진다. 이와 같은 비판전략이 경제문제에 대한 사회 철학적 환원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호르크하이머에게 자본의 집중화는 사회가 통일적으로 조직된 그룹의 관리체계로 진입과 경제적 과정들의 내적논리가 사회의 모든 것을 규율화하고 조정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본 중앙화와 집중화의 결과가 관리되는 세계인 것이다. 관리되는 사회는 관리(Verwaltung)가 사회에서 결정적인 권력을 갖게 되고 절대적 관리의 경향으로 나타난다. 관리되는 사회에서 자율적 주체의 가능성은 주어지지 않는다.
호르크하이머가 자율적 주체의 한 예로 들고 있는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사업가의 상대적 자율성 역시 점차 사회의 관리체계로 편입되어간다. 관리되는 세계는 사회가 자유와 사회정의를 향해 나아가지 않고, 관리메커니즘의 조정 하에 주어진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의식과 행위가 자동화(Automatisation)된 사회이다(GS7, 377). 자본 중앙화와 집중화가 관리되는 세계로 이행된다는 주장은 ‘자유의 왕국’ 도래에 관한 맑스주장에 대한 비판의 비판을 함축한다. 주지하다시피 맑스는 역사의 마지막 단계에 자유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자유의 왕국이란 인간의 사고가 더 이상 자연과의 대결에 의해 규정되지 않고 완전히 자유로우며 인간성이 실현된 상태를 의미한다. 자유의 왕국은 무엇보다도 어떠한 저항이나, 가난, 사회적 위험도 존재하지 말아야 하며 인간의 사유 역시 지금까지와 달리 편안해야 한다. 이러한 점을 충분히 제시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호르크하이머는 역사의 목표에 대한 맑스의 사유를 관념적이라고 주장하며 그를 지독한 관념론자(ein krasser Idealist)로 규정한다. 호르크하이머 비판의 초점은 자유의 왕국의 도래에 대한 희망적 관측과 구체성의 결여에 맞추어져 있다. 동시에 그는 자유의 왕국이 도래하기 어려운 측면을 자유와 정의, 자유와 평등 개념이 갖는 변증법적 성격에서 찾는다. “자유와 정의는 변증법적 개념들이다. 더 많은 정의는 더 적은 자유, 더 많은 자유는 더 적은 정의. 자유, 평화, 형제애는 신비에 찬 슬로건이다. 그러나 평등을 얻기를 원하면, 자유가 제한되어야만 한다.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려면, 어떤 평등도 주어질 수 없다”(GS7, 370).
호르크하이머에 따르면 맑스는 자유를 모든 힘들의 자기실현으로 파악했으면서도 자유를 실현하는 과정에 예상되는 방해, 위험,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호르크하이머에게 인간의 자기실현이란 그와 같은 것과의 충돌 없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관리되는 사회는 이미 ‘충돌’ 가능성이 체제통합력에 의해 해소된 사회를 가리킨다. ‘자유의 왕국’의 불가능성에 대한 비판적 성격을 갖는 관리되는 사회에 관한 논의는 그가 관리되는 사회의 긍정적 측면을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모호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호르크하이머는 관리되는 사회에서 인간의 물질적 욕구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심지어 “우정과 사랑, 독립적인 결합”(GS7, 428)에 의한 인간의 ‘보편적 연대’의식이 싹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관리되는 사회에서 어떤 인간과 어떤 사회그룹이 물질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고, 어떻게 보편적 연대가 가능한지에 대하여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호르크하이머의 모호한 입장과 구체성의 결여는 그 역시 ‘지독한 관념론자’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6. 나오면서
지금까지 호르크하이머의 맑스 철학 수용과 비판을 그의 철학의 발전에 따라 살펴보았다. 호르크하이머 사회철학은 초기 학습기와 후기의 비판적 대결 시기까지 맑스의 정치경제학, 정치철학에 대한 입장이 점차 약화되면서 자신의 고유한 사회철학을 발전시켰다. 동시에 호르크하이머는 맑스의 철학, 정통 맑스주의, 현실사회주의를 엄밀하고 일관성 있게 구분하는 논의전략과 분석을 통해 맑스에 대한 정당한 이해를 추구했다. 특히 맑스 철학과 현실사회주의를 구분하는 이론적 관점은 유물론을 더 낳은 사회건설을 위한 현실비판의 무기로 이해하는 초기의 입장과 자유의 철학자로서 맑스 철학을 재해석하려고 시도하는 후기의 입장에서도 일관되게 관철된다. 이와 같은 호르크하이머의 인식태도는 정통 맑스주의의 교조화에 대한 무비판적 시각과 1990년 공산체제의 붕괴이후 한국의 좌파 진영에 나타난 맑스 이론과 현실사회주의의 동일화로 인한 인식의 혼란상과 무기력한 태도, 손쉬운 입장의 전환 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단서를 주기에 충분하다. 언제나 변화된 세계에서 사회비판의 이론적 실천을 강조한 호르크하이머에게 비판 이론기에 나타나는 방법론적 풍부함과 맑스적 유물론의 중립화는 새로운 유물론의 전개라는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중립화는 도구적 이성 비판기와 인간의 보편적 연대를 강조하는 후기 호르크하이머의 철학을 이미 예고하고 있다. 후기 호르크하이머는 맑스 정치경제학, 정치철학과 비판적으로 대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맑스의 정치철학과 현실사회주의를 일관되게 구분하는 노력을 보임으로써 맑스의 정당한 이해를 추구한다. 이 점에서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호르크하이머의 결별이 곧 그의 정치적 보수화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후기 호르크하이머의 보수화 논거로 제시되는 맑시즘에서 종교철학으로 이행이라는 해석틀은 그의 종교철학적 사유가 사회비판의 지평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호르크하이머의 맑스 철학의 수용과 비판에서 왜 맑스에게 정치경제적 분석이 중요한지, 그 자신의 철학에 있어서 왜 그것이 중요한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찾아볼 수 없다. 또 그가 지향하는 ‘이성적인 사회’, ‘보편적 인간연대’가 실현된 사회를 위해서 어떤 종류의 경제체제가 구상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방법론적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했다. 관리되는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관리되는 사회의 긍정성에 대한 지적은 맑스의 자유의 왕국도래에 대한 비판적 성격을 약화시키며 논의의 일관성 유지하지 못하게 한다.
맑스 철학의 수용과 비판에서 제기될 수 있는 호르크하이머 사회철학의 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호르크하이머의 사회철학의 의의는 이성적인 사회가 건설되기 이전과 그 이후에도 현실의 부정성에 대한 중단 없는 비판이라는 비판이론 자체의 이론적 태도에 있다. 비판이론이란 기존사회의 부정성에 대한 비판적 활동 속에 자신을 드러내며, 사회의 변화에 따라 비판이론의 내용은 변화해도 비판이론의 태도는 지속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경제현실과 관련해 호르크하이머의 완전고용 노동자와 실업자, 불완전 임시고용, 노동자와의 갈등에 대한 분석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서 상존하는 경제모순으로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의 성격과 노동자간의 사회적 노동협약을 통한 사회연대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이론적 단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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