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뿌리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 편에 기록된 그 장엄한 건국 사화에 닿아 있다.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니..."라는 기록은, 우리 역사가 단순히 지상의 소국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천지인(天地人)의 조화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 바탕으로 문명을 개창했음을 증언한다. 이어지는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였다"는 기록은, 우리 민족이 고대 조선이라는 거대한 기틀 아래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던 문명사적 주체였음을 실증한다. 《삼국유사》는 일연 스님이 수많은 사료를 대조하며 집대성한 우리 역사의 등불이자, 식민사관이 그토록 지우려 했던 '민족의 유전자' 그 자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헌법 전문은 자랑스럽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정작 그 법통의 뿌리인 9천 년 국통(國統)은 정부와 교과서와 강단에서 외면받고 있다. '반도사관'이라는 식민의 굴레에 갇혀, 우리 역사를 좁은 한반도 안에 가두고 스스로를 타율적이고 정체된 민족으로 깎아내리는 '세뇌'가 공기처럼 만연하다. 10대 경제강국을 이룩한 주역들이 자신의 시조와 역사의 기원을 말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신화나 허구로 치부하는 현실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이제 우리는 지나의 중원 왕조 스스로 남긴 1차 사료라는 ‘문헌학적 메스’를 들어 그 거짓을 폭로해야 한다. 《상서(尙書)》 「우공(禹貢)」, 《여씨춘추》, 《회남자》, 《주례》 등 선진(先秦) 시기 최고의 지리 원문들을 정밀 분석해보면, 중원 왕조가 천하의 정북(正北)과 동북(東北)으로 규정한 ‘기주(冀州)’와 ‘유주(幽州)’의 본래 좌표가 명확히 드러난다. 이 문헌들은 기주와 유주의 시원적 거점이 오늘날의 만주나 요하가 아니라, 황하가 꺾여 흐르는 지나 대륙의 산서성 남부(하동)와 그 북안인 하내(河內) 지역이었음을 증언한다. 즉,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가 중원 왕조의 바로 옆, 혹은 그 중심부를 포함한 거대한 영역이었음이 문헌학적으로 증명되는 것이다(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