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낱말 풀이 시험을 치런 적이 있었다. 당시에 교과서의 참고서(전과)가 있었는데 그것에 낱말의 뜻이 수록돼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산수나 모든 과목의 답이 수록돼 있었다. 학기 초만 되면, 전과 구입하는 것은 필수였다. 그 한 권이면 한 학기의 모든 수업에 따른 숙제를 감당할 수 있었다. 단어의 뜻을 외워서 치르는 국어 시험이 있었고, 단어의 변형 시험도 있었다. 비슷한 말, 반대말, 본딧말, 파생된 말 등등 단어의 용법에 관한 시험이었고, 관계 대명사 시험과 관사 시험이 있어 문장에서 어느 단어나 사건을 가리키는 것인지 답을 쓰는 것도 있었다. 60년 전의 학습이었지만 늘 마음에 남아 있다.
영어를 배우면서 문법의 중요성은 더욱 중요했다. 문법은 외우면 되는 것이라 여겨서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울 정도로 반복하니 문법에 정통하는 결과를 낳곤 했다. 영국 유학에서 미국행을 위해 토플 시험을 치를 때도 문법과 단어 시험에 자신감을 비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해 보지 않았기에, 물론 책으로만 접했고, 삶에선 고급 문장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구름 잡는 영어 공부였다고 여겼었다. 언어 공부를 마치고 실력 시험을 통과한 후 당당히 미국에 이르자 고급 대학원 과정을 소화해야만 했다. 늘 중수필(essay)을 제출하는 것이 나에게 벅찬 일이었다. 중수필을 쓰는데 필수조건이 어휘만 아니라 그것의 용법이 중요했고, 또 문법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글을 쓰는 것은 문법, 어휘, 용법, 일반 상식, 문화 등이 어우러지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초등 시절에 배운 국어 문법이 떠올랐다. 어휘, 상식과 문화를 위해 여러 명작을 접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래서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그것을 채우는 일이 쉽지만 않았다. 그런데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에 그동안 밀렸던 작품과 부족한 영문법에 관한 지식의 증진을 위해 힘썼다. 미국에서 두 개의 석사학위와 남아공에서 박사학위 과정은 쉽지 않았다. 30대를 지나 40대에 이르는 인생의 기나긴 여정을 마쳤지만, 나를 기다리는 것은 뚜렷한 교수직이 아니었다. 이것은 또 다른 인생의 과정이었다. 그렇다고 힘들었고 외로웠지만 뒤로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이 나이에 이르러서 회고하면, 너무 열심히 살았기에 되돌아가고 싶지 않고 계속 앞으로 진행하고 싶고 인생의 결말이 어떻게 될런지 기대하면서 오늘도 힘차게 걷고 뛴다.
그 나이, 그 환경, 그 시점에서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을 무심코 지나치면 다른 재치를 빌리곤 한다. 신앙에도 반드시 밟아야 하는 필수 과정이 있다. 한번 밟았기에 다시 밟지 않아도 되는 길은 없다. 구원의 진리를 언제든 하나님 측면에서 단회적이지만, 인간 측면에선 반복적이고 부분적이다. 지나면 잊어버리고, 새로운 것이 유입되면, 옛것을 잊곤 한다. 그래서 반복하거나 학습과 연습하지 않으면 언제든 잊어버리고 만다. 상실했을 땐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항상 우리 자신이 하나님, 즉 신인 양 한번 접종했으면 평생이라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일부 몇몇은 그런 경우도 있곤 하지만 대부분은 반복 학습하여 앞의 것을 늘 기억하면서 전체를 배우곤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별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채워야 한다. 게으름과 몇몇 사정으로 채우지 않거나 태만했을 때는 그 대가는 비싼 가격이다.
구원의 진리를 따르는 신앙생활은 이보다 훨씬 중요하다. 구원이 한 번이고, 영원하다는 것은 하나님 측면이지 인간 측면이 아니다. 이것은 예정과 의지를 헷갈리는 경우이다. 의무를 착각하여 임무처럼 완수했으면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착각한다. 신앙은 의무이기에 늘상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우리 몸을 강건하게 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 누가 나를 튼튼하게 만들지 않는다. 매일 학습, 노력, 증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