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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과정
좌선의 알아차림
1. 좌선
좌선은 몸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몸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알아차립니다. 주로 들숨 날숨에 의한 현상들을 알아차리지만, 가려움, 통증, 망상, 졸음, 싫증, 의심 등도 나타나면 그것도 모두 알아차립니다. 좌선은 여기저기로 방황하는 마음을 몸이라는 기둥에 알아차림이라는 끈으로 묶어서 고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밖으로만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불러서 몸에 붙이는 작업입니다.
좌선을 시작할 때
1) 바른 자세로 앉습니다.
몸의 긴장을 다 풀고 편안하면서도 바른 자세로 앉으십시오. 턱을 약간만 아래로 당기고, 허리는 편안하게 펴십시오. 손은 무릎 위에 편하게 올려놓고, 발은 반가부좌를 하거나 두 발을 나란히 바닥에 놓는 평좌를 하십시오. 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을 만큼 부담 없는 편안한 자세로 앉으십시오.
2)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지금 바라고 있는가, 하기 싫은가, 졸리는가, 들떠있는가, 의심하는가 등을 알아차리십시오. 이것은 현재의 마음상태나 기분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이때 어떤 마음이 있든지 그냥 ‘그런 마음이 있네!’하고 알아차리십시오. 아무 마음도 느껴지지 않을 때는 ‘아무 마음도 없네!’라고 알아차리십시오.
3) 몸을 직접 알아차리며 내려갑니다.
먼저 눈꺼풀, 입술, 손, 엉덩이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이어서 느낌의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자, 먼저 눈꺼풀이 있는 것을 아십시오. 눈꺼풀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느낌입니다. 이때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눈꺼풀이 서로 닿아있는 것을 느끼십시오. 점차 닿아있는 부위에서 따스함, 가벼움, 무거움, 떨림, 빛 등을 아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중 지금 경험하는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오. 그리고 얼마동안 그 느낌의 변화를 주시하십시오.
이제 입술로 갑니다. 입술이 닿아있는 것을 알아차리십시오. 이제 입술에 있는 따뜻함, 촉촉함, 떨림 등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그 변화를 보십시오. 또 느낌이 변하는 것을 얼마 동안 주시하십시오.
다음은 손으로 갑니다. 손이 어딘가에 닿아있습니다. 그곳에 마음을 두고 손의 모양이나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오. 따뜻함, 쑤심, 진동 등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그 느낌의 변화를 얼마 동안 주시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엉덩이로 갑니다. 엉덩이가 방석에 닿아있는 것을 아십시오. 그리고 닿아있는 부분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오. 무거움, 단단함, 떨림 등의 느낌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지금 느끼는 감각을 대상으로 그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얼마 동안 그 느낌의 변화를 주시하십시오.
4) 현재를 알아차립니다.
현재 이 순간을 지켜보십시오. 현재 마음이 알고 있는 것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현재는 소리를 듣는 마음, 호흡을 느끼는 마음, 피부의 감촉을 느끼는 마음, 생각하는 마음, 근심 걱정하는 마음, 때로는 편안한 마음이 지나갑니다. 얼마 동안 이런 마음의 흐름을 주시하십시오. 이것은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보는 심념처 수행입니다.
5) 몸의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다시 몸으로 돌아와 앉아있는 자세를 전체적으로 크게 느껴봅니다. 가만히 몸 전체의 느낌을 주시합니다. 몸의 어디선가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호흡으로 일어나는 풍대의 작용입니다.
호흡은 코, 가슴, 배, 몸의 일부에서 움직임으로 나타납니다. 그중 가장 잘 느껴지는 곳 하나를 선택해서 그 자리에서 호흡을 알아차리십시오. 호흡은 자연스런 호흡을 해야 합니다. 복식 호흡이나 단전호흡으로 호흡을 일부러 만들지 마십시오.
예를 들어 배의 움직임을 알아차렸다면, 2, 3회 정도 들이쉬고, 내쉬고 하며 자연스런 호흡이 되도록 숨을 쉬는 것을 지켜봅니다.
이렇듯 앉아서 천천히 호흡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 사마디(samādhi=삼매, 집중, 통일력)가 상당히 나옵니다.
2회 내지 3회 그런 식으로 호흡을 할 때는 명칭을 붙이지 말고 자연스럽게 호흡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그렇게 호흡하는 감각, 이른바 배의 팽창 수축을 관찰하도록 하십시오.
배의 팽창 수축을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은 배꼽 주위를 따라서 손을 대어 보십시오.
숨을 들이쉴 때는 배의 팽창을, 숨을 내쉴 때는 배가 수축되는 것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팽창과 수축을 이해했다면 손을 무릎 위에 되돌려 놓고 자연스럽게 호흡해 주십시오. 그 호흡에 맞추어서 배가 부풀어 오를 때 ‘일어남’이라고,
수축되어 갈 때 ‘사라짐’이라고 해주십시오.
처음에는 호흡의 움직임 중에서 ‘일어남' 하나만을 알아차리다가 어느 정도 대상에 마음이 잘 집중되면 이제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아차리십시오. 좀 더 집중이 되면 일어남, 사라짐, 쉼까지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집중되면서 점차 배의 팽창 수축에 따라 느낌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그 느낌을 알아차리고, 그 느낌의 변화를 주시하면서 알아차림을 이어갑니다.
6) 수행 중 나타나는 장애를 알아차립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중에 마음은 어느덧 망상, 통증, 졸음, 싫증, 의심에 빠집니다. 이런 장애들은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장애를 없애려하거나 싫어하지 말고 나타나는 대로 알아차리고, 즉시 몸으로 돌아와서 다시 호흡을 알아차리십시오.
만약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즉시 ‘망상’ ‘망상’ ‘생각함’ ‘생각함’ 하면서 마음으로부터 망상이 사라질 때까지 알아차리도록 합니다.
위빳사나 수행에서 초심자 단계에서는 배에 집중하는 것이 여간해서 잘되지 않습니다. 호흡하여 배의 팽창 수축을 관찰하고 싶어도 곧 이 망상이 생깁니다.
그러나 배에 집중할 수 없다고 하여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빳사나에서는 지금 마음이 가장 강하게 느끼고 있는 현상을 그냥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수행을 시작하자마자 곧 망상이 생겨도 ‘망상’ ‘망상’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30분의 수행 중 모든 것이 망상이라고 쳐도 그 망상 전부를 명칭 붙여 알아차림 했으면 훌륭하게 위빳사나 수행을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명상이 향상되어 좌선 수행하고 있으면 점점 집중력이 늘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한층 한 순간 한 순간의 알아차림을 철저히 해나가면 사마타수행과 같은 삼매(사마디)상태로 되어 갑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에 따라서는 돌연 수행 중에 빛이 나타나거나, 망상이 보이거나 합니다.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흔치 않은 대상을 따르고 싶어 하지만, 이것도 망상이므로 구애받지 말고 빛이 나타났다면 ‘빛’ ‘빛’하고, 다른 현상이 나타나도 ‘망상’ ‘망상’하며 명칭 붙여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 현상과 대상이 자신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오직 현상을 알아차릴 뿐입니다.
때로는 보살이나 부처님이 마치 살아계신 듯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단지 내 마음이 마음대로 만들어 낸 망상에 지니지 않으므로 ‘보고 있음’ ‘보고 있음’하며 망상이 사라질 때까지 관찰하십시오.
아무리 집중력이 강해져도 妄想(망상)이나 妄像(망상)은 생기기 때문에 그 현상을 빨리 알아차리고, 배의 팽창과 수축으로 곧바로 되돌아갈 수 있게 발전되면, 배의 팽창의 시작, 중간, 끝을 알게 됩니다. 이럴 때는 배의 ‘일어남’ ‘멈춤’ ‘사라짐’이라고 명칭 붙여 알아차림 합니다.
이렇게 셋으로 나누는 관찰법은 생 주 멸이라고 하는 태어남, 존재, 소멸의 진리를 관찰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통증과 저림, 추위와 더위 등도 그것을 느꼈을 때, 곧바로 ‘통증’ ‘통증’ ‘저림’ ‘저림’ 등으로 모든 것을 명칭 붙이며 알아차립니다.
싫다든가, 편하다든가, 즐겁다든가, 기분이 좋다든가, 무섭다, 등의 감정도 모두 그 자리에서 명칭 붙여 알아차리십시오. 좌우간 무엇이 나타나든, 어떤 감정이 떠오르든, 마음에 와 닿은 모든 대상을 명칭 붙여 알아차릴 뿐입니다.
사마타 명상처럼 하나의 대상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장 많이 느끼고 있는 대상을 명칭 붙여 알아차림 합니다.
명상을 시작해 얼마 되지 않는 사람 중에는 여러 가지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복부에 전혀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집중하려고 해도 곧 마음이 산만해져 버려 무언가 생각하기 시작한다.” 등등.
좋습니다. 마음이 산만해져도,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해도, 그 마음이 따르고 있는 대상을 한발 빨리 알아차려 그것을 명칭 붙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면 드디어 마음은 가라앉아 자연히 복부의 팽창 수축을 관찰할 수 있는 상태로 돌아갑니다.
배의 팽창 수축에 오로지 집중할 수 없어도, 나타나는 대상마다 명칭 붙여 알아차리면 위빳사나 수행은 향상되어 가므로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리해서 복부의 팽창 수축을 관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마음은 언제 어떤 경우에라도 반드시 무언가 자극을 얻기 위하여 대상을 구하기 때문에 앉아있을 경우 가장 관찰하기 쉬운 대상이 말하자면 배의 팽창 수축이므로 ‘일어남’ ‘사라짐’이라고 명칭 붙여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현상을 알아차리는 사띠야말로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 앉아있는 경우 곤란한 일이 졸음입니다.
졸고 있으면 수행은 되지 않으므로 졸음만은 피해야 합니다.
졸음이 찾아오면 ‘졸음’ ‘졸음’하고 명칭 붙여 강하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졸음이 가라앉으면 좋겠지만, 졸음이라는 것은 끈질겨서 그 정도의 명칭만으로는 여간해서 퇴치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꺼풀 내려옴’ ‘눈꺼풀 내려옴’ ‘무거움’ ‘무거움’ ‘아픔’ ‘아픔’ ‘통증’ ‘통증’ 하며 졸음이 오는 길을 따라 명칭 붙이며 강하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졸음이 물러가지 않으면 신체를 움직여서 졸음을 쫓습니다.
졸음이 쏟아질 때는 대개 신체가 앞으로 기울고, 목이 굽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자세를 고치려고 함’ 하며 알아차린 후, 천천히 등뼈와 목이 똑바로 되도록 바로 잡아 주면서 ‘허리 폄’ ‘허리 폄’ ‘목 폄’ ‘목 폄’ 하며 알아차립니다.
그것으로 졸음은 떨어져 나갈 것이므로 그 후에 다시 배의 팽창 수축으로 되돌아갑니다.
또 다리가 아프거나 저려오는 것도 오래 앉아 있을 경우 자주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 경우 ‘통증’ ‘통증’하며 관찰합니다.
통증을 쭉 관찰해 가면 통증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통증은 싫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생기기 쉬우므로 그것도 관찰하여 ‘싫어함’ ‘싫어함’ 하며 알아차려 갑니다. 통증이라고 하는 현상은 대상으로서는 꽤 강한 부류에 속하지만, 관찰 대상으로서는 수행을 진보시키기에 적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증을 관찰하는 경우 주의할 것은 그 통증을 어디까지나 제3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신체의 통증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통증과 저림을 관찰해도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앞의 졸음과 같이 신체의 자세를 고칩니다. 이 경우는 다리를 바꿔 꼬고 앉는다든지 하는 동작이 필요하기 때문에 천천히 하나하나의 동작을 명칭 붙여 알아차림하며 다리를 바꿔 앉아야 합니다.
가려움이 나타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려움이 나타나면 우선 ‘가려움’ ‘가려움’ 하며 가려움을 관찰합니다.
그렇게 해서 가려움이 신경 쓰이지 않게 되면 다음의 현상을 관찰합니다. 가려움이 진정되지 않고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긁고자 함’ ‘긁고자 함’ ‘손을 올림’ ‘손을 올림’ 피부에 ‘닿음’ ‘닳음’ ‘긁음’ ‘긁음’ 하며 명칭 붙여 관찰합니다.
긁어서 기분이 좋아지면 ‘기분 좋음’ ‘기분 좋음’ 하며 관찰합니다.
소리나 목소리가 들릴 경우도 ‘소리’ ‘소리’라든가 ‘들림’ ‘들림’ 합니다.
만일 가려움과 소리와 통증이 동시에 현상으로 나타날 경우도 마음이라고 하는 메커니즘은 하나의 대상밖에 취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결코 동시라고 하는 일은 없습니다. 당연히 하나씩 하나씩 관찰해야 합니다.
다만 마음의 변화는 빛의 속도보다 몇 배나 빠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동시에 몇 개의 현상을 취하고 있는 것같이 생각되는 것뿐입니다.
이런 때에는 일단 관찰하는 것을 그만두고 마음을 개방합니다.
그 위에서 지금 현재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대상을 알아차림 하면 됩니다.
혹은 대상을 순차적으로 관찰합니다.
7) 좌선 중에 이따금씩 몸의 자세를 살펴봅니다.
좌선 중에 ‘지금 몸의 자세는 바른가?’하고 몸의 자세를 알아차립니다. 만일 몸에 힘이 들어가 있거나 반듯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리면서 반듯하게 고쳐줍니다. 그러면 다시 몸의 긴장이 풀어지며 알아차림을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또 이따금씩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는가?’ 하고 현재를 알아차려보십시오. 만일 알아차림을 놓치고 생각에 빠졌으면 ‘생각하고 있네!’ 라고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돌아와 다시 알아차림을 시작합니다. 이때 알아차림을 놓치고 생각에 빠졌다고 후회하면 다시 알아차림을 놓친 것입니다.
좌선 중에 나타난 대상은 무엇이든지 다 법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이 잘되길 바라거나 장애를 없애려고 하지 말고, 무엇이든 나타나는 대로 모두 법으로 받아들여 알아차리십시오.
좌선 수행도 한 시간 앉아있을 수 있으면 충분하므로 그 후에는 똑같이 한 시간 정도 경행을 해주십시오.
처음부터 무리하게 좌선수행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빳사나 수행은 좌선, 경행, 입선, 와선의 네 가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능숙하게 조합하는 것입니다.
좌선수행을 끝낼 때에도 확실히 명칭 붙여서 끝냅니다. 우선 명상을 ‘끝내고자 함’ ‘끝내고자 함’ ‘끝내고자 함’이라고 명칭 붙이고, 거기부터 또한 천천히 ‘일어남’ ‘사라짐’을 2회나 3회 더 한 후 ‘눈을 뜸’ ‘손을 뻗음’ ‘오른쪽 다리를 폄’ ‘왼쪽 다리를 폄’ ‘일어섬’이라고 명칭 붙여 하나하나 꼼꼼히 알아차리며 일어섭니다.
그렇게 확실히 끝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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