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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v;Wry](3389, 예루샬라임)
예루살렘 Jerusalem(지)
예루샬라임은 예루엘(laeWry] , 3385)와 샬렘(!l'v; , 7999)에서 유래했으며, '평화의 터전'을 의미하여, 팔레스틴의 수도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a) 이스라엘 사람들은 원래의 가나안 도시국가의 명칭인(참조: 수 10:1) 예루살렘을 발견하여 그것을 이어 받았다. 그 어원은 최근에 이르러서야 설명되었다. 이 가나안 지역의 이름은 '샬렘(평화)의 기초' Foundation of Salem, 즉 우가릿어 본문에 의하면 석양을 담뿍 안은 신의 기초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의 신전은 이 정착지역에 있었는데, 그것은 원래 시온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후기 역사에서 예루살렘은 확장된 정착지 전체의 이름으로 남아 있었다. 다윗이 그곳을 점령한 후에도 그 도성은 그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그곳은 또한 다윗성이라고도 불리웠는데, 나중에는 이 단어가 옛 도성을 나타내는데만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시온과 예루살렘 그리고 다윗성은 때때로 같은 것을 의미한다(참조: 삼하 5:6 이하, 왕상 8:1, 대상 11:4 이하, 대하 5:2).
시온(히브리어 치욘이란 이름의 어원은 확실하게 설명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와 관계있는 시리아어와 아라비아어 어근에 의거해서 '불모의 산' barren mountain이라는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어원상의 기원에 의해 산의 요새라는 의미를 찾아볼 수도 있다. 그것이 이스라엘 이전의 가나안 시대에서 유래되었다는 것과 지리적 명칭인 지형의 묘사를 표현한다는 것만이 확실하다. 처음부터 시온은 남동부의 언덕지대, 원래의여부스 성채와, 주전 2천년때부터 이미 동의어로 언급되었던 고대 가나안 정착지 예루살렘 자리(수 10장과 겔 16:2 이하의 역사적 회고록)의 이름이었다. 삿 19:10 이하와 대상 11:4에 나오는 도성의 이름은 여부스인데, 그것은 아마르나 문서(1,400-1,350 B.C.)에 의해 거주민에게 주어졌던 이름인 고유명사 여부시트(Jebusite)에서 파생된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 도성은 이 이름을 그곳의 이름으로 결코 삼지 않았으며, 그 이름이 널리 퍼지지도 않았다.
(b) 구약성경에서 예루샬라임은 도성의 이름으로 치욘보다 훨씬 많이 등장한다(각각 660회와 154회).
유다나 이스라엘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정확히 두 영토 사이에 위치해 있는 중립도시로서 예루살렘은 다윗왕의 이상적인 수도였다. 그가 용병군으로 그곳을 점령했기 때문에 그곳은 독립되어 있었고, 동시에 다윗왕의 사유 재산이었다(참조: 삼하 5:6-10).
그러나 노드(M. Noth)는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여호와의 궤를 가져온 것을(삼하 6장) 그 도시의 미래의 중요성을 위한 결정적인 행동으로 본다(M. Noth, The Laws in the Pentateuch and Other Studies). 이 행동은 예루살렘 성전에 옛 근린(近隣) 동맹(고대 헬라에서 공동 종교 센터를 수호하기 위해 모인 이웃 국가들간의 연합)의 중앙 성전의 역할을 부여했는데, 그것은 미래에 대한 이스라엘의 소망에 있어 매우 큰 중요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다윗 왕조의 중심지라는 독특한 독립된 위치에 있는 가나안 도성인 예루살렘이 왜 이스라엘의 예배의 중심지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오직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옮긴 일에 의해서만이 설명될 수 있다. 북 왕국이 남 왕국과 분열된 이후에 조차 예루살렘은 양쪽의 왕국에 중심적인 신학적 중요성을 계속 지니고 있었다(왕상 12:27, 왕상 12:28). '비록 예루살렘의 성소가 언약궤의 존재로 인해서 지파를 위한 예배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이 성전 자체는 더욱 더 중요한 성지가 되어 그 자체의 중요성을 획득하게 되었다'(Noth, op. Cit., 142). 한 때 그 궤 위에 좌정하셨던 만군의 여호와(삼하 6:2)께서는 이제 "여호와의 전의 산"(산 2:2 이하, 미 4:1 이하) 위에,"시온산에 계시는" 분이시다(사 8:18).
반면, 포러(G. Fohrer)는 근린동맹(amphictyony) 개념의 계속되는 영향을 주장한다(TDNT Ⅶ 302 이하). 언약궤는 옮겨진 후에 더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 백성의 예루살렘에 대한 인식(왕상 12:26 이하)은 신명기적인 해석이거나 혹은 요시야에 의한 이스라엘 합병의 덕택이었다(참조: 렘 41:5).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에서 예루살렘은 왕국의 수도로서 정치적 왕국의 중심지였으며, 그러한 예우를 받았다. 중앙 중심의 제의를 드리는 성전이 있는 도성으로서, 예루살렘은 여전히 영적?종교적 중심지였으며, 정치적인 단결이 와해된 뒤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았다. 거룩한 성(사 48:2, 사 52:1)은 더욱 더 신정(神政)의 소망의 초점이 되어 갔다. 역사적 경험 뿐 아니라 신학적인 사고가 이 성전 도시의 불가침성과 불멸성의 관념을 강화?확대시켰다(참조: 사 36장 이하, 왕하 18장 이하, 대하 32장, 렘 7:4). 특히 포로기 동안 그것은 모든 바람의 화신이었다(시 137장). 여기서조금 더 나아가 이 도시의 이름과 종말론적인 기대가 합쳐지게 된 것이다(렘 31:38 이하). 예루살렘은 열방이 그곳으로 모여들고(렘 3:17), "만민의 기도하는 집"(사 56:7)이라고 불리우게 될 온 세상의 중심이 되리라고 기대되었다. 예루살렘과 시온은 흔히 이 모든 복합된개념 가운데서 함께 사용된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스스로 관찰할 수 있었던 상황에 대해 말하게 되자, 다른 모습이 드러났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창녀가 되었다. 우상숭배와 하나님 계명에 대한 무시가 성안에 유행했다. 왕들과, 그 왕들을 따르는 시민들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독자적인 정치의 길로 가고 있었다(참조: 이사야, 예레미야, 미가, 에스겔). 따라서 선지자들은 그 도시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였는데, 그 심판은 타락한 백성들이 돌아서 회개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할 수 없었다(렘 4:3 이하). 외국인들과 왕들은 청결해지고 정화된 예루살렘이 되게 할 심판을 시행하려 했다(사 40장).
여호와의 의도는 예루살렘에게 다시 선을 행하려한 것이었고(슥 8:15), 시대의 종말에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해하지 못하리로다"(욜 3:17) 하였다. 그러나 종말론적인 예루살렘은 단지 개선되고 새로워진 지상 도시로 항상 여겨졌을 뿐, 결코 초자연적인 천상의 도시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열방은 그곳으로 순례를 떠나 새로운 삶의 길을 받아들이고(사 2:2 이하), 여호와께 향할 수 있었다(렘 3:17). 예루살렘으로부터 축복의 냇물이 세상으로 흘러내릴 것이었다(겔 47:1 이하). 이 거룩하게 된 도시로부터 여호와께서는 온 세상을 다스리실것이다(사 24:23). 이곳에 그의 보좌가 자리할 것이다(렘 3:17).
(c) 시온(Sion)이란 이름은 처음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지 않았다. 후일에 이르러서야 선지자들과 시인들이 그 이름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 의미를 확장시키거나 전이시켰다. 한편으로 시온은 예루살렘과 함께 전체의 확장된 도시에 적용될 수 있었으며, 시온은 유다나(예: 렘 14:19, 시 69:35) 때로 이스라엘과도(사 46:13, 시 149:2) 같은 뜻을 나타낼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온은 남동부 고지대 뿐 아니라 성전이 세워진 북동부 고지대까지도 나타내게 되었다(참조: 시 2:6, 시 20:2). 여호와는 시온 위의 하나님이시며(시 99:2, 시 135:21), 또한(렘 8:19에 의하면) 만군의 주님은 시온산에 거하신다. 시온의 거민은 (다른 도시의 거민들과 마찬가지로) 시온의 아들, 딸이라고 불리웠다(예: 왕상 19:21, 시 9:4, 시 149:2,사 1:8, 사 3:16 이하, 슥 9:9).
이 차용어를 조사해보면 그곳은 특히 여호와의 임재가 느껴지는 제의의 중심으로서의 예배 장소를 강조한 곳이라는 것을 흔히 알 수 있다. '시온에 오르는 것'은 '주님께 나가는 것'과 같은 일이다(렘 31:6).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곳도 시온이다(시 9:11).
(d) 초기 유대주의에서 이 이름의 용법은 구약성경의 용법과 다름없다. 예루살렘/ 시온은 세상 어디에서나 매일 기도하는 시간 동안 그곳으로 얼굴을 향하는 소중한 도시였다. 사람들은 큰 절기 때마다 가능하면 그곳으로 갔으며, 그곳에 죽어 묻히기를 소망했다. 흩어진 유대인으로부터 성전세라는 명목으로 막대한 금액의 돈이 예루살렘으로 흘러 들어와, 그 도움으로 제사의식이 유지되었다.
종말론적인 사상은 발전되어 갔다. 세속 도시가 여호와의 승리의 장면이 되리라는 생각과 더불어(에스드라하 13:25 이하, 시빌신탁 3:663 이하) 묵시 문학에서는 종말 때 지상으로 내려오는(에스드라하 10:27, 54, 13:36), 천상에 이미 존재하는 예루살렘에 대한 믿음이 생겨났다(바룩이서 4:2 이하). 또 다른 개념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의로운 사람들이 결국 거주하게 될 장소로서 천국에 남아있게 된다(에녹일서 55:2). 새로운 시온/ 예루살렘은 상상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지닐 것이며(토빗서 13:16 이하),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살 것이고(시빌신탁 5:251 이하) 하나님 자신에 의해 다스려질 것이다(Sib. 3:387). 이 거대한 도시의 중심은 예물이 바쳐지는 새로운 성전이다(토빗서 13:10 이하).(H. Schultz)
[참고 - 예루샬라임(!yIl'v;Wry]). 예루살렘 Jerusalem. 이 곳은 남쪽 가나안에 있던 고대 도시로서, 다윗 왕조의 수도이며, 예수님에게 거부되고 그 결과 주후 70년, 티토(Titus)에 의해 멸망되기까지 유대교의 종교 중심지였다. 이 곳은 또한 기독교회의 상징, 곧 미래의 메시야 왕국의 예언된 자리, 그리고 하나님의 최후 심판 후의 궁극적인 새 예루살렘의 원형으로 간주되었다. 구약성경에서만 669회나명칭으로 언급된 예루살렘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이다(시 48:1-2[H2-3]), 그 곳은 하나님의 지상의 거처요(왕상 8:13), 그리스도 부활의 현장(눅 24:47)이었으며 영광으로 그가 다시 오실 장소가 될 것이다(슥 14:5).
현 예루살렘의 남동쪽에서 구석기 시대의 도구들이 발견되긴 했지만, 도시 부락은 청동기 시대 초기의 가나안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던 것같다(B.C. 3000-2000). 장소 선정은 도로 교차점이 있고, 오벨산, 혹은 시온산의 군사적 이점, 그리고 이 도시의 동편에 있는 기드론 골짜기에서 솟아나는 기혼의 연중 끊이지 않는 물 때문에 이곳이 지정되었던 것같다. 이 곳에 대한 첫번째 언급은 이 시대의 말엽, 아브라함이 이중의 직무에서 그리스도의 원형이 되는(시 110:4, 히 7장) 예루살렘의 제사장이자-왕인 멜기세덱(창 14:20)에게 경의를 표하는 곳에서 나온다. 그 곳에 인접해 있는 모리아 산에서(대하 3:1),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삭을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기꺼이 바쳤다(창 22:2, 대략 B.C. 2050).
최초의 보도에 의하면, 이 도시는 에블라 석판(Ebla tablets)에 맨처음 언급되었다고 한다(Kitchen, K. A., The Bible is its World, Paternoster, 1977, p.53). 그 다음에 이 곳은 청동기 시대 중기(2000-1600)의 애굽 12왕조의 저주 본문(Egyptian Execration Texts ofthe Twelfth Dynasty)에서 우루살리뭄(Urusalimum: 살렘의 기초(?) foundation(?) of Shalem)으로 언급되었다. 이 형태가 아마르나 서신(B.C. 14세기)에서는 우르살림무(Ursalimmu)로 표기되었던 것같다. 따라서 이 단어가 초기 히브리어에서는 "살렘의 기초" foundation of Shalem이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생각되는, 예루샬렘(yerushalem)으로 발음되었다. 여기에서 샬렘은 우가릿 신화 본문에서 알려진 어떤 신을 의미하지만, 히브리어에서는 '평화' peace나 '안전' security을 의미하게 되었다.
모세의 창세기 기록(B.C. 약 1450)에서 이 이름의 본래 성경적 명칭은 단순히 "살렘"(창 14:18, 참조, 시 76:2 [H3]), 즉 '완전한' complete, '번영하는' prosperous, '평화로운' peaceful을 의미하는 '샬렘'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아람어에서의 이 단어의 형태, 예루셸렘(단 5:2)과 70인역본에서의 이 단어 형태인 이에루살렘은 중세의 마소라 히브리어 예루샬라임 보다 더 정확한 것이다. 후자는 애굽을 뜻하는 양수 명사인 미츠라임의 모형에 따라 형성되었을 것이다.
비록 여호수아가 청동기 시대 후기에 그 곳을 점령하여(수 10:1) 그의 사후에 잠시동안 이스라엘인들이 그 곳을 차지하긴 했지만(삿 1:8, 1390년경), 예루살렘은 주전 1003년에 다윗에 의해 점령되기까지(삼하 5:6-9), 가나안인들(여부스족)의 손에 남아 있었다. 다윗은 언약궤를 특별한 장막으로 가져옴으로써(삼하 6:17), 시온을 하나님의 임재의 보좌로 삼았다(시 132:13). 959년에 솔로몬은 영구적인 성전을 완성하였다. 그 성전은 586년에 느부갓네살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520-515년에 스룹바벨에 의해 재건되었고 예수님께서 후에 하나님의 참된 평화를 가지고 그 곳으로 들어가셨다(학 2:9). 따라서 예루살렘은 "큰 임금의 성"이다(시 48:2[H3], 마 5:35). "시온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실제 국적이야 어떻든(6절, ICC, Psalms, Ⅱ, p. 240; 참조, 갈 4:26),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된다(시 87:4-5). 이 도시의 이름은 천국 그 자체를 가리키게 되었다(히 12:22-23). - J. B. Payne.] (p696*).
- 바이블렉스 10.0 에서 내용 발췌 -
프로스원어성경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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