判 書 公 派
護軍公(彦誠-19대-1/3)
奉事公(昌榮-20대-彦義-<軍資監 判官2/3>의子)
禦侮公(彦傑-19대-3/3)
19대 삼형제가 각기 종파를 형성하게 된 것은 각 그 벼슬이 무관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명종대에 태어나 그 다음 선조 임진왜란(1592년)시
군대의 보호, 훈련 및 물자조달 등의 군무에 종사한 것으로 보임.
첫째인 호군공 후손들은 경북고령 일대에 거주하고 있으며, 21대의 막내(4남)가
울산 두서로 내려와 그 후손들이 경주 외동, 울산 두동 등지에 뿌리를 내림.
둘째 언의의 아들 창영(20대-봉사공)은 네 아들을 두었으나 첫째와 셋째는
후손이 없으며 둘째는 그 후손들이 고령에서 남쪽으로 이동해 의령 등지에
살고 있으며, 막내 弘釴(홍익)이 울산 온산으로 내려와 현재 우리가 입항조로
모시고 있음
셋째 어모공 후손들은 합천군 일대에서 살고 있음.
봉사공파 계보
弘釴익(21대4/4):온산공단 조성시 온산 내음지에서 현재 위치로 이동.
國尙(22대-온산하회,配-종곡)
進禮(23대-원봉,配-산성 南子)
淳(24대1/2-산성,配(울산이씨-大云村前丁坐),灝호2/2(산성 남,배-광주노씨,同局亥坐)
東采(25대1/1-대운양지산정/광주노씨합장) 鳳采(25대1/1)
* 현재 산성 묘지는 淳(24대)의 것으로 판단되며 그분의 처(울산이씨-지금까지 언급된
노씨 할매가 아님)가 아들 동채와 함께 대운으로 이전한 것으로 보임.
22대 두분, 23대 두분, 24대 네분, 총 여덟분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는
2008년 국가산업단지 편입시 이장된 분들과 위의 묘 위치들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함.
東采
裕權1/2 (26대-陰地山 卯坐 ) 翌權2/2(26대-大云太化谷坐)
裕權(1/2)
度恒(×) 度局(2/3 -27대) 度赫3/3
(鉢陰곡유좌/대운獨支峰) (예동곡/내원사 后)
度局의 후손으로 治周(28대,예동곡/합장),商慶(29대),台觀(30대,경주감리교회/합장)
元國(31대,경주감리교회), 龍號(32대-1971生,봉사공파의 장손)
度赫의 후손으로 첫째 彦周(28대,兄垈곡/예동곡),商旭(29대,산지곡/산지곡입구),東涉(30대)
순모(31대)인모,기현,운석형제로 둘째 仁周(28대),양자 商善(대운을좌/하대사태곡),
30대 원식,태식형제,31대성근(원식의자),성문,성윤, 32대진문(성근의 자,1965년생)
翌權(26대2/2)
度弘 度勳 度鎰 度榮 度彦
첫째 도홍(27대,1808生예동곡/陰地山丁밀양박씨)의 후손으로는 啓周(28대,음지산갑좌/
음지산정) 그 아들 삼형제 商洙(예동곡),商益(여천민대산),商律(영천),상수의 子 로는 英華(30대 예동곡),상익의 자로는 奎華(미상),振華(화장),潤華(여천민대산),
셋째 상율의 子 로는 洪華(예동곡)가 있고 그 아래로는
英華 (30대) 奎華
仲鉉 (31) 三鉉 盛鉉 昌鉉
인도 순곤 순용 순호 순동 순광 순원 순재 순정
둘째 度勳(27대,예동곡/同谷),그아들必周(陰地山子坐/예동곡),그의子 ,商根(29대-화장)
商根(29대)
邦太(大垈山) 邦右
鶴鵬(31대) 鶴述 成道(1930생)
貴東(32대) 福東 海東 相東 泳東 良浩(1972생)
셋째 度鎰(太化谷/대운용호곡),그의子로 澤周,應周가 있고,택주의아들로商準(29대-陰地山/池內谷입구),그의 아들로 동화,시화,재화,수화가 있으며,응주의 아들로는 네분 商建,商馥(복)
商喜,商作가 있고, 그 아래로는 아래표와 같다.
商建(29대)
容華 水奉 張洙
만두(31대) 만석 桓模 鐵謨 大振 春謨 奇柱(‘60생)
昌大(‘70생)
商喜
南俊 南德 南瑞 南斗
방 석 수 두 영 순 대 지 동 주 칠 수
모 현 현 현 모 현 현 모 현 현 현 현
(出系) (出系) (子系)
상조
慶 華
일찬 무찬 기찬 호찬
넷째 度榮(27대-언양압현촌/경주산내면)의 子로는 文周(언양/경주산내)와 基植(화장)이
문주의 子로는 寅賢(29대-상북)이 기식의 子로는 商玄, 商佑,商翼,商憲이 그 아래는
표와 같다.
寅賢 商 玄 商佑 商翼 商憲
鐵口(30대-하북) 演出 利生(子系) 再出 甲生
鎭元 萬允 형복 형호 유수 윤수,진환 진영 진윤 형모
현동(32대)현표 진탁 창수 창영 순철 유철
(‘84) (’80) 知領 성영
재훈 宰湧
(‘79) (’86)
다섯째 度彦(울산처용/山城子坐)의 子로는 時周(산성/처용)와 永周(×)가 있고 시주의
아들로 泰鎭(거남/同) 그의 아들은 세명,元得,元達,元出, 원득의 자로는 운선(卒)과
경선(×) 운선의 자로 성문(‘49),성일이,원달의 자로 기선,그밑에 재락(’63),
원출의 子로 성용과 백청이 있음.
* 2006년 국가 산단에 편입된 산성토지 495평의 토지대장상의 주인은 위 영주로써
토지 보상금 1억원은 원출의 자 성용이 수령했음 (2007년 부동산 조치법 시행시
가로챘으며, 종중에서는 소송에 들어갔으나 패소)
鳳采(25대-末未村/同, 동채와 4촌간),그 아들 弘權(石塘里), 그의 자 度一(內洞/通川)
그 아들 永周(28대-청량), 그다음 敬恢회(29대), 다음 石柱(30대-온양 발리지내곡/동)
石柱
東植(31대) 東浩 五祥
(‘32생,귀지입구,생존가능) (’36생,‘78졸) (’40생,78졸)
32대→ 순기(‘61) 진헌(’68) 용덕 용구 용진 현석 현철
(64) (68) (71) (69) (72)
*상기 내용은 봉사공 후손들 중 의령쪽은 제외하고 울산 중에서도 東采(25대)후손들만을
추린 것입니다.향후 파보 작성시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결언: 현임 회장(정진도-32대)이 족보에 나와 있는 내용을 가지고
구차하게 이런 시간을 가지는 이유는
첫째로는 향후 개인별/단체별로
21대 弘釴(홍익-입항조)이전의 조상(19대,彦義-軍資監判官,
20대-奉事公-昌榮)들이 거주했던 지역(경북성주,고령등지)을
답사하여 우리의 뿌리를 확인하고 핓줄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는데도 그 의의가 있으며
둘째로는 지난번 종중재산(강양리 산152번지)처분과 관련,
東采(25대-양지산합장)이전 조상들의 묘지확인 및 그 처리문제와
셋째 현재 우리가 관리하고 있는 봉사공파 종중 부동산이 25대 이전에 형성됐으므로 鳳采 후손들도 종중재산행사 권리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함께
동참 시켜야 합니다.
부득불 참여치 못하는 분들에게는 분파별로 재산 분할도 향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