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 새해에 회원 여러분의 가정에 평안을 기원하면서 하시는 일들이 모두 이루어지시길 바랍니다.
지난 정기총회에서 맥시조 30주년 행사를 31주년이 되는 2010년에 맥시조 30집 발간을 하는 해에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때 맥시조 30년사를 저보고 쓰라고 하여 둔한 필을 들어 자료를 정리하였습니다만 잘못된 부분이나 좋은 의견을 보내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원자신에게 해당하는 부분은 한번 시간내어서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초창기, 도약기, 성숙기로 나누었는데 제 나름의 시각입니다. 회원들의 뜻을 모아서 수정할 일이 있으면 수정하겠습니다.한번
생각해 주시고, 조주환 명예회장님의 고견도 듣도록 하겠습니다.
A4 22쪽 분량이라서 첨부파일로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파일다운로드 싫어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첨부파일 아래 전문을 실었습니다.
맥시조문학회 30년사.hwp
맥시조 30년사(표1).hwp
맥시조문학회 30년사
김우연
맥시조문학회 30년사를 살피기 위해서 먼저『경북문학100년사』1)릍 통하여 맥시조의 위상을 살핀 후에 맥시조문학회 30년사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경상북도는 시조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성주의 이조년, 영천 출신인 정몽주, 야은 길재 등이 작품과 단양에서 태어나 영해사록을 지내고 말년에 안동에서 생활한 우탁 등의 작품이 전하기 때문이다2).
개화기 시조에서는 1906년 「대한매일신보」에 사동우, 대구여사의 ‘혈죽가’라는 근대시조가 발표되면서 시조 부흥 운동이 시작되었다.
1920년~광복이전을 현대시조의 모색기라고 하며, 이 시기에는 20년대 말의 이응창, 김영진, 조애영, 30년대의 임영창, 40년대의 이호우, 이영도 등이 있다.
광복이후~50년대는 현대시조 개척기이며, 김상훈, 박경용이 등단하여 대구 경북지역의 시조단이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는현대시조이 정립기이며, 1960년대 대구 경북지역 시조단의 가장 획기적인 일은 ‘영남시조문학회’의 결성과 1967년『낙강』의 창간 발행이다. 이 시기에 등단한 시인은 10 여명이 된다.(배병창 정완영 김월준 정재호 류상덕 김장수 김종윤 김시종 여영택 장정문 정표년 지준모)
1970년대는 현대시조의 격변기라고 하며, 많은 시인들이 등단하여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경북의 시조인구는 급증했으며 무려 30여명이나 등단하였다. 맥시조문학회를 창립한 조주환은 197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하였다.
1970년 말 전국의 시조시인이 180명(한국시조큰사전)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경북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1980년대는 현대시조의 혁신기이다. 그것은 현실의식과 실험의식의 시들이 왕성하게 창작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대구․경북 시조계도 큰 변모를 겪게 된다. 81년 7월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예총, 문협 등의 예술 단체도 나뉘어졌다.
이 시기의 동인 활동은 연륜을 쌓은 ‘낙강’과 1980년에 창간호를 낸 ‘나래’, ‘비화’(현재는 ‘맥’)를 중심으로 펼쳐졌으며, ‘영가’동인은 1986년에 동인지 창간호를 냈으며, 1989년 ‘오늘’ 동인이 결성되어 첫출발을 하였다.
이때까지는 전국에 동인지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는데, ‘낙강’이 향토시조단의 핵심적 역할을 하면서 조주환이 주도한 ‘비화’와 정석주가 주도한 ‘나래’는 꾸준히 신입회원들과 등단시인들을 늘여가면서 전국 시조단에 보폭을 넓혀가며 시조인구의 저변확대와 경북시조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980년대에 대구․경북에서 등단한 시인으로는 이승돈 정석주 권형하 김경자 허민홍 이병춘 장병우 이강룡 이일향 남전희 김근주 윤신근 신필영 김혜배 권혁모 강인순 리봉학 민병찬 신후식 손수성 황무굉 신용직 서석찬 배종교 조창환 이유나 이익주 이동백 등 28명이 등단하였다.
1990년대는 현대시조이 확산기이다. 시조인구가 급속도록 증가하였으며 경북에서 30여 명이 신인들이 등단하였다. 이 시기는 지조가 주변 장르에서 주된 장르로 이행되는 시기로 보기도 한다.
이 시기에 등단한 경북의 시인으로는 민병덕 서숙희 정광영 황능곤 박기하 이문균 이무식 안중식 정남채 장세득 조순호 손수성 김우연 박희서 노종래 강성태 김성자 우경화 김두섭 이경옥 이정미 원정호 조영두 이상도 임술랑 박광훈 최상호 김제홍 권오진 유재호 등이 등단하여 경북시조단의 호황기를 맞게 되었다.
2000년대는 시인의 수나 작품의 량, 문학상 수상 등에 있어서 경북의 시조시인들이 시조단을 넘어서서 범 문단을 이끄는 경북시조의 르네상스라고 할 만큼 모든 면에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동인 활동으로는 ‘낙강’, ‘맥’, ‘나래’, ‘오늘’, ‘영가’ 등의 활동이 있으나 ‘나래’의 활동이 더욱 활발하게 이어졌다. 2003년부터 동인지를 ‘계간’으로 전환하여 ‘시조전문지’로 탈바꿈했으며, ‘직시사여름시인학교’를 개최하여 일반 대중들과 함께 하는 시조문학 행사로 전환하고, 시조 노래 보급 운동, 시조백일장 개최, 시조 문학 기행, ‘시인학교’를 개최, <문예창작대학> 운영, ‘단시조백일장’. ‘단시조작품상’, ‘단시조대샹’ 등을 운영, 시조를 노래로 작곡하여 30여 곡을 현대가요로 인터넷상에 보급하는 등의 활동을 볼 수 있다.
이상으로『경북문학100년사』를 살펴볼 때, 1980년대는 ‘낙강’이 대구 경북 지역의 핵심적인 동인활동이었으며, ‘맥’(비화)과 ‘나래’시조가 동인활동의 양대축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 지역에서 등단한 28명 중에서 이병춘 리봉학 손수성 황무굉 신용직 서석찬 배종교 이유나 8명이 맥시조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1990년대에 등단한 30명 중에서 서숙희 이문균 조순호 손수성 김우연 강성태 김두섭 이경옥 이정미 원정호 조영두 박광훈 김제홍 13명이나 맥시조 동인이었으니 경북문단에서 시조저변확대의 가장 활발한 역할을 한 단체가 맥시조문학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대를 접어들어서도 맥시조문학회는 투명한 서정시를 빚어내고 있으며 동인들의 끈끈한 정으로 이어져오고 있으나 새로운 신인배출이나 영입에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07년부터『시조대학』등을 운영하여 새로운 활력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나래시조문학회’가 2003년부터 ‘계간’지로 전화하여 ‘시조전문지’로 탈바꿈하고, 김천문협과 ‘백수 정완영 백일장’을 공동 개최하는 등의 활발한 활동과 비교해볼 때 지금은 정체기를 맞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90년에 경북문단에서 시조저변확대에 가장 큰 기여를 한 단체가 맥시조문학회였다. 지금도 동인활동으로는 가장 충실히 하고 있는 단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활력이 필요한 것 같다.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새로운 부활을 위하여 1979년에 창립한 맥시조문학회 30년사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맥시조문화회(당시 비화문학회)는 1979년 6월 창립하였으니 회원은 17명이었다. 그해 7월에 창립기념 시화전을 개최하였으며, 10월에는 문학의 밤(강연회, 시낭송회, 학생백일장)을 갖기로 하였으나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행사가 유산되었다.
1980년 2월에 시부문 창간호 출간을 준비하여 5월에 ‘1980․봄 창간호’『飛火』를 경북인쇄소에서 비매품으로 출판하였는데 41쪽이다. 요즘 보면 얇은 책일망정 당시에는 전국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책이었다.
권두언은 ‘여럿이서’ 썼는데, ‘더 많은 忍苦의 땀을 ……’ 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서라벌 말굽소리, 화랑의 맥박이 울려와 형산강줄기를 휘갑고 굽이돌며 묵묵히 脈을 잇는 여기 안강벌에 아직은 서투른 발음으로 내일의 우람한 열매를 기약하면서 감히 문학이란 깃발의 씨앗을 묻는다.
우리의 첫 출발은 어떤 時流에의 편승이나 눈치작전이 아니라 스스로의 꿈과 체험과 진실을 스스로의 목소리로 다듬어 가며 노래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제 뿌린 씨앗이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우리는 더 많은 忍苦의 땀을 감수할 것이다.
이 至純한 우리들의 첫 울음을 계기로 향토문화 발전과 한국문학 발전의 조그만 부분에라도 이바지할 것을 바라며 동도의 선배 여러분의 매운 채찍을 기다린다.” 고 발힌 것이 권두언의 전문이다.
초대시인으로 이정우(1969년 매일신춘문예출신, 안강천주교회 신부)의 자유시 두 편을 실었으며, 특집으로는 조주환의 등단작인 ‘대왕암’외 6편의 시조 및 시로 쓴 시론인 ‘시에 대하여’를 실었다.
회원 작품으로는 강재원 변희명 서석찬 양윤삼 이병춘 이경동 등 6명의 작품 19편을 실었다. 이 중에서 강재원 변희명 서석찬 이경동은 자유시를 양윤삼 이병춘은 시조를 발표하였으니 창간호에는 자유시와 시조가 함께 발표한 시문학 동인회였다.
창립회원은 17명이었으나 발표는 7명이 참여하였으며, 등단 시인은 조주환 1명 뿐이었다.
1980년 10월에는 백수 정완영 시인의 초청 강연회가 있었으며, 10월에 제1회 비화학생백일장을 개최하였다.
1981년에는 30쪽 짜리의『飛火』2집을 출판하였으며, 제자(題字)는 백수 정완영의 글을 받은 것이다.
권두언은 조주환 회장이 썼는데, “문학에의 길은 참으로 멀고, 험한 고행의 길인지도 모른다. 이 길이 비록 험하고 역겨워도 오직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내일을 위해 더 겸허히 그리고 더 한층 성실히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야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초대작품에 이정우의 자유시 2편을 실었다.
2집에 발표한 회원으로는 조주환 이병춘 이경동 서석찬 변희명 김우연 김진혁 등 7명의 작품 21편을 실었다. 이중에서 조주환 이병춘 김우연 김진혁은 시조를 이경동 서석찬 변희명은 자유시를 발표하였다. 김우연 김진혁은 2집부터 참여하였다.
제1회 비화학생백일장 작품으로 중고등부 장원 이승진과 초등부 장원 이형구의 시를 실었다.
1981년에 변희명은 개인시화전을 개최하였으며, 비화문학회는 5월 제2회 비화학생백일장을 개최하였다.
2대회장으로 조주환 회장이 연임하였다.
비화창간을 축하해 온 분들의 명단을 보내주신 순으로 마지막에 실었는데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최승범 하청호 설창수 김해성 금동식 조병기 윤혜승 민경철 이태수 박재삼
김몽선 정재익 이장희 조병화 전상렬 김호영 정재호 정석주 김영수 김시종
이정룡 오동춘 정순량 류상덕 이우걸 김두년 여영택 권태문 예종숙 하영필
민홍우 이건선 (32명)
안동문학 제주문학 전북문학 시문학 매일신문 한국일보 경향신문(7곳)
1982년에는 동인지를 내지 못했으며, 1983년에『飛火』3집을 안강의 제일인쇄소에서 출판하였다. 제자(題字)는 국전초대작가인 남강(南岡) 이종원님의 글이다.
특집으로『시조문학』을 천료한 이병춘의 ‘진달래’외 5편을 실었다. 창립한 후 첫 등단시인을 배출한 개가를 올렸다. 이해 김진혁도 『시조문학』에 초회천을 받았다.
회원 작품으로는 조주환 김진혁 양윤삼 윤정오 이경동 서석찬 강재원 김우연 등 8명의 작품 34편을 실었다. 이 중에서 윤정오은 자유시, 이경동은 자유시 4편과 시조 한편을 실었다. 자유시를 쓰던 서석찬도 시조를 쓰게 되었으며, 이경동도 시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권두언을 조주환 회장이 썼는데, “ 시조와 자유시를 병작하던 동인들이 이제 시조에 더 큰 비중을 두겠다고 한다. 정형시든 자유시든 주정이든 주지이든 그런 것이 별로 문제일 수 없다. 오직 진실을 바탕으로한 고고한 시정신 속에 영원히 빛부실 한 알의 열매를 얻기 위해 각고의 땀을 흘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리라 믿는다.”고 말하고 있다. 또 “이 길에는 충실하는 일만이 자기실현의 길이며 더 큰 자아를 완성하는 길이라 믿는다.”고 하였다.
신입회원으로 윤정오가 있었는데 자유시를 발표하였다.
3대회장으로 조주환 회장이 연임하였다.
1984년에 『飛火』4집을 안흥인쇄소에서 출판하였다. 제자(題字) 덕송 박봉하의 글씨이다. 권두언은 조주환 회장이 썼는데, “우리가 처음 飛火라고 이름 한 것은 안강의 옛 이름인 比火懸의 比火를 어느 분이 飛火라고 잘못 옮겨 준 것을 그대로 사용하여 飛火로 굳어진 것이다. 比火든 飛火이든 불(火)과의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타오르는 불볕 속에서도 우리 飛火가 창립한 지 이제 다섯 주년이 되고 해로 네 번째로 작품집을 묶는다.”고 하였다.
신입회원으로 이영선, 서순태가 있으며, 김진혁은 『시조문학』에 ‘서천 강나루’로천료하였다.
회원들의 작품은 조주환 이병춘 강재원 서석찬 이경동 김우연 윤정오 이영선 서순태 김진혁 등 10명의 작품 30편을 실었다.
신입회원인 서순태는 자유시를 쓰고, 이경동의 작품도 모두 시조 작품으로 발표하였다. 서순태는 이런 분위기 탓인지 알 수 없으나, 한 번 발표하고는 활동을 중단하고 만다. 윤정오는 3집에 자유시를 발표하고 4집에서 시조만을 발표하였는데 그 이후로는 개인 사정상 활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창간호에서 7명중 자유시를 발표하던 서석찬 강재원 이경동도 자유시를 쓰다가 시조로 바꾸었으며, 윤정오도 3집에서 자유시에서 시조로 바꾸게 되었으니, 4집에 와서는 거의 시조문학동인회에 바뀌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주조환 회장의 영향으로 보인다.
1985년에는 4대 회장으로 리봉학을 선출하였다.
『飛火』5집을 포항삼양문화사에서 출판하였으며 제자는 박봉하의 글씨이다. 서문은 ‘다섯 번째 내거는 등불’이란 조주환의 글이다.
시조를 쓰는 신입회원 리봉학 황무굉 신용직 조순호 손수성 등 5명의 참여하여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중 리봉학은 85년 『시조문학』을 통하여 천료하였다. 그러나 4집에 발표를 하였던 양윤삼 이경동 윤정오 서순태 4명은 5집부터 더 이상 동인활동을 멈추었으며, 이병춘은 5집에는 작품을 싣지 않다가 6집에서 9집까지 발표하다가 활동을 멈추게 된다. 이처럼 초창기 ‘비화문학회’는 격동의 세월이었음을 알 수 있다.
『飛火』5집의 회원들의 작품은 리봉학 신용직 황무굉 조순호 손수성의 작품을 앞에 싣고, 조주환 김진혁 김우연 서석찬 강재원 이영선 등 11명의 작품 44편을 실었으며 모두 시조 작품들이다.
창간호에서는 자유시(4명)와 시조)(3명), 2집에서는 시조(4명), 자유시(3명)으로 자유시와 시조가 함께 한 동인지였으나 3집부터는 시조가 주류가 되었으며, 5집에서는 완전히 시조작품들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맥시조문학회에서는 『飛火』5집이야말로 순수한 시조동인지로서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85년에 입회한 5명중 일찍 유명을 달리한 신용직 시인 이외에 리봉학은 회장을 역임한 후 89년부터는 회의 작품 활동은 멈추었으나, 손수성 조순호 황무굉 시인을 후일에 모두 회장을 역임하였으니 85년에 입회한 이들이야말로 맥시조(당시 비화문학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986년에는 『飛火』6집을 포항제일인쇄사에서 출판하였으며, 리봉학 회장이 서문을 썼다. 회의 명칭을 ‘비화문학회’에서 ‘비화시조문학회’로 바꾸었으며 19집까지는 비화시조문학회로 동인회의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작품으로는 신용직의 시조 ‘비화예찬’을 먼저 싣고, 초대시인 박경용의 ‘어떤 碑銘’외 1편의 실었는데, 비명에 대한 긴 주석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이 시는 작년 6월, 내 고향(경북 영일군 송라면 지경리)에 세워진 이른바 ‘반공영령비’에 딸린 시비(올 4월에 제작)의 명(銘)이다. 다른 한쪽엔 ‘반공학살현상’이라는 제하의 비석에 그 당시의 참상을 다름과 같이 기록해 두고 있거니와, 그때 우리집안은 자그마치 6명이나 희생됨으로써 가장 큰 화를 당했음을 밝혀둔다.
《이곳은 1950년 2월 4일, 송라면 동대산 일대를 거점으로 한 무장공비들이 마을을 하룻밤 사이에 초토화하고 99명의 사상자를 낸 원통한 현장입니다.
사건이 있기 전해의11월 6일, 송라면 지경리에 잠입한 공비들은 어선을 탈취, 마을 앞바다에 정박중이던 북괴 선박으로부터 무기를 고래불 해안으로 옮겼습니다.
대한청년단원은 야음을 틈타 영덕경찰서 남정지서에 이 사실을 신고하여 즉각 출동한 경찰은 신속한 작전을 전개, 공비 사살 30명, 생포 6명 등 큰 성과를 올렸습니다.
이에 앙심을 품은 공비들은 이듬해 2월 4일 밤 8시 40분경, 50여명으로 떼지어 몰려와 지경리 부락을 급습, 마을을 포위하여 불을 지르고 선량한 마을 주민들을 죽창과 대검으로 부차별 학살을 했으며, 아녀자들은 놈들이 두려워 방안에서 서로 부둥켜 안은채 불타 죽는 등,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대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이에 6.25동란 35주년을 맞이하여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고 피흘림 없는 조국통일을 기원하면서 한국방송공사는 삼가 이 비를 세웁니다.》
신입회원으로는 김제홍 배종교 이원칠 회원 3명이 있었다. 이원칠 회원은 6집까지 2회 참여하고는 동인활동을 멈추었다.
회원작품으로는 김우연 김제홍 김진혁 리봉학 배종교 서석찬 손수성 신용직 이병춘 이영선 이원칠 조순호 조주환 황무굉 등 14명의 작품 61편을 실었다.
학생 시조작품으로 송종욱(동국대 국문과 3학년) 및 포항지곡초등학생인 하나미 김현진 김남기 허진요 임재원의 작품을 실었는데 신용직 회원이 지곡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지도한 학생들이다.
마지막에 신용직의 시 「조주환 시인의 ‘길목’을 읽고」란 연시조 한편을 실었다. 그리고 ‘쓰고 나서’란 신용직의 산문도 있는데, “조 시인은 언제나 서정을 바탕으로 한 뚜렷한 자기의 생명주의와 존재의 근원성이 펄덕거리고 있다는 것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
86년에는 조주환 시인이 ‘제6회 중앙시조대상(시인부문)’을 수상하였다.
박경용 시인과 조주환시인을 본회의 고문으로 추대하였다.
1987년에는 『飛火』7집을 포항의 여명인쇄소에서 출판하였으며, 표지화는 연제(硯齊) 정대모님의 그림이며,서문은 리봉학 회장이 썼다.
5대 회장으로는 리봉학 회장이 4대에 이어 맡았다.
서문에서 “창간호에서 5집까지는 시조와 시로 엮었으나 지난 6집부터는 순수 시조 동인지로 재출발을 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것으로 그 이후로도 여기에 근거하여 말하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글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이미 4집을 낼 때 그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여한 서순태 이외에는 모두 시조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5집부터는 모두 시조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리봉학 회장이 서문에서 잘못 밝힌 것은 창간호에 자유시로 출발한 5호에서 서석찬 강재원의 이름을 보고 착각하여 말한 것으로 보인다. 서석찬은 창간호와 2집에서 자유시를 쓰다가 3집부터는 시조로 바꾸었으며, 강재원은 창간호에 자유시 쓰고 2집에 발표흘 하지 않았으며 3집부터 5집까지 시조 작품을 발표하며 동인활동을 하였다.
앞에서 이미 “맥시조문학회에서는 『飛火』5집이야말로 순수한 시조동인지로서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로 밝혔다.
87년에 서숙희 이정출 김명주의 신입회원이 있었으나, 동인활동은 김명주는 당해로 끝나고 이정출은 8집까지 참여하고는 활동을 중단하였다.
초대작품으로는 박경용 ‘염주’를 실었으며, 회원작품으로는 김진혁 김우연 김명주 김제홍 배종교 서석찬 서숙희 손수성 신용직 이병춘 이영선 이원칠 이정출 조순호 조주환 황무굉 등 17명의 작품 65편을 실었다.(이중 김진혁의 연작시는 7편으로, 김명주의 추삼제는 3편으로 봄)
서석찬은 ‘서라벌15, 16’을 처음으로 동인지에 발표하였는데, 그 이후로 꾸준히 서라벌의 연작시를 발표하고 있다.
87년에『시조문학』을 통하여 봄호에 손수성 황무굉, 가을호에 신용직 회원이 천료하였다. 또한 봄호에 서석찬, 가을호에 배종교 회원이 초회천을 받았다.
1988년에는 『飛火』8집을 도서출판시인사에서 출판하였으며, 서문은 리봉학 회장이 썼다.
초대시로 조동화의 ‘낙화암’과 권형하의 ‘채밀기’를 실었다.
회원작품으로는 김우연 김제홍 김진혁 리봉학 배종교 서석찬 서숙희 손수성 신용직 이병춘 이영선 이정출 조순호 조주환 황무굉 등 15명의 작품 65편을 실었다.
88년『시조문학』을 통하여 서석찬은 천료하였으며, 여름호에 김우연이 초회천을 받았다.
새로운 회원 가입은 없었으며, 시조문학동인회로서 이제 확고한 기반을 다진 것으로 보인다.
1989년에는 제6대 회장으로 배종교를 선출하였으며, 『시조문학』에 배종교, 이유나(이영선)가 천료하였으며,『현대시조』신인상을 통하여 서숙희가 등단하였다.
『飛火』9집(쌓아둔 무늬를 켜며)을 도서출판시인사에서 출판하였으며 『飛火』란 제호 이외에 시집 제목을 별도로 붙이기 시작하였으며, 서문을 배종교 회장이 썼다. 창립 10주년 특집으로 특집Ⅰ은 본회가 ‘영상에 비친 비화(飛火)’로 포항간호(86.9호), 포항문학(87.6 제7호), 현대시조(87․겨울호)논단(한춘섭), 88년 10월 14일자 매일신문의 ‘경북문화 우리가 만든다(22)’에 소개된 글을 다시 실었다.
10주년 발간에 대해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경북문인협회 영남시조문학회 나래시조문학회 포항시청문학회 청탑문학회 칠령문학회 등에서 축하를 해주었다.
특집Ⅱ에 초대작품으로 김경자 권형하 남궁경숙 리강룡 문무학 박옥금 양원식 원수연 유승식 이도현 정재익 정위진 정표년 진병주 최종섭 하영필 홍오선 등 17명의 작품을 실었다.
아울러 8집에 대한 권형하, 조동화의 작품평까지 싣었으며다.
9집 출간은 총분량은 모두 135쪽의 책을 펴냈는데 본회 동인지로서 100쪽이 넘는 것으로는 처음이며, 시조동인지로서 확고한 자리를 잡은 것이며 대외적인 인증을 확실히 받은 계기가 되었다.
이후로는 100쪽 이상의 책을 발간하게 되는데 9집 발간은 맥시조(당시 비화시조문학회)의 동인지를 한 차원 높인 계기가 되었다.
회원작품으로는 황무굉 조주환 조순호 이문균 이영선 이정미 이태권(이병춘) 서석찬 서숙희 손수성 송종욱 배종교 김두섭 김진혁 강성태 등 15명의 작품71편을 실었다.
신입회원으로 강성태 김두섭 송종욱 이문균 이정미 등 5명이 입회하였는데, 5집에 5명이 참여하여 활력을 크게 불어넣었듯이, 10주년을 맞이하여 맞이한 5명이 또한 회의 발전에 크게 용기를 주었다. 이중에서 개인사정상으로 10집까지 참여하고는 활동을 중단하였으며, 이정미 회원은 4집까지 활동하다가 동인활동을 중단하였다. 그러나 강성태 이문균 김두섭 회원은 꾸준히 회의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여 맥시조문학회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이문균과 강성태 회원은 오랫동안 사무국장을 맡아서 맥시조문학회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데 뒷받침이 되었다. 또한 이문균은 14대(2006-2007년)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김두섭 회원은 15대(2008-2009)부회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니 85년과 89년에 입회한 회원들은 맥시조 30년사를 통하여 볼 때 가장 신입회원 가입이 많았으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이 가입하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앞으로도 많은 활약이 기대된다.
1집에서 9집(창립10주년)까지는 맥시조문학회가 시조동인회로서 전국적으로 확고한 위치를 다진 기간이었으며 맥시조문학회의 초창기이다.
그동안 『시조문학』을 통하여 이병춘(83) 김진혁(84) 리봉학(85) 손수성(87) 황무굉(87) 신용직(87) 서석찬(88) 배종교(89) 이유나(이영선)(89) 등 9명이 등단하였으며, 『현대시조』를 통하여 서숙희(89)가 등단하였으니 창립 후 10주년을 맞이하여 10명의 시인을 배출하게 되었다.
이 기간은 맥시조문학회(당시 비화시조문학회)의 초창기에 해당된다. 이렇게 등단한 시인들을 바탕으로 질적으로 더욱 향상되고 있으며, 강성태 이문균 김두섭 이정미 송종욱 등 우수한 신입회원들은 맞이함으로써 맥시조문학회는 1990년부터는 새로운 도약이 시작된다. 10집부터 19집까지는 맥시조문학회의 도약기이다. 그 활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90년에는 『飛火』10집(마음의 빈잔 위에)을 도서출판시인사에서 출판하였으며, 서문은 배종교 회장이 썼다.
회원작품으로는 강성태 김두섭 김우연 김제홍 김진혁 배종교 서석찬 서숙희 손수성 송종욱 이문균 이영선 이정미 조순호 조주환 황무굉 등 16명의 작품 182편을 실었다.
논단으로는 1990년한국시조시인협회 여름세미나 주제 발표한 조주환의 ‘현대시조의 미래적 징후’에 대한 글을 실었다.
본문에서 “60년대 초, 30여명에 불과했다는 시인 수는 30여 년이 지난 오늘 500여 명이 되었다. (중략) 시인 수의 증가는 최소한 시조인구의 저변확대, 독자확보, 관심확대 등 현대시조의 미래에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는 점이다.”고 하였다.
결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현대시조의 미래를 단순히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를 종합하면 시조 외적인 면에서 부정적인 요인으로 가장 크게 작용하는 서구 추종적 한국문화의 전반적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현대시조의 미래는 밝게 볼 수 없으나, 그에 못지 않게 뿌리없는 자유시의 서구 추중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개방 개혁의 물결은 민족통일을 향한 주체성과 동질성 회복을 위한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에 비추어 시조 외적인 상황이 상당히 고무적으로 전개되고 있어 긍정적인 징후로 볼 수 있다. 또한 외적인 면에 있어서도 부정적 요인들은 오래전부터 비판의 채찍에 힘입어 스스로의 노력으로 혁신을 거듭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고, 현재도 왕성한 실험이 계속되어 현대시조의 앞날은 밝다고 볼 수 있다.”
1000명을 헤아리는 2000년대에 들어서서 시조의 위상은 날로 높아져갔으니 현대시조의 앞날은 밝다는 그의 밝다는 그의 예견은 적중하였다.
89년『 현대시조』 신인상에 당선된 바 있는 서숙희가 90년에 『시조문학』에도 천료되었다.
1991년에『비화』11집(홀로 우는 바람소리)은 도서출판 대일에서 출판했으며, 배종교 회장의 발간사와 초대시로서 송선영 박기섭 시인의 작품을 실었다.
회원 작품은 강성태 김제홍 김진혁 배종교 서숙희 손수성 이경옥 이문균 이영선 조순호 조주환 황무굉 등 12명의 작품 58편을 실었다. 그리고 특집으로는 ‘시조와의 만남’의 주제로 수필을 실었는데, 황무굉 조순호 이영선 이문균 이경옥 손수성 서석찬 배종교 김진혁 김제홍 강성태 등 11명의 글을 실었다.
그리고 서평으로는, 리강룡 시인이『비화』10집(마음의 빈 잔 위에)에 대한 서평과 오동춘 시인의 ‘장편서사시의 개가 - 조주환의 『사할린 민들레』-’와 조주환 시인의 ‘뜨거운 애정의 현실적 접근-김진혁의 『바람으로 서서』-’를 게재하였다.
1991년에는 이문균 시인이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조주환 시인의 대하장편서사시집인 『사할린 민들레』를 헤화당에서 출판하였으며, 이경옥 시인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제7대 회장단으로 회장 배종교, 부회장 황무굉, 조순호, 총무 서숙희 시인을 뽑았다.
1992년에 『비화』12집(바다가 그리워 바다에 왔다가)을 시인사에서 출판하였으며, 배종교 회장의 발간사와 특집으로 2인 소시집으로 이문균 시인 9편, 서숙희 시인 5편을 실었다. 또한 특집으로 공동주제작품으로 ‘바다에 관한 명상’으로 강성태 김제홍 김진혁 배종교 서석찬 손수성 이경옥 조순호 황무굉 서숙희 이문균 이정미 등 12명의 작품을 실었다.
회원 작품으로 김제홍 이경옥 강성태 황무굉 서석찬 손수성 조주환 김진혁 조순호 배종교 김우연 11명의 작품 38편을 실었다.
그리고 신입회원 특집으로 대전의 윤영자 회원의 작품을 10편을 실었다. 서숙희 회원이 매일신문 및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경주군 안강읍 옥산서원에서 여름세미나를 개최하였다.
1993년 『비화』13집(우리 목마른 자유)을 시인사에서 출판하였다. 회원작품으로는 김제홍 서숙희 황무굉 강성태 김우연 김진혁 서석찬 손수성 윤영자 이경옥 이문균 배종교 조순호 조주환의 작품 60편을 실었다. 그리고 창립 14주년을 맞이하여 조주환 시인의 飛火同人小考 ‘忍苦의 작은 목소리’를 실었다. 여기서 조주환은 『비화』창간호의 권두언에서 “우리의 첫 출발은 그 어떤 시류에의 편승이나 눈치작전 같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꿈과 체험과 진실을 스스로의 목소리로 다듬어 가며 노래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하고 한 말을 다시 되돌아보며, “우리 『비화』동인들은 이런 시류의 흔들림과는 상관 없이 끈끈한 형제애로 서로를 격려하고 구석진 반도의 한 켠에 엎드리어 저마다 조그마한 자기의 세계를 개척하는데 인고의 땀을 쏟아왔다고.”고 하였다. 80년대 접어들어 “이제 시조단에 원로도 신인도 없고,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는 투쟁의 장으로 바뀐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술회하고 있다. 시조단이 깨어지고 새롭게 일어서고 또한 다투는 모습을 90년대 후반까지도 목격한 바 있다. 이런 면에서 지금도 우리 맥시조는 전국 어디 가더라도 자랑할 수 있는 단체이다. 조주환은 비화동인소고에서 “지난 14년간 우리는 우리를 과시하기 위해 한 번도 남을 헐뜯는 일이나 작품 이외 그 어떤 것에 목표를 두고 계급투쟁식으로 죽창을 휘두른 적이 없다.”고 하며 마지막으로 “참으로 버려진 듯 엎드리어 끈끈한 애정을 나누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일에 심혼을 사룰 것이다.”하고 하였다. 맥시조문학회는 30년사를 돌아볼 때 창간호 낼 때의 정신을 충실히 지켜오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비화동인소고에서 조주환은 창간호에서 5집까지를 제1기로 보며 이 기간 동안에는 시조인구의 저변 확대와 『비화』가 나아갈 기본 틀 및 기본 방향을 제시했으며, 제6집부터 10집까지는 제2기로 이 기간에는 작품의 질적 향상을 위한 노력 및 내실을 기한 기간으로 보았으며, 제11집부터는 제3기로 보아 이 기간부터는 명실상부하게 동인지로서 확고한 자리를 굳혔음은 물론 지역사회와 한국문학의 조그마한 부분에라도 기여하였다고 보고 있다.
1993년에는 문학세계 <동인탐방>에 <비화동인>을 특집으로 소개하였으며, 8월에는 시조시인협회 ‘93국제문학세미나에서 조주환 시인이 ‘21세기 시조시의 전망’이란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하였다. 또한 김진혁 회원의 시집 『술잔속에 넘치는 바다』
를 출간하였다.
제8대 회장단으로 회장 조순호, 부회장 황무굉 김진혁 총무 이문균 시인을 뽑았다.
1994년에는 『비화동인․14』집(흔들리며 크는 것들이 어찌 풀잎 뿐이랴)을 대왕기획에서 출판하였다.
조순호 회장의 서문과 회원 작품으로는 김진혁 조주환 황무굉 조순호 배종교 서석찬 손수성 서숙희 이경옥 윤영자 이정미 김우연 강성태 김두섭 김제홍 이문균 등 16명의 85편의 작품을 실었다. 논단으로는 조주환의 ‘나의 시조론’과 ‘민족문학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시조의 역할’(1994.8.13. 연변에서 한중 문화협회가 주최한 한중 문학세미나 주제 발표 내용임)을 실었다.
1994년에는 손수성 회원이 경향신문, 매일신문에 당선되었으며, 조순호 회원이 시조문학에 천료되었으며, 김우연은 시조문학 천료 및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 강성태 회원은 현대시조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었다.
1995년에는 『비화동인․15』집(깨어 있는 바다)을 대왕기획에서 출판하였다. 15집은 218쪽으로 동인지 28집(2008년)까지 중 가장 두꺼운 책이었다. 조순화 회장의 서문과 특집으로 회원 데뷔작품 14인의 작품을 1편씩 실었다. 황무굉의 ‘겨울 울릉도’, 조주환의 ‘대왕암’, 김진혁의 ‘서천강나루’, 조순호의 ‘합주’, 배죵교의 ‘추삼재’, 손수성의 ‘청동의 바람’, 서숙희의 ‘소금꽃’, 김우연의 ‘꺽이는 소리’, 서석찬의 ‘하늘아’, 이유나의 ‘개화초’, 강성태의 ‘깨어 있는 바다’, 이경옥의 ‘봄산’, 김두섭의 ‘청솔산 기억’, 이문균의 ‘꽃솎기’ 등이다.
회원 작품으로는 조주환 황무굉 김진혁 손수성 김우연 배종교 김제홍 조순호 김두섭 윤영자 강성태 서석찬 이경옥 이문균 서숙희 등 15명의 작품 92편을 실었다.
기획특집으로 논단 1편과 서평 1편이 있다. 전자는 조주환의 ‘현대시조에 대한 나의 소견’이란 논단이다. 이곳에서 조주환은 형식과 내용으로 나누어 바람직한 현대시조 창작 방법에 관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현대시조는 고시조를 전면 부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고시조의 형식은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내용이나 기법에서도 변증법적인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시조를 창작하는 이는 정형시에 대한 확고한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이는 형식을 지키겠다는 확고한 자세까지도 포함한다. 그리고 항상 시절가조가 되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시절가조란 바로 그 시대의식을 바탕으로 한 시조를 말하며, 현대시조는 현대의 시대적 속성과 제재를 현대적인 기법과 언어로 표현하는 시조이다.”라고 하였다.
서평으로 『비화』 14집 총평을 박영교 시인이 ‘젊고 싱싱한 정신의 소유자’란 제목으로 썼다.
1995년에는 조주환 시인이 제7회 한국시조시협상을 수상하였으며, 김두섭 회원이 현대시조 신인상에 당선되었으며, 이경옥 회원이 현대시조 신인상 및 순수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1996년 『비화동인․16』집(회귀를 꿈꾸는 밤)을 대왕기획에서 출판하였다. 황무굉 회장의 서문과 특집으로 손수성 회원의 제14회 한국시조문학상 수상 작품인 ‘우리들의 징’ 및 그 외 4편의 작품을 실었다. 그리고 제14회 「한국시조문학상」심사평 및 수상소감을 실었다.
회원작품으로는 조주환 황무굉 김진혁 서석찬 김우연 이경옥 조순호 배종교 김두섭 강성태 윤영자 원정호 조영두 서숙희 이문균 등 15명의 작품 68편을 실었다.
기획특집으로는 ‘중앙일보의 편파적 보도에 대한 우리의 견해’란 1996년 10월 20일자의 공동성명을 실었는데 한국시조시인협회를 비롯하여 가람문학회 강원시조문학회 경인시조문학회 나래시조문학회 비화시조문학회 부산시조문학회 부산여류시조문학회 씨얼문학회 영남시조문학회 전라시조문학회 차돌곶이 시조동인 충북시조문학회 크낙새 시조문학회 호남시조문학회 등 15개 단체의 이름으로 발표한 것이다.『비화』기획특집으로 손수성의 ‘이호우시조위 조장 제1구에 나타난 전통형식의 변용’이란 논단을 실었다.
기획특집으로 『비화』15집의 총평을 리강룡 시인이 ‘깨어 있는 바다의 쉼 없는 파도 소리’란 제목으로 썼다.
1996년에는 제9대 회장단을 구성했는데 회장 황무굉 부회장 김진혁 손수성 총무 이문균을 뽑았다.
이정미 회원이 한맥 문학 신인상에 당선 되었으며 윤영자 회원이 현대시조 신인상에 당선되었으며, 서숙희 회원이 월간문학 소설 신인상에 당선되었으며, 원정호 회원이 현대시조 신인상에, 조영두 시인이 시조문학에 천료하였다. 손수성 회원이 제14회 한국시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원정호 조영두 시인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1997년에『비화동인․17』집(가슴 속 홀씨 하나)을 대왕기획에서 출판하였다. 황무굉 회장의 서문과 회원작품으로 서숙희 손수성 김우연 이문균 조용두 원정호 이경옥 강성태 서석찬 김진혁 조순호 김두섭 윤영자 배종교 횡무굉 조주환 등 16명의 작품 77편을 실었다.
1998년에 『비화․18』집(섬이 섬일 때는)을 대왕기획에서 출판하였다. 김진혁 회장의 서문과 신입회원 특집으로 박광훈 회원의 98년 시조문학(가을호 천료)작품인 ‘霧中航海’외 4편을 실었다.
제10대 회장단으로 회장 김진혁, 부회장 손수성 서석찬 총무 이문균을 선출하였다.
회원 작품으로는 서숙희 조영두 손수성 원정호 이경옥 서석찬 김우연 김진혁 황무굉 강성태 조순호 배종교 윤영자 조주환 이문균 15명의 작품 65편을 실었다.
조영두 회원이 매일신춘문예에당선되었으며, 조주환 고문이 한국시조시인협회 부회장으로 당선되었다. 박광훈 시인이 회원 가입하였으며, 공간시대문학 시조 당선, 시조문학 천료를 하였다.
1999년에는 『비화동인 19』집(저문강의 흔적)을 삼양문화사에서 출판하였다. 김진혁 회장의 서문에서 비화시조문학회 창립 20년을 맞아 19집을 낸다고 밝히고 있다.
회원 작품으로는 서숙희 김진혁 이경옥 조순호 박광훈 조영두 원정호 김우연 황무굉 윤영자 배종교 김제홍 조주환 이문균 서석찬 손수성 강성태 김두섭 등 67편의 작품을 실었다.
김제홍 회원이 현대시조 99년 겨울호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맥시조20집이 발간된 2000년대를 맞이하여 모든 회원들이 등단을 하여 작품에서도 질적인 향상이 두드러지며 대외적인 활동도 활발하여 맥시조 문학의 전성기요 성숙기를 맞고 있다.
2000년에는 회의 명칭을 변경하였다. 비화시조문학회에서 맥시조문학회로 바꾸었다.
제11대 회장단으로 회장 손수성, 부회장 서숙희 총무 이문균을 선출하였다.
『맥동인 20』(내 마음의 나침반)을 삼양문화사에서 출판하였다. 손수성 회장의 서문에서 동인 결성 21주년에 동인지 20집을 발간하면서 “또 다른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고자 동인명을 ‘飛火’에서 ‘脈’으로 변경한다.”고 밝히고 있다.
회원 작품으로는 김영자 김진혁 손수성 서석찬 서숙희 조주환 배종교 조순호 강성태 김두섭 박광훈 윤영자 이경옥 조영두 원정호 김우연 황무굉 김제홍 이문균 등 의19명의 작품 62편을 실었다.
김진혁 회원이 ‘공무원 문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며, 창립 21주년을 맞이하여 기념하기 위하여 회원들의 대표작을 뽑아「시와 묵향의 어울림전」의 서화전을 2000년 10월 6일부터 8일까지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김진혁 회원의 제3시집 『청동 하늘을 그리며』를 출간하였으며, 서숙희 회원 첫 시집 『그대 아니라도 꽃은 피어』를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2001년에는 『맥동인 21』집(먼 하늘 바람꽃)을 출판하였다. 손수성 회장의 서문과 특집으로 2000년 「시와 묵향의 어울림」에 전시한 작품을 실었다. 강성태의 ‘깨어 있는 바다’, 김두섭의 ‘겨울 삽화’, 김영자의 ‘고추잠자리’, 김우연의 ‘꽃돌’, 김제홍의 ‘배추벌레’, 김진혁의 ‘그리움’, 박광훈의 ‘純素’, 배종교의 ‘추삼재’, 서석찬의 ‘서라벌’, 서숙희 ‘처서 무렵’, 손수성의 ‘靑銅의 바람’, 원정호의 ‘끈’, 이경옥의 ‘봄날의 그리움’, 이문균의 ‘꽃솎기’, 이유나의 ‘원점’, 조순호의 ‘바다 앞에 나와 서면’, 조영두의 ‘가을바다’, 조주환의 ‘독도’ 등의 작품이다.
회원 작품으로는 손수성 조주환 배종교 조순호 황무굉 김진혁 강성태 김제홍 박광훈 서숙희 원정호 이경옥 조영두 윤영자 이문균 등 15명의 작품 50편을 실었다.
특집으로 맥동인이 뽑은 좋은 작품으로 조현선의 ‘안부’, 이정환의 ‘비’, 최상호의 ‘연(鳶)을 보며’, 정표년의 ‘재미로 세상 살기’, 박경용의 ‘늦봄과 초여름 사이’, 정완영의 ‘을숙도’, 조동화의 ‘낙화암’을 게재하였다.
특집으로 조순호 회원의 ‘국민문학파의 시조분흥운동 고찰’에 대한 논단을 실었다.
안강 옥산서원에서 여름 가족 세미나(주제 :우리시조이 발전방향과 맥시조의 역할)를 개최하였으며, 정기총회 겸 세미나를 경주 하일라 콘도에서 「현대시조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세미나를 가졌다.
2002년에는 제12대 회장단으로 회장 서숙희, 부회장 김우연, 이문균, 사무국장에 성태를 선출하였다.
『맥동인 22』집(숲 하나 키워놓고)을 인쇄․기획 815에서 출판하였다. 서숙희 회장의 서문과 회원 작품으로는 조주환 손수성 황무굉 배종교 김우연 원정호 서숙희 박광훈 김영자 김제홍 김두섭 김일용 이문균 김진혁 이경옥 조순호 조영두 서석찬 윤영자 강성태 등 20명의 작품 74편을 실었다.
맥시조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http://maeksijo.com.ne.kr)를 개설하였으며, 안강 옥산 서원에서 가족들과 같이 맥시조문학회 하계 수련회를 하였으며 이 때 김일용 시인이 회원으로 가입하였으며, 「포항시민과 함께하는 테마문학기행」을 개최(9.7~8, 경북 영양)하였다. 7일에는 광산문학연구소(광산문우)에서 소설가 이문열과의 문학토론회를 가졌다. 시민들과 함께 1박을 하면서 유익한 시간을 보냈으며, 8일에는 당시 영양 김대성 부군수님의 주선으로 수해를 입어 일손이 부족한 영양의 수비 지역의 고추따기의 일손을 오전에 거들었다. 오후에는 조지훈 생가와 시비를 순례하였다.
2003년에는 『맥동인 23』집(적막도 푸른 하늘)을 인쇄․기획 815에서 출판하였다. 회장의 서문과 회원 작품으로는 조주환 황무굉 배종교 손수성 김우연 김제홍 원정호 서숙희 박광훈 김일용 김진혁 조순호 이경옥 조영두 이문균 윤영자 김두섭 강성태 서석찬 김영자 등 20명 작품 86편을 실었다.
『맥동인 22』집의 작품평을 문무학(문학박사․문학평론가)의 ‘스물 두해를 가꾼 푸른 숲의 향기’라는 제목으로 실었다.
원정호 회원이 ‘공무원문예대전’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2004년에는 본회 창립회장이신 조주환 시인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였으며, 제13대 회장단으로, 회장 원정호, 부회장 박광훈 이문균 사무국장 강성태를 선출하였다. 회원은 모두 21명이다.
『맥․24』(산수유 꽃그늘 아래)를 에이엔씨에서 출판하였다. 원정호 회장의 서문과 김일용 회원의 특집으로 ‘포도를 먹다가’외 8편을 실었다.
회원 작품으로는 손수성 김우연 김제홍 서숙희 박광훈 김진혁 이경옥 조영두 조순호 이문균 김두섭 강성태 서석찬 조주환 황무굉 배종교 등 17명의 작품 63편을 실었다.
조영두 회원의 ‘향토시조인 노계 박인로의 생애와 국문학사적 위치’란 논단과 『맥동인 23』집에 대해서 서숙희 회원의 작품평인 ‘묵묵히 시조의 밭을 일구는 사람들’을 실었다. 서평을 마무리하면서 “시조가 우리 문학의 중심에 우뚝한 장르로서 그 도도한 흐름으로 굽이치게 하기 위해서는 시조시인들이 작품 하나를 씀에 있어서 먼저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는 가열한 시정신을 필요하는 것 같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 시조가 자유시나 혹은 다른 장르의 문학보다 더욱 면면한 역사를 이어왔다는 사실만으로 그 정통성과 문학성을 인정받는 것은 아닌만큼 우리 맥시조문학회도 그 오랜 역사만으로 시조단의 주목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역설하면서 “우리 맥시조인들이 피를 토하듯 빚어내는 작품으로 맥시조문학회는 우리 시조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
맥시조 하계수련회에 12명이 참석했으며, 맥시조문학회는 시조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한국시조시인협회로부터 단체공로패를 수상하였다.
11월에는 제2회 상주곶김문학제에 참가하여 상주문협과 교류를 가졌으며 이날 행사에는 신세훈 한국문협이사장과 김대성 상주부시장이 자리를 함께 하였다.
2005년에는 『맥․25』집(바위되어 앉은 섬)을 이에엔씨에서 출판하였다. 원정호 회장의 서문을 쓰고, 정년퇴직 기념으로 조순호 김진혁 황무굉 회원의 3인특집을 실었는데 조순호 5편, 김진혁 4편, 7편과 각각 수필 1편씩을 실었다.
회원 작품으로는 손수성 김우연 김제홍 원정호 서숙희 이경옥 조영두 서석찬 조주환 김일용 강성태 이문균 박광훈 김두섭 등 14명의 작품 58편을 실었다.
『맥․24』작품평을 손수성 회원이 썼다. 작품평을 마치면서 그는 “다른 시인들이 많이 다루지 않는 소재나 내용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욕심도 들었다.”고 하면서 “우리 맥동인은 시로로써 뭉쳤지만 개성적으로는 흩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동인들의 다양한 개성이 맥시조의 형식적인 단조로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고 역설하였다.
회원은 모두 21명이다.
2006년에는 제14대 회장단으로 회장 이문균, 부회장 박광훈 김두섭, 사무국장 이경옥을 선출하였다. 명예회장은 조주환 시인이다.
『makesijo․26』집(상처가 키운 향기)를 에이엔씨에서 출판했으며, 서문은 이문균 회장이 썼다.
특집으로 조주환 조순호 서숙희 회원 3인의 수상 특집을 실었다.(조주환 수상작 ‘소금Ⅰ’외 2편, 조순호는 수상작 ‘숨결’외 4편, 서숙희는 수상작 ‘고등어를 굽다’외 4편)
조주환은 제4회 시조시학상을, 조순호는 제3회(2005년) 경주문학상 수상을, 서숙희는 제11회 경상북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회원 작품으로는 손수성 김우연 김제홍 원정호 이경옥 조영두 서석찬 김일용 강성태 이문균 박광훈 김두섭 김진혁 배종교 황무굉 등 15명의 작품 59편을 실었다.
논단은 월간문학 2006년 6월호 및 8월호 월간문학 월평을 실었는데 시조의 실험적인 형식에 대한 비판으로 氣淸의 ‘자유연행시조’라는 것은 현재 형식 기준에서 시조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밝혔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파격은 있을 수 있으나, 시조의 정체성은 형식에 있다. 정체성의 훼손은 시조의 파괴다. 존재근거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미 시조가 아니다. 그 정체성은 어느 개인이 한 순간에 세우고 허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형식이든 실험은 성공했을 때(보편화 되었을 때)만 하나의 형식으로 굳어지는 것이다.”라고 시조 형식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제시하였다.
2006년에는 조주환 명예회장이 한국문협 경북지회장에 당선되었으며, 서숙희 회원이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로 선임되었으며, 조주환 명예회장이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선에 선정되어 시조집 『소금』을 발간하였으며, 이경옥 회원이 고창문협 주최 ‘상사화 창작시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서숙희 회원이 제16회 한국시조작품상을 수상하였으며, 조주환 명예회장은 제47회 경상북도 문화상(문학)을 수상하였다.
2007년에는 『makesijo 27』집(실뿌리로 물을 길어)을 에이엔씨에서 출판하였다. 이문균 회장이 서문을 썼으며, 회원 작품으로는 조주환 조순호 서숙희 손수성 김우연 김제홍 원정호 이경옥 조영두 서석찬 이문균 박광훈 김진혁 강성태 김일용 김두섭 등 16명의 작품 63편을 실었다.
『맥26』집에 대한 서평은 ‘상처는 새 살을 돋게 한다’는 권형하 시인의 작품평을 실었는데, 권 시인은 “문학하는 행위의 의미는 관찰할 수 있는 사실과 현상을 통하여 독자에게 공감을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시 창작을 할 때, 치열한 삶에의 대결 의지를 가지고 시인이 먼저 감동을 받은 것을 작품으로 창작하여야 독자들도 공감할 것이다.”라고 조언을 하였다. 그리고 동인지의 성격에 대해서 “작품 성향이나 경향은 동인지로서의 이슈나 이즘은 표방한 것 같지 않으며, 주로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한 회원 작품집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회원 개개인의 문학적 세계가 나름으로 개성을 가지고 달리 성취되고 있음을 본다.”고 하였다.
『맥26집』출판 기념회 및 정기총회는 2007년 2월 3일~4일에 포항시 장기면 산서리 초롱구비마을에서 가졌으며, 4일에는 장기읍성을 둘러보았다.
맥시조문학회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시조인구 저변확대의 필요성을 느끼고 회원들의 뜻을 모아 포항시민들을 대상으로 한「현대시조 창작교실」을 2007년 9.5일부터 12월 12일까지 운영하였다.
심산(心山)서예원을 운영하며 경상북도서예대전초대작가인 강성태 회원이 대한민국서예대전초대작가가 되었다.
회원은 21명으로 강성태 김두섭 김영자 김일용 김제홍 김진혁 박광훈 배종교 서석찬 서숙희 손수성 원정호 윤영자 이경옥 이문균 이유나 조순호 조영두 조주환 황무굉 등 21명이다.
2008년에는 제15대 회장으로 박광훈 시인을 선출하고, 부회장 김두섭 조영두 사무국장 이경옥으로 선출하였다. 명예회장으로 2005년에 조주환 시인을 추대한 바 있다.
2008년 1월 12일 『맥27집』 출판기념회 및 정기총회를 죽장면 매현리 삼굿마을에서 가졌으며 멀리 광주에서 김진혁 참석한 김진혁 회원을 비롯하여 모두 13명이 참석하였다. 이튿날은 입암서원과 서원 맞은 편 개울가에 있는 노계 박인로 시비를 둘러보았다.
2008년 8.17일에 영천시 화남면 삼창1리 조주환 명예회장님댁에서 집들이 축하 겸 맥시조 하계세미나를 개최하였는데 회원 14명이 참석하였다.
회의 역점사업으로 『우리시 교실』을 포항시립도서관에서 회장단 및 서숙희 회원의 열정으로 진행되었으며 특히 서숙희 회원의 노력이 컸다.
『makesijo 28』은 에이엔씨에서 출판하였다. 박광훈 회장이 서문을 쓰고, 특집으로는 정년퇴직 기념으로 조주환 명예회장님의 글로 꾸미었다. 특집 작품으로는 ‘윤동주 생각’, ‘사할린의 민들레(1~6번)’, ‘독도’, ‘대영박물관-여자 미이라’, ‘소금Ⅰ’, ‘무너지는 음절’, ‘고향길’, ‘엉겅퀴’, ‘낙엽길’ , ‘심안(心眼)’, ‘탐석기’ 등 11편의 작품과 ‘나의 시에 덧붙이는 사족’이란 1쪽의 짧은 산문을 덧붙였다. 여기에서 “ 30여 년 경영하여 온 내 시의 큰 축은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이다. 그리고 내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실감과 자연의 변화에 따른 사유와 명상, 강인한 생명력과 생명에 대한 경외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밝히면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쓴 작품은 ‘윤동주 생각’, ‘독도’, ‘대왕암’ ‘사할린 민들레’ 등을 손꼽고 있다. 특히 ‘사할린 민들레’는 우리 시조문학사상 처음 시도하여 1,226수로 이끈 대장편서사시로서 문학사적 의미가 크다.
약자의 편에서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사회의 불합리, 부조리한 점을 고발하려는 것과 자신이 관념의 세계와 영혼의 뼈를 무참히 흔드는 상실감과 인간적인 배신감이 엉겨 있는 작품으로는 ‘소금Ⅰ’, ‘무너지는 음절’, ‘고향길’, ‘낙엽길’, ‘심안’등을 들고 있다.
그리고 자연과 인생에 대한 명상과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강렬한 생명의식을 노래한 작품들은 ‘엉겅퀴’, ‘탐석기’ 등이 있다.
논단으로 김우연 회원은 ‘조주환 시조의 형식적 특징’에 대해서 살폈는데, “ 조주환의 시조는 형식에 충실하면서도 그것에 얽매이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그는 단형시조보다는 연시조를 즐겨 쓰고 있다. 조주환 시인이 가장 즐겨 쓰는 형태는 4행 배행의 시조로서 초장과 중장을 각각 1행, 종장을 2행으로 구별 배행하는 형태”라고 분석하였다.
회원작품으로는 조순호 서숙희 손수성 김우연 김제홍 원정호 이경옥 조영두 서석찬 배종교 박광훈 김진혁 강성태 김일용 김두섭 황무굉 이문균 등 17명의 작품 66편을 실었다.
2009년에는 정기총회를 칠포리 ‘다모아 펜션’에서 가졌다. 「우리시 교실」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한 사람의 강사보다는 여러 사람이 분담하는 게 효과적이라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총회에서 『맥 28』집의 작품평을 조주환 명예회장님께서 일일이 매서운 분석해주셨는데 창작에 있어 큰 격려가 됨과 아울러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
2009년 1월 현재 맥시조 회원은 모두 19명이다. 강성태 김두섭 김영자 김우연 김일용 김제홍 김진혁 박광훈 배종교 서석찬 서숙희 손수성 원정호 이경옥 이문균 조순호 조영두 조주환 황무굉 등 19명으로 김영자 회원은 장기간 황동을 멈추고 있어 활동하는 회원은 18명이다.
이상으로 맥시조 30년사를 살펴보았다.
맥시조 30년사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맥시조문학회는 1980년 1집~9집까지는 초창기, 10집~19집은 도약기, 20집 이후는 성숙기로 나눌 수 있다.
‘맥시조문학회’는 1979년 경주시 안강에서 ‘비화문학회’라는 이름으로 창립하였는데, 6집(1986년)부터 ‘비화시조문학회’라 변경하였으며, 2000년에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면서 회의 명칭을 ‘맥시조문학회’로 바꾸었다.
초창기의 활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79년 창립회원으로 조주환 시인을 비롯하여 17명 참여하였다. 등단한 시인은 회장 조주환 시인 밖에 없었다. 창립 후 첫 행사로 1979년 7월에 시화전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1980년 동인지 『비화』에 작품을 발표한 회원으로는 강재원 변희명 서석찬 양윤삼 이병춘 이경동 등 7명이다.
1983년 이병춘, 1985년 리봉학, 1987년 손수성, 황무굉, 신용직, 1988년 서석찬 1989년 배종교, 이유나(이영선), 회원 등이『시조문학』 , 89년 서숙희 회원은 『현대시조』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출간으로는 1986년 조주환의 『길목』, 1987년 신용직의『빈 마음』, 리봉학의 『세월을 묶어두고』가 있다.1986년에 조주환은 중앙시조대상을 수상하였다.
맥시조문학회(당시 비화시조문학회)는 1980년대에 『시조문학』을 통하여 9명의 회원을 등단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조주환 시인에게 종교였던 시조에 대한 사명감과 열성과 인연으로 이루어진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이 기간은 동안 회원 작품들의 질적 향상 및 회의 내실을 다졌으며 시조문학회로서 전국적인 두각을 드러내었으며, 맥시조문학회의 초창기에 해당된다.
맥시조문학회는 1집에서 9집 발표까지 총 참여한 회원은 조주환 강재원 변희명 서석찬 양윤삼 이병춘 이경동 김우연 김진혁 윤정오 이영선 서순태 리봉학 손수성 신용진 조순호 황무굉 김제홍 배종교 이원칠 김명주 서숙희 이정출 강성태 김두섭 송종욱 이문균 이정미 회원 등 28명이다. 이 중에서 다음 12명은 강재원은 5집, 변희명은 2집, 양윤삼은 3집, 이병춘은 9집, 이경동은 4집, 윤정오는 4집, 서순태는 4집, 리봉학은 8집, 신용직은 8집, 이원칠은 7집, 김명주는 6집, 이정출은 8집 이후로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작품 발표를 하지 않았다.
맥시조 30년사(1집-28집)까지를 통하여 볼 때 작품 발표에 참여한 회원은 모두 35명인데 현재 17명이 맥시조에 작품 활동을 그만두었으며 그 중 10집 이전에 활동은 그만 둔 회원이 12명이나 된다.
이런 현상만 보더라도 1집에서 9집까지는 맥시조문학회의 초창기로서 회의 기반을 다지는 기간이었다.
맥시조 10집(1990년)부터 19집(1999년)까지를 맥시조문학회의 도약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모든 회원이 등단하여 명실공히 시조문학회로서 완전한 기반을 다지고 신인으로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한 시기이다.
1990년에 서숙희가 『시조문학』, 91년에는 이문균은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 92년 서숙희는 매일신문 및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93년 조순호는 『문학세계』신인상 및 『시조문학』에 추천, 94년 손수성은 경항신문과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 김우연은『시조문학』추천 및 『월간문학』신인상에 당선, 강성태는 『현대시조』신인상에 당선, 95년 김두섭은『현대시조』신인상에 당선, 이경옥은 『현대시조』와 『순수문학』신인상에 당선, 96년 이정미는 『한맥문학』신인상에 당선, 원정호는 『현대시조』신인상에 당선, 조영두는 96년『시조문학』에 추천 및 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 98년 박광훈은 『시조문학』추천 및『광간시대문학』신인상에 당선, 99년 김제홍은 『현대시조』신인상에 당선되었으니, 경북시조단의 호항기로 불리는 1990년대에 경북에서 30명이 시조로 등단하였는데 그 중에서 맥시조문학회(당시 비화문학회)에서 13명이 등단하였으니 맥시조문학회의 도약기이며 그 활약상은 눈부신 시기라 할 수 있다.
1990년대는 맥시조 회원들 전원이 다 등단하였으니 동인회의 20주년을 맞이할 무렵에는 회원들이 꽃을 활짝 피우기도 하고 이제 청순한 모습으로 갓 피어난 꽃들로서 젊음의 활기가 가득하였으니, 아침 햇살이 가득한 꽃밭에 비유할 수 있겠다.
전국문단에서도 맥시조문학회(당시 비화시조문학회)의 위상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조주환은 1996년 영남시조문학회 회장을 맡아 팔공산 대구교육연수원에서 범영남시조인들이 세미나를 하는 등의 대외적인 활동도 눈부신 시기이다.
시조집으로는 조주환이 장편 대하서사시조집을 현대시조단에 처음으로 『사할린 민들레』를 출간하여 시조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시조 이론 연구도 활발하게 하여 92년에 조주환이 고려대교육대학원에서 「신문학 전환기의 시조연구」로, 95년에 손수성이 고려대학교교육대학원에서 「이호우 시조연구」, 96년 원정호는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김득연 시조연구」, 조영두는 「노계 박인로 시조연구」로 각각 석사 학위를 받았다.
평론에서 조주환은 『월간문학』 등 각종 문예지에 월평, 계간평을 활발하게 전개하였으며, 또한 90년대 세미나에서 (90년, 서울, 현대시조의 미래, 93년, 대전, 엑스포기념세미나, 94년, 연변,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한 시조의 역할) 등에서 발제자로 활동하였다.
각종 문학상에서는 1995년 조주환은 ‘제7회 한국시조시인협회상’, 96년 손수성이 ‘제14회 한국시조문학상’을 수상하였으니 시조단에 검증된 우수한 작품을 발표하여 맥시조(당시 비화시조문학회)의 위상을 전국적으로 드높이었다.
문단활동에서는 1998년 조주환이 한국시조시인협회 부회장, 시조문학작가회 부회장에 당선되어 활동하였다.
맥시조의 도약기라 할 수 있는 이 시기에 회원 영입은 이경옥 윤정자 원정호 조영두 박광훈 등 5명으로 이중에서 윤정자 회원은 92년(12집)부터 2003년(23집)까지 12년 동안 활동하다가 개인사정으로 맥시조에 발표를 그만두었으니 애석한 일이다.이영선 회원은 84년(4집)부터 91(11집)년까지 참여하였으며, 송종욱 회원은 9집-10집에 잠시 참여하였다가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었다.
이 기간에는 맥시조문학회(당시 비화시조문학회)의 대내외적인 활동과 아울러 개개인의 작품성이 한 단계 높아진 시기로 맥시조문학회의 도약기라 할 수 있다.
맥시조 20집(2000년)부터 29집(2009년)까지를 맥시조문학회의 성숙기라 할 수 있다. 2000대는 경북의 문인들이 범 문단을 이끄는 ‘경북시조의 르네상스’기라 부르기도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2007년까지 경북에서 20여 명이 등단하였는데, 회원 영입은 2000년에 부산일보신춘문예에 당선한 대구의 김영자 회원을 영입하였으나 4년간 활동 후에는 활동을 멈추었으며 2002년 신라문학대상 시부문 수상 및 제16회 전국한밭시조백일장에서 장원한 김일용을 본회에 영입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이 유일하다.
수상 실적은 조주환은 2005년 ‘시조문학상’, 2006년에 ‘경상북도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서숙희는 2005년 ‘경북문협상’, 2006년 ‘한국시조작품상’을 수상하였다.
문단활동으로는 조주환은 2006년 한국문인협회 경상북도지회장에 당선되고, 2007년에는 한국문인협회 이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조주환은 경상북도지회장에 당선되면서 약속한 『경북문단 100사(1907~2007)』(경상북도문인협회, 뿌리출판사, 2007)를 발행하였는데 발행인은 조주환이다. 이 책에서 그는 시, 시조, 소설․희곡, 수필, 아동문학, 평론의 여섯 갈래의 흐름 중 ‘시조’사에 대한 글을 썼다.
평론으로는 2006년 6월 조주환은『월간문학』시조 월평에서 ‘다시 정형시과 시조를 생각함’이란 주제로 시조형식에 어긋난 ‘자유연행시조’라는 것과 새로운 정형시라는 민조시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이에 대한 반론 등, 뜨거운 논쟁이 있었으나 그의 정형시의 확고한 이론 앞에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조주환은 각종 문학지에서 월평과 계간 평, 연간평, 개인서평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시조이론 연구로 2000년 김우연은 영남대교육대학원에서 「이호우 시조의 개작과 현대적 변모에 관한 연구」로, 2001년 조순호는 영남대교육대학원에서 「국민문학파의 시조부흥운동 고찰」로 각각 석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김우연은 「조주환 시조의 형식적 특징」에 대한 연구를 하여 2008년 새시대시조 『여름호』에 게재하였다.(분량 상 전후로 나누어 여름호 및 가을호에 싣기로 하였으나 편집부의 실수로 후반부는 가을호에 싣지 않았다.)
시조집으로는 서숙희가 2000년 『그대 아니라도 꽃은 피어』, 조주환은 2005년 『독도』, 2006년 『소금』, 조순호는 2005년 『천년의 숨결』등을 내놓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2006년 7월 도서출판 ‘태학사’에서 현대시조 100주년 기념으로 ‘우리 시조 100인선’을 출간하였는데 조주환이 선정되어 그의 저력을 다시 확인하였다.
이처럼 맥시조문학회는 2000년대를 맞이하여 대내외적인 활동, 평론, 시집발간, 평론, 시조 연구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2004년에는 본회가 한국시조시인협회로부터 한국시조발전에 기여하였다고 단체 공로패를 수상하였다.
시조 창작을 활성화하고 시조 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서 (2007년?)카페를 개설하였으며, 2007년부터 시조창작대학인 「우리시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시조 외의 활동으로는 강성태 회원이 대한민국서예대전초대작가가 되었다.
1979년 본회를 창립하여 1980년부터 동인지를 해마다 한권씩 발간하였으며(유일하게 1982년 미발행), 2000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 ‘비화시조문학회’에서 ‘맥시조문학회’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또한 그 해 10월에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지역서예가들의 글을 받아「시와 묵향의 어울림전」을 열어 회원 작품 50여 점을 전시하여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의 관심과 호응을 받았다.
이처럼 2000년대는 20명 안팎의 회원들이 시조 창작, 연구, 수상 실적, 평론, 문단활동, 카페 개설, 시조창작대학운영 등의 활동이 두드러져서 가히 맥시조문학의 성숙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대는 회원 영입이 저조한 것은 시적인 성숙기로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맥시조의 문단에 큰 문제로 놓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2009년 총회에서는 맥시조 문학회의 미래를 내다보는 발전적인 위해서 더욱 가열한 시정신으로 창작에 임하는 한편 회원 확보를 위한 새로운 다짐과 각오를 다지고 있다.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문학의 내외적인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등단의 길로 넓어졌고, 발표지면도 많아졌으며, 출판도 쉬워졌다. 그동안 걸어온 가시밭길을어떻게 다 말할 수 있으랴만 특히 초창기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 그러나 조주환 회장님이 시조라는 화두를 들고 혼신의 힘을 다한 결과로 알찬 열매를 맺은 것을 잊을 수 없다. 특히 맥시조회원들은 동인회원들끼리 형제애도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앞길을 헤쳐온 것은 현대문학사상 동인회의 모범이 되리라 믿는다. 요즘처럼 삭막해져 가는 세상에 동해 한 모퉁이에서 형제애를 나누면서도 조용하면서도 날카롭게 개성 있는 시심을 다듬고 있으니 우리들이 빚은 작품인 빛나는 보석들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앞으로 더욱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맥시조도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 모두가 심기일전할 때이다.
참고문헌
맥시조1집(1980)~28집(2008)
경상북도문인협회, 『경북문학100년사 1907~2007)』, 뿌리출판사, 2007.
맥시조 30년사(표1)
정리 김우연
첫댓글 김선생님,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 맥30집 특별호 발간 및 기념행사를 위한 착실한(?) 행보에 벌써부터 가슴설렐 정도입니다. 저도 틈나는대로 신문기사와 사진을 위주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기간에 정말 큰 일을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넙죽~~
학산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