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나타난 보물일까?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러시아 영화 ‘레토’에서 국민 영웅 빅토르 최를 연기한 유태오가 한국 영화계 신성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에 온 지 어느덧 10년, 빛을 보게 된 유태오의 미래는 ‘레토’(1월 3일 개봉)로부터 시작된다
‘비트레이얼’ ‘스튜던트’ 등 러시아 현실을 비판하는 영화로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됐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하 키릴 감독)이 2016년 러시아 로큰롤 영웅 빅토르 최가 담긴 ‘레토’를 제작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2000:1 경쟁률을 뚫고 빅토르 최를 연기하게 된 배우는 바로 유태오였다. 흑백 영상 속에서 유태오는 감정을 숨기고 가사로 자신의 사상을 표출하는 빅토르 최로 분해 칸영화제 호평을 받았다.
“오디션을 보고 나서 확신보다 ‘예감’이 들었어요. 기대는 컸지만 영화가 스크린에 걸릴 때까지 마음을 놓지 않았죠. 키릴 감독님이 원한 건 연기 경험있는 20대 초반 한국사람이었어요. 나이는 맞지 않지만 저를 선택해주셨죠.나중에 제 모습에서 빅트로 최의 소울이 느껴진다고 하셨어요. 영화 개봉을 앞두고 국내 관객을 만날 생각에 칸영화제 때보다 더 떨리는 것 같아요.”
빅토르 최? 한국은 물론 젊은 러시아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인물이다. 1980년대를 주름잡은 로큰롤 스타를 이해하고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 유태오는 빅토르 최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기 위해 그의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빅토르 최 음악의 감수성을 파악하려고 했어요.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수성이었죠. 일부러 나만의 방식으로 캐릭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키릴 감독님은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연기를 중시하셨으니까요.”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슬프게 불렀더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직접적인 감정 표현보다 관객이 유추할 수 있는 연기를 원하셨어요. ‘레토’가 MTV 세대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영상과 분위기를 담아냈기 때문에 저도 영화 안에 저절로 녹아들길 바랐죠.”
유태오는 기대보다 걱정이 컸다. 한국영화도 아니고 해외영화 출연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러시아 국민 영웅 빅토르 최를 연기하면서 러시아 관객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다. 걱정은 기우였다.
“올해 여름에 러시아에서 먼저 개봉했어요. 러시아 사람들은 서로 칭찬을 잘 안하는 문화를 가졌어요. 나쁜 것도 이야기를 잘 안하는 편이죠. 그런데 영화를 보고 저한테 ‘고맙다’고 이야기를 해줬어요. 무언가를 해냈다는 것에 인정받은 기분이었죠.”
빅토르 최의 실제 연인이었던 나타샤(영화에선 이리나 스타르셴바움이 연기)가 ‘레토’ 촬영에 큰 도움이 됐다. 3~40년 전 자유분방했던 시절을 현재로 가져와 보여준다는 것에 나타샤는 두려움을 겪었지만 유태오를 비롯해 다른 배우들이 연기로 모든 걸 승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촬영 현장에 실제 나타샤가 방문했어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죠. ‘레토’를 찍으면서 나타샤가 두려워한 건 현시대 사람들에게 비판받는 것이었어요. 1980년대 러시아 청춘들은 순수했거든요. 자유를 갈망했기 때문에 남들 앞에서 몸을 드러내고 사상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어요. 지금은 시니컬한 사회가 됐죠. 남을 비난하고 악플도 달고. 두려워하는 나타샤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건 연기를 잘해야하는 것 뿐이었어요.”
유태오는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성인이 돼서야 꿨다. 학창시절 유망한 농구선수였던 그가 어떻게 배우의 길을 가게 됐는지 궁금했다.
“학창시절 농구선수였어요. 체대 입시를 준비했죠. 독일 대학은 신입생이 입학 1년 전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이력서를 따지거든요. 그래서 취미가 영화 보기였으니 연기를 한 번 도전해보자고 생각했어요. 2002년에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말론 브랜도, 하비 케이텔 등이 거쳐간 아카데미에 다녔죠. 거기서 리 스트라스버그, 스텔라 애들러 연기 이론을 배웠어요.”
“연기를 하면서 배우가 운동선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무대가 곧 체육관이고 체육관이 곧 무대였죠. 결과를 얻기 위한 기술은 달랐지만 겪는 심리가 똑같았어요. 연기 무대가 더 솔직한 느낌도 받았죠. 부모님에게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연기를 할 거라고 전화했어요. 나이 들어도 이 길을 걷겠다는 생각에 무모한 도전이 시작된거죠.“
연기에 대한 도전이 무모할지 몰라도 유태오는 단 한순간도 배우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도전은 계속 됐다. 그를 지탱한 건 호기심과 열정 그리고 인생의 롤모델이 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4년 이후에는 안소니 홉킨스, 케네스 브래너가 거친 런던 로얄 아카데미에 들어갔어요. 3년 스케줄을 석 달로 압축하는 코스를 밟았죠. 졸업과정으로 셰익스피어 연극을 해야했는 데 정말 힘들었어요. 계속해서 연기를 하게 된 건 호기심 때문이었어요. 공부는 정말 꽝이었죠.(웃음) 호기심과 열정이 지금까지 연기할 수 있었던 바탕이었어요.“
“최민식 선배님은 연기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시는 분 같아요. 직접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영화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많은 노력을 하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끝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앞에 놓인 장벽들을 헤쳐나가면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려는 분이죠. 한 마디로 ‘아티스트’예요. 백남준, 공옥진 분도 귀감이 되는 아티스트죠.”
‘레토’로 국내외 주목을 받는 유태오는 파독 광부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독일 출신이지만 항상 한국에서 배우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1995년~2002년 사이 여름방학 때 한국을 자주 왔어요. 그 당시 ‘접속’ ‘편지’ ‘약속’ ‘8월의 크리스마스’ ‘패자부활전’을 즐겨봤죠. 제가 ‘중경삼림’ 같은 비슷한 감수성을 지닌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2009년 한국에서 활동하기로 마음먹고 여기저기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요. 배고프고 낭만적인 시절이었죠. 유태오라는 사람이 한국에서 자라고 길러졌다면 동양적인 감수성을 이해했겠지만 저는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잖아요. 제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한국을 올 수밖에 없었죠.”
한국에 정착한 지 10년이 지나 유태오는 단역부터 조연을 거쳐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레토’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영화 ‘버티고’ ‘더러운 돈에 손대지마라’와 드라마 ‘배가본드’ 등에 출연을 확정지었다.
“지금은 한국 사회, 문화, 사람들 다 이해해요. 한국적인 것을 찾아가는 후유증이 크긴 했죠. 화가가 색깔이 많이 가지고 있어야 섬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듯 해외에서 겪은 문화와 한국만의 감수성을 이해한 저에겐 이러한 것들이 연기에 큰 도움이 돼요. 문화적인 장점을 갖춰 풍부한 배우가 되고 싶은 ‘똥고집’ ‘개똥철학’이 있어요.(웃음)”
출처 : 싱글리스트
1편 http://www.slist.kr/news/articleView.html?idxno=58271
2편 http://www.slist.kr/news/articleView.html?idxno=58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