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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군 안성면의 밀알노동 가족들
역사
밀알 노동 가족들이 무주군과 진안군 일대에 모이기 시작한 그 처음은 허 병섭씨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허병섭씨는 1995년 6월에 귀농을 결심하고 뜻 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전국을 돌면서 유기농업이나 자연농업을 하는 사람들 을 탐방, 견학하였다. 당시 기독교 사회운동 연합의 공동대표였던 그는 김광 훈 사무총장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을 여는 모임'을 하면서 귀농에 관련된 공부를 하기도 했다. 이 무렵 허병섭씨는 정농회의 오재길 선생의 [천보농 장]에서 실습도 하고, 경기도 여주와 강원도 평창으로 옮겨다니면서 정착지 를 찾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 그는 그의 귀농 이정표를 짜기 시작했고 그 꼭지점을 [밀알노동]으로 잡아놓고 있었다. 이를테면 그는 귀농의 목적의식 을 뚜렷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그가 개척한 동월교회의 교인들이 귀농자금을 지원해 주었고 이 힘을 토대로 그는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 생활의 둥지를 틀게 된다. 1996년 3월 부터 이 지역을 답사하고 4월 4일에 주민등록을 옮겨 본격적인 농사활동을 시작한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그는 지역주민들의 보살핌과 도움으로 터를 일구고 씨를 뿌린다. 물론 유기농업과 자연농업의 철학과 신 념을 땅에 쏟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안성면의 접경지역인 진안군 동향 면 학선에 있는 폐교된 작은 학교를 발견하고 다음에 귀농할 사람들을 생각 하고 그들과 함께 이 지역에 유기농 수련장 및 도농의 유기적 관계를 위한 공간을 구상하게 된다. 결국 그는 동향초등학교 학선분교를 3년간 임대하게 된다(1997년 3월).
이해 4월에는 권혁천씨 가족이 합류하여 학선 분교를 크게 손질하고 관사 에 입주하게 된다. 권혁천씨는 성남주민교회 교인이었고 신협과 어린이 책 사랑방 운영으로 지역활동을 한 사람이며 귀농운동본부에서 개설한 [귀농학 교] 제 1기 수료생이다. 이들 두 가족은 협업농 처럼 재미있게 농사를 했다. 이해 여름 무렵(8월) 박창호 가족이 학선분교의 나머지 관사에 합류하고 최 승일씨 가족도 진도리 회호동에 빈집을 얻어 귀농했다. 이 두 가족은 귀농 학교 제 2기생들이다. 10월에는 전재원씨 가족이 진도리 하오동에 있는 빈 집으로 이사했다. 또 심재욱씨는 빈집을 찾지 못해 원촌 주유소의 빈 방에 서 영농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은 『귀농통문』을 보고 직접 찾아 오거나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온 사람들이다. 현재(98년 2월) 이곳에는 이렇게 모 인 여섯 가정이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의 귀농은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전재원씨, 최승일씨, 박창호씨 는 광대정에 6천여평의 땅을 사게되고, 권혁천씨, 심재욱씨는 동향면에 있는 문중땅을 장기 임대하여 농사계획에 분주하다. 98년 2월에는 산청에서 2년 동안 농사를 하던 김광화씨 가족, 서울 NCC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이던 김경남 목사, 자유기고가 장진희씨가 이곳으로 주 민등록을 옮겼다. 그리고 소설가 공선옥씨도 합류하기로 약속이 된 상태이 다. 이들은 허병섭씨와 함께 광대정 입구에 있는 당산에 6천평의 땅을 매입 한 상태이다. 이들은 인간적으로 쉽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밀알터]라는 이름으 로 모인 것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이 이름에 관해 공식으로 논의한 일도 없다고 한다.
이들은 공동체인가?
공동체를 찾아 탐방하고 있는 우리의 눈에는 밀알 공동체로 보이는데 이 들은 '우리는 공동체가 아니다'라고 강변하고 있다. 우리가 확인한 사실은 더불어 살고 있다는 것인데 이 사실 자체가 공동체가 아니냐고 되짚어 보았 지만 그들은 '우리는 좋은 이웃이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무슨 규약을 갖춘 조직된 공동체는 아니다'고 한다. 이들은 개인의 생각을 서로 존중하고 있다. 다시 말해 유기농업이나 자연 농업을 하는 공통된 지향점은 있지만 이것도 개인의 집합이지 공동의 결의 로 모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규제하 거나 설득하거나 약속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끈끈한 정으로 묶여 있었다. 그리고 외부에서 부르듯 '생태마을'이니 '생태공 동체'를 인위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며 이들은 생태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은 서로들간의 암묵적 약속이라고 한다. 무주에 모인 사람들이 만난지 오래 된 것도 아니고 전인격적인 만남의 기회가 아직 없었기 때문이라고 최종 판 단을 내렸다.
그리고 우리는 밀알 공동체란 선입관을 가지게된 내력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는 허병섭씨가 낸 소식지 [밀알터]를 귀농통문에서 '생태마을'로 소개되면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의 소식지는 개인의 생각과 생 활을 담은 것이었고 그 어디에도 생태 마을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단지 허 병섭씨의 생각과 삶이 생태적이라는 귀농통문의 해석에 그 원인이 있었고 유행하는 신조어와 그 실현지를 갈망하는 욕구가 그렇게 표현된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허병섭씨의 머리에 자리잡고 있는' 밀알터' '밀알노동'을 추 적하기로 했다.
밀알노동이란 무엇인가?
유기농업류의 어떤 책에도, 환경운동에 관한 책에도 찾아 볼 수 없는 이 '밀알노동'이란 개념을 이 바닥에 던져놓은 허병섭씨의 생각은 이러했다. 그는 생명사상과 철학을 열심히 학습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유기농업 과 자연농업의 현장을 탐방하고 관련 서적을 읽고 또 실습도 했다. 그런데 사상과 실천을 매개하는 고리를 찾지 못해 고심하다가 발견한 것이 밀알노 동이라고 한다. 허병섭씨의 상은 실천가인데 그 실천은 신앙과 신념을 바탕 으로 한 것이다. 그는 귀농실천을 위한 신념을 밀알노동으로 잡은 것이다. 그는 한신대 이준모교수의 『생태철학과 생태적 교육학』이란 책에서 이 개 념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그것을 하나의 개념으로 인식하는데 머물지 않고 자기해석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서울에서 실천한 빈민 운동, 민중교육운동, 목회자 운동, 지역사회운동 등을 밀알노동으로 재해석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귀농은 도시 생활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밀알노 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밀알노동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한알 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밀알노동 즉 희생하는 노동) 많은 열 매(생명)을 얻을 수 없다' 다음에 소개할 생태마을에 대한 생각도 이 말에 집약되어 있다. 따라서 그는 조성한다느니 설계한다느니 이룬다느니하는 따 위의 위(爲)가 없다. 다시 말해서 '무위'(無爲)이다. 그런데 그의 주변에서는 항상 무언가가 일어나고 잇다. 그래서 그는 '무위이화'(無爲以化)를 말하기도 한다.
생태마을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그의 생태마을에 대한 생각은 '21세기 생명의 시대-새로운 대안을 찾아' 심포지움에서 '귀농과 생태마을'분과 발제에 잘 나타나 있다. 밀알노동의 관 점에서 바라보는 생태마을의 구상에 관련된 부분을 요약해 본다.
1. 밀알노동은 노동론적 존재론적 실천에 몰입하는 하나의 형식이다. 유기 농업이나 자연농업이 밀알노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긴 해도 그 결과를 돈이 나 자본으로 계산하지 않고 오히려 생명산출의 의미와 가치를 실현하는 것 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기농업이나 자연농업은 생태주의적인 농업일 수 밖 에 없다는 것이다.
2. 이러한 밀알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웃하여 살 수 있다면 생태마을을 조성하는 첫 걸음이 될수 있을 것이다.
3. 자연의 생명산출의 원리는 '이천식천'(以天食天)이다. 끊임없는 먹음과 먹힘을 통해서 자연의 생명력이 날로 풍성해지는 것이다. 생태마을의 조성 은 이천식천을 체험할 수 밖에 없다. 자연에게 먹히운다는 것은 자연에게 돌려줄 것을 아낌없이 돌려준다는 말이면서 자연의 생태계와 삶을 나눈다는 것이다.
4. 생태주의적 농업 태도는 채소와 곡물을 인간의 생명을 위한 먹을거리 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생태계의 일부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 (밀알노동)은 인권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자연권의 회복을 위한 노동에 중 심을 두는 것이다.
5. 이런 관점에서 지역사회, 정치, 경제, 문화, 역사를 바라볼 것이다. 이는 생태마을에서 일어날 자녀교육및 지역주민교육의 방향과 연결된다. 자연의 권리를 신장하고 생태계를 심화시키는 것만이 세계를 구원하고 해방하는 길 임을 교육의 목표로 삼을 것이다.
6. 생태마을의 문화도 종교도 인간의 탐욕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먹히 는 생명과 먹는 생명의 자기관계(自己關係)를 문화적이고 신적(神的)이라는 의미를가진 문화와 종교를 찾아볼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비생태 학적 원한을 풀고 생태학의 문화적 종교적 형식이 있다면 '한울로서 한울을 변화시키는'(以天化天)이다.
7. 살 집은 그 땅에서 나온 나무와 흙을 기본 소재로 할 것이다. 난방을 비롯한 에너지도 자연적이며(풍력이나 수력)생활오수와 폐수도 자연정화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 것이다.
8. 마을주변의 농토나 계곡 산과 여기에 서식하는 소동물도 자연의 순리 에 맡길 것이며 생태계의 보고가 되도록 할 것이다.
9. 선조들의 생활양식, 생활환경을 복원해 볼 것이다.
10. 우리의 생태마을이 주변의 마을에 확산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의 기대
이들은 무언가 다르다. 특히 허병섭씨는 별난 생각을 하고 있는것 같다. 그러나 그는 별나지만 틀리지 않는 그 무엇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첫 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가 설정한 목표에 성공적으로 도달하여 여러 사람의 귀감이 되기를 바랄 뿐이 다. 그리고 이곳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더불어 삶이 언젠가는 생태적 공동체 로 모범을 보일 날이 빨리 오기를 희망하고 있다.
유아에게 생태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허 병 섭(농부, 무주생태마을 대표)
유아교육의 우선 책임은 부모와 가족에게 부여된 일이다. 아이는 가족이라는 둥우리에서 태어나고 둥우리의 품과 부모가 날라다 주는 양식을 기반으로 살아간다. 아이는 생물적인 먹이만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가족의 감정과 정서, 기질과 성품도 아이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먹이라고 하지 않지만 그의 일방적으로 전수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또 가족이라는 품을 둥우리라고 했을 때 둥우리는 방과 방의 여러 가구들 장난감 및 방의 분위기 전체로 만들어진다.
어린 아이가 자라고있는 공간이 단독 주택이냐, 아파트냐 아니면 도시냐 농촌이냐에 따라 아이들의 품이 아이에게 각각 다른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유아기를 학년전 아동이라 했을 때 이때까지 아이의 인성이 결정되어 버린다는 것이 정설이고 보면 생태적 인성을 다음고 가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부모가 생태교육에 대한 '각성'과 '열망'이 생긴다 하더라고 이와 상관없이 반생태적이고 비생명적인 체질과 관성에 베어 있다고 보면 유아에게 생태교육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아니 유아의 생태교육에 앞서 부모의 '체질'과 '관성'의 변화가 더 급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변화는 어떤 경로로 일어나며,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지를 묻고 우리의 각성과 열망이 실현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 귀농자들 중에 유아를 둔 가정이 10세대 가량 있다. 귀농한 기간이 아직 2-3년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유아교육의 내용과 효과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아이들을 교육적으로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리된 내용도 말할 수도 없다. 이 아이들이 풍기는 분위기를 말하면 야생적이라 할 수 있다. 얼굴이 검고 단정하지 않으며 자유롭고 마음이 평안해 보인다. 부모를 따라 농사도 하고 풀을 뜯기도 하고 벌레나 꽃 곤충과 새들을 접하면서 자연의 아이로 자라고 있다. 이들은 '생명이 소중하다'는 어른같은 의식이나 행동은 하지 않는다. 자연의 생물과 친할 뿐이다. 그리고 어른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어른은 이들을 통제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잘못 실수를 하면 그 책임을 물어 엎지러진 물을 닦게 한다. 이모가 텔레비젼을 보고 있으면 자기와 같이 놀아주지 않는다고 떼를 쓰면서 결국 이모는 텔레비젼을 보지 못하고 만다. 동료가 다치면 다친 친구의 부모에게 알리고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것을 확인하고 3백 미터나 떨어진 자기 집으로 돌아온다. 이 아이의 나이는 3살이다.
아이들의 부모는 아직 도시의 체질과 감성을 완전히 걷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생태교육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반드시 부모가 생태교육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의 생명체들이 이들에게 다가가 친구노릇도 하고 괴롭히기도 하면서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야생적 인성이 생태적 인성으로 변화되어 나갈 것이다.
만일 도시의 보금자리(둥우리)에 살면서 자녀를 생태적으로 교육하겠다면 어떤점이 고려되어야 하는 것일까?
우선 유아의 생태적 본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유아기는 생태계와 가장 근접해 있는 시기이다.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하면 이 점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생후에는 여타의 동물들처럼 습생이 비슷하게 마련이다. 이런 유아의 모습을 생태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교육적사고를 해야할 것이다. 우리 어른은 그동안 성장해 오면서 문화와 문명에 의해 머리와 가슴과 체질이 세련되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의식과 가치관도 갖게 되었다. 어린이는 아직 현대의 문화와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상태로 자라고 있다. 바로 이러한 요소 때문에 생태교육의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면 모유를 먹이느냐, 우유를 먹이느냐를 따지면서 오염의 정도를 분별해야 한다. 또 부모의 정신이 유아에게 전이되다고 가정하면 유아라고 해서 완전한 생태적 본성을 갖고 태어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모두 따질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유아를 생태적으로 교육한다고 할 때 어른이 유아의 생태적 상상력과 감성에 착안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고 하드라도 어른이 강의나 책을 통해서 생태적 상상력과 감성을 배워서 유아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유아가 지닌 생태적 상상력과 감성을 배우는 데서부터 생태교육은 시작되는 것이다. 필자는 유아교육의 전문가는 아니다. 새로이 탐구하고 관심을 가져야할 영역이다.
그러나 필자가 어린아이를 키울 때 몇 토막의 경험을 예시해 보려 한다. 첫 아이는 군인 사택에 있는 강원도의 양구의 산골에서 키웠다. 3살이 되던 해 아이가 골목길을 나가 흙을 집어먹는 것을 보았다. 그냥 내버려 두면서 '맛이 어때? 맛있지!'라고 격려해 준 일이 있다. 도시의 부모들은 이런 아이들을 보고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필자는 아이에게 이런 반응을 보이므로 자연은 우리의 친근한 벗이기에 거부할 수 없는 실체라는 것을 경험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무라지 않았다.
그리고 둘째 아이를 키울 때 기억을 떠올려 본다. 아이를 등에 업고 밤길을 걷는다. 하늘의 총총한 별을 바라보고 아이는 묻는다. 별이라는 사실을 아려켜 주면 아이는 '왜 반짝이지?'하고 묻는다. 그때 필자는 '미라를 친구로 생각하기 때문에 즐겁게 해 줄려고 반짝이는 거야!'하고 말한다. 송아지 울음소리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한다.
이때는 모든 만물을 인간을 위해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기독교 교육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었다. 물론 자연과 인간이 하나이며 가족이라는 사실과 연관되어 있었다.
필자는 어린 아이의 생태적 상상력과 감성을 충분히 도와주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문동환 박사님이 '새벽의집'이라는 공동체를 경기도 양주로 옮겼을 무렵 필자가 방문한 일이 있는데 그 때를 맞추어 문박사님은 유아기의 자녀인 태근이와 영미를 데리고 채소밭에 앉아서 다정하게 식물의 생명과 성장과정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이때는 경험중심의 교육원리로만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생태적 상상력과 감성을 북돋우는 교육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유아의 생태적 상상력과 감성을 어떤 모양으로 드러내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유아는 어머니의 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생명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생명은 어머니 혹은 암컷에게서 생긴다. 모태에서 나온 유아는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자란다. 이는 동물이나 식물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닭을 키우는데 암탉이 알을 품을 무렵이면 장닭이 주인의 출입을 거부하고 암탉은 혼신의 노력으로 알을 품는다. 두 마리의 암탉이 제각기 알을 품어 두 마리씩 새끼를 부화하였다. 다른 닭이 병아리를 해치려 하면 필사적으로 보호하고, 비슷한 어미닭인데도 병아리들은 자기의 어미를 찾아다니며 보호를 받고 있다. 밤이면 어미닭의 날개를 후비고 들어가 날개를 이불삼아 머리만 뾰족 내어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그런데 밖에서 갖 부화한 병아리를 이들속에 넣어두면 사정없이 쪼아 죽인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고 먹이려는 본능의 발로라 보여진다. 식물의 세계도 종족번식을 위한 노력이 치열할 것이다. 이러한 광경을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자식을 소중하게 여기면 자연의 생명체들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농부는 농작물을 자식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과 자연의 생명체는 모두 땅이라는 어머니의 품에서 생육하고 번성한다. 그러니 우리가 땅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이다. 땅은 오로지 생명 산출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도 왕성하고 풍부한 생명체를 일구고 있다. 이 모든 생명체가 균등한 것이라면 생물종에 있어서 인간의 종은 미약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유아를 바라볼 때 단지 자신의 분신이고 혹은 확대된 자기에 머물 수 없는 것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과 조화로운 삶을 일구어 내는 작업이 자녀의 양육이며 교육행위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아는 생태적 본성과 체질, 감성과 품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자기의 분신이나 자기 확장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반생태적으로 길들여가고 있는 것이다.
유아를 생태적으로 교육하겠다면 어린이를 생태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배우며 어른의 반생태적 관성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유아가 말을 배우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 하고 감탄하곤 한다. 그런데 강아지도 어미개의 말을 배우고 어미와 의사소통을 한다. 송아지도 닭도 그렇다. 식물의 세계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영국의 Graham Devey가 쓴「생태학적 학습이론」은 조건반사의 원리에 입각한 식물의 상호학습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농사를 하면서 식생들을 관찰하노라면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식물들도 걸음을 걷고 있다. 땅을 짚고 줄기를 뻗는 칡이나 콩류 기타 잡풀들이 있다. 또한 줄기를 뻗으면서 뿌리를 내리고 다시 뻗고 또 뿌리를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자라는 풀도 있다. 고구마도 그렇다.
이들은 신비한 그들 나름의 의사 소통을 할 것이다. 이들의 정신세계를 연구한 학자도 있다(「식물의 정신세계」참조). 그리고 우리가 농사를 하면서 농작물에게 칭찬을 하고 노래도 불러주고 박수를 쳐 주면 더 잘 자라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자연 생태계의 성장과정과 비교해 보면서 유아에게 생태교육의 실마리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즉 유아의 세계를 생태계의 세계와 일치시키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면 훌륭한 생태교육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어린 아이가 생태계 즉 식물이나 농작물, 소동물과 미물, 햇빛과 공기, 그리고 물과 흙을 만나면서 자기를 인식할 수 있을 때 생태교육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은 자기와 꼭 같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고 어떤 것은 양식(영양)이 되며 숨을 쉴 수 있는 산소가 된다는 사실을 경험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식탁에서 먹는 모든 음식이 모두 생태계로부터 온 것임을 느끼고 알게되어 생태계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신뢰와 사랑을 가지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어린아이로 하여금 생태계 속에 자기가 있음을 깨닫도록 돕고 자신이 생태계의 일부임을 의식하면 어린아이의 둘도없는 친구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유아에게 생태적 감성을 불러 일으키는 교육프로그램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나무를 껴안아 보고 그 느낌을 말하게 한다던지 식물들과 대화하게하는 프로그램을 한다. 그리고 숲속을 걸으면서 감정을 유도하기도 하며 그림을 그리면서 식물의 세계에 빨려들어가는 경험을 하게한다. 감자를 직접 케어보고 물고기를 잡아보기도 한다. 재미있는 놀이를 통한 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자료들은 최근에 많이 시도되고 있으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아에게 생태교육을 하려는 선생이나 학부모가 유아에게서 생태적 인성과 감성 그리고 행태를 배워야 할 것이며 나아가 생태계를 폭넓게 경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유아는 부모와 선생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아, 생태계, 부모가 아우르는 교육과정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오늘날의 부모는 유아를 교육하고 키울 때 모든 성장의 조건을 부족하지 않게 만들어 줄려고 한다. 장난감과 놀이기구, 평안하고 안전한 의복과 주거, 완벽한 영양과 음식, 지혜를 더 높이기 위한 각종 예능교육을 제공해 준다.
그런데 농사꾼은 농사를 하면서 그들이 키우는 농작물을 위해서 땅을 갈아 엎고, 퇴비를 넣어주고, 병이 생기면 농약을 준다. 그리고 주변에 잡풀이 자라면 재초제를 쓰거나 뽑아버린다. 마치 자식을 키우듯이 한다. 그런데 우리는 생명 순환 농업을 하기 때문에 잡풀과 함께 농작물을 키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작물 주변의 잡풀을 억제해 주어야 한다. 잡풀을 베거나 뜯어서 그 자리에 놓아두고 뿌리까지 뽑지는 않는다. 이 잡풀들이 뿌리에서 다시 살아나야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을 낫으로 베거나 손으로 뜯어내면서 잡풀들이 비명을 지르고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를 듣는다. 이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가진다.
이렇게 하는동안 우리는 문득 이 잡풀들은 생태계의 원주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심은 농작물은 이주민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주민의 생명을 위해서 원주민의 생명에게 고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원주민과 이주민의 공존과 공생이 갖는 생태적 의미는 다음에 말하기로 한다.)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의 생명력이 야생적이기 때문에 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없다. 척박한 땅에서는 이 땅에 어울리는 생명이 자라고 이 생명이 다른 생명을 불러오고 결국 척박한 땅이 기름진 땅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이것이 생태계의 원리라고 보면 우리가 유아를 교육할 때 이 생태계의 원리를 따라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유아에게 너무 풍족한 조건을 만들어 주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부족하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럴 때 어린이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될 것이다. 음식, 놀이, 지혜를 얻는 경험 모두를 스스로 찾도로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불편한 조건을 만들어 주고 힘들고 가난한 조건에서 살아가는 동안 생태적 본성을 함양하게 될 것이다.
물질적 풍요가 인간의 정신세계를 황폐하게함을 깨닫고 있는 서구의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깊은 산골에서 의식주를 채취하여 살아가는 원시체험을 하게한다는 신문 보도를 읽은 일이 있다. 물질적 혹은 경제적 풍요가 유아의 생태교육에 어떤 기능을 하는지 가늠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처럼 유아에게 생태교육을 하겠다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은 엄청난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결단을 할 수 있는 부모는 미래의 우리 자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흙과 자연이 인간을 새롭게 만든다
이 글은 계간 환경과 생명 통권 제23호에 실린 글입니다.
허병섭 (생태마을 운동가)
1941년생, 한신대 신학과, 동대학원 기독교교육학과 졸업. 오랫동안 빈민운동과 지역 공동체 운동을 벌이다 지난 1996년 전북 무주로 내려가 생태마을 만들기 활동 중. 현 푸른꿈 고등학교 이사, [작은 것이 아름답다]편집위원, 무주군 농업발전심의위원, 저서[스스로 말하게 하라], [일판 사랑판], [한국민중교육론](공저).
새로운 삶 새로운 인간을 찾아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나는 이와 같은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자아란 무엇이며 그 자아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라는 교육학적 문제를 고민하면서 실천과 삶의 현장에서 그 해답을 얻으려고 했다. 20 여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도시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공동체 속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 했다.
교회라는 공동체가 인간됨의 진보를 촉발하는 장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시도해 보았으며 교회 밖에서는 민중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대상으로 공동체를 조직하여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주변 사회(억압적이고 경직된 구조)를 변화시키는 일들을 도모해보기도 했다. 나아가 주변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스스로 변하게 하여 그 폭을 확대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변화를 시도해 본 일도 있다. 나는 자아의 변화에서 출발하여 이웃과 사회와 체제의 변화를 모색하는 공동체 운동과 지역운동을 펼쳐 본 경험도 있다. 도시 속에서 이 변화의 순간순간을 새로움으로 인식하면서 보다 새로운 인가을 찾고 모색해 본 것이다.
어쩌먼 나는 도시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빈민지역에서 수십차례나 실험해 보고 반성하며 보다 진전된 '사람됨'의 프로그램을 모색해 보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몇몇 개인에게는 부분적인 변화와 진보된 자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고 공동체 운동에 일정정도의 기여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 자아와 공동체 및 지역 운동의 결과물이 도시 산업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으로 머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도시를 떠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고 지금은 이곳 전북 무주의 농촌에서 새로운 인간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농촌이라 해서 도시와 다른 새로운 삶 새로운 인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다. 인심이 좋아 먹을 것을 가족처럼 나누어 먹고 도구를 빌려 쓰고 사소한 종자를 값없이 주고 가벼운 무료 노동봉사(품앗이)를 하는 등 푸근함이나 따뜻함이 쌍방간에 오고가는 것은 분명 도시와 다른다. (물론 도시의 빈민지역에도 이런 면모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러나 경제적 이익이나 손해에 민감하며 이로인해 이웃간에 다툼이나 분쟁이 생기는 것은 도시와 크게 다른 것이 없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도시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보면서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새로운 삶의 가능성의 실마리를 생태적 삶에 흠뻑 젖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나에게는 도시의 잔재가 생활과 의식에 80% 정도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이런 글을 쓸 자격이 과연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글은 20% 정도 생태적 삶을 살고 있다는 한계 안에서 나의 경험과 그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각들을 정리해 본 것이다.
흙 그 생경의 신비로운 바다
농촌에서 살아가는 삶의 기본은 흙과의 만남이다. 이 흙과의 만남은 생태적 삶의 기본이자 최종 목표일 것이다. 우리는 흙으로 지어진 집에서 살고 흙마당에서 흙을 밟고 다니는 것이다. 흙이 풍기는 냄새며 발을 통해 전해지는 부드러움 손에 잡히는 촉감은 우리를 편안하게 할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경험하지 못한 쾌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마당에서는 풀이 자라고 있다. 싱그러운 생명의 밭을 땅은 스스로 일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첫 농사로 씨앗을 뿌리기 위해 땅을 헤집었다. 처음에는 먹을거리를 의식하면서 땅을 헤집었지만 계속되는 밭갈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흙과의 만남에서는 보통의 일상성이나 단순한 감성적 차원의 만남과는 다른 그 무엇을 느끼게 된다. 흙과 악수를 하기도 하고 흙을 애무하기도 하는 것이다. 괭이나 삽으로 흙을 다루기도 하지만 잡풀을 뽑는 동안 흙을 만지면서 손을 내밀면 흙은 반갑다고 악수를 받아주며 행복에 겨워하는 것이다. 배추의 벌레를 잡아주다 보면 다리가 아파 엉덩이를 땅에 풀썩 대고 앉기도 하고, 허리가 아프면 팔꿈치로 땅을 짚기도 한다.
이러다 보면 흙밭에 누워서 흙을 비비고 다니게 된다. 이러는 동안 우리는 넋을 잃고 흙과 한몸이 될 정도로 흙과 교감하는 것이다. 이러는 동안 흙 속에서 농작물의 생명이 잉태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싹을 내밀고 비를 맞고 햇빛을 반기며 잎이 자라고 줄기가 뻗어 꿏이 피고 열매가 맷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그 열매를 먹지만 마당의 풀 고랑과 고랑 사이에 자라는 풀도 농작물 못지않은 생명력으로 자란다. 밭의 흙은 인간과의 교감을 통해서 인간의 생명을 이어주는 생명 물질을 일으키지만 마당이나 밭 주변에서 자라는 풀은 본래의 자연적 생명체들이 자라는 것이다.
사람의 발에 밟히기도 하지만 이에 상관없이 생명을 일으키는 것이 흙이다. 때로는 잡풀이 인간에게 '왕따' 당하는 한을 풀기라도 하듯 왕성한 생명력으로 농작물을 괴롭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서로 돕고 어울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이 다하면 농작물의 영양제가 된다. 그리고 인간에게 맑은 공기와 청초록의 상쾌한 공기와 향기를 뿜어내는 것이다. 이처럼 땅 속의 생기(생명기운)를 땅 위로 끌어내는 식물들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 이 기운이 인간에게 뿐만 아니라 하늘로 치솟아 우주로 뻗어가고 우주의 생기가 이에 화답하여 땅으로 다시 생기를 쏟아내리면서 흙과 우주는 한 몸을 이루고 있다. 우리 인간은 이 흙과 우주 사이에서 대자연의 생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체험을 하는 우리는 세상을 잊고 만다. 나 자신도 잊어버린다.
그뿐만 아니다. 흙속에 있는 흙의 친구들도 만난다. 개미와 지렁이 각종 애벌레와 굼뱅이가 있는가 하면 두더쥐의 도로가 있고 개미의 집도 있다. 그리고 우리의 눈으로 감지 할 수 없는 수의 미생물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의 감각으로 또는 머리로 감지 할 수 없는 수억의 미생물들을 상상하기에는 인간이 너무 초라하고 미생물의 세계에서 보면 인간은 한갓 미물에 불과하다. 이런 자연의 생명 세계에 몰입하다 보면 우리는 생명의 신비로운 바다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 신비로운 생명의 흙에서 풀이 자라고 농작물이 자라며 나무가 자라고 온갖 미물과 소동물 야생 동물이 서식하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이슬이 맷히고 공기도 잡아두고 물을 알맞게 잡아두기도 하며 물을 내보내는 일도 한다. 그래서 생태계의 질서를 이루고 그 체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이 생태계의 질서가 흐트러지는 날이 오면 인간의 삶도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어떤 학자는 생태계를 '생명부양계'라고 하지 않았던가. 생명부양계의 기본은 흙인 것이다.
흙의 생명력은 조화와 공존과 공생
박토라 불리우는 흙에도 생명은 자란다. 우리는 약간의 산을 개간한 일이 있다. 땅 표면에 흙은 낙엽이 부식하여 많은 미생물을 생기게 한다지만 땅속 깊숙한 곳에는 미생물이 많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도 각종 나무의 뿌리들 특히 칡뿌리가 박혀있고 돌 사이에 붙어 있는 잔뿌리가 산의 흙을 붙잡아 주고 있으며 그 뿌리의 모양새는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우며 돌과 생명력이 교감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이를 파헤쳐서 그들의 교감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이들이 자라 주변의 이들이 자라 주변의 동․식물들과 함께 어룰리는 공동체를 파괴하거나 생명 부양계를 훼손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비록 인간이 조금 흠집을 낸다 해도 그들 특유의 생명 복원력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면, 그 강인함이 인간의 힘과 지혜를 능가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더불어 살려는 우리의 의지와 감성을 어여삐 여겨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흙 속에는 생명체들이 마을을 이루기도 하고 도로도 있고 건물도 있다. 개미집․두더쥐집․굼뱅이집․뱀집 따위를 건물이라 한다면, 그들이 다니는 길은 도로이다. 흙 속에는 또 그믈의 곡식 저장 창고도 있고 그들이 숨쉴 수 있는 공극도 있다. 다시 말하면 이 흙 속에 이들의 생태마을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흙 속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흙 밖의 생태마을과 생명력을 끊임없이 부양해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생명력은 흙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생명력은 서로 어울리고 공존하고 공생하는 것을 그 본질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의 생명체도 그 수명이 있어 생명을 다하는 때가 있다. 이들은 썩어서 다른 생명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니 때로는 스스로 자신을 죽이는 희생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생태 공동체의 극치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 극채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모든 생명체들은 자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먹고 또 배설한다. 이 배설하는 생명체들이 미생물이건 미물이건 소동물이건 야생동물이건 날진ᄆ승이건 간에 그들의 배설물은 흙의 생명력을 더욱 중진시킨다. 이를 생명의 순환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마을에 설면서 상여를 메근 한다. 부패한 시신이 땅에 묻힐 때마다 이 시신이 새로운 생명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의 부활할 생명에 대해 경탄할 때가 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인간도 생태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 인간의 오만으로 생태계를 지배하고 착취하여 스스로 생태계를 비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생태적 삶을 통한 새로운 인간
이런 샟태 공동체를 현상적으로 말할 것이 아니라 동적으로 말해 보면, 흙은 생명을 일구기 위한 노동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자기의 먹을 거리를 위한 노동도 하지만 다른 생명체를 살리기 위해서 희생하는 노동을 동시에 하고 있다 그리고 생명을 일으키기 위해 자신의 모습이나 형태를 유지하거나 지키려 하지 않는다. 생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자기으 형태를 바꾸는 노동을 한다. 이르테면 변신을 하는 것이다.. 변신하는 양태는 자기를 해체하고 부시 하는 것이다. 이를 노동이라 한다면 자기 부정을 위한 노동이며 자기부정 그 자체가 노동인 샘이다. 그리하여 자기를 부활시키고 새로운 모양으로 자신을 살려 내는 것이다.
생명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씨앗은 자신의 외피를, 그 다듬어진 외피를 지키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햋태 및 생태와 다른 요소 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생명 유전자를 DNA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나는 이 글의 맥락에서 이를 '정신 세계'에 비유해 보고 싶다. 인간은 오로지 자기의 체면과 위신을 앞세워 존엄성을 외치고 그 힘을 과시하기 위해 돈과 제도로 공동체를 만들어 힘을 확대하고 그러기 위해 여러 가지 형태의 지배와 착취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니고 있다. 이런 모든 행태가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임금 노동, 생산력의 수단으로서의 노동이 외피인 허영과 시치 그리고 탐욕을 위해 끝없이 질주하면서 정신 세계를 황폐화시키고 있다면, 자연 생태계의 노동은 스스로 희생하고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밀알 노동'(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없다는 성서의 말씀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개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생태적 삶에서 새로운 인간을 찾는다고 하면 그것은 곧 생태적 질서를 따르는 인가으로 진화․변모되어야 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생태적 원리를 따르고 모방하며 이 원리에 따라 자신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생기는 것이다. 나아가 생태계의 정신 세계와 인간의 정신 세계가 상호 교감하며 합일되는 지점에서 새로운 인간의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천년과 21세기를 맞는 현대인이 심각하게 생각하는 화두들 중 하나는 환경 위기, 생태계 위기로 대표되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막연하거나 추상적이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체감하고 있고 여러 가지의 보고 자료를 접하면서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실걍 위기 및 식량 대란이 곧 닥쳐올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 본성에 따라 움적이고 있는 것일까? 국가가 국민을 위해 입안하는 정책이나 제도, 이에 따라 조형되고 세워지는 사회의 풍조나 시류는 현실 유지, 기득권 유지, 당대의 평안과 행복에 반족하면서 이를 부추기고 있다. 세상은 지금까지 이룩해 온 인간의 문명과 능력에 자만하고 있고 그 밪벨탑을 더더욱 놓이 쌓아 올리려는 일에 급급하고 있다. 또 미래의 식량 문제는 유전자를 조작하여 대체 인스턴트 식품으로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생명 복제를 설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내면에는 무너지지 않는 인본주의가 까려 있는 것이 아니가? 새로운 인간을 설계하는 정부의 교육부도 이러한 큰 흐름에 같은 행보를 취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삶을 행복(평안과 편리와 복지)하게 일구어 가려는 동안 우리 후손이 기아선상에서 죽거나 병들지도 모른다는 당면한 위기를 외면하거나 부정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새로운 인간을 갈구하는 우리 소수의 열망은, 이 인본주의에 대한 회의와, 지구 생체계, 나아가 우주 생태계에 대한 우려가 깊어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새로운 인간상을 샟태주의적 인간상에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자연의 원리를 따르라
그렇다면 생태주의적 삶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최근 농사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자연과 어울리고 조화하는 삶이 가장 값지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니가 살고 있는 지역의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10여 세대가 있다. 이들 중에는 '생태 마을'로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의 생활 면모를 샬펴보면 모두 생태적 삶을 살고 있다.
우리 11세대중에 8세대가 새로 집을 지어 살고 있다. 우리가 지은 집은 모두 생태 건축을 하였는데 집의 건축 재료들은 기존의 시멘트나 벽돌이나 콘크리트 건물과 비교하면 생태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수십 년 후에도 건축 폐기물이 생명을 일으키는 물질로 되돌아 가는 것과, 영원한 폐기물로 땅과 흙에 부담을 주고 땅을 황폐하게 만드는 물질과의 차이이다. 이러한 건축 행위는 관행을 벗어난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일정정도의 희생을 해야하고 희생을 위한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런 집을 짓기 위한 준비와 배려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고 의식이 결정된다. 흙과 생명, 혹은 생태적 원리에 대한 우리의 감성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집에 살면서 모든 일상 생활을 흙과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제초제와 농약,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깨끗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흙집에서는 사방 벽의 흙이 숨을 쉬고 있기 때문에 습도가 자연적으로 조절됨으로써 건강(생명)관리를 하게되고 그 결과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게 된다.
그리고 생태 마을을 설계하는 전문가들의 구상에 따라 우리도 하나씩하나씩 조성해 나가고 있는 것이 있다. 즉 생활오폐수를 자연적으로 정화하는 체제를 만들과 에너지도 자연적인 것(풍력, 태양)으로 설계하고 있다. 마을을 설계할 때에도 물과 바람과 공기의 자연적 흐름을 따라 길도내고 농작물을 심으며 주거 공간을 배치하고 공동 공간의 배치도 고려하고 있다. 우리에게 경제력과 기술이 생긴다면 이 모든 생태 마을의 요건을 갖출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의 기반은 생명의 땅을 일구는 양식이다. 양식을 얻는 과정을 농업이라 할 것인데, 우리는 제초제나 농약은 물론 화학비료까지 거부하고 있다. 나는 이를 생태농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생태농업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노업의 원리를 한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인간의 욕망과 의지를 버리고 '자연의 원리에 따라 하라'는 것이다.
그것으로 생태농업의 자세를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개의 농작물을 '님'으로 호칭히면서 '님'을 대하듯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고 그 '님'을 향한 예의를 표하는 것이다. '식물의 정신세계'를 존중하고 식물의 생명성에 대한 종교적 심성을 가지는 생태 농업인의 자세는 생태적 삶의 한 모범으로 예시될 수 있다. 농작물뿐만 아니라 잡풀에게까지 그럴 수 있지만 이는 대상에 대한 단순한 인식의 변화로 생긴 태도가 아니라, 실제로 이모든 생명체들과 어울리고 악수하고 몸으로 비비면서 교감되어 일어난 감동이며 그 감동이 감사와 존경과 고백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주장하는 생활 수칙이 있다. 우리는 '점점 더 가난하게 살고' '점점 더 불편하게 살고' '점점 더 힘들게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날이 갈수로 해가 바뀔 때마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는 식량과 에너지로 땅과 흙을 살리고 생태적으로 온전한 땅을 우리 후손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취하고 있는 식량의 폭식은 흙의 생명력을 탈취하는 것은 물론 후손들의 양식을 가로채는 것이라는 부끄러움 때문이다. 이는 죄악이며 이 죄악을 멀리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를 퇴행성 금욕주의라 말하고 낭만적 '원시반본'이라 질타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이들이 아직도 인간의 능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확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타와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생태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질타하고 비판하는 사람들보다 육체적으로 더욱 건강하며 정신세계가 더 풍부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이러한 삶을 동경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와 같이 생태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만일 이들이 한 곳에 모여서 마을을 이룬다면 내가 바라는 '생태마을' 이라는 프로젝트가 완성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이런 마을에서 생성되는 문화와 예술과 교육의 내용이 있어야 하고, 이런 마을이 보다 아름답게 지속되기 위한 정치․경제 제도가 모색되고 있는 줄로 알고 있다.
흙과 자연의 생명체가 인간을 바꾼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아직 도시적 삶의 양식과 의식이 80%나 남아있고 이는 귀농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귀농한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집짓는 일이나 농사하는 일 그리고 일상에 관한 삶을 교류하고 친교도 하지만 우리가 어울려 살아가는 방식의 80%는 도시적(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인본주의)이다. 아무리 생태건축을 하고 생태 농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인간 관계에서는 도시적 관성을 떼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품이 크고 넓고 따뜻한 자연의 품성을 닮아가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생태적 원리처럼 지신을 희생하여 남을 살리는 태도가 없다. 남을 자신의 기준에 따라 비판하고 충고하며 의심하는 버릇이 남아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수시로 충돌하여 관계를 긴장시키기도 한다. 아직 농촌에서 살아온 연륜이 짧아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2~3년을 살아오면서 변화된 생태적 마인드를 보면 앞으로 상당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 생각되며, 흙을 중심으로 한 자연 생태계가 우리 모두를 변하게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도시에서 새로운 인간을 모색하고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공동체를 만들어 본 모든 인간적 노력이 물거품이었던 지난날을 돌아 볼 때, 흙을 중심으로한 자연적 생명체들이 인간을 새롭게 바꾸어 간다는 사실에 희망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 나의 삶은 새로운 인간에 대한 갈망이었고 그것은 나와 이웃 및 사회 그리고 민족에게까지 확대되었다. 그러한 갈망은 이제 도시의 삶에서 탈출하여 생태적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이곳 농촌으로 이어지고 있다. 생태적 샮에 따른 새로운 인간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그것도 무엇을 도모하려는 인간적 의지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 입장에만 서는 것은 옳지 않다. 이상과 실천이라는 두 바퀴를 동시에 굴려야 할 것이다.
나는 우선 생태적 자아의 실현을 하나의 바퀴로 설정하고 있지 않으며, 이 바퀴를 흐트리지 않고 이웃 및 지역 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연계하느냐에 관심을 쏟고 있다. 자아 실현을 위한 바퀴의 구축을 위해서 '정농회'의 연수나 녹색 환경 관련 잡지와 책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비우고 수련하고 있다. 그리고 귀농자들이나 마을 그리고 지역 사회의 사람들과 나의 삶을 나누면서 다른 한 바퀴를 만들어 가고 있다. 대한 학교의 설립에 동참한다든지, 군(郡)의 한경 농업에 자문을 한다든지, 생태 건축에 관한 정보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등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귀농한 사람들과 주변의 농민들과 어울리면서 생태적 감성을 증언하고 흙의 따뜻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자기 희생과 생명 창출을 위한 노동에 대해 화두를 열어 가려고 애쓰고 있다. 이는 생태적 자아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 할 것이다. 새로운 인간이란 사회성을 띠지 않을 수 없다는 필연성 때문이다.
나는 과거 신학을 하면서 하나님을 존재의 기반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서구적으로 착색된 성서의 해석을 따라 새로운 인간상을 추구하며 살았다. 그러나 지금 생태적 삶을 살면서 새로운 인간을 모색하고 있는 나는, 흙이 바로 그 기반이며 이 흙에는 하나님이 불어넣은 생명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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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난 1월 새해맞이 공동 단식 때, 함께 했었어요, 목사님에게서 배어나는 너그러운 향기 ^^
허병섭 목사닙도 그렇지만 홍순명 선생님도 그 향기가 짙고 강한 분이랍니다. 그 분 책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