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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말 김정래의 온깍지 입문기
첫 활을 들다
언젠가 들었던 말이다.
'난데없이 웬 장난감 활이야?'
속한 활터에 국궁을 들고 나타나자 사람들이 한 말이다. 그때 나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막연히 주워들은 국궁의 우수함을 어수선하게 늘어놓을 수는 없었다.
나는 활 입문을 국궁이 아닌 리커브로 하였다. 약 8년 전, 첫 활을 쐈을 때를 기억한다. 당시 활터의 우두머리였던 자가 쏴보라며 활을 쥐어줬는데, 나는 어린 시절 활 놀이마냥 집게손가락으로 오니를 쥐고 당겼다. 그자가 깜짝 놀라 동작을 멈추게 했다. 그는 내가 어린애처럼 활을 쏘는 모습에 정색을 했다. 서양 활은 세 손가락으로 당기는 게 일반적이다.
(내 첫 활 입문은 리커브 베어보우였다. 주로 필드 3D 아처리를 즐겼다.)
사는 곳이 독일이고, 활터에 한국인은 나밖에 없다. 이곳에서 이질적인 외모인 내가 활을 쏘노라면 누구든지 눈길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런 시선에는 평가가 있기 마련이다. 이 자가 잘 쏘는 지, 못 쏘는지의 문제다. 막 입문한 초보가 형편없는 자세로 화살을 중구난방으로 날리니, 보는 이들의 얼굴에 언뜻 웃음이 스쳤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남에게 잘 쏘는 걸 보여주기 위해 활을 배우고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비웃음거리는 되고 싶지 않았다.
초보가 활을 쏘노라면, 괜히 한 마디씩 한다. 애정 어린 조언이긴 하나, 말하는 내용이 저마다 달랐다. 이 사람 말대로 따라 쏘다보면, 누군가가 그건 틀렸다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 모두 그럴싸한 이론과 설명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활 쏘는 모습은 유창한 말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차라리 내가 공부하고 익혀서 스스로 뭐를 따를지 판단하기로 했다.
첫 활은 활 가게에서 임대해주는 28파운드짜리 국산 저가형 양궁이었다. 당시 난 정유회사에 속해 아프리카의 석유시설 시공현장에서 파견근무 중이었다. 4주간 현장근무를 하면 4주가 휴가였다. 그래서 현장근무 중인 달엔 활에 대한 이론을 찾아보고, 휴가 때엔 원 없이 습사를 했다. 기백 발을 매일 쐈다. 양 어깨의 근육통과 시위에 맞아 피멍이 든 팔뚝에 개의치 않고, 무지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 애썼다. 그렇게 반 년 가까이 보낸다.
입문 초기엔 깍짓손 떼기(릴리즈)나 줌손의 힘점 등 자세에서 개선점을 찾았지만, 점차 활쏘기에서는 물리적인 요소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큼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내 활쏘기 공부는 자세에서 장비로 넘어가게 된다. 화살의 허리힘(스파인)과 무게중심(FOC), 화살촉의 무게에 따른 비행 변화, 시위 재질마다의 특성, 오늬 매김자리(노킹포인트)의 위치에 따른 비행, 활 손잡이에서 활줄까지의 거리에 따른 성능 변화 등이다. 활과 관련된 이론과 지식을 하나씩 깨우침과 동시에 습사로 차이점을 몸소 겪으며 초보 딱지를 조금씩 뗐다.
그 후, 연습용 활을 활 가게에 반납하고, 40파운드짜리 좋은 활을 샀다. 그리고 1년이 채 안되어 나는 지역에서 열리는 활쏘기 대회에서 매번 우승 또는 입상하는 괴물로 성장했다. 전 독일 챔피언이 일부러 활터에 찾아와 내가 활 쏘는 것을 구경하더니, 그 대회에 참가를 권유하기도 했다. 내가 어떤 토너먼트에 참가등록을 하면, 다른 궁사들이 'Kim' 때문에 1등은 물건너 갔으니 2등이나 노려보자는 푸념을 할 정도였다. 나는 자신감이 넘쳤고, 말 대신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는 오만함도 그득했다.
(2013년의 한 토너먼트에서 우승했을 때의 상장과 트로피)
그 즈음, 활터나 대회에 나가면 우스개소리가 들렸다. 내가 시상대에 서면, 저 사람은 한국인이니 당연하다는 말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심 뭐라 대꾸하려다 말곤 했다. 내가 그간 쏴온 화살만 십만 발이 넘는다. 매일 오백 발 가량 쏘고 또 쐈다. 당시 나는 팔뚝보호대 안쪽에 독일어로 ‘Warum dort?, 저기 꽂힌 이유는?’라고 써두었다. 쏘기 전과 쏘고 나서 문제점을 찾길 반복했다. 화살이 그 어디에 꽂히던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 노력의 결과를 모르는 주둥아리 궁사들로써는 단지 한국인이어서 잘 쏜다는 우스개로 위안을 삼는 게 한심할 지경이었다.
내가 속한 활터에 새로운 바람이 분 것도 그 즈음이다. 약 1년 전 느닷없이 찾아온 자에게 더 이상 훈수를 둘 수 없는 상황에서, 정작 자신들은 매번 쏠 때마다 뜻대로 가지 않는 화살에 스스로 실망을 했나보다. 갑자기 활터에 롱보우(영국 장궁)를 들고 오는 자들이 속출했다. 지금껏 쏘던 리커브에서 활 종목을 바꾼 것이다. 롱보우는 또 다른 자세로 쏴야한다며, 저마다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요상하게 습사를 한다.
나도 롱보우에 호기심이 생겼다. 미끈하게 뻗은 활의 외형 때문이 아니었다. 결국 활은 물리역학을 충실히 따르는 하나의 운동 도구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에, 활의 종류는 큰 상관이 없음을 몸소 증명해보고 싶었다. 마침내 내가 롱보우를 들고 활터에 나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훈수가 시작되었다. 상체를 곧게 펴서 기울이고, 엉덩이는 뒤로 빼서 쏴라, 앵커링은 광대뼈 밑에 하라 등등.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물으면, 감자줄기 뽑아낸 듯 온갖 설명들이 뒤따랐다.
나는 모두 한귀로 듣고 흘리며 그저 리커브 쏘던 방식으로 습사를 했다. 하지만 활을 롱보우로 바꾸고 나서 일주일 후에 열린 대회에 출전하여 2등을 하고선, 그 활에 대한 매력을 잃었다. 외형은 달라도 원리는 같았기에 뭔가 특별한 활은 못되었기 때문이다.
(2014년의 한 토너먼트에서 롱보우로 입상했을 때의 모습)
그렇게 5년가량 흐르면서 나는 거의 모든 활 종류를 다뤄보게 되었다. 석궁과 컴파운드도 포함되는데, 기계 같은 활에는 매력을 못 느껴 오래 들지는 않았다. 베어보우(Barebow 맨활: 양궁, 롱보우, 사냥용 활 등 조준기가 달려있지 않은 활을 통칭)는 그 누구의 활이던 처음 잡아 몇 발만 쏘면 곧 조밀한 탄착군을 형성할 수 있었다. 30미터 밖의 표적에 열 발 중 열 발이 주먹 크기 안에 다 모였다. 활은 물리적인 요소에 균형을 이뤄, 발시 때까지 최대한 유지해주면 그만이었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내 신체와 활에 꼭 맞는 화살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무게와 허리힘이 맞는 화살대를 사서 재단하고, 오니와 촉을 달아 무게를 맞추고 깃을 붙힌다. 그 과정은 스파인과 활 파운드, 그리고 만작 길이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쉽게 말해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이 쏘는 화살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화살무게 1g의 차이가 얼마나 현저한지 알 수 있는 수준에서야 필요한 튜닝 단계이기도 하다. 거기에 더해 깃의 크기와 개수, 부착 각도를 저마다 달리해서 무수히 실험을 해보았다. 자잘한 것까지 모조리 직접 겪어보며 활쏘기를 했는데, 결국은 가장 단순한 형태에 머물게 된다.
나는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활쏘기 매뉴얼을 만들게 된다. 초보부터 상급자까지 능력별로 참고할 수 있는 그 매뉴얼은 내가 속한 활터에서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의 궁사들에게도 알음알음 소개되어 사용 중이다. 그와 함께 클럽의 전속 트레이너가 되어 체험자, 신입부터 문제점에 봉착한 궁사들에게 조언을 해주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더 이상 양궁에 매력을 못 느끼게 된다. 잘 맞춰도 더 이상 희열이나 성취감은 없고, 오히려 평소보다 못한 결과가 생기면 실망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머물 바에야 차라리 안하고 말리라. 나는 마침내 미지의 활로 눈을 돌린다. 사실, 처음 활을 배워보기로 한 순간부터, 언젠가 그 활을 쏘게 되리란 것을 예감했다. 국궁이다. 명료한 계획은 아니었지만, 그리 될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활을 바꾸다
'난데없이 웬 장난감 활이야?'
어느 날, 단풍나무와 잘 마감된 손잡이 등 멋진 외관의 활 대신, 단출한 국궁을 들고 활터에 나타나자 들은 첫 마디다. 속으로는 바로 이게 모든 활들의 아버지인 국궁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뭐가 그리 대단한 활인지는 나조차도 몰랐다.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국궁으로 습사를 했을 때엔 기존의 내가 알던 활 지식을 그대로 접목시켰다. 양궁 베어보우 쏘는 방식이다. 국궁도 시위를 당겨 활대의 탄성으로 살을 보내는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인지 그런 습사방식도 곧 효과가 나타나, 얼마 후 참가한 대회에서 또 다시 국궁으로 우승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컴파운드 등 모든 활 종류를 통틀어 전체 2등의 점수였다. 보통 컴파운드는 만작 때 활 장력이 급감하고 조준기가 있는 이점으로 점수가 월등히 높기 마련인데, 국궁으로 그들을 앞선 기록을 낸 것이다. 갑자기 주위에서 국궁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들은 활이 대단히 좋아 명중도 쉬운 줄로 착각했다.
(베어보우식 자세로 국궁을 쏘던 시기의 모습)
속한 활터에 너 댓 명이 국궁을 들고 나타나서 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난감했다. 내가 쏘는 방식이 전통 궁체가 아님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 활공부에 들어갔다. 주변에서 활 선생을 찾을 수 없는지라, 오로지 인터넷으로 정보를 구했다.
인터넷에는 국궁에 관한 자료들이 널려있었다. 뭐 하나 허투루 읽고 넘어갈 수 없어보였다. 모두 일리가 있었다. 단번에 와 닿지 않는 내용들마저 저 너머에 어떤 경지가 있고, 그 수준에 다다르면 비로소 깨우칠 것이라는 분위기였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나는 매번 접하는 정보들이 그때마다 전부이고 진리인 양 느꼈다. 이윽고 다른 말을 듣게 되면, 또 다시 기존의 알던 것을 버리거나 덮어씌우며 하나하나 알아갔다.
온깍지, 반깍지, 실전용 궁체, 고자채기 등 인터넷에 떠도는 국궁에 관한 내용을 모조리 읽고, 습사에 적용해보면서 몇 개월을 보내다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대체 수천 년을 이어온 국궁이라는 것이 현세에서는 왜 이리 제각각일까? 나는 마구잡이로 읽던 습관을 뒤로 물리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국궁 정보들을 새로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있는 국궁에 관한 정보는 대략 세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 활과 관련된 과거 문헌을 소개,
둘째, 한 개인이나 소수의 인원이 과거 문헌을 근거로 현재 사법의 전통성을 주장하는 것,
셋째, 위의 두 곳에서 공개된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갈무리해서 잡학사전처럼 모아놓은 곳.
왜 국궁에 관한 정보가 인터넷에 그토록 풍성한가는 바로 셋째의 경우 때문이었다. 수많은 개인 블로그나 활 관련 카페에 소개하는 내용들이 그러했다. 이것은 내게 축복이자 독배였다. 많은 정보들을 구할 수 있어 좋았으나,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별할 능력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실종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 문헌은 언어의 한계 때문에 해석이 저마다 달라, 같은 내용을 두고도 종종 설전이 벌어지기 일쑤이나 뭐 하나 쉬이 결론이 안 난다. 대개 그런 경우엔 자신의 의견에 힘을 싣기 위해 점점 더 많은 근거를 차용하고, 급기야 국궁을 토론하면서 다른 나라의 활 이야기로 범벅이 된다.
고요한 인터넷의 바다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주목받고, 많이 내는 사람이 돋보인다. 나 같은 구경꾼의 눈길을 사로잡은 자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한편, 나처럼 자존심이 쓸데없이 쎈 사람은 남의 말을 쉬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무리 주목받는 자의 의견일지라도, 일단 내가 스스로 경험해보고 나서야 그의 말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그들 저마다의 활쏘기 이론이나 의견을 닥치는 대로 습사에 적용해보았다.
몇몇 눈에 띄는 사법은 뭔가 전통 국궁만의 비법을 복원한 것인양 말하지만, 사실 무의미한 것들이었다.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동작이 정작 화살이 떠나고 나서야 의도적으로 행해진다. 쏨새를 그 마지막 형상에 맞추기 위해 활쏘기의 전 과정을 논리적으로 포장하는데, 내 눈엔 스스로를 너무 속이는 것으로만 보인다. 또 어떤 것은 화살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사법이라고 주장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을 간과한 체 엉뚱한 이론들만 계속 덧붙인다. 그 사법이란 다름 아닌, 강하게 쏘려는 의욕이 부지불식간에 무리한 쏨새로 만드는 것이었다. 즉, 발시의 순간에 양팔을 확 젖히니 반 치에서 한 치 가량 더 당기면서 시위를 놓게 되고, 그로인해 3~5 파운드의 증가를 불러온다. 더 당기니 더 세지는 것뿐인데, 설명하는 말들을 보면 엄청난 사법인양 말로 진화한다. 더욱이 한문과 고문서 내용을 많이 섞어 주장을 펼쳐, 보는 이의 시선을 흐리게 한다.
그리하여 결론은 금세 났다. 한 개인이 몇 년 간 습사하거나, 토론으로 내리는 정의가 과연 수천 년의 세월을 걸쳐 완성된 전통 활쏘기와 일치하는 것일까? 전통 활쏘기를 구사하는 스승에게 전수받은 적 없이, 오직 문헌과 개인 습사를 토대로 깨우쳤다면, 선조들은 그 간단한 활쏘기를 깨닫기 위해 억겁의 세월을 허비한 것인가? 현세에서는 그렇게 전통 활쏘기라는 이름 아래 제각각 급조되고 변형된 사법과 엉성한 이론으로 아우성이었다.
이것은 내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이 뭔가 주장할 만한 것을 내놓은 것이 반짝하는 순간이었던 만큼, 그들 주장의 본질에 닿는 것 역시 긴 시간이 필요치 않을 뿐이었다. 전통 활쏘기는 수많은 선조들이 시행착오 끝에 쌓아올린 종유석과도 같다. 혼자 활쏘기를 몇 년 해보고는 똑같은 종유석을 얻었노라고 말하는 건, 어린 애가 봐도 맞지 않는 이치다. 그렇게 나는 전통 활쏘기는 여전히 알지 못하는 가운데, 가짜들의 아우성에서 점차 멀어졌다.
국궁을 제대로 배워보겠노라고 다짐했던 나는 어느새 길 잃은 아이가 되어 혼잡한 시장판 가운데 서있었다.
활을 배우러 한국을 가다
해외에서 국궁을 배운다는 것은 단점과 장점이 공존했다. 주변에 스승이 없는 대신, 다양한 궁체를 누구하나 가로막지 않는 가운데 이것저것 시험해 볼 수 있었다. 어느 한 정에 속해 활을 배웠다면 그 정에서 행해지는 궁체로만 익혔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온갖 국궁 관련 내용들을 보자니 한 가지 공통분모를 발견했다. 고문서 원문을 제외한, 대개의 활쏘기 관련 이론은 그 출처가 한 군데였다. 그 활쏘기 이론들을 그대로 소개하거나, 각자의 입맛에 맞게 변형하여 이용하는 등 여러 형태로 퍼져있긴 하나, 그 문서는 한 곳에서 태생하여 살아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활자화된 내용뿐만 아니라, 활터에서 누군가 자신의 것인 양 설파하는 활쏘기 이론 및 철학까지도 결국 근원을 짚어보면 그 재료의 산지가 대개 그 곳이었다. 주먹구구식이던 활쏘기 관련 내용들도 그 곳이 시발점이 되어 갑자기 분석하고 체계화시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곳은 ‘온깍지궁사회’였다.
(복원한 육량전을 온깍지활쏘기학교 수료식 날 쏘는 모습. 사진의 육량전은 다른 날 파손되어 궁시장에게 되돌아갔다.)
나는 온깍지궁사회에서 발표한 궁술관련 내용들을 차근히 읽기 시작했다. 그곳의 글자들은 각궁에 유엽전으로 먼 거리를 쏘는 궁체에 한정된 사법의 해석들로 채워있었다. 결국 그 모든 내용은 '조선의 궁술'을 바탕으로 풀어나간 것이었다.
국궁을 쏘는 사람들이 의외로 관심을 두지 않는 사실 하나가 있다. 과거 선조들은 단거리, 속사, 기마, 전투용 정량궁 등 다양한 사법들을 발전시켰으나, 안타깝게도 모두 단절되고 유일하게 이어진 사법이 바로 조선의 궁술에 기록된 유엽전 사법인 것을 말이다. 활터에서 현재 쏘는 사법이 전통 사법인 줄로만 아는 사람들은 ‘단절’과 ‘전승’에 의문을 품고 고민하지 않는 듯하다.
온깍지궁사회의 글들을 진득하게 읽다보니 점점 ‘조선의 궁술’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듭 글을 읽으며 국궁의 세계에 빠져들다가 곧 한계에 다다랐다. 글로 풀어낸 사법을 몸으로 따라하면서 맞춰가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움을 체감했다. 무술은 말과 글, 심지어 영상으로도 전수될 수 없다. 번쩍 번개가 치듯 깨달음을 얻었다고 기뻐했지만, 나중에 보면 머리카락 한 올 만치나 보잘 것 없는 부분이었다. 몸통은 늘 저 깊숙한 곳에 있었다. 마침내 나는 온깍지궁사회의 정진명 선생께 간곡한 이메일을 드렸고, 몇 차례의 교신 끝에 직접 선생님을 뵈러 한국을 찾기에 이른다.
(맞추기를 위한 활쏘기는 단순하다. 근육을 길들이면 그만이다. 그러나 국궁은 그 너머의
세계가 있으며, 관중의 희열은 부수적인 것일 뿐 정작 공부해야 할 것은 내면의 충실함이다.)
두 달간의 한국방문은 오로지 활 배우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간 온깍지궁사회에서 소개한 활 관련 이론들을 대강이나마 읽어봤고, 양궁으로 활 좀 쏜다는 소리를 들은 터라, 당시 한국을 찾은 나는 자신감이 있었다. 금세 배울 줄 알았던 것이다.
온깍지활쏘기학교의 수강료는 20만원이었다. 나로서는 활을 배우는 데 돈을 지불하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20만원이 작아서가 아니었다. 뭔가를 배우는 것은 곧 가르쳐주는 사람의 시간을 쓰는 것이다. 그 시간 안에는 많은 경험과 지식 그리고 열정이 꽉 차 있다. 그런 기회를 얻는다는 것 자체가 귀할 뿐이다.
웬걸, 수강 첫날 받은 활쏘기 관련 책만 해도 시가로 수강료를 훌쩍 넘었다. 수강료란 진지하게 활 공부하고 싶은 자들만 걸러내는 일종의 문턱 역할이었다. 기차역처럼 누구에게나 문은 열려있지만, 표를 손에 쥔 자만이 여정에 오른다.
정진명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의 느낌을 잊지 못한다. 그 분은 오랜 교직생활 동안 숱한 학생을 겪었고, 그래서인지 인간 군상의 단면을 잘 아시는 듯 했다. 무뚝뚝하면서 온화함이 얼핏 보이지만, 또 어느 순간에라도 단호히 회초리를 드는 매서움이 있었다. 그리고 열 번의 농담에서 세 번 쯤은 웃길 수 있는 유머도 지니셨는데, 그런 분이 시작하신 첫 수업부터 나는 내가 알던 활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곳에 와있음을 느꼈다.
사풍이 먼저였고 사법은 그 후였다. 몸 쓰는 활에 웬 사풍인가는 선조들에게 활터란 무엇이었는지를 알면서 수긍이 갔다. 활터는 우리가 속한 사회와는 다른 그만의 세계가 있으며, 그곳만의 법도와 예절이 있다. 선조들이 품었던 예절과 풍류를 알면 활터는 현재이면서도 과거의 호흡을 이어 받는다. 과거의 활터가 품위와 멋을 아는 선조들의 무대였다면, 작금의 활터는 어떤가?
온깍지활쏘기학교의 사풍 수업은 국적불명의 것들이 아닌, 우리 것만을 배운다. 우리 활터에서 선조들부터 행해온 전통, 그 모든 행위와 예절의 바탕에 깔린 철학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형이상학적이고 어려운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왜 이런저런 전통이 생겨났고 이어졌으며, 또 어느 것은 사라졌고, 변형되었는지 여러 자료를 통해 접하고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수업 내내 고리타분하며 현학적인 내용 없이 생생한 고증과 역사가 살아 움직였다.
점심 식사 후에는 활터로 가서 사법을 지도받았다. 사풍을 둔곡 정진명 선생께서 맡으셨다면, 사법은 현곡 류근원 선생께서 지도하셨다. 첫날부터 온전히 몸을 쓰는 원리를 어찌 깨달으랴? 허나 단순히 근육의 힘으로 쏘는 것이었다면, 애당초 활을 배우러 한국을 가지도 않았다. 나는 그런 활쏘기를 누구보다 잘 하기 때문이었다. 그 너머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분명히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걸 직접 체험하러 간 것이다.
첫 날, 바로 그것은 깊게 수련해야만 그 실체가 궁사의 몸에서 꿈틀댈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찾던 것이다. 수천 년 간 이어져 온 전통 활쏘기는 단순한 잔기술이 아니다. 온깍지활쏘기학교에서는 그득한 그것을 대충 얼버무려 뭔가가 있다는 식으로 끝내는 게 아닌, 분명하게 보여주고, 말해주고, 느끼게 한다.
‘몸이 붕 떠있어.’
첫날 내 습사 모습을 보고 교두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당시 나는 전통 활쏘기라함은 깍짓손을 힘차게 뒤로 뻗는 동작이 가장 중요한 줄로만 알고 있었기에, 내 신경도 온통 깍짓손 떼는 데에만 쏟았다. 고로, 기운은 아래에서 단단히 받치고 올라오지 못하고, 그저 어깨와 양팔 선상에서만 지엽적으로 나타날 뿐이었다. 그런 내면의 모습을 교두님들께서는 마치 속을 들여다 본 듯 말씀하셨다.
(온깍지활쏘기학교 첫 습사 수업일)
총 4회의 수업은 매번 그렇게 진행되었다. 오전은 사풍, 오후는 사법이다. 마침내 온깍지활쏘기학교를 수료하고 나니, 내가 예상했던 방향과는 전연 딴판으로 활쏘기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수료가 완성이 아니었던 것이다. 온깍지활쏘기학교의 두 교두님은 제자들에게 가야할 길을 보여주시고, 언제든 봉착하는 물음 앞에 답을 주신다. 그러나 활쏘기의 완성은 정작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가면서 깊어진다. 그 길을 가야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온깍지활쏘기학교를 수료한 나는 곧장 그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연궁
그렇다면 무엇이 그토록 거창하게 감춰진 전통 활쏘기의 비법이란 말인가? 온깍지활쏘기학교의 두 교두님은 무엇을 백 명 가량의 제자들에게 전주해주신 것일까? 대개는 이런 의문을 가짐과 동시에 바로 명쾌한 답을 얻길 원할 테이다. 대답은 간단하다. 간단히 차릴 수 있는 단 한 그릇의 음식이라면, 전통 활쏘기란 이름이 필요 없다. 그냥 활쏘기일 뿐이다.
내가 배웠고 앞으로도 계속 배우는 것은 차라리 한말의 누룩이라고 빗대고 싶다. 처음엔 열정으로 시작하여 장작불이 거세게 타올랐지만, 결국 증류는 지긋한 불과 찬물이 조화롭게 만나야 정제된 이슬이 맺힌다.
두 달간의 한국행에서 나는 장작, 아궁이, 솥 그리고 누룩을 한 말 얻어왔다. 이젠 불을 조절하는 법을 터득해야하고, 언젠가 솥단지를 다루는 법을 제대로 익히면 그날에서야 한 방울의 주정을 얻는다. 그렇게 술독이 가득 차면, 함께 활을 배우는 온깍지활쏘기학교 동문 및 교두님들과 흥취를 즐길 테이고, 설령 채우지 못하더라도 어떠랴. 한 방울만 얻어도 나는 취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전통 활쏘기를 이야기하면서 모호한 말을 써버리고 말았다. 다시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겠다.
나는 양궁을 쏘면서 많은 궁사를 봐왔다. 강궁을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었다. 우선 나 자신부터 그랬다. 28파운드로 시작하여, 반 년 간 줄기차게 쏜 후 내 활로 장만한 것이 40파운드였다. 나는 그 활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하루에 보통 300발에서 500발 가량을 쐈는데, 근육통 하나 없이 만만했던 활이다.
그 즈음 내가 속한 활터에 강궁 바람이 불었다. 남자라면 최소 50파운드는 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자존심인지 분위기에 휩쓸리는 얄팍한 귀 때문인지 나 역시 50파운드 활을 사고야 만다. 그러나 습사를 해보니 내가 활에게 끌려가는 형국에 45파운드로 내린다. 그 마저 내게는 만만한 활이 아니어서, 결국 다시 40파운드로 정착하며 몸에 맞는 활 찾기는 시행착오를 끝낸다. 활 세기는 자존심이나 자랑이 아님을 기백만 원을 쓴 후에야 깨달은 것이다.
그럼에도 갓 입문한 자마저 50파운드가 넘는 활을 쏘는데, 사실 독일인 골격은 동양인으로서는 깜짝 놀랄 만큼 강골들이 많다. 고로 그들에게 50파운드는 상대적으로 그리 센 활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몇 개월 안 가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그렇게 강궁으로 입문한 자들은 얼마 안 가 활쏘기 자체에 흥미를 잃고 아예 활터를 안 오게 된다. 당연하다. 쏘고 나면 근육통에 시달리고, 즐기는 활쏘기가 아니라 억지로 유지하는 형편이니 무슨 발전이 있을까.
아직도 50파운드 이상을 고집하는 궁사들이 있기도 한데, 궁력에 비해 실력은 늘지 않으니 어느새 활터에 와서 활은 안 들고 새총 쏘는 부류만 잔뜩 늘어났다.
이것이 양궁의 경우, 50파운드 넘는 활이 일반적으로 어떤 폐해를 일으키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활을 배우는 단계에서는커녕 완숙해져도 결코 만만한 세기가 아니다. 또한 이것은 궁사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이기도 하다. 몇 번 당겨보고는 이 활이 자신의 몸에 맞는 줄 아는 것이다. 나도 60파운드 이상의 활을 쏠 수 있다. 하지만, 수백 발을 연거푸 쏴도 몸이 딸려가지 않는 세기여야 적합한 활이다. 수십 발 쏘고 나면 근육의 피로로 더 이상 차분히 쏠 수 없는 활은 내 몸에 맞지 않는 활이다. 세계 최고의 적중 프로들인 양궁 국가대표도 쓰는 활이 여자는 38파운드, 남자는 42파운드 안팍이다. 하물며?
다른 경우로는, 그렇게 강궁을 쏘면 몸 안에 그 충격이 고스란히 차곡차곡 쌓여, 몇 개월 안 가 통증으로 활을 놓고 만다. 활이 궁사를 잡아먹는 경우다.
(베어보우를 쏘던 시절: 당시 40파운드 활을 쏘던 나는 수백 발을 쏜 후에도 만작하여 5초 이상 미동도 없이 자세를 유지하고,
50미터 밖의 사과를 7할의 빈도로 맞출 수 있었다.)
나는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국궁의 적정 입문 파운드는 40파운드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넷의 잘못된 정보를 본 게 실수다. 어찌된 게 성인남자라면 45파운드로 시작하라는 말들 뿐이었다. 너무나 보편적인지라 나도 45파운드로 시작하고야 만다.
내 만작길이는 여덟 치 반 인데, 45파운드 활로 그 길이를 당기면 53파운드 가량 나오게 된다. (양궁의 파운드는 28인치, 국궁은 31인치 즉, 2자6치를 당겼을 때가 그 세기이다. 내 30파운드 국궁은 내 만작에 37파운드, 40파운드는 48파운드가 나온다. 반대로 활은 50파운드짜리인데 2자 5치를 당긴다면 약 45파운드의 세기가 됨을 유의해야 한다. 즉, 내 활은 40파운드이고 자기는 50파운드 짜리라고 해도, 40파운드로 길게 당기는 사람이 더 쎈 활을 쏘게 된다.) 그런데 50파운드가 넘는 활로 만작을 하면 당겨서 유지하는 데만 급급하지, 차분하게 자세를 이루며 몸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양팔은 만작을 버티느라 막대기처럼 변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점점 쪼그라들고, 관절은 발시 때 충격으로 몸서리치는 느낌이었다.
활쏘기가 굉장한 충격을 몸으로 감내하는 훈련인가? 아니면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완벽히 몸을 사용하는 것인가?
나는 후자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당장 45파운드 활을 물리고, 30파운드로 새로이 수련을 시작한다.
이렇게 활의 세기로 먼저 운을 떼는 이유는 바로 올바른 활 배우기는 반드시 연궁이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양궁과 마찬가지로 국궁도 그러하다. 내게 만만한 활이 최고의 활이다. 내가 이기지 못하는 활은 도구가 아니라 등에 진 멍에다.
선조들은 무엇을 보았는가?
연궁의 중요성에 이해를 같이 할 수 있는 자라면, 몸 쓰는 법도 수월히 받아들일 줄로 믿는다. 신체는 골격이 바탕이고 근육이 그 골격을 움직인다. 세상의 모든 활쏘기는 이렇게 골격과 근육 두 가지만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그 외의 것을 찾아냈다. 바로 '기'라는 무형의 물질이다.
일단 '기'라는 말이 튀어나오면 그럴싸한 활쏘기 비법을 들으려고 몰려든 구경꾼 중 태반이 자리를 떠날 테다. 나로서는 그게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하다. 동양에서 '기'는 일상의 전반에 걸쳐있는 철학이어서 세계 어느 곳보다 친숙한 존재이다. 그러나 정작 활쏘기에서 '기'를 사용한다고 하면, 갑자기 주정뱅이 헛소리를 듣는 것 마냥 비웃는다.
반면, 이곳 독일에서 내가 조금씩 전통 활쏘기를 전파하면서 느낀 게, 이들은 진지하다. 자기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접하면, 일단 경청하고 이해해보려고 한다. 결국 그게 그럴싸한 말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직접 실체를 느끼기 시작하면 그들은 열정적으로 신뢰를 보낸다.
일례로 최근 나에게 활을 배우기 시작한 독일 친구는 동양의 여러 무술을 오래 수련한 자이다. 이 친구의 한국인 태권도 스승이 자주 한국 활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그 스승은 언젠가 자기가 활을 쏘게 되면 국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한다. 마침내 그 독일 친구는 나와 연락이 닿았는데, 애초엔 아들과 놀이삼아 쏘려고 활을 알아보던 차원이었다. 나는 딱 잘라 말했다. 그런 당겨서 쏴 맞추는 활쏘기라면 굳이 내게 물어올 필요도 없으니 아무렇게나 쏘라고. 내가 수련하는 전통 활쏘기는 ‘기’와 연관되어 있으며, 고로 대부분의 힘을 발에서부터 끌어올리는 이치를 배운다고 했다. 그러자 깜짝 놀랄 대답이 나왔다. ‘발에서부터 힘을 끌어올리지만 몸 전체는 이완시키는 것을 뜻하나? 너무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으면서 가장 강력한 상태 말이다.’ 그 친구는 동양 무술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 친구는 진지하게 활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이 다다른 전통 활쏘기의 수준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활쏘기에서 '기'는 어떻게 사용하는 것일까? 내 얄팍한 궁력으로 논하기엔 무척 망설여지지만, 일단 이제껏 이해한 한도 내에서 표현해 보기로 한다.
우선 호흡이 '기'다. 숨을 불어넣는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뜻한다. 그렇게 살아있는 신체에 활이 들린다면, 활대도 몸의 일부가 된다. 올바른 힘쓰기로 만작을 충실히 하면 신체 특정 부위만이 활의 힘을 감당하는 게 아니라 전체가 한 덩어리로 뭉쳐진다. 활이 갖고 있는 내면의 힘이 신체와 소통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로 보내는 살은 거의 모든 힘을 실어 차고 나가며, 발시 때 그 어떤 불쾌감도 몸에 남지 않는다. 그나마 있을 발시 후 탄성의 여력은 활대를 통해 몸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원활히 흐르다가 어느 시점에서 자연스레 소멸한다. 그렇지 않고, 있는 힘껏 당겨 쏘는 활쏘기라면 반드시 발시 충격이 크게 발생한다. 근육과 뼈로 일직하게 내는 활쏘기는 필히 몸을 상하게 만든다. 외부의 충격과 우직하게 맞서는 신체가 정면충돌하기 때문이다. 강궁일수록 그 충격은 커져서 소위 골병드는 지름길이 된다. 각궁이라면 다행히 천연 재료가 많은 상쇄를 시켜주는 이점이 있지만, 그게 잘못된 활쏘기를 잊게 만드는 단점이기도 하다.
활터에 어깨, 팔꿈치, 허리 통증으로 활을 자주 못 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일하다가, 또는 다른 원인으로 다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몸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활에서 오는 충격으로 임계점까지 다다랐던 부위가 마침 가해진 사소한 충격에 무너진 경우가 태반인 것이다. 건강한 몸이라면 능히 견딜 수 있는 충격이었음에도 말이다.
허나, 올바른 활쏘기는 소통이다. 그렇다고 그 통함을 줌손과 깍짓손 또는 활과 인체 사이의 교량 등 '부분'으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몸 전체가 하나다. 힘은 비정비팔로 견고하게 디딘 발에서부터 올라온다. 반깍지의 흔한 자세인 넓게 벌리고 돌아서는 것 즉, 양궁식 오픈 스탠스(Open Stance) 자세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무생물인 기둥 토막을 세운 격일 뿐, 살아있는 힘을 생성하려면 반드시 폭이 좁게 하여 과녁을 향해 서야함을 유의해야 한다.
발에서 올라오는 힘은 허벅지에서 증폭된다. 만작을 위해 상체를 틀면 허벅지도 따라 도는데, 그 과정에서 허벅지가 탄탄해지며 힘이 낸다. 그 탄탄함은 차라리 팽팽해진다는 말이 더 적합할 정도로 강하다. 여기서 두 발바닥은 땅에 붙어있고, 두 다리가 꽈배기처럼 틀어지는 모양임을 주지해야 한다. '짤심'은 깍지손을 트는 것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바로 하체부터 상체가 한 통으로 뒤틀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제 몸의 가운데 고리인 골반도 회전을 하며 힘을 이어간다. 다음은 하단전이 묵직하거나 단단해진다. 몸 내부의 힘이 꿈틀대는 것을 느끼는 이때, 만약 얼굴이 붉어지거나 뜨거워지면 잘못된 호흡과 힘의 운용이다. 몸통과 얼굴, 팔은 편안해야 한다. 모든 기운은 하단전과 그 이하에서만 묵직하게 깔려있는 느낌이어야 한다.
만작이 진행되면서 상체도 점점 틀어지고, 유전 단계에 이르면 마침내 온몸이 짜진 '짤심'의 기둥이 제대로 선 것이다. 가장 강력한 힘이 회오리의 중심축에서 꿈틀대며 터지기 직전의 상태다. 이렇게 집약된 힘은 어깨에서 양분됐다가 다시 모인 것이기도 하다. 활쏘기 동작에서 가장 폭이 넓은 곳이 양 팔 부분인데, 중심이 곧게 서 있으면 그 큰 동작도 심지있게 이뤄낼 수 있다. 중심축에서 양분되는 힘은 바짝 세운 줌손의 중구미를 거쳐 흘려 잡은 줌손으로 가고, 다른 한쪽은 깍짓손으로 흐른다. 그 균형을 이룬 힘 사이에 활과 살이 팽팽히 놓여있다. 손에 들린 활과 화살은 단순한 물체가 아닌 힘이 통하는 매개체이며, 그 힘은 살짝 누운 활대 속까지 꽉 채워져 있다. 모두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한편, 깍지손 역시 제대로 쥐는 법을 익히면 흘려 잡은 줌손 모양과 꼭 같은 형태가 된다. 거듭 말하지만, 이 모든 비틀어지거나 짜진 신체는 회오리마냥 한 방향을 이루는데, 심지어 시위 마저 그 방향과 같게 꼬여있다. 현재 우리가 아무런 이해 없이 보고 만지고 쏘는 활의 형태 및 궁체는 바로 위의 이유 때문에 그리 완성되어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만작은 바로 위에 쓴 대로 내부에서 일어나는 힘의 증폭을 끌어내는 과정이다. 그리고 ‘기’는 들이마시는 호흡을 통해 위에서 들어오고, 아래로는 양발을 통해 올라와 하단전에서 만난다. 활쏘기가 깊어질수록 힘의 중심은 더 압축된다. 바깥에서 안으로, 위에서 아래로 옮겨간다. 줌손이 아닌 중구미에서, 다시 큰 등 근육에서 힘점을 느끼고, 힘의 원천도 양 팔, 어깨에서 하단전, 팽팽한 허벅지로 내려가 결국 저 아래 굳건한 양발임을 느끼게 된다.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힘은 손 끝까지 이어지고 그러한 주변부의 힘은 곧장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활쏘기 수준이 높아질수록 반대로 거슬러가 힘의 근원을 강하게 느끼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근육이 기여하는 부분은 생각 이상으로 적다. 오히려 근육이 너무 개입하면 딱딱하게 굳은 활쏘기가 되어, 활쏘기의 모든 충격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꼴이 되고 만다. 기는 그렇게 작용한다. 보이지 않지만 힘차게 흐르는 몸 안의 힘. 부분에서 나오는 근육의 힘이 아닌, 신체의 온 구석에서 스며 나오는 생명력.
전통활쏘기에서 기는 그렇게 모여들어 몸 안에 왕성히 흐르는 줄기를 이뤘다가 마침내 큰 분수를 뿜어낸다. 발시의 순간이다.
발시는 몸에서 응축된 힘을 폭발시킴과 동시에 살이 그 힘을 이어받아 떠나는 것이다. 이때 깍지손은 '펑'하고 터지듯 뒤로 뻗치고, 줌손은 우뚝 멈추거나 살짝 까딱하고 만다. 그러한 형세가 나오는 이유를 굳이 형상으로 설명하자면, '태극' 이다. 전통활쏘기는 '기'를 운용하는 것이고, 몸을 제대로 쓰면 태극 형상이 자연스레 구현된다. 음양이 휘돌며 정확히 양분되는 조화가 활쏘기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한쪽은 발시 때 깍지손이 뿌려지는 궤적으로, 다른 쪽인 줌손은 멈추는 대신 힘이 활대를 돌며 '태극'을 그린다. 활쏘기에 태극을 들먹인다고 웃는 자가 있다면, 지금 별과 직선이 그려진 성조기의 나라 얘기가 아닌, 음양의 세계를 이해한 나라의 전통 무술을 설명하고 있음을 상기바란다.
(활, 궁사, 활쏘기도 시작과 끝은 음양이다. 그림: 송효준 접장)
전통 활쏘기란 바로 위의 모든 과정을 신체로 구현함을 말한다. 적중을 위해 양궁에서 차용된 자세를, 모양새를 위해 중국 사법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을 부각하는 게 아니라, 궁사의 내면에서 고차원적인 활동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선조들이 기나긴 세월을 통해 제련한 끝에 도달한 활쏘기의 수준이다.
이렇게 화살 하나를 내보기기 위해 몸에 기를 응축시켰다가 폭발시키면, 몸 안에서 꼬물거리던 온갖 부스러기가 홀연 강풍에 휩쓸려 간 듯 산뜻하면서 활력이 넘치게 된다. 활쏘기를 하면 건강해진다는 말은 기실 그런 양생 효과 때문이지, 단순한 근육 사용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말을 이렇게 장황히 풀어봤지만, 사실 난 그런 몸의 느낌을 매 습사 마다 느끼지는 못한다. 하지만 전통 활쏘기를 십 년 이상 한 여러 동문이나 교두님들은 그 수준으로 올라가서 활쏘기를 하고 계신다. 그럼에도 올바른 전통 활쏘기를 하면 당장 느낄 수 있는 게 있다. 그 흔한 팔꿈치 통증조차 없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로, 근육의 힘으로 당겼다 놓으며 활쏘기를 하는 자를 볼 때에도 부조화를 느낄 수 있다. 그러한 궁사가 발시 때 파동과 정면충돌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내가 그 충격을 받는 듯 몸서리 처진다. 줌손의 뼈에 충격이 턱하고 걸리고, 파동으로 근육이 경악하는 것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재밌는 사실은 그렇게 활을 쏘는 궁사는 관중에 만족하는 기색이다. 또 어떤 궁사는 힐끔거리는 나를 두고 뽐내듯 사대를 물러나기도 한다. 온깍지니 뭐니로 수련하면서 연실 불이나 내는 내가 가소롭거나, 어쩌면 연이어 관중하는 사법을 흠모하는 줄 아는 것일 수도 있다. 난 가혹하게 몸을 다루는 모습이 신경쓰여 본 것 뿐인데.
한편, 전통 활쏘기에서 운용하는 '기'의 힘은 ‘침뜸'을 배우면 보다 명료히 이해할 수 있다. 동양의학인 침술은 그 기본 철학이 우주를 꽉 채운 '기'를 전제로 한다. 음양오행이다. 전통 활쏘기를 하면서 꼭 침뜸을 공부할 필요는 없지만, ’기‘의 실체를 분명히 깨닫고 싶다면 가장 확실한 길이다.
나는 마침 정진명 선생께서 침뜸에도 일가견이 있으신 줄 뒤늦게 알게 되어, 즉흥으로 배운 경우다. 첫날, 정 교두님께서 내 얼굴을 보시고는 비위가 안 좋다는 말을 하셨다. 백인들과 부대끼며 산 지 10년이 넘은 가운데, 동양인으로써 겪는 여러 차별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것이 소화기 쪽으로 영향을 끼쳤다. 얼굴은 누렇게 뜨고 살도 나날이 빠지는 추세였다.
한편, 독일에서 침술은 상당히 널리 퍼진 동양의술이다. 침술 동호회가 여럿 있고, 어지간한 병원에는 전속 침술사가 의사의 위치로 근무한다. 또한 임산부마다 전문 도우미가 지정되는데, 그 사람들도 출산을 전후하여 임산부에게 침을 놔준다. 이렇듯 독일의 일상에서 흔하게 된 침술을 배울 기회를 얻었으니 놓칠 수가 없었다.
침뜸 강의는 기본 이론으로 이해를 다진 후, 직접 내 몸에 침을 찔러보는 방식이었다. 몇 차례 강의 후, 독일로 돌아와서부터는 정 교두님께서 쓰신 침뜸 책들을 읽으며 계속 공부 중이다. 아울러 가족과 지인들에게 침을 놓은 지 반년이 됐는데, 환자뿐만 아니라 침을 놔주는 내 자신부터 그 신통한 효과에 놀란다. ‘기’는 실재하고, ‘침’이 그 흐름을 돕는 걸 매번 실감한다.
예를 들어, 관절염을 앓고 있는 한 친구는 남편이 의사이다. 그것도 이곳의 큰 병원에서 한 부서의 책임자인 경험 있는 의사다. 아내의 관절염에 의사 남편이 해준 것이라고는 항생제와 진통제를 매번 갖다 주는 일뿐이었다. 도무지 낫는 기미는커녕 점점 악화되어 이런 저런 치료센터를 다녀도 신통치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내가 침을 놔주겠노라는 권유를 받아들였다.
자기 몸의 상태는 자신이 잘 안다. 그 친구는 이제 만사 제쳐두고 침 맞는 날짜를 물어온다. 내가 정 교두님께 배운 병의 근본을 치유하는 침술이 부어올랐던 발목이나 손목 관절부위를 서서히 가라앉히는 가운데, 기가 몸 전체를 원활히 흐르기 시작하면서 가뿐해지는 건 침 맞는 본인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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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독일의 깍지사법 모임. 당시 참가한 회원들은 터키, 몽골, 중국 등의 다양한 각궁과 전통활로 150미터 솔포 습사를 같이 하였다. 모두 50파운드가 넘는 활들이었다. 그들은 한껏 올려쏴도 솔포까지 살이 미치질 못하였지만, 사말의 살은 그 보다 훨씬 낮은 살찌를 보이며 과녁에 다다랐다. 나중에 그들이 사말의 활 제원을 물어, 30파운드 활에 8돈 죽시임을 말해주자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결국 하는 말이 넌 참 좋은 활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면의 힘을 이해할 눈이 없기 때문에 흔하디 흔한 카본궁이었고, 심지어 똑같은 모델에 20파운드나 더 쎈 활을 쏘는 자가 있었음에도 내 궁시가 좋아서 잘 날아가는 줄로만 안 것이다.)
원래 내 계획에 없던 또 한 가지, 전통 활쏘기를 배우면서 빠져든 다른 하나는 붓글씨이다. 정 교두님께서 쓰시는 획지에 반한 게 그 이유다. 이 획지라는 게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속이지만, 선조들은 활쏘기 대회를 열면 직접 한지에 붓글씨로 그 결과를 기록하였다. 전통 활쏘기를 온전히 계승하려면 붓글씨를 쓸 줄 아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화살을 날리는 일과는 별개지만 분명히 한 부분을 차지하는 전통 활쏘기인 것이다.
나는 마침 온깍지활쏘기학교 동문 중 서예를 하시는 분이 계셔서 입문에 도움을 받았다. 독일로 다시 돌아오는 내 보따리엔 화살 백 여 발 및 활 네 자루와 함께 문방사우도 무겁게 채워있었다. 지금도 나는 붓글씨를 매일 두세 시간씩 연습한다. 붓글씨의 매력을 차츰 알아갈수록 먹을 가는 시간마저 황홀할 지경이다.
활쏘기, 침, 서예. 이 세 가지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 세세히 풀어내지는 못하겠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아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진지하게 활 공부를 하다보면 언젠가 서예와 침이 눈에 아른거리게 될 것이다. 그것을 낚아채 손에 쥐어보느냐는 궁사 개개인의 선택이다. 어느 것이든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여정을 걷다보면, 처음 안 것은 티끌이었을 뿐, 점점 깊은 골짜기로 걸어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테다. 이전보다 더 깊게 알고, 그 만큼 더 볼 줄 아는 눈이 생긴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얼치기한테 현혹되어 시간을 낭비하는 여지가 점점 줄어드는 것만큼 현명한 삶도 없을 테다. 결국, 한 번 뿐인 이 삶을 충실히 채우고 훗날 떠날 때, 먹향과 시위소리로 한바탕 즐거웠노라하며 가뿐히 우주의 먼지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살며 살아가는 한 인간이자, 활을 내며 고민하는 궁사에게 이 보다 더 진한 삶이 또 있을까? 고작 활 하나로 인생 자체를 성찰한다는 식의 망상이 아니다. 삶의 관조는 미물에서도 얻을 수 있을지니. 우리는 활을 쏘지만, 결국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졸고를 끝내며
온깍지활쏘기학교를 수료한지 이제 일 년이 지났다. 그간 내 행적을 보면, 참 부끄럽기 그지없다. 동문들의 공간인 인터넷 카페에 지금껏 쏟아낸 말들은 참으로 치기어린 하룻강아지의 꼬리 짓이었다. 나는 이만큼 하고 있으니 알아주시오, 하는 어쭙잖은 허세가 대부분이었다. 이 글도 역시 언젠가는 부끄러운 자화상으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마냥 부끄럽지만은 않은 일이라 여긴다. 모자람을 알게 되는 건, 그만큼 더 깊어졌다는 것이고, 그렇게 한 발 한 발 걸어갈수록 오늘 보낸 내 살은 어제의 것과 다르리라 믿는다.
다시 누군가 내 손에 들린 국궁을 장난감 취급하며 농을 걸면, 처음 그때처럼 무얼 말할지 몰라 머뭇거리진 않을 것 같다. 백지 상태의 그라면 이제 난 깨우쳐 줄 지식과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미량이나마 품었다. 하지만 잘못된 지식으로 다져진 자라면 나는 그저 또 한 번 웃고 말테다. 난 그런 자들까지 교화시키며 살아야 하는 성인이 아니다. 나로서도 홀로 가야할 여정이 만 리 길인 와중에 그런 피곤한 소모전에 끼어들어 내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누가 이런 나를 탓할쏘냐?
이 글의 마지막을 날카롭게 끝맺는 이유는 나만의 인생신조 때문이다. 진정 배울 사람, 그리고 가르쳐줄 만한 가치가 있는 자에게는 그럴싸한 감언이설이나 동화를 불러일으킬 감정놀음이 필요 없다. 그들은 작금의 먼지바람 속에서도 저 앞에 단단히 박혀있는 기둥을 찾아낼 수 있다. 이 글은 그들에게 바치는 것이며, 함께할 도반들이 기둥 뒤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새삼 알리고 싶다.
끝으로, 치기 넘치고 여러모로 엉성한 졸고를 감히 선보여 송구스러운 마음이다. 그럼에도 모난 곳을 너그러이 품어주신다면, 그 혜량 앞에 사말은 더욱 겸허히 무릎을 낮추어 감사를 드린다.
(위 사진의 만작은 부족한 모습이다. 8치 죽시인데, 살이 내 몸에 맞는 길이에서 반 치가 모자라 가득 당길 수가 없었다.)
덧말을 추가합니다. 전통활쏘기는 관중이 내는 소리가 아닌, 몸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야 그 비밀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려면 과녁을 눈으로 쫓지말고, 마음에 들여놓아야 합니다.
또한, 후에 동문이 될 분들께 전합니다. 본 사말의 글이나, 온깍지궁사회의 사법 글은 참고만 하시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활 지식에 새로이 알게 된 전통사법의 내용을 추가, 접목하여 혼자 완성하려 노력하기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러한 시도는 점점 기형으로 변하여 굳게 만들 뿐입니다. 무술은 말과 글로만 전수될 수 없습니다. 지금껏 알던 모든 활에 대한 것을 걷어내고, 올바른 스승의 가르침 앞에 백지 상태로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임을 부디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관리자 주 : 위 글의 출처는 <온깍지 활 공부, 2018> 임을 밝힙니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느낀점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