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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의 식탁 질 들뤽 브리지트 들뤽 마르틴 로크.hwp
책
『선사시대의 식탁』
한강 문화재연구원 학습용서 3
2016년 5월 10일 초판 1 쇄 인쇄 2016년 5월 15일 초판 1쇄 발행
지은이 질 들뤽, 브리지트 들뤽, 마르틴 로크
옮긴이 조태섭, 공수진
펴낸이 윤철호, 김천회
펴낸곳 (주)사회평론아카데미
편집 고인욱, 고하영
표지디자인 김진운
본문 디자인 디자인시
마케팅 박소영, 정세림
LA NUTRITION PREHISTOR1QUE
by Gilles Delluc, Brigitte Delluc, Martine Roques Copyright © P.L3. editeur (Le Bugue), 1995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Sahoipyungnon Academy Co. Inc., 2016 All rights reserved.
This Korean Edition was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P.L3. 즌diteurr (Le Bugue)
through Bestun Korea Agency Co., Seoul
질 들뤽 Gilles Delluc (1934~ )
내분비학 전문의로 프랑스 페리괴 병원 내분비과 수석과장 등을 역임했다. 어렸을 적부터 선사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50년부터 라스코 동굴 조사에 참여했으며, 앙드레 르루와-그루앙(André Leroi-Gourhan, 1911-1986)의 지도로 파리VI 대학에서 제4기 지질학 박사학위롤 받았고. 앙리 드 룸리의 지도로 동대학에서 고 인류학과 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 선 사부에 소속된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선사에술 분야에 대한 많은 연구 롤 하였고 선사시대의 섭생, 성. 고병리학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 다. 부인인 브리지트 들척은 평생을 함께하는 학문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브리지트 들뤽 Brigitte Delluc (1937~ )
파리I 대학에서 앙드레 르루와-그루앙의 지도로 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 다. 1972년부터 1982년까지 선사민족지학연구소의 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 선사부 연구원이다. 아브리 빠또 유적지 박물관 관장을 지냈으며. 2013년 보르도 국립과학문학예술아카데미의 통신회원으로 위촉되었다. 선사에술 분야가 전공으로 프랑스 레제지 지 방의 베제르 계곡 일대의 동굴예술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였으며, 특히 프랑스 라스코 동굴 연구에는 1970년대 이후로 계속 참여하고 있다.
마르틴 로크 Martine Roques
의학박사로 전공 분야는 인체영양학이다. 그녀는 낭시 의과대학에서 인 체영양학 전공 교수인 제라르 데브리 교수를 사사했다. 페리괴 의료센터 게서 근무했고. 현재 랑마리 의료센터에서 진료 활동을 하고 있다.
* 꼬빵(Yves Coppens 1934-), 빠스칼 삐끄(Pascal Picq 1954-),
옮긴이
조태섭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 사학과와 동대 학원(고고학 전공)을 졸업한 후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서 선사고고 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주 석장리. 단양 금굴 등 여러 구석기 유적의 발굴에 참여한 바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구석기시대의 동물화석 연구, 동물고고학이다. 현재 공주 석장리박물관 자문위원. 제4기학회 부 회장. 한국구석기학회 감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화석환경 학과 한국 구석기시대의 동물화석』(2005년), 『실험으로 배우는 구석기 문화』(2013년. 공저) 등이 있다.
공수진
한불구석기문화연구소 소장이다. 연세대학교 사학과와 동대학원 (구석기 고고학 전공)올 졸업한 후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서 선사고고학 전 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구석기문화의 국제교류에 많은 관심을 가져 중국 주구점 유적 전시. 프랑스 또따벨 유적 전시. 프랑스 한국구석기륵 별전을 공동으로 기획하였다. 연세대 원주박물관 학예실장을 거쳐 현재 공주 석장리박물관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실험으로 배우는 구석기문화』(2013년. 공저). 『행위와 말 I: 기술과 언어』(2015년) 등이 있다.
서평
문명사에서 문화사로
이러한 학문 계보를 그려볼 수 있다. 선도의 인물로 앙드레 르화-구랑(André Leroi-Gourhan, 1911-1986)이 있었다. 그의 전공은 특히 동굴벽화를 중심으로 한 선사시대 예술이다. 그리고 그의 제자로 질 들뤽(Gilles Delluc, 1934~ )과 브리지트 들뤽 Brigitte Delluc (1937~ )이 있다. 묘하게도 질 들뤽과, 루시 발굴자 중 하나로 유명한 이브 꼬빵(Yves Coppens 1934~ )의 연배가 같다. 브리지트 들뤽과도 몇 살 차이 나지 않는다. 꼬빵은 박사학위를 파리4대학에서 수여받았다. 실제로 이 분야 명저인 『Préhistoire de l’art occidental』(1990)을 브리지트 들뤽과 르화-구랑과 공동 집필하였다. 그런데 확률이 아주 높지만 이브 꼬빵의 스승이 명시되어 있는 자료를 찾지 못해서, 둘 처럼 제자였다고 확언은 못하겠으나, 프랑스 학제상 박사과정생과 지도교수의 사이가 느슨하다는 것도 염두에 둘 때 이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그렇다해도 저 책 서문에라도 관계가 표시되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인류학적 언어사에 대한 저서를 낸 빠스칼 삐끄(Pascal Picq, 1954~)가 있다. 그는 꼴레주드프랑스에 있는 이브 꼬빵을 만나 큰 감명을 받고 연구방향을 정했으나, 이 대학의 특성상 직계 제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큰 영향을 받은 것은 확실하며, 역시 프랑스 학문연구 풍토를 고려해야 하고, 학위 수여 기간을 끝내고, 지금은 이브 꼬빵과 함께 꼴레주드프랑스에 조교수로 있으므로, 사소한 친분으로만은 볼 수 없다.
자, 이제 책 이야기. 이 책은 문화사를 다룬다, 문명사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할 수 있다. 선사시대사라면 의례히 획기적인 유적 및 유물 등을 끼워 넣으면서 일종의 진화론적 문명사를 그렸던 것이 우리가 항상 배웠던 선사시대역사이다. 그런데 내가 앞서 말했던 르화-구랑(André Leroi-Gourhan, 1911-1986) 이후의 선사시대사는 확연히 다른 경향이 있다. 특히 동굴 벽화 연구를 통한 선사예술사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인류의 자연에 대해 우리 문화가 한 방편을 지니듯이, 선사시대 문화가 한 방편을 지니는 것으로, 말하자면 인류문화사적 다원주의가 실현되게 된다―같은 혈연인 원시 인류에게도 이렇게 하지 못하면서 어찌 생태로서의 생명체 개념을 거론할 수 있겠는가? 단순히 원시적이고, 미개하며, 말소를 대기하고 있던 것처럼 소묘되던 인류가, 지금 식단 기준으로도 손색이 없는 영양비를 지켜가며 섭취 생활을 하였던 것으로 밝혀진다. 선사시대 섭취 생활과 현대 섭취 생활을 비교하며, 현대 쪽의 불균형을 지적할 때는 통쾌하기까지 한데, 그렇지만 이 책에서 노리는 효과는 선사시대와 현대 섭취 생활의 호오를 판가름하자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강력하게 우리의 편견을 깨고자 하는 것에 있다. 그 편견 중에 하나는 선사시대 인류가 육류만을 섭취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농경 생활을 그들이 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교과서의 술책일 뿐, 그들도 열매, 과일 등을 적극적으로 채집하여 내내 먹었다. 쉽게 생각해도, 지금 우리처럼 문명의 이기도 없이, 자연과 맞닥뜨리려면, 몸 자체가 다른 무기가 있더라도 가장 큰 무기이고, 영양 섭취가 곧 생존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데, 식생활이 허술했을 리가 없다.
이 책에서 제공하는 선사시대의 영양술은 단지 공상적인 각색 속에서가 아니라, 모두 최신의 과학을 통해서 밝혀진 바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지금 우리 몸에서 시료를 채취하여 검사하는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 규명의 구체가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이 책의 재미는, 유적지에 남아있는 꽃가루, 인간 변, 뼈 등의 것들을 과학적 측량 아래 원시인류의 선사시대의 섭식문화를 재구축해내는 전개에 있다.
혹 밝은 사람이 묘사가 놀랍도록 정밀한 선사시대 동굴 벽화에 그들 감성에 경이를 표하는 것은 그나마 바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비단 식생활뿐이었겠는가, 그들의 생활에도 존중받아야 마땅한 이성이 있었다는 것은 고도의 연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의의가 나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최신의 과학은 세계 속에서 창발 하는 인간의 심층을, 이미 이렇게 높은 정밀함으로 탐사해나갈 수 있는데, 우리가 왜 헤겔식의 고답적인 문명사 연구에서 어리석게 만족해야 하는가?
*이 책은 “한강문화재연구원” 총서 중 한 권이다. 이상하게도 이 총서에는 한국 고고학 및 인류학과 관련된 책은 한권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총서는 외국 고고학 및 인류학과 관련된 번역서로만 구성된다.
*이 책은 ‘슬기사람(호모사피언스)’, ‘곧선사람(호모에렉투스)’, ‘남쪽원숭사람(오스트랄로피테쿠스)’같이 한국말로 인류학 용어를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참으로 반가운 일이었다. 함께 옮긴 용어해설을 참조하라.
*이 책의 번역자가 속한 ‘한불구석기문화연구소’도 알아보면 좋을 성 싶다.
본문
제2장 슬기사람의 영향
소비되는 식물의 성질은 기후와 해당 지역의 지질과 지리에 따라서 당연히 달라진다. 1895년에 작성된 자료에서 피에트는 마다질 유적(아리에주 지방) 의 아질리안 문화층에 “자두, 야생 자두, 체리, 호두, 개암과 도토리의 씨가 있었고, 아주 적은 양의 밀이 있었는데 열매는 흰 가루로 떨어져 있었다”고 기록 했다(Bonne et al. 1976: 685에서 인용). 니스의 떼라 아마따 유적은 곧선사람들 이 야생 포도와 피스타치오를 먹었던 것이 밝혀졌는데, 특히 많은 양의 포도씨 가 퇴적층 내부에 잘 보존되어 있었다. 케르리쉬(Karlich) 유적(독일)에서는 40 만 년 전의 토탄층 내부에서 개암과 다양한 종류의 열매들이 발견되었다. 니스 의 라자레 유적의 술리안 사람들은 아주 가까이 에 있었던 바다에서 얻은 해 초로 만든 깔개를 가죽 위에 덮어서 사용했고 해초를 먹기도 했을 것이다. 무 스테리안 사람들은 개암과 함께 호두와 도토리도 먹었다. 1 만 5.000년 전의 팔 레오-멕시코 사람들은 열매, 잎, 과일을 이미 채집하고 있었다(Bonne et al., 1976: 685-687). 지금까지의 연구는 유적이나 동굴, 때로는 사람의 분변화석 에서 발견되는 꽃가루를 분석해서 식용할 수 있는 식물 목록을 작성하는 것보다는 당시의 기후 환경을 추론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식생 목록에 대해 훨씬 더 집중되었다. 그런데 1만7,000년 전에 살았던 막달레니안사람들은, 기후가 일시적으로 따뜻해지면서 숲이 뷔름 빙하기의 스템을 대체하는 경우가 꽤 자주 있었는데, 퇴적층에서 발견된 꽃가루의 60%가 나무 꽃가루로 구성되는 때도 있었다. 사초과(graminSes) 식물과 국화과(compos6es) 식물의 꽃가루가 교차 해서 출토되기 때문에 건조한 기후와 습한 기후가 번갈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Renault-Miskosski, 1986: 137). 이 사람들은 호두 , 개암, 도토리, 잣, 까치밥뿐 만 아니라 대황(rhubarbe)도 알고 있었으며 먹기도 했을 것이다(Leroi-Gourhan Arl. et al., 1979: 75-80). 1 만 1,400년 전에 라인강 근처에 있는 미 젠하임 (Misenheim) 유적에 살았던 막달레니안 사람들은 6,000개에 달하는 열매, 8,000개의 꽃가루와 나무들을 남겨 놓았다. 말, 소과 짐승, 사슴, 노루가 막달레니안 사람들의 식량이 되었지만, 여기에다가 “치커리. 버드나무 순, 클레마티스(버드나무 순과 클레마티스는 지금도 러시아에서 먹는다)와 오이풀(pimprenelle)의 어린잎을 섞어서 만든 샐러드”가 곁들여질 수도 있었다. 자작나무의 수액 을 함께 먹는 것도 좋아했을 것이다. 계절에 따라서 마황(éphfèdre)과 매지나무(égpine-vinette)의 열매와 까치밥도 있었다. 더 늦은 시기에는 작은 자두와 오디도 있었다. 개암을 저장해 놓을 수도 있었고 맛이 좋은 가루를 만들 수 있는 조 팝나무의 덩이줄기도 가져올 수 있었다(Leroi-Gourhan Arl., in lit., 1994년 10월 17일). 아르데슈(Ardkhe) 지방에서 중생대부터 나타난 밤은(Riou, 1994: 27) 현재 프랑스, 유럽 남부, 흑해 연안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북부처럼 따뜻한 기후 에서 자라는데(pitte, 1986: 34. 그림 8; 49-50) 토양이 산성을 띠며 결정화된 토양 이거나 프랑스 중부 고원지대 주변처럼 석회암 지대이면서도 산성을 띠는 저B 기의 모래로 덮여 있는 토양이 필요하다. 밤나무는 열매가 많이 달리는데다가 (1 핵타르당 2론 혹은 그 이상), 떨어지자마자 줍는다면 열매를 건조시켜서 보관할 수 있다. 밤나무의 꽃가루는 그다지 특징적이지 않지만 아르레트 르루와-구르 앙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간빙기에는 있었다고 한다(구두 대화, 19여년 3월 6일).
102~103.
제3장 나는 크로마뇽사람이다
부분적으로나마 기름기가 적은 살코기, 생선, 섬유질이 많은 식물을 더 먹고 소금을 줄여야만 우리들이 물려 있는 과정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의 육체적 필요에 따라서 몸을 재적응시키는 것과 같은 방향이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 인슐린비의존성 당뇨병의 이환율을 줄이는 길이다(Manson et al„ 1992; Kriska et al„ 1992).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인류 진화의 99.6%룰 차지하는 구석기시대의 섭생에 대한 연구가 현대인과 관련이 없지는 않을 것이며, 더 나아가 미래의 인류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176.
원저자의 한국어판 추가 내용
250만 년 전부터
어떻게 선사시대를 거쳐서 현재의 우리가 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 예전의 상황을 점검해 보자. 우리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이 먼 과거에서 몇 개 의 실질적인 조언을 얻을 수 있을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유명한루시와같은)의 뒤를 이어 아프리카에서 나타난 최초의 인류 손쓰는사람(homo babilis)과 우리가 나뉘는 것은 250만 년 전이 라는 아주 긴 여정이다. 핵심이 되는 인물은 곧선사람(Homo erecuts)인데, 그는 200만 년 전에 나타나서 주 일찍부터 아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에 자리 를 잡기 시작한다. 이들로부터 현생 인류가 파생하게 되며, 우리 같은 슬기사람(homo sapiens)은 크로마뇽사람의 자손이다. 우리는 모두 같기도 하고 모두 다르기도 하다. 네안데르탈사람(Homme de Néandertal)은 곧선사람의 유럽형 후손으로 보이는데, 상당히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었고 3만 년 전에 갑자기 사 라지게 되는데, 우리들은 이들이 왜 사라졌는지도 잘 모르고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이미 시작부터 모든 인류는 잡식동물이었다. 이것은 고기를 자르고 찢기 위한 앞니와 송곳니. 식물을 으깨기 위한 어금니와 같은 치아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치아에 남아 있는 선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이 점이 확증된다. 육식동물에서는 이 선이 수직이며, 초식 동물에서는 이 선이 수평이다. 오래된 인류의 치아에 나타나는 이 선이 이미 비스듬하다. 뼈의 화학적 분석은 스트론툼과 칼슘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드는데, 사람의 수치는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중간이다. 탄소 13(l3c)의 분 석에서도, 두 경우를 제외하고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네안데르탈사람이 출토 된 프랑스 샤랑트 지방의 마리약 유적과, 벨기에 스클랭(Sclayn) 유적에는 거의 육식만 했던 사람들이 살았던 듯하다.
우리는 동굴과 바위그늘 벽에 그려진 동물들이 선사시대 사냥을 나타내는 표의 일종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사냥을 위한 일종의 진혼 마술로 원하는 동물들을 미리 그리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려진 동물들과 선 사시대의 예술가들이 먹었던 동물들 사이에는 대단히 큰 격차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라스코 유적에는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그려져 있지만 (말, 들소와 첫소, 사슴과 암사슴, 산양, 호랑이, 곰, 코뿔소), 당시 사람들은 실제로는 순록만 잡아먹었는데, 순록의 그림은 단 1개만 있을 뿐더러 이것이 정말 순록 인지에 대해서도 확실하지 않다.
사실, 우리가 선사시대의 음식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선사학자들이 유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물론, 아주 오래전부터 이들은 동물뼈 만 모으면서 차츰 더 세밀하게 분석을 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는 식물 유물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형 유물(열매. 잎, 숯)일 때도 있지만 특히 수백만 년 동안 지속된 꽃가루가 있다. 이것들은 특별한 동정과정을 거친 뒤에 식생을 복원할 수 있게 해 주고 이를 통해서 기후를 복원할 수 있게 해 준다. 드물기는 하지만, 사람의 배설물 혹은 똥)화석이 보존되어 식량 체제에 대한 자료를 전달해 주기도 한다.
몽타주
선사시대 사람들, 혹은 더 정확하게는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반쯤 떠돌이생활을 하는 젊은 사냥-채집꾼들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숙달된 사냥꾼이라기보다는 맹수들이 사냥하고 남긴 것으로 근근이 식량을 구했던 것이 분명하다. 모든 원시부족에는 성에 따른 노동 분화가 있었다. 남자들은 하루 몇 시간 사냥을 하고, 여자들은 어린이들을 건사하면서 채집을 하고 집안일을 하면서 하루 종일 보낸다. 아마 예전부터 늘 이랬을 것이다.
이들은 아주 건강한 사람들이다. 석회암 지대에서 보존된 사람뼈 연구 덕분에 이 사실을 알수 있다. 뼈에서 암이나 결핵 혹은 영양 결핍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관절염은 자주 있지만큰 골절도 없다. 구석기시대의 삶은 짧았는데, 사 망률이 두 번 정점에 도달한다. 하나는 2세 무렵 젖을 떼는 시기이고, 다른 하나 는 30〜40세 무렵이다. 그러나 노인의 사례도 몇 개 있다. 이들은 일반적인 감염 질환으로사망했을 것이다.
샹슬라드 유적(도르도뉴 지방)의 사람 머리뼈는 예외이다. 이 뼈는 옆머리가 깨진 흔적 이 남아 있는데 이 젊은 사냥꾼은 부상을 극복해 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듯하고, 따라서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의학적 치료 혹은 최소한 영양학적 지원의 사례인데, 1만 년 전 무렵의 일이다.
3만 년 전 이후로 크로마뇽 남녀의 모습을 동굴 벽이나 유물에 새기거나 그리거나 조각한 수백 개의 예술품이 있다.
구석기시대의 유럽에서 예술가들은 여성을 주로 표현했으며 신체의 하부와 관련이 있는 여성유형 비만에 영향을 받은 모델을 선호했다. 이것은 단순한 여성유형 피하지방 축적부터 고도비만까지 다양하다. 이것은 물론 도상학적 선택이기 때문에, 루벤스나 르누아르가 동시대 여성의 특징을 모두 그리지 않았던 것처럼, 당시 여성의 모습을 모두 나타냈다고 할 수는 없겠다. 우리는 이 들이 가지고 있던 여성유형 비만이 과다한 영양섭취와 정착생활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여러 차례 임신했던 여성들의 가임기를 구분하는 것이지 병리학적 합병증의 결과가 아니다. 과다하게 영양을 섭취하고 정착 생활과 연관이 있는 상체가 비만해지는 남성유형 비만을 뚜렷하게 보여 주는 예술품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비만 유형과 관련이 있는 질병 (당뇨병. 혈중 콜레스테롤 증가와 트리글리세리드, 관상동맥성 심장질환, 뇌 졸중, 고혈압과 통풍)은 구석기시대에는 매우 드물었을 것이다.
기름기가 없는 고기와 섬유소가 많은 식물
보이드 이튼은 1985년에 영양학적 계산을 했는데, lg의 야생동물 고기는 1.41kcal를 제공하고 lg의생식물은 1.29kcal를 제공한다고 했다. 하루에 필 요한 열량을 3,000kcal로 산정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공식에 따라서 필요한 동물성 음식의무게(PA)와 식물성 음식의 무게 (Pv)를 계산할 수 있다.
1.4lpA + 1.29pV = 3,000kcal
선사시대 동안 시기와 지역에 따라서 기후는 매우 다양했는데, 더운 기후 부터(예를 들어 아프리카 대륙), 온화한 기후(1 만 7,000년 전 라스코 시기 동안의 프랑스 남부 지방 기후) , 심지어 아주 추훈 기후(같은 지역의 1만 8,000년 전부터 1만 9,000년 전 사이의 솔튀트레안 시기)도 있었다. 식량 자원은 기후에 따라서 다양하나, 이론적으로 기온이 낮아지면 동물성 기원의 식량이 증가하고 식물성 음식의 소비가 감소한다. 이처럼 하루에 필요한 단백질과 지방(야생동물 고기는 기름기가 적기 때문에 적게) 분량이 증가하는 반면에, 탄수화물은 필요 열량의 55%에 서 15% 정도로 감소된다. 탄수화물이 근육과 뇌의 활동을 위해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결핍은 지방과 단백질에서 글리코겐을 합성하는 것처럼 다른 자원에서 끌어오게 된다.
단백질,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은 대체로 구하기가 쉽다. 가장 오래된 인류는 남은 고기를 주워 먹은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뷔름 빙하기 동안인 후기 구석기시대에는 이 “순록의 시대의 고기 저장고이자 연모 상자이자 보석함이었던 순록은 하늘이 내린 사냥감이었다. 순록은 떼를 지어 살았으며 창으로 사냥되었다. 덫의 흔적은 없 다. 어떤 집단은 들소,첫소,야생 염소, 말을 사냥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위험한 털코끼리는 드물게 사냥되었다. 새, 알,곤충을 섭취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북극권에 사는 사냥꾼들이 잡은 암컷에서 젖을 채취하는 것처럼 짐승의 젖을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야생동물의 고기는 가축화된 동물보다 지방이 1/5〜1/10 정도로 적은데, 가축에는 혈관의 아 테롬의 원인인 포화지방이 아주 많이 들어 있다. 적어도 1만 년 전에 지구가 더워지면서 구석기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고, 순록의 대형 무리는 그들이 아주 좋아하는 이끼를 찾아서 북쪽으로 올라가게 된다. 따라서 이때가 중석기시대의 시작이자 대형동물 사냥이 막을 내리는 시기이다.
루시웅 지방의 또따벨 유적에서는 45만 년 전에 곧선사람들이 자신들의 동료를 잡아먹은 듯하다. 깨지고 부싯돌 석기로 자른 흔적이 남아 있는 사람 뼈가 다른 동물뼈와 함께 문화층에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습관적인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구석기시대 동안 식인풍습은 6개 정도 의 유적에서만 확인되었다. 식인풍습은 프랑스에서 신석기시대에 다시 나타나 는데(샤랑트 지방과 프로방스 지방), 의식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물고기는 야생동물 고기의 한 종류이다. 구석기시대 말기에 물고기를 작살로 잡았다. 직선형 낚싯바늘을 제외한 다른 종 류의 낚시는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물고기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양질의 지방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연약한 물고기의 등뼈는 초창기에 발굴된 유적에서는 수습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는 많은 사례가 나왔고 물고기가 막달레니안 시기부터는 꾸준하게 식량원이 되었음을 알고 있다. 가장 많이 먹은 물고기는 연어였으며,송어도 많이 먹었다. 이보다는 드물지만 민물 농어도 자 주 먹었으며 백어도 가끔 먹었다. 다시 말해 모두 기름지고 살이 단단한 물고기들이었다. 이들은 민물고기인데, 바닷고기와 조개의 소비는 중석기시대 이전에는 혼적이 남아 있지 않다. 빙하기 동안 해수면은 지금보다 50~100m 낮아서 바닷가 근처에 살던 구석기시대 주거지는 지금은 물에 잠겨 있다. 순록과 마찬가지로 물고기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동굴과 바위그늘 벽에 거의 그려 지지 않았다.
그러면 탄수화물은 어떤가? 우리는 무엇보다도 꿀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개미부터 곰까지 많은 동물들이 좋아하는 식품이다. 신석기시대 이전에 그려진 스페인 동부 지역의 바위그림에 벌에 에워싸인 채 꿀을 따고 있는 사람들 이 그려져 있다. 우리가 먹는 과일들은 구석기시대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고 야생곡물도 유럽에서는 자라지 않았다. 야생열매들이 단당류를 일부 제공해 주었는데, 이들은 북쪽 지역에서는 계절에 따라서 여전히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가장 추웠던 지역에서도 식물이 드물지 않다. 우리는 이누이트 사람들이 겨울이 오기 전에 식랑용 식물 20여 종으로 저장고를 풍성하게 채운다는 것을 알고 있다(잎, 새싹, 뿌리, 야생열매). 순록은 빙하 주변지역의 기후에 적응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날씨가 조금 덜 추울 때는 떡갈나무 열매와 밤이 탄수화물 자원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최근의 연구는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식물을 섭취했던 것을 확인시켜 준다. 치아의 치석 분석과 몇몇 네안데르탈사람 태아의 피토스테롤(phytost&oO 연구가 그것이다. 식물은 구석기시대 예술에서 단 한 번도 명확하게 표현된 적 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렇지만 추운 시기 동안 사람들은 지방을 찾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지방에서 부족한 탄수화물을 합성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글리코겐 합성).
야생동물 고기는 대체로 기름기가 적기 때문에, 선사시대 사람들은 골수에서 해결 방법을 찾았다. 긴뼈를 조각 내서 뼈대 몸통에 들어 있는 노란색 골 수(아주 많은 뼈조각들이 유적에 홀어져 있다)를 얻었고, 벌겋게 달군 자갈돌로 펄 펄 끓는 육수로 만드는 뼈 대 끝부분의 붉은색 골수를 확보했다. 꽃가루 연구를 통해, 우리는 프랑스에 개암과 호두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특히 일시적으로 기후가 따뜻해졌던 라스코 시기에 많았다.
발굴 현장의 관찰과 계산으로 선사시대 사람들의 음식을 재구성하면서, 이들이 지방산(포화지방산, 단일불포화지방산, 다불포화지방산)을 영양학 전문가들 이 추천하는 것과 매우 가깝게 먹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대인의 소비 양 태는 죽종성 경화의 원인이 되는 포화지방산은 너무 많이 섭취하고 양질의 지방인 다불포화지방은 너무 적게 먹고 있다.
무기염과 미세영양소
우리가 살고 있는 기후라면 하루에 필요한 소금의 양은 lg이지만, 식탐 때문에 우리는 10배 이상 더 먹고 있다. 더 심한 경우 일본 북부지역처럼 일부 사람들은 하루에 50g까지 섭취한다. 이들은 고혈압과 이로 인한 합병증으로 큰 피해를 입는다. 매일 1kg의 소금이 우리의 신장에서 걸러진다. 몇 g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이 신장관을 통해서 재흡수된다. 이렇게 신체기관이 염분을 절약하는 방식으로 기능하는 것은 어쩌면 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에서 인류가 기원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추가 증거의 하나일 것이다.
칼슘은 인체에서 가장 풍부한 이온으로, 하루에 필요한 양은 lg 정도이다. 젊은이나 임산부 혹은 수유하는 여성에게는 2배가 필요하다. 유제품을 섭취하지 않는다면 하루 필요한 분량은 물고기 6kg, 혹은 고기 10kg, 혹은 석회성분이 들어 있는 물 10C로 충당될 수 있다. 이것은 엄청난 양이지만, 구석기시대의 뼈에서 아주 어린 아이라도 광물질탈실(d든mineralisation)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유적에 잘 남아 있지 않는 뼈의 끝부분을 먹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빙하기 동안 해수면은 지금보다 훨씬 낮았고 대륙은 훨씬 넓었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아주 흔했던 요오드 결핍은 이 당시에도 존재했을 것이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사례는 리구리아 지방에서 발견된 작은 조각상인데,가 슴에서 조금 도드라지는 이 부분이 목걸이의 일부가 아니라면 갑상선종을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불소 결핍은 충치 발생의 원인이 되었다. 로디지아(Rhodfeie)에서 발견된 아주 예외적인 머리뼈 한 점을 제외하면 구석기시대에는 충치가 없었다. 반면 에 불결한 위생과 관련이 있는 치주 질환은 여러 번 관찰된다.
다른 무기염류도 모자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철분의 경우 부족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여러 가지 상황에서 선사시대의 혈액을 연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주목하자. 시베리아에서 동결된 채 발견된 털코끼리의 혈액이 분석되었다. 동 아시아 거주자들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혈액에 특징적인 디에고 인자(facteur Diego)는 인류의 아메리카 대륙 이동 흔적을 추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DNA 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들이 진행 중이지만, 영화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처럼 되려면 아직 요원하다.
각종 비타민 중에서 비타민 D는 언급할 가치가 있다. 이 비타민은 어린이의 구루병 예방에 중요하다. 이 질병에 걸린 사례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이 것의 신진대사는 햇빛의 작용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 때문에 적도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피부색이 검고 극지방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피부색이 하얀 것이다. 이러한 분포는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아메리카 인디언에게서도 동 일하게 관찰된다. 따라서 피부색의 다양화는 아메리카 대륙에 사람이 거주한 이래 정착된 것으로, 다시 말해 겨우 2만 년 전에서 3만 년 전 이후이다.
원시 민족을 참고하면, 구석기시대 어린이들의 이유기는 생명을 잃을 위험이 없게 늦고 점진적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들의 생리가 늦게 시작되고, 수유 기간이 늘어나고 영아사망률이 높아서 후손들의 숫자는 작은 단위로 축소되 었을 것이다. 어쨌든 현대인 가운데 모유 수유를 하는 어린이들은 유일하게 옛 : 기술과 언어날과 같은 식습관을 간직하고 있다.
물과 불
많은 선사시대 유적들이 물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따라서 생명에 필수적인 물을 운반해야 할 필요성은 자주 있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물의 운반 흔적은 북극지역 사람들이 자루 마개로 사 용한 것을 연상시키는 뼈로 만든 원추형 유물이다. 이누이트나 랩랜드 사람들이 기름이나 피를 저장하는 것처럼, 가죽 혹은 동물의 내장으로 만든 포대가 쓰였을 것이다.
알코올음료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할 것인데 이와 관련해서 두 가지 자료가있다. 먼저 절반 가량의 사냥-채집 집단이 발효시킨 음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두 번째로, 구석기시대 동굴 장식이 예전에는 이들이 다양한 마약효과로 신비로운 ‘여행’을 하는 샤먼과 비슷한 인물인 마술사의 개입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선사시대의 동굴 예술품은 훨씬 체계적으로 구성된 종교적인 관심이 동기가 되었던 것이 확실하다.
40만 년 전 선사시대 유적에서부터 화덕으로 형태를 갖추어서 불을 사용한 흔적이 나타나고 있는데, 아주 발달된 형태도 이따금 있다. 불은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을 터인데, 그중에서 음식물을 익히는 데 쓰였다. 우리는 선사 시대의 요리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는데, 요리라는 것은 음식물의 선택, 준비. 혼용과 향신료와 양념이 첨가되는 일련의 과정이지만, 어떤 혼적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물을 익힌 것을 증명하는 자료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긴 뼈들의 끝부분이 불에 탄 것은 해당 야생고기를 구운 것을 입증한다. 반대로, 이렇게 불로 음식을 조리한 이유가 지금은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고기를 익히면 질긴 콜라겐 섬유가 부드러운 젤라틴으로 변형된다. 말이 나은 김에, 단백질과 탄수화물 사이의 유명한 조리 반응(마이야르 반응)은 당뇨병 질환과 당화혈색소[헤모글로빈과 글리코가 결합하여 당화물이 된 것]의 원인으로. 이 질환의 원인을 생화학적으로 증명한다.
계절에 따라 끊임없이 바뀐다
앞에서 언급한 몇몇 관찰들은 평균에 불과할 따름이다. 사냥낚시ᅳ채집 집단에서는 모든 것이 계절에 따라서 끊임없이 바뀐다. 선사시대의 다소 추웠 던 시기에는 위도, 경도, 바다에 근접한 정도에 따라서 모든 것이 바뀌고 동물의 이동, 특히 순록이나 연어의 이동에 따라서 모든 것이 바뀐다. 도식적으로 이들 반유목민은 뺑스방 유적에서 그랬듯이 높은 곳에 겨울용 거처를 가지 고 있었다. 이들은 봄에 강을 따라 이동해서 여름 거처를 설치하는데, 이곳은 순록이 강을 건너고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곳이다. 이들은 가을이 되면 다시 겨울 거처로 돌아간다.
자연이 제공하는 자원과 그 획득은 늘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비축이 필요하게 된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자신의 몸속에 식량을 비축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남성형 비만이 없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이들은 최소한 두 가지 방법으로 음식물을 보관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하는 방법으로 일종의 페 미컨을 만들거나(말린 고기를 지방과 야생과일을 섞어서 제작) 영구동토 지역에 서는 땅을 파서 보관했다(동유럽의 여러 유적에서 입증된다). 사냥꾼들이 어린 동 물이나 상처 입은 동물을 기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피레네 지역에서 가축화된 말의 앞니처럼 많은 말의 앞니가 가끔 발견되는 것은 이런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농사처럼 목축도 구석기시대에는 행해지지 않았다.
신석기시대의 ‘재앙’과 산업혁명
선택된 몇 종류의 식물 재배(유럽에서는 밀, 다른 곳에서는 옥수수 혹은 쌀)와 한곳에 머무르면서 기름진 동물을 기르는 목축이 점진적으로 나타나면서 우리의 자연 환경과 생활방식이 바뀌게 된다. 이것은 아주 최근에 일어난 변화이다. 인류사의 99.5%의 시기 동안 우리들은 사냥꾼-낚시꾼-채집꾼이었고, 기름기가 적은 고기와 소화하기 꽤 힘든 식물 섬유로 영양분올 섭취했다. 우리의 진화에서 겨우 0.5%의 시간 동안 우리들은 정주생활을 하고 새로운 생활방식을 선택했는데, 이것은 우리의 인구 증가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지금까지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영양부족이나 폭력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아주 작은 기후 변화에도, 심지어 전염병이 발현하는 것으로 도 사람과 동물에게 결핍이 발생할 위험성이 커졌으며, 꽉 들어찬 곳간과 가축이 들어 있는 울타리 앞에서 이웃들의 탐욕이 발생할 위험도 커졌다. 그러나 기근, 절도, 전쟁은 상대적으로 우연히 발생하고 제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변화는 상당히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우리들의 유전적 자산은 우리들의 궤적에 동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의 신체 기관은 신석기시대 이후로 변형이 되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신장이 수십cm나 빠르게 줄어들었고(좋지 않은 영양 상태를 나타냄) 충치가 나타났으며 전염병, 결핵, 암도 나타났다. 산업혁명과 현대 문명의 발달 이후로 영양과다에 의한 질병이 나타났고 늘어나고 있다.
다시 돌아가 보도록 할까?
예를 들어 영양섭취 과다와 연관이 있는 2유형이라고 일컬어지는 성인기의 당뇨병에 프랑스 인구의 4%와 북미 인들의 6%가 걸려 있다. 예전에 사냥낚시-채집을 했던 사람들의 경우는 더 나쁜데, 유전적인 이유 때문에 훨씬 더 무거운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아리조나의 피마(Pimas) 인디언들은 50%가 당뇨 병에 걸려 있고, 나우루(Nauru)섬의 마이크로네시아 사람들이나 도시화된 오스트레일리 아의 원주민들도 엇비슷하다. 우리의 조상인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식단과 우리의 식단 그리고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식단을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선사시대 영양의 좋은 점이 잘 드러 난다.
임상학적으로도 영양섭취 과다로 인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학적으로 식이요법이 필요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의사가 처방전에 기입하는 첫 번째 말들은 모두 우리의 과거에서 착상을 얻은 것일 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간단한 몇 가지 행동강령으로 나타낼 수 있다. 육류와 유제품의 동물성 지방을 줄이고, 단당류와 소금을 줄이고, 물고기, 다당류, 섬유질이 많은 식물과 식물성 지방을 늘리고, 약간의 포도주를 제외한 알코을음료를 마시지 말고, 담배와 다른 종류의 마약을 중단하고, 신체 활동을 할 것.
우리 중 일부가 이미 그렇게 하기를 원했듯이, 음식물 중에서 최근에 먹게된 것들을 섭취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탄수화물 공급의 기초를 구성 하는 감자, 파스타, 쌀 유형의 탄수화물과 폭식을 피하고 지방분이 너무 많지 않은 유제품으로 칼슘 공급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II유형 당뇨병의 예방과 영양 과다섭취로 인한 질병 예방을 위해서는 기초적인 동일한 원칙에서 착상을 따올 필요가 있는데, 특히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 그러하다. 이것은 현대인이 건강하고 더 오래 살기 위한 방법의 하나임이 분명 하고 미래의 인류를 위한 방법도 될 것이다. 이것은 선사시대가 가끔은 쓸모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하나의 예가 되기도 할 것이다.
질 들뤽
171~178.
용어해설
곧선사람(Homo erectus)
150만 년 전 무렵에 아프리카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인류과의 한 종이다. 두 발로 걷고 불을 다 룰 줄 알았으며 생활 영역을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 지역으로 확대시켰다.
그라베티안 문화 (le Gravettien)
후기 구석기시대 문화 단계의 하나이다. 후기 구석기 문화 중 가장 넓은 지역에 걸쳐서 발달했 으며, 석기 문화뿐 아니라 예술 활동도 활발했는데 구석기시대의 비너스가 집중적으로 만들어 진 시기이기도 하다.
포도당신생성 (néoglucogenèse)
글리코겐이 탄수화물 이외의 물질에서 생성되는 과정.
남쪽원숭사람 (Australopithéque)
아프리카의 남쪽과 동쪽 지역에 살던 화석인류이다. 지금까지 7종류가 알려져 있다. 뼈대 모 양으로 보았을 때 두 발로 걸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주로 채식을 했다.
레이노병 (Raynaud)
추위와 스트레스로 인하여 신체 말단부에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서 생기는 질병.
루돌프 피르호 (Rudolf Virchow)
독일의 병리학자. 세포설에 근거하여 병적 조직의 현미경 연구를 창시하고 종양,화농물 둥의 연구를 발전시켜 세포병리학의 체계를 수립했다.
막달레니안 문화 (le Magdalénien)
후기 구석기시대의 마지막 문화 단계이다. 프랑스의 라 마들렌느(La Madeleine) 유적에서 이름을 가져온 것으로 크기가 작은 석기를 사용하고, 특히 예술이 발달한 시기이다.
마이야르 반응 (réaction de Maillard)
식품의 가열처리,조리 혹은 저장 중 일어나는 갈변이나 향기의 형성에 관여하는 반응으로 갈변작용으로 불리기도 한다.
무스테리안 문화 (le Moustérien)
유럽과 근동지역의 중기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이다. 르발루와 떼기로 알려진 독특한 방 법으로 미리 구상된 석기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방선균증 (actinomycose)
방선균은 세균과 진균(곰광이)의 중간적 위치에 있는 종으로 구강 혹은 장 내에 정상 세균층 으로 존재하지만 특수한 상황에서 원래의 위치를 벗어나 질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세포조직구증(histiocytose X)
백혈구 중 조직구가 과다 생산되어 다양한 조직과 장기에 축적되는 희귀질환. 요즘은 랑게르 한스 세포조직구증(Ungerhans cell histiocytosis)으로 불림.
손쓰는사람(Homo habilis)
인류과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화석인류로 250만 년 전에 아프리카 지역에서 처음 출현했다. 최 초로 도구를 만들어서 쓴 사람들이고 돌 더미를 쌓아서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구조물도 만들었다.
솔뤼트레안 문화
후기 구석기시대의 문화 단계 중 하나이다. 프랑스의 남서부와 스페인의 북쪽 지역을 중심으 로 발달했다. 나뭇잎처럼 생긴 창 종류의 석기가 유명하고 창올 멀리 던질 수 있는 투창기를 발명 했으며,뼈로 만든 바늘도 사용했다.
슬기사람(Homo sapiens)
현생 인류의 원형이다. 기원전 10만 년을 전후한 시기에 처음 둥장했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해 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이론도 있모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는 이론도 있다.
슬기슬기 사람(Homo sapiens sapiens)
현생 인류이다. 3만5,000년 전을 전후한 시기에 등장하며 인류의 생활 영역이 지구 전체로 확 장되었다. 돌날떼기를 이용해서 가성비가 높은 석기제작방법을 이용하고 뼈연모와 뿔연모를 발달시켰으며, 예술품을 만들었다.
신석기 (le Néolithique)
9,000년 전에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등장한 생산경제문화이다. 인류는 농사를 짓고 동물을 가 축화시키게 되며 홋날 문명발달의 기틀이 되었다.
아넘 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북쪽에 있는 지역으로 1623년에 이 지역을 탐험했던 네덜란드의 선원 아르렘 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아술리안 문화 (l'Acheuléen)
전기 구석기시대이다. 프랑스의 생 아술(Saint-Acheul) 유적에서 이름을 가져왔으며. 좌우대칭을 이루는 양면석기로 대표된다. 아프리카를 비롯해서 유라시아 대륙에 넓게 퍼져 있었다.
아이누 (AInou)족
오늘날의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의 동북 지방. 러시아의 쿠릴 열도,사할린 섬, 캄차카 반도에 정착해 살던 선주민이다. 역사적으로 개별적인 부족국가 형태를 지녔으며, 독자적인 언어인 아이누어를 가지고 있다.
알라카루프 (Alakaluf)족
칠레의 동쪽 지역에 사는 원주민 집단. 카웨스콰로 부르기도 한다.
앙드레 르루와-구르앙 (André Leroi-Gourhan, 1911-1986)
프랑스의 고고학자이자 민족지학자이다. 선사시대의 기술 발전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동굴 예 술을 철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정밀한 발굴법으로 유명했으며. 대표적인 연구 유적으로는 맹스방 유적, 아르시-쉬르-퀴르 유적이 있다. 라스코 동굴에 대한 연구에도 크게 기여했다.
오리냐시안 문화 (l’Aurignacien)
후기 구석기시대의 첫 번째 문화 단계이다. 돌날을 이용해서 석기를 만들었고. 뼈와 뿔을 이응 한 연모를 발달시켰으며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이누이트 (Inuit)족
그린란드와 아메리카 대륙의 북쪽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 집단이다. 날고기를 먹는다는 의미의 에스키모(Eskimo)로 불리기도 하는데, 자신들을 비하하는 말이라 생각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이베로-모뤼지안 문화 (Ibéro-Maurisien)
북아프리카의 구석기 문화 단계로 유럽의 중기 구석기 문화에 해당된다. 슴베찌르개(tanded point)가 대표적 인 유물이다.
중석기 (le Mfesolithique)
제4기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1만 년 전 무렵에 둥장하는 문화이다. 작은 석기 를 만들어서 사용하고 사냥과 물고기잡기, 채집으로 생활했으며 반정착생활을 한 것으로 여겨 진다. 출현 시기는 지역에 따라서 다르고 문화 내용도 다르다.
타사다이족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에 거주하는 부족이다. 1970년대에 선사시대의 문화를 그대로 간직한 부족으로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티에라델푸에고 (Terre de F^u)
남아메리카 대륙 끝에 있는 마젤란 해협의 남쪽에 위치한 군도.
표피성 기관(phanfere)
손톱, 발톱, 머리카락, 치아를 가리킨다.
하드자 (Hadza) 족
탄자니아 동부에 사는 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