獻 花 歌
지 형 률
‘우리 노래’라는 뜻의 鄕歌는 우리말의 가장 오래된 온전한 모습을 보여 주는 귀중한 문화 유산임에도 삼국유사가 쓰여진 13세기말 이후로는 거의 잊혀져 왔다. 1918년에야 새로이 해독이 시도된 이래 여러 연구가 이어져 왔으나 아직도 읽는 이에 따라 읽기와 해석이 일치하지 못하는 딱한 형편이다. 이는 향가를 표기하던 鄕札表記法이 전수되지 않았고 몇 수 남지 않은 향가와 토막말을 기록한 吏讀나 口訣吐 말고는 고대어의 면모를 살필 자료가 알려지지 않았던 데 기인한다. 향가는 三國遺事에 14수, 均如傳에 11수, 平山申氏姓譜에 1수가 전해지고 필사자에 의한 창작 여부가 논란되고 있는 花郞世紀에 1수가 더 보일 뿐이다. 다행히 1973년 이래로 한문 불경을 우리말로 고쳐 읽도록 구결문자로 표기한 釋讀口訣이 발견되고 2000년 이래로는 이를 부호로 표기한 자료가 찾아져 우리말의 옛 모습을 훨씬 잘 볼 수 있게 되었다. 향가해독은 향찰로 표기된 고대어의 형태와 통사법을 밝히고 현대어로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임에도 종래에는 대체로 한글로 표기된 중세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이제 그 고전적 한계를 넘게 된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말을 사랑하고 옛날의 우리말을 사랑하는 한국인으로서 향가가 다시 온전한 모습으로 숨쉬고 살아나 석굴암처럼 쉽게 벗 되기 바라지 않는 이 없으리라. 이에 獻花歌를 함께 해독하면서 다가가 보면 어떨까. 삼국유사에는 이 노래가 신라 제33대 聖德王 때(AD702-737)에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純貞公의 절세미녀인 水路夫人이 바다에 접한 천길 바위 병풍 위의 만발한 철쭉꽃을 꺾어 줄 사람을 찾았더니 종자들은 모두 못한다는 데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웬 노인이 꽃을 꺾고 받친 노래로 기록하고 있다. 단테와 괴테에 앞서 牽牛老翁이 있어라.
헌화가의 원문은
紫布岩乎过希
執音乎手母牛放敎遣
吾肹不喩慚肹伊賜等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
로 되어 있다. 이는
사보 바호
잠온 손 쇼 노히시견
나 안디 븟그리실
곶 것거 받오림다
로 해독된다. 각 행별로 해독과정을 살펴 보면 우선 각각의 향찰을 새김 또는 음으로 읽어(解字) 어형을 확인하고(解讀) 글자대로 대응하는 현대어와 비교하여(解譯) 통사적 기능이 파악되면 끝으로 문법에 맞는 현대어로 고치게 된다(現代語譯).
1. 紫布岩乎过希
〈解 字〉 사보-보-바호-호--희
〈解 讀〉 사보 바호
〈解 譯〉 빨강 바위 가에
〈解說 1〉 紫布
① 紫布는 ‘보’로 끝나는 紫色의 우리말이다. 조선전기까지도 우리말 색채어에서 紫는 赤과 구별되지 않는다. 布에 얽매여 紫를 ‘븕-’으로 읽을 수 없는 터에 삼국사기의 옛 지명표기에서 赤의 의미의 ‘사보/사비’가 확인된다. 紫는 ‘사보’이고 布는 ‘사보’의 ‘보’를 덧쓴 말음첨기이다. ‘사보’는 ‘빨강’의 의미로서 만발한 철쭉에 뒤덮인 상태의 표현이다. 송나라 사람이 기록한 紫의 고려어 質背는 「지(紫의 독음)+ㄹ(옛 속격조사)+뵈(布)」의 漢韓 합성 표현으로서 紫의 고유어를 포함하지 않는다.
② 한자로 우리말을 표기하는 借字表記에서는 원칙적으로 단어의 첫머리를 그 의미의 글자로 표기하고 끄트머리를 그 음을 가지는 글자로 표기한다. 삼국유사에서 譯上不譯下로 설명하는 이 上譯下音原理는 訓主音從原理라고도 하는 데 어형을 확정하고 동의어 또는 동음어로 읽을 위험을 예방한다. 뜻을 빌린 훈차자는 새겨 읽어 훈독하고 음을 빌린 음차자는 소리대로 읽어 음독하면 될 것을 남의 나랏사람이 먼저 깨치다니. 향찰마저 한문으로 보도록 마취되어 모국어조차 몰라본 솔롱고스 오이디푸스여.
〈解說 2〉 岩乎过希
① 岩乎는 ‘바위’의 옛말로서 끄트머리가 ‘오/호’이고 후행모음 ‘이’가 없으므로 ‘바호’로 읽고 ‘바회’의 방언형으로 본다. 过은 過, 邊의 속자로서 문맥상 邊이므로 ‘’으로 읽는다. 석독구결에는 ‘’이라는 형태도 보인다. 우리말에 ‘ㄹ-ㅅ’의 교체현상이 있다. 岩乎过은 바위 병풍이 솟은 곁으로서 암소를 놓은 곳이다.
② 希는 ‘희’의 음차자로서 현대어는 ‘에’이다. 우리말에 ‘ㄱ>ㅎ>ㅇ’의 음운변화 현상이 있다. 이 처격조사는 ‘긔>희>의’로 변화하나 향가에서는 혼용된다.
2. 執音乎手母牛放敎遣
〈解 字〉 잠-ㅁ-오-손--쇼-놓-이시-견
〈解 讀〉 잠온 손 쇼 노히시견
〈解 譯〉 잡은 손 암소 놓이심
〈解說 3〉 執音乎手
① 執音을 ‘잡-’으로 교체된 ‘잠-’의 표기로 본다. 우리말에 ‘ㅁ-ㅂ’의 교체현상이 있다. 제주방언 ‘심(執)-’은 고려할 만하나 ‘감(捲)-’의 모음교체형 ‘검-’은 의미상 제외된다. 乎는 의도법어미라 이르는 굴절어미 ‘오’로서 16세기까지 능동적 자발성 및 강한 정서를 나타낸다. 音은 ‘ㅁ’의 표기로서 의도법어미에 앞서는 굴절어미 ‘ㅁ’은 없으므로 어간말음이다. 執音乎는 ‘손’의 표기인 手 앞에 쓰였으므로 ‘ㄴ’을 더하여 읽는다. 동명사형어미는 표기를 생략하기도 하나 ‘ㄴ’은 隱으로, ‘ㄹ’은 尸로 표기한다.
② 母牛는 삼국유사의 牸牛로 보아 ‘어미소’가 아니라 ‘암소’이다. ‘암’은 숨은 받침 ‘ㅎ’을 가지므로 母는 ‘’으로 해자된다. 받침 ‘ㅎ’은 표기되지 않는다. 執音乎手는 ‘시’가 없어 존대말이 아니고 한 손은 암소를, 다른 손은 水路夫人의 손을 잡은 정황이 아니므로 ‘암소를 잡은 牽牛老翁의 손을(으로 하여금)’ 하는 의미이다.
〈解說 4〉 放敎遣
① 放은 ‘놓-’으로 훈독한다. 敎는 이두에서 ‘이시’로 읽히며 ‘(爲)-’의 최존대어, 최존대의 존경법어미 또는 존칭주격조사로 쓰이나 여기서는 「이(사동형어미)+시(존경법어미)/게 하시」이다. 水路夫人이 암소를 쥐지 않았으니 放敎는 ‘놓으시’의 의미가 아니다.
② 遣을 이두독법대로 ‘고’로 읽으면 문맥이 이어지지 않는다. 연결어미 ‘고’가 조건, 이유, 전제 등도 표현할 수 있었다고 보기 보다는 이러한 경우의 遣은 석독구결의 ‘/견’에 대응하는 동명사형어미로 볼 것이다. 옛말에서 동명사는 명사 이외에 연결어로도 쓰인다. ‘놓이시견’은 ‘놓게 하시거늘/하시니’ 하는 의미이다.
3. 吾肹不喩慚肹伊賜等
〈解 字〉 나-흘-안-디-을이-글-이-시-
〈解 讀〉 나 안디 븟그리실
〈解 譯〉 나를 아니 붉으리실 바는
〈解說 5〉 吾肹
① 향찰 吾는 ‘나’의 표기이이며 肹은 ‘글/흘’의 표기로서 목적격조사는 ‘흘’로 읽고 모음조화에 따른다. ‘을’의 옛 형태이다. 水路夫人에게 경어를 쓰면서도 ‘나’로 자칭하는 것은 고대어에 겸칭 또는 경칭의 대명사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② 不은 부정소 ‘안’의 훈차표기이고 喩는 이두에서 ‘디’로 읽힌다. ‘안디’는 ‘아니’의 의미의 부정사이다.
〈解說 6〉 慚肹伊賜等
① 慚肹伊는 ‘을이’의 ‘ㄱ’을 중복철자한 표기이다. ‘-’은 ‘븕(赤)-’의 변이형이다. ‘ㄹ이’는 두 동사화소 ‘ㄹ’과 ‘이’의 중가형이며 ‘이’는 문법적 態를 자유화한다. ‘븟그리-’는 ‘붉게 하-(부끄럽게 하-/나무라-)’ 또는 ‘붉어지-(부끄러워 하-)’의 의미이다. 여기에서는 싫다고 뿌리쳐 저 바위처럼 붉게 만들지 말라는 의미이다. 늙은 자기와의 관계를 남에게 ‘부끄러워 하’지 말라는 의미로 풀고 의도된 사태를 연출하려는 노회의 표출이라고 혹여라도 신선을 모독하지 말라.
② 賜는 존경법어미 ‘시’이다. 等은 ‘것/바’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의 표기로서 홀로 서지 못하므로 굴절어미 ‘ㄴ’을 보충하여 읽는다. ‘ㄹ’은 ‘하면’의 의미이다.
4.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
〈解 字〉 곶-흘--ㅅ-가-받-오-리-ㅁ-다
〈解 讀〉 곶 것거 받오림다
〈解 譯〉 꽃을 꺾어 바치겠음입니다
〈解說 7〉 獻乎理音如
① 獻의 옛말은 ‘받-’이다. 乎는 의도법어미 ‘오’, 理는 추측법어미 ‘리’이다.
② 理音如는 ‘림다’의 표기로서 이에 포함된 ‘임’은 공손법이다. ‘임’은 「이(공손법어미)+ㅁ(동명사형어미)」으로 분석되나 공손을 표현할 때는 결합형으로만 쓰인다. 동명사형어미 ‘ㅁ’은 ‘-함이 마땅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제 얻어진 해독을 현대어 문법에 맞도록 고치면
빨강 바위 가에
잡은 손을 암소 놓게 하시거늘
나를 아니 붉게 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쯤의 현대어역이 이루어지고 헌화가의 해독이 끝난다.
이 글을 읽노라면 여러 흠이 보이리라. 스스로의 해독이 떠오르리라. 향가에 다가왔음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