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31일(월) 광주일보
소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무명작가였던 카타야마 쿄이치를 일본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영화와 드라마로도 각각 제작되어 세간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영화는 인생의 한 순간을 뚫고 지나간 날카로운 첫사랑의 추억을 세밀한 펜슬로 그려놓은 데셍화처럼 보여준다.
리츠코와의 결혼을 앞둔 사쿠타로. 그는 갑자기 리츠코가 자신의 고향으로 떠난 것을 알고 뒤따라 고향으로 내려간다. 고향에서 그를 기다리던 것들은 학창시절 너무나도 깊게 사랑했던 아키와의 수많은 추억들. 휴대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 카세트테잎에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대화를 나누었던 아키와의 추억에 곧장 빠져드는 사쿠타로.
하지만 그 추억은 이루지 못한 너무나도 가슴 아픈 사랑의 기억. 백혈병에 걸려 죽어간 아키와 그녀의 마지막 목소리 테잎을 십수년이 지난 후에야 전달하게 되는 리츠코. 결국 사쿠타로와 리츠코는 함께 아키의 유골을 하늘로 날려 보내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곧장 구노의 아베마리아 피아노 편곡 연주를 흘려보낸다. 영화의 종반부에 아키가 사쿠타로를 위해 체육관 피아노를 연주하던 곡도 바로 이 곡이다. 어린 시절의 아키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어른이 된 사쿠타로가 눈물을 흘리며 이를 듣는 장면은 이 영화의 손꼽히는 명장면 가운데 하나다.
수많은 작곡가들이 성모 마리아를 위한 노래 ‘아베마리아’를 작곡했는데 그 가운데 프랑스 작곡가 구노의 아베마리아는 독특하다. 구노는 아베마리아를 작곡하면서 대 작곡가 바흐가 남겨놓은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의 전주곡 멜로디를 그대로 빌려와 반주로 사용하고, 자신은 노래의 주선율만을 작곡했다. 아주 기발한 발상이다.
다시 말해 바흐의 음악이 반주가 되고 노래는 구노가 작곡한 멜로디가 되는 것이다. 결과는 훌륭하다. 마치 원래 하나의 작품이었던 것처럼 완벽한 아베마리아가 되었으며, 이 작품은 구노가 작곡한 그 어떤 곡들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구노의 아베마리아는 수없이 많은 연주가들에 의해 다뤄져 왔는데, 최근에는 첼로나 바이올린 편곡 버전이 오히려 더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원곡의 무게감을 지나칠 수는 없다.
원곡인 성악버전으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음반은 미국의 흑인 소프라노 캐슬린 베틀의 음반<Grace(은총)>이다. 다양한 작곡가들의 아베마리아를 비롯하여 유명 성가곡들을 가득 담아 놓았다. 캐슬린 베틀은 말 그대로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매혹적인 소프라노다.
엄마를 따라 교회 성가대에 갔다가 노래의 인생을 걷게 된 성악가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다 해고당하고, 유럽 최고의 교향악단인 빈 필과의 공연을 불과 3시간 앞두고 취소해버린 일화는 유명하다. 갖가지 기행과 모난 성격으로 가는 곳마다 화제를 뿌리고,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렸지만 그녀의 노래는 다른 어떤 소프라노도 만들어 낼 수 없는 미성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청초한 아름다움과 가파르게 꺾여 들어가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호흡. 그녀의 아베마리아를 듣다보면,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을 거부할 수 없었던 아키의 슬픈 눈망울이 떠오른다.
<독립영화감독/음악칼럼니스트>
첫댓글 또 이 영화 찾아서 감상해야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제가 얼마전에 알게된 영화 감상 전문 카페 '방랑하는 마음'이라는 곳에 이 란을 앞으로 계속 스크립해가도 될런지요? (cafe.daum.net/bangrangja22)
글의 출처만 정확히 밝히시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