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갛게 핏자국이 그어진 목에 아직 머리가 덜렁덜렁 달려있는 2살을 갓 넘긴 수탉이 뜨거운 물에 몸이 푹 담긴 채 커다란 솥에 담겨있다.
“오늘 니 외삼촌 오신다 아이가. 닭 한마리 잡아 푹 고와 같이 묵게.”
수이는 아까 할머니가 닭 목을 칼로 내리쳐 피를 내리기 위해 하수구 옆에 눕혀둔 것을 보고 알고 있었다. 외삼촌이 오실거라는 걸.
수이는 국민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몇 해를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에 있는 대광리의 수이 외조부댁에서 지냈다. 대청마루가 가운데 있고 양 옆으로 방이 달린, 마당이 넓은 집이었다. 대문 입구에는 담장을 훌쩍 넘는 키의 대추나무가 한그루 있고, 여름이 오면 넓은 앞마당 한편으로 포도나무 한그루가 크게 자라 달콤한 포도송이가 열리는 집. 포도나무 밑으로 빨갛고 하얗고 분홍빛이 물든 봉숭아꽃, 과꽃, 나팔꽃 등 꽃과 텃밭으로 가꿔진 앞마당이 있다면, 뒷마당에는 돼지 둘, 셰퍼트 쯤으로 보이는 할머니만 따르는 이름이 검둥이인 크고 검은 개 한마리, 발바리 개 두마리(둘은 누구든 이름이 발바리로 불렸다), 100마리였던 병아리에서 외삼촌들이 오실 때마다 잡아 수가 줄어든 닭들이 자랐다. 뒷마당 동물들과 하나씩 인사를 하고 지나가면 맨 끝에서야 붉은 조명이 달린 재래식 화장실을 만날 수 있는 집이었다.
수이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검둥이의 크고 무서운 왕왕거림을 지나쳐 꿀꿀거리는 돼지들을 살펴보고 옆 방의 닭집에서 몇개의 계란이 있는지도 확인하곤 했다. 수이에게 검둥이는 무서웠고 발바리들은 귀여웠다. 돼지들은 이해할 수 없었고 닭들은 지렁이를 잡아먹느라 냄새나는 소똥 농장 주변을 서성이며 머리를 쪼아대는 모습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어떤날은 동물들에게 친절했고 어떤날은 동물들이 먹고 똥만 싼다며 무시하기도 했다.
지난 번 외삼촌이 오셨을 때도 닭 털을 뽑는 것은 수이의 일이었다. 목이 끊기고도 파닥거리는 닭을 봤을 땐 무섭고 소름끼치는 기분이 들었지만 뜨거운 물에 담긴 닭 털이 얼마나 쑥쑥 잘 빠지는지 체험해 본 후에는 무서움보다는 빨리 털을 다 뽑아야겠다는 마음만 남았다.
뜨거운 물에서 닭의 털을 뽑는 것은 엄마의 흰머리를 뽑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드는 일이었다. 털을 하나 잡고 쑥 뽑으면 너무 말끔하게 뭔가가 빠져나오는 기분이 오묘하게 만족스러웠다. 차가운 물에서는 그렇게 잘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 살이 좀 익어야 근육의 긴장도 사라져 잘 빠지는 것이겠지. 털이 다 뽑힌 닭의 피부는 잘린 목의 단면을 보는 것만큼이나 징그러웠다. 털이 뽑힌 자리마다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주변으로 살이 돋아나 있는 걸 보는 건 기분이 나쁜 일이었다.
외삼촌이 오시고, 삶아진 닭은 쟁반위에 얹혀져 밥상위에 올랐다. 할머니는 닭의 양쪽 다리를 손으로 잡아 쭉 찢어 한쪽은 할아버지를, 한쪽은 외삼촌을 주셨다. 나머지 부위를 조금씩 해체해 놓으면 그걸 모두가 나눠먹었다. 한쪽으로는 솥에 가득히 닭죽이 담겨 있었는데, 할머니는 그 닭죽 위로 지방만 있는 닭껍질을 올려 휘이 저어 죽과 함께 모두에게 나눠주셨다. 수이는 털이 뽑힌 닭의 피부가 징그러웠던 기분은 통째로 잊고 닭죽안에 있는 닭껍질이 참 맛있다고 생각했다.
수이가 학교를 들어가고 난 뒤로 대광리 외조부댁은 방학때만 가서 머물렀다. 5살 터울의 동생 나리와 함께 머물면서 손톱에 봉숭아물도 들이고 아침에 놀러나가 밥시간이 되도록 들어오지 않는 발바리들을 함께 찾으러도 다니고, 발바리를 찾으러 나온 것도 까먹고 개울가에서 한참을 놀다 할아버지가 찾으러 오는 날들도 여럿이었다.
전엔 어른 돼지가 두마리였는데, 그 해 방학 때는 어른 돼지 한마리와 새끼 돼지가 한마리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 때쯤 검둥이도 새끼들을 낳았다. 새끼들은 까맣고 너무 작은 동물들이었다. 7마리 중 한마리는 죽고 6마리만 살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보통 개울 건너 부대에서 아침마다 받아오는 군인들의 남은 찬통(아마 군인들이 먹다 남은)으로 검둥이와 돼지들의 밥을 주곤 하셨는데, 그날은 새끼를 낳느라 고생한 검둥이에게 북어국을 끓여주셨다. 새끼 한마리가 죽은 상황에 걱정스런 할머니는 6마리를 엄마 품에서 잠시 꺼내와 밤이면 아랫목에서 잠을 재웠다. 며칠 동안 방에서 꼬물거리는 강아지들을 따라 나리와 함께 배를 뒤집고 기고 하며 노느라 즐거운 방학이었다. 할머니는 며칠 뒤에 강아지들을 누가 데리고 갈거라고 하셨다. 우리가 다 키울 수 없기 때문에 검둥이만 우리가 키우고 다른 강아지들은 모두 분양을 준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두마리 먼저 보내고, 세마리를 누군가 데리고 가고, 남은 얼룩이까지 동네의 한 아주머니가 데리고 가버렸다. 수이와 나리는 다시 심심해져 창호지 문에 몰래 구멍을 뚫어 눈을 대고 바깥을 지나가는 누군가를 훔쳐보는 기분으로 심심함을 달랬다.
하루는 처음보는 아저씨가 나리 키만큼 길고 머리가 큰 망치를 들고 할머니와 함께 대문을 들어오는 것이었다. 어쩐지 조금 무서운 마음이 들어 수이와 나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 창호지에 몰래 뚫은 구멍으로 아저씨가 무얼하는지 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뒷마당에 있던 새끼 돼지를 앞마당의 수돗가 근처로 끌고 왔다. 끌려오는 새끼 돼지는 꿀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수이는, 나리는, 왠지 보고싶지 않은 풍경이 펼쳐질 것 같은 예감에 창호지 구멍에서 눈을 뗐다. 둘은 그저 아무 말이 없었다. 할머니와 아저씨는 잠깐의 대화를 이어갔다. 새끼 돼지가 아픈애라는 이야기도 언뜻 들렸다. 그러다 갑자기 새끼 돼지의 소리가 비명처럼 변했다. 꿀꿀거리던 새끼 돼지는 끼에엑-끼에엑 거리며 높은톤으로 비명을 질렀는데, 비명 중간중간에는 망치로 무언가 - 이를테면 새끼 돼지의 머리 - 를 때리는 소리가 쿵쿵 들려왔다. 몇 번을.. 아마 6-7번 쯤.
끼에엑-끼에엑 쿵! 께액-끼에엑 쿵! 끼에악-끼아악 쿵!.....수이의 심장도 그 소리에 동요되어 함께 쿵쿵거렸다.
그 날 저녁, 밥상위로 빨갛게 양념된 돼지고기가 올라왔다.
“할무니, 이거 오늘 낮에 잡은 새끼 돼지로 만든거야?.”
“아이다, 할무니가 밖에서 사온기다. 걱정말고 무그라. 먹어야 키도 크고 이뻐지고 한다. ”
‘거짓말......’
수이는 할머니의 거짓말에 어떤 서러움이 밀려왔다. 낮에 들은 새끼 돼지 머리에 망치가 부딪히는 소리, 무슨말인지 알 수 없었던 꿀꿀거림이 끼에엑- 하고 비명이 되던 소리, 심장이 쿵쿵거리던 소리, 서러움은 소리가 되어 한꺼번에 가슴을 휘감았다. 할머니는 거짓말쟁이라고, 먹고 싶지 않다고 소리 한번을 내지 못하고 수이는 눈물만 뚝뚝 흘렸다. 나리도 언니가 눈물을 흘리자 쭈뼛거리다 울먹거림으로 서서히 바뀌어갔다. 숟가락을 든 손이 길을 잃은 채 하염없이 방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