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 통정대부 병조참의 강공 묘갈명
휘 업걸, 자 걸지, 호 상암, 진천군 현손
강군 병형(秉馨)....가승일권을 가지고 (용안헌즙)이 있는 우천동까지 나를 거듭 찾아와서 말하기를,
아 우리 선조 상암공께서는 옛날 선조임금 시절 임진 병란의 어지러운 시절을 맞아 충렬로서 일가를 이끌고 금산에서 창의하였고, 또한 정유년에 공을 세우셨다.
포상으로 증 통정대부 병조참의를 받으셨고 실제 우리가 순창에서 살기 시작하여서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 공께서 가신지 330여년(1893,1956년)이 되어 집안에 그 행적을 설명할 행장 등이 없고, 설명할 사람이 없이 단지 생졸년과 세계만 남아있다.
나의 병이 깊어 훌륭한 업적을 남길길이 없어 가승첩에 실려있는 것을 전하고자 한다....
공의 휘는 업걸이고, 초명은 언걸(彦傑) 자는 걸지, 호는 상암이다. 진주의 동방 거족이며, 국가의 위난으로 부터 백성과 나라를 있게한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姜以式) 장군으로 부터 시작하여 박사공 계용이 조상이다.
그 후 감찰어사 사첨(師瞻), 문경공 군보(軍寶), 진산부원군 공목공 시(蓍)께서 선조이시며, 공목공 차자로서 조선조 두문동에 들어간 통계공 회중(淮中), 증병조참판 안복(安福)의 후손으로, 순충보조공신 증 이조참판 진천군 이온(利溫)이 고조이시다.
증조부 휘 숙(淑) 진사 수안군수, 조부 휘 세인(世仁) 진사 진안현감, 아버지 휘 운(雲) 진사 사과이시며, 경주이씨 인의 휘 우춘(遇春)의 따님이 어머니이시다.
계해년(1563)에 공을 얻으셨고, 향년 64세이시고, 병인년(1626) 4월21일 돌아가셨다.
묘지는 순창군 풍산면 상촌성 백호언덕 강치이며, 배위는 숙인 안동김씨로 공이 돌아가신지 3년 뒤(기사년,1629년) 돌아가셔 합장하였다.
아들은 응세(應世)로 호는 퇴암, 증 우호위승호랑이며, 손자는 귀일(貴日)로 호 죽헌, 증 좌우위상호군이며, 증손은 영로(映老)로서 절충장군 용양위부호군의 수직(壽職)을 받았으며, 이하 많은 후손들의 녹명이 끊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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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 봄정월 중휴 창산 조원승(曺元承) 짓다.
참고) 노인직(老人職)....수직(壽職)이라고도 한다 :
15세기 전반기에 첨설직·검교직·동정직 등 고려 때의 산직이 폐지되고 새로운 산직체계가 성립되었는데, 이때 생겨난 관직이다.
〈경국대전〉 이전 노인직조(條)에 의하면 80세 이상은 양천을 막론하고 1계급을 주고, 원래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는 1계급을 올리고 당상관에게는 왕명에 따라 주었다. 이러한 규정은 〈대전통편〉에서 더욱 구체화되었다.
내용을 보면, 종친(宗親) 가운데 부수(副守) 이상으로 80세가 되었거나 봉군(封君)의 부친이나 시종신(侍宗臣)의 부친, 지방장관의 부친으로 70세 이상이 되면 매년 정초에 가자하도록 했다.
또 동반·서반 관리로서 4품관 이상의 실직에 있었던 사람 가운데 80세 이상된 자도 가자했으며, 사족의 부녀자 가운데 90세가 된 이와 서민의 경우 100세가 된 이에게 가자했다.
이와 같이 노인직은 신분에 관계없이 80세 이상이면 누구에게나 주는 것으로, 양인과 천인에게는 그다지 특전이 없고 양반 관료들에게 가자 등의 특전이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이 제도가 문란하게 운영되어 사서인(士庶人) 중에서 높은 위계를 받기도 했다
첫댓글 갑신년 1884년, 1944년, 2004년
수직을 받으셨다면 80세 이상 장수하셨다는 얘기인데,,,
통계공 강회중 - 강안복 - 강이온 - 강숙 - 강세인 - 강운 - 증병조참의 강업걸 - 강응세
강귀일 - 강영노 - 강운택(1/3) 강운학(3/3)
강위원 - 강세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