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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디모데전서3장14~4장5절
제목 : 올바른 가르침
감독(장로)에 이어 집사의 자격을 소개한 후,
바울은 이 서신을 쓰게 된 이유를 밝힙니다.
이 서신을 통해 자신의 에베소 방문이 지체될 경우 디모데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배교자와 이단에 대한 성령의 권고를 상기키시며,
거짓 교훈의 위험성을 재차 경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부패하게 하는 허탄한 가르침을 배격하고,
믿음의 말씀과 선한 교훈을 따라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당부합니다.
교회의 본연의 임무는 하나님의 진리를 밝히 드러내어 거짓된 가르침(배교)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데 있습니다.
1. 경건의 비밀(14~16절)
1)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14절)
“[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이것'은 2:1-3:13에 기록된 내용을 가리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가 있는 에베소 교회에 가기를 원했으나(1:3),
지체되는 경우를 생각해서 목회 서신을 기록한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기 전에 디모데에게 직접 이러한 지침들을 전하지 않고 서신으로 전한이유는 무엇인가?
바울은 다음과 같은 의도에서 이 지침들을 서신으로 전했을 것입니다.
첫째, 본 서신은 바울이 에베소를 떠날 때 말로써 충고하였던 것을 더 확실하게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바울이 디모데에게만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니고 수신자인 에베소 교인들로 하여금 디모데의 권위를 인정하도록 하기 위하여 서신을 기록하였습니다.
셋째, 바울이 에베소를 서둘러 떠나야만 했기 때문에 미처 알려주지 못했던 지침들을 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15절)
“[15]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본절에서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청지기 역할의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몇 사본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헬라어 사본에서 '행하여야'라는 동사의 주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동사의 주어는 일반적인 사람이나 디모데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비록 본 동사('알게 하려')의 주어가 디모데이나 앞의 구절에서 열거되었던 지침들을 살펴보면 문맥상 일반적인 사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1)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우러러보는 그리스도인 전체의 가족'을 나타내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정'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이는 지상에 있는 보편적 교리를 가리킵니다.
교리를 집이라고 일컬은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 되는 가족들을 소유하고 계시고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2)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 교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영원히 살아 계셔서 주관하시는 하나임의 소유입니다.
바울이 이처럼 교리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소유라고 말한 것은 교회를 돌보는 사람들이 지킬 거룩하고 흠 없는 생활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3)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 여기서 '기둥'은 '터'에 의해 더욱 강화되는 지주의 개념을 갖습니다.
그리고 본문 전체를 볼 때 '기둥'과 '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시되는
'진리'의 확실성과 견고성을 강조합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는 진리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3) 경건한 비밀을 알게 함(16절)
“[16]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이 구절은 놀라우신 하나님의 신비에 대한 찬양입니다.
'경건'의 헬라어 '유세베이아스'는 원래 '영혼의 자질이나 상태'를 의미하나, 여기서는 이보다 더 적극적인 의미로 삶 속에 나타난 경건을 의미합니다.
곧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참되게 헌신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참된 경건의 본질입니다.
이 경건은 비밀로 언급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그분을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 그는 육신으로 나타 난 바 되시고(人性).
이제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6행으로 찬송합니다.
이 6행의 찬송은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해서 그의 영광스러운 승천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는 초대 교회에서 행하던 찬양의 형태로서 풍부한 운율과 의식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는 그리스도의 비하(卑下)를 가리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고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습니다.
이처럼 저주를 받아 연약해진 인간의 육신을 스스로 입으셨으므로,
이를 통하여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명백히 드러났습니다(요 1:1-14;고후 8:9;빌 2:5-11).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2)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神性).
앞에서 예수의 인성(人性)을 묘사한 반면 본문은 예수의 신성을 언급합니다. 예수는 비록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셨으나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그의 말씀과 그가 행하신 기적들의 근거였고 사망을 이기신 그의 부활을 통하여 절정적으로 증거되었습니다.
(3) 천사들에게 보이시고(復活).
예수는 그의 모든 생애를 천사들에게 보이셨습니다.
대표적으로 그의 탄생(눅 2:12-14), 사단의 시험(마4:11), 부활(마28:2-7;막 16:5-8;요20:12,13). 그리고 승천시에(행 1:9-11) 천사들이 예수 곁에 등장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본문에서의 의미는 부활에서 나타내 보이신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신자들의 구속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벧전1:12).
*벧전1: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4) 만국에서 전파 되시고(福音傳播).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모든 족속으로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마 28:18-20).
인간의 연약함과 질고를 담당하시기 위해 친히 낮아 지사 고난의 생애를 보내신 그리스도는 이제 세상의 구주로서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습니다.
'만국'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드네신'은 글자 그대로 '민족들'을 의미하지만, 유대인들과 구별되는 이방인뿐만 아니라 '천하 만민'을 가리킵니다.
(5)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믿음).
이제 세상 가운데 전파되신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세주로 받아 들여 지셨습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믿음으로 응답하는 역사를 말합니다.
참된 복음의 권세는 그 복음을 듣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를 믿고 받아들이는 신앙을 가져다줍니다.
(6) 영광 가운데서 올려 지셨느니라(昇天).
이것은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한 언급입니다.
하늘에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하늘로 오르셨습니다(행 1:9).
지상에서의 사역을 승리로 종결지으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이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셔서 하늘의 영광 가운데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의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빌 2:9-11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2. 거짓말 하는 자들(1~5절)
1)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1절).
“[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 본장에서 바울은 이단에 대한 경계를 명하고 있습니다.
1-5절은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금욕주의(禁慾主義)에 대한 교훈(敎訓)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의 거짓 예배가,
하나님의 참된 예배를 더럽히고 있는 것을 경계시키고,
이것이 성령에 의한 예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후일'은 묵시 문학적으로 '말세'(막13:5-37; 딤후3:1)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가까운 장래'를 의미합니다.
즉 이것은 어떤 특정한 시간에 실현되는 임박성을 가리킵니다.
'...에서 떠나'는 '버리다', '취소하다'의 뜻으로 '마음이 변하다', '배교하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고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기 때문에 배교자들이 생깁니다.
한편 '미혹하는 영'은 '거짓말하는 영'을 가리킵니다(왕상22:22).
이 말은 방황을 뜻하는 '플라네'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방황하게 하다','길을 헤매게 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귀신'이라는 말은 KJV과 NEB에서는 '악마'(devil)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본문에서는 '다이모니온'('귀신')과 '디아볼로스'('마귀')로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마12:24; 막5:8, 9).
'귀신'은 복수로 사용되었고 '마귀'는 단수로 사용된 것이 특징입니다.
2) 거짓말하는 자들이라(2절)
“[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1)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이는 믿음에서 떠난 자의 상태를 말합니다.
'화인맞은'는 문자적으로 '인두로 도장을 찍은'이란 뜻입니다.
이 말은 노예 매매 시 주인이 노예에게 신체 부위에 불로 지져서 자기 소유를 표시했던 사실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이 부위는 점차 딱딱해져서 감각이 없어지게 됩니다.
즉 양심이 화인 맞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의 악한 행동에 대해서 감각이 무디어진 자들입니다(엡4:19).
*엡4: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이처럼 그들의 감각을 무디게 하여 진리를 구별할 수 없게 하는 그들의 소유자는 사단입니다.
(2)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
이 말은 '마귀들로부터 조종받는 사람들'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사단은 사람들을 꼬여 하나님 위에 오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 할 터이나(3절)
“[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에베소 교회의 이단들은 금욕주의자였습니다.
그들은 물질은 악하고 정신은 선한 것이며, 육적인 것은 악에 물들게 하는 요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혼인을 불쾌하게 여겼고 몇몇 음식을 먹지 않았던 엄격한 채식주의자였습니다(롬14:1,2).
*롬14:1,2 “[1]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2]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혼인을 금하는' 풍습은 엣세네파에서 시작하여 테라퓨테파에서 유행하였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영지주의자들의 교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교리는 1세기에 교회에 들어와서 2세기경까지 교회에 두루 퍼졌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적 쾌락을 죄로 규정하였고,
성결하게 되는 것은 금욕을 통해서만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특별히 만드신 제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좋게' 창조하셨습니다(창 1:10, 12, 18, 21, 25, 31).
따라서 억지로 행하는 금욕주의와 금식주의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배치됩니다.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특정한 음식을 금지하는 것은 모세 율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레 11장).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불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셨습니다(갈 5:1-6).
따라서 우리는 어떤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고 채식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들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소중한 것들입니다(막7:5 ; 롬 13:14 ; 딛 1:15).
*막7: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롬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딛1: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그러나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받지 않습니다(롬 1:21).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4)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4절)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본절은 앞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 선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창1장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창 1:10, 12, 18, 21, 25).
'지으신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티스마'는 '창조하다'를 뜻하는 동사 '크티조'에서 유래한 단어로 '창조된 피조물'을 뜻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말함으로써 어떤 것도 버릴 것이 없다고 표현합니다.
사실 인류에게 아무 쓸모없는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만일 감사함으로 받으면'으로 조건적 분사로 해석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선하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버릴 것이 없다'는 원인, 결과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5절).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결혼을 창조자의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일용할 양식과 마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전제라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는 그것을 거룩하게 하는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혹자는 '말씀과 기도'가 음식물 자체를 거룩하게 한다고 하나 그것은 지나친 해석이며 그것보다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연결시키는 고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먹고 마시는 행위에 있어서 결코 세상 사람들처럼 쾌락과 만족을 추구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고전10:31).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말씀을 맺습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있는 집이며,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가 지키고 살아내고 전해야 할 진리는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비밀(신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나타난 경건의 비밀을 알고 믿고 따를 때 교회는 순종과 헌신을 위한 더 확고한 근거를 갖게 되고,
더 민감한 분별력으로 거짓과 유혹에 맞서 신앙과 양심을 지킬 수 있으며, 죄악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온전히 나타낼 수 있습니다.
배교의 위험과 거짓 교사들의 출현을 경고 하십니다(1,2절)
그들은 경건의 비밀(3:16)과 믿음을 떠나 악한 영에 미혹되어 거짓 가르침에 빠졌고, 양심에 화를 맞아 도덕 불감증과 외식에 사로잡혔으며,
결국 다른 이들마저 파멸로 이끄는 자들입니다.
이처럼 호시탐탐 진리의 보루(3:15)인 교회를 미혹하고 위협하는 악한 영과 이단의 역사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 들어온 잘못된 가르침을 잘 분별해야 하고, 무엇보다 영적 무감각과 안이함에 빠지지 않도록 늘 성령과 진리의 단호한 권고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결혼과 음식에 대해 극단적인 금욕주의를 주장했습니다(3~5절)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기에 우리가 그것을 선한 양심으로 감사하며 받는 다면 버릴 것이 없고, 오히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피조 세계의 청지기로서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창조의 선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감사함으로 누리는 것이어야 말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져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