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춘천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니고 서울의 고등학교에 가면서 춘천을 떠났다가 50년 만에 귀향했다. 고향 춘천은 언제라도 달려올 수 있는 거리였지만 현실적으로 그리 쉽지 않았다. 그래서 춘천은 언제나 추억 속의 고향으로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지금도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춘천은 여전히 봉긋한 봉의산을 등에 업고 유유히 흐르는 소양강을 옆에 끼고 앉아 유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춘천에 있으면서도 옛 춘천이 그림같이 떠오르며 그리워지니 나이 탓인가 보다.
우선 앞뜰과 뒤뜰의 추억이다. 지금은 후평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 어릴 적만 해도 그곳은 뒤뜰로 불렸다. 앞뜰은 이제 이름조차 없어졌지만 뒤뜰을 후평리라 한자 표기했듯이 전평리로 표기되었다 한다. 앞뜰엔 춘천시민의 채소 공급지이던 채마밭이 있었다. 자전거에 빨간 토마토를 한 광주리 가득 실은 아빠를 따라 즐겁게 집으로 돌아오던 추억이 있다. 앞뜰에 가르마같이 난 신작로를 따라 춘천역으로 오갔다. 바로 여기에 미군부대 캠프페이지가 들어서면서 춘천역은 쓸모없이 버려졌다. 춘천은 앞이 꽉 막혀 버려 기형적으로 커져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춘천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는 피해망상 같은 생각도 들었다.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불편하게 느껴지던 이 미군부대가 이전된다는 소식에 가슴이 후련하였다. 드디어 그 부지가 춘천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전화위복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전쟁이라는 물리적 힘이 아니었다면 노른자위 69만㎡의 땅을 춘천시가 어떻게 확보할 수 있겠나? 그러나 막상 기회가 주어지자 춘천시는 갈팡질팡 하는 느낌이다. 알 만한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봐도 저마다 다른 소리를 한다. 상가로 개발하여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거나, 아파트를 건축하여 분양해야 한다거나, 체육시설을 들여 춘천시민의 건강을 챙겨야 한다든가, 행정시설을 넣어 중심성을 확보해야 한다든가, 어린이를 위한 시설 또는 주차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등 온갖 의견이 있는 것 같다.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나 이렇게 조각조각 나누다 보면 죽도 밥도 안 될 것이다. 생태공원을 만들자는 의견은 5분만 나가면 산과 호수가 있는데 공원이라니 비생산적이라고 일축되는 분위기다. 물론 춘천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기획공원은 없다. 도시는 천혜의 자연경관만으로 발전할 수 없다. 사람의 의지와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거기에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 역시 300만㎡가 넘는 기획공원으로 주변에 자연숲이 없어서 조성한 것이 아니라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만들었으므로 도심 속의 오아시스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호반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생태공원을 만드는 것만이 춘천을 위한 가장 합리적이고 거시적인 기획이 될 것이다. 수도권을 배후시장으로 삼아 소득을 창출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더더욱 그렇다. 멀리서 춘천에 오는 사람들에게 춘천역에서 내려 차로 5분 이상 이동하는 것과 바로 푸른 숲으로 들어가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춘천역을 바로 앞에 둔 이 땅에 소양강 물줄기를 끌어와 생태공원을 만들어 춘천시민은 물론이고 수도권 시민의 휴식처로 삼는다면 전철로 서울에서 불과 1시간 반도 안 되는 호반의 도시 춘천은 명실공히 녹색 치유의 도시로 명성을 날리며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 사람들이 와야 경제도 발전할 수 있지 않겠는가? 환경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도 있다. 개발의 시대는 지나갔다. 눈앞의 단기적 이득에 현혹되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출처 : 강원일보 2012년 10월 4일자 보도>
첫댓글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도 댁으로 방문했을 때 같은 의견을 말씀드렸지만 이렇게 명료하게 글을 쓰셨네요. 역시 명 칼럼입니다!
생태공원도 만들고, 바로 옆에 있는 집창촌도 없애면 좋겠습니다.